조각승 상정(尙淨)과의 만남
조선후기 불교조각사를 연구하다보면 문헌으로만 알려져 있던 조각승이 제작한 불상이 발견되는 경우가
있다. 특히, 여러 문헌에서 주도적으로 불상에 새로 금을 칠하거나 수리했다고 전해진 경우와
스승과 제자로 추정되는 승려가 불상을 제작한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이제까지 밝혀진 조각승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작가는
18세기 중반에 전국을 무대로 활동한 상정스님이다.
조각승 상정은 1748년에 전라남도 장흥 보림사 신법당 불상과
영광 불갑사 목조삼세불좌상을 수화승 태원太元과 개금하고(사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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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불상 개금, 1747년, 장흥보림사중창기 |
1757년에 벽암각성(碧巖 覺性, 1575-1660)이 1630년에 중건한 구례 화엄사 대웅전 삼존불을
계초(戒初)와 같이 개금한 인물이다.
화엄사 대웅전 중수 시 불상의 개금과 후불탱화의 조성 등이 이루어졌는데,
이 불사(佛事)에 참여한 승려로는 증명(證明)에 대선사(大禪師) 처관(處寬), 편수(片手)에 쾌연(快演),
불화(佛畵)에 의겸(義謙) 등으로 18세기 중반에 최고의 지위에 있었던 승려들이 참여하여
조각승 상정의 지위를 짐작할 수 있다(사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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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 불상 개금, 1757년, 구례화엄사사적기 |
이후 상정은 영남 지역으로 초빙되어 1767년에 경상북도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아미타불상과
1769년에 경상북도 경주 불국사 대웅전 삼존과 관음전 독존을 개금하였다.
불국사 불상 개금 시에는 「경상도강좌대도호부경주동령토함산대화엄종불국사고금역대제현계창기
(慶尙道江左大都護府慶州東嶺吐含山大華嚴宗佛國寺古今歷代諸賢繼創記)」에
“도금양공(塗金良工) 호남(湖南) 상정(尙淨)”으로 언급되어 호남 지역에서 활동한 승려임을 알 수 있다.
(사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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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3) 불상개금, 1769년, 불국사고금창기 |
상정과 관련된 마지막 문헌기록은 1771년에 김천 직지사 불상을 계심(戒心)과 개금한 내용이다(사진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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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4) 불상개금, 1771년, 직지사불상개금시주질 |
따라서 상정은 위의 문헌을 통하여 계초와 계심 등의 조각승과 같이
전국을 무대로 활동한 작가임을 알 수 있다. 특히, 조각승 계초는
1790년에 정조가 발원한 경기도 화성 용주사 대웅보전 삼세불의 본존을 제작한 승려이다.
따라서 상정은 문헌기록을 통하여 불상을 제작한 조각승일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그러나 몇 명의 연구자는 상정이 불상을 개금한 기록만 남아있기 때문에
조각승이 아니라 개금승(改金僧)일 가능성을 이야기하였다.
그후 조각승 상정이 제작한 불상이 경기도 양주 회암사에 봉안되어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어
조사를 갔지만, 사찰측에서 이전에 조사한 연구자가 논문을 발표할 때까지 언급하지 않는 조건으로
발원문을 보여주었다. 발원문에는
“발보제원(發菩提願) … 상정복위망부모장한신(尙淨伏爲亡父母張漢臣) 김씨선업양주(金氏善業兩主)
영가(靈駕) … 재장(?匠) 상정(尙淨) 유순(有淳) 우학(宇學) 칭숙(稱淑) …
건륭이십을해년삼월일(乾隆二十乙亥年三月日) 창평(昌平) 용흥사(龍興寺) 상선암(上禪庵) 설변(設辨) 書”
이라는 내용을 확인하고(사진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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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5) 불상 조성발원문, 1755, 양주 회암사 |
영성전에 봉안된 목조여래좌상을 볼 수 있었다(사진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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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6) 상정, 목조여래좌상, 1755년, 양주 회암사 |
이후 상정이 제작한 불상인 회암사 목조여래좌상과 부천 석왕사 목조보살좌상은
문화재 지정 신청으로 조사할 수 있었다(사진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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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7) 상정, 목조보살좌상, 1755년, 부천 석왕사 |
불상은 1755년에 전라도 지역에서 제작되어
조선후기 불교조각사 연구에 조각승의 계보와 불상 양식을 밝히는데 중요성이 인정되어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상정은 기존 조사된 발원문을 통하여
속성(俗性) 장(張)씨이고, 아버지가 장한신(張漢臣)과 어머니 김씨 사이에서 태어났고,
상정의 부모이름 다음에 영가라는 말이 적혀있어 1755년에서 한 두해 전에 돌아가셨음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1757년에 화엄사 각황전 불상 개금에 수화승으로 참여하여
그의 나이가 중년 이상이라는 점을 추정할 수 있다.
이를 종합해 보면 상정스님은 1710년을 전후하여 태어나 1730년대 불상 제작의 수련기를 거친 후,
1750년대 이후 전국적으로 불상 제작과 중수 개금을 주도하다가
1771년 이후에 돌아가신 것으로 볼 수 있다.
단편적인 문헌 기록을 바탕으로 한 작가의 삶을 복원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연구는 앞으로 전국적으로 분포되어 있는 사찰에 봉안된 불상의 제작 시기와
제작자를 밝히는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이후 사찰에 있는 불상의 체계적인 조사 · 연구가 진행된다면
개별 조각승의 삶을 복원할 수 있는 단서들이 더 발견될 것으로 기대된다.
- 최선일, 문화재청 인천국제공항 문화재감정관실 감정위원
- 2009-05-11, 문화재청, 문화재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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