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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청상(靑孀)의 관불가(觀燈歌)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사월 초파일에 관등(觀燈)하러 임고대(臨高臺)하니 원근 고저(遠近 高低)에 석양(夕陽)은 비꼈는데......
동령(東嶺)에 月上하고 곳곳이 불을 켠다. 우리 님은 어데 가고 관등(觀燈)할 줄 모르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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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5월 2일은 사찰에 온갖 등을 밝히는 불기 2553년 부처님오신날이다.
민속학자 최상수(崔常壽)는 부산의 세시풍속에서
사월 초파일을 욕불일(浴佛日)이라 불린다고 했다.
욕불(浴佛)은 관불(灌佛)이라고도 하며 석가모니 탄생을 기려서 태어날 때와 같이 향수(香水) 혹은 감다(甘茶)로 부처님을 목욕시키는 것이다.
이때 모셔지는 부처님은 아이 같은 모습에 천지인(天地印)을 결하고 있는데, 우리는 이 불상을 탄생불(誕生佛) 혹은 불강생상(降生像), 관불상(灌佛像)이라 한다.
천지인은 불타의 우주적 성품을 되풀이하는 것으로
고대 우주론의 개념 속에서 세 지역을 연결하는 우주의 기둥처럼
석가가 하늘과 땅 사이를 결합시키는 존재임을 상기시키고 있는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천지인을
대승불교에서의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의 교리와 서로 연결되는 자세라고도 설명한다.
불교의 수많은 문헌 중 부처님의 일대기를 꾸민 것이 불전문학(佛典文學)이다.
이는 불교 교단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생활 규범의 명확함을 꾀하기 위해 기록한 것이었다.
그러나 시대가 내려오면서 교단생활이 복잡해지고 세존의 가르침에 대한 해석이 여러 갈래로
난무하게 되자 새롭게 여래의 일대기와 인연 이야기 등을 널리 수집하고,
또 한편으로는 석가만의 일대기를 더욱 더 아름답게 꾸미게 된다.
기원 후 100년대 후반 이후에 성립한 불교경전에는 석가의 탄생에 대해 자세히 설명되기 시작하며,
또한 불전문학이 편찬되고 발전함에 따라 불교 신도 사이에서 새로운 의식들이 만들어져 행해졌다.
그 중에서도 매년 석가탄신일을 기념하기 위해 불상을 가마나 수레에 태우고 거리를 순회하면서
기악을 연주하고 향을 사루며 꽃을 공양하는 ‘행상(行像)’이라는 의식과,
불상을 책상이나 쟁반에 모셔놓은 후 향수나 감다 등으로 성존의 몸을 씻는
‘관불회(灌佛會)’라는 의식이 행해졌다고 한다.
관불회를 욕불회(浴佛會), 불생회(佛生會), 용화회(龍華會), 탄생회(誕生會), 석존강탄회( 釋尊降誕會)
라고도 하며, 당나라 때 의쟁(義淨)이 인도에 구법을 다녀온 쓴 『남해기귀전(南海奇歸傳)』에도
「?磨陀那가 건치(健稚)를 올리면 사원원의 뜰에 보개(寶蓋)를 치고 전각 옆에 향수병을 늘어놓고,
금 · 은 · 동 · 나무로 된 불상을 금 · 동 · 나무 · 돌로 만든 반(盤)위에 안치하고
기녀(妓女)들로 하여금 음악을 연주하게 하며,
가루 향을 바르고 향수를 부어 깨끗하고 흰 모직으로 닦아 낸다」는 기록을 남기고 있어
당시 서쪽 나라에서 행해진 관불회의 모습을 어느 정도 짐작해 볼 수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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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는 사월 초파일에 관불회를 봉행하였다는 기록은 없다.
조선시대 성현(成峴)이 편집한 『용재총화(용齋叢話)』에서 12월 8일에 욕불(浴佛)을 행한다는 기록과
함께 일본 원흥사(元興寺)「가람연기병류기자재장(伽藍緣起幷流記資財帳)」의 흠명천황(欽明天皇) 7년(538) 12월에 백제 성왕(聖王)이 태자상(太子像) 및 관불기(灌佛器) 등을 보냈다는 기록,
그리고 중국이나 일본과는 달리 관불회 때 주존으로 봉안되던 탄생불의 작례가 가장 많이 남아있어
고래로부터 관불회가 우리나라에 성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의 관불회 전통은 한동안 단절되었다가 80년대부터 새롭게 거행되어져
사월 초파일 중요 행사의 하나로 자리를 잡았다.
이 관불회 의식은 본래 바라문의 청정의식(淸淨儀式)이었던 것이 불교에 채용되어 변형된 것이라 하며,
불세존이 탄생한 후 난타 용왕과 우바난타 용왕이 공중에서 깨끗한 물을 토해내면서
한줄기는 따스하게 하고 한 줄기는 시원하게 하여 태자의 몸을 씻었다고 하는
『과거현재인과경(過去現在因果經)』속의 내용과
천제와 범석이 홀연히 내려와 갖가지 이름의 향수로 보살을 목욕시켰고 아홉 마리 용이
하늘에서 향수를 뿌려 성존을 목욕시켰다는 『보요경(普曜經)』등과 같은 경전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사찰에서 봉행되고 있는 관불의식은
당나라 때에 번역된 『욕상공덕경(浴像功德經)』과 『욕불공덕경(浴佛功德經)』에 의해서이다.
이들 경전에는 관불을 행하는 것이 모든 공양 가운데 가장 으뜸이라 설명하면서
불상을 목욕시키는 법과 그 공덕을 찬양하는 내용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기도 하다.
그중 『욕불공덕경』에서 설명하고 있는 관불 방법은 다음과 같다.
「만일 불상을 목욕시킬 때에는 반드시 우두·전단·백단·자단·침수향·훈육·울금향·용뇌향·영능·곽향
따위를 맑은 돌 위에 놓고 갈아서 향니를 만들고, 그것으로써 향수를 만들어 맑은 그릇에 담아두고
청정한 곳에 좋은 흙으로 단을 모으되, 혹 모나게 하며, 둥글게 하며, 때에 따라 크고 작게 하여
그 위에 욕상을 두고, 중간에 불상을 안치한 다음 향탕을 부으면서 정결히 씻어 목욕시키고는
다시 맑은 물을 뿌릴지니라. 쓰이는 물은 모두 맑게 걸러서 작은 벌레가 다치지 말게 할 것이며,
그 불상을 목욕시킨 물은 두 손가락으로 찍어서 자기의 정배기 위에 둘지니 이름이 길상수니라.
나머지 물은 깨끗한 곳에 버려 밟지 않게 하고,
가늘고 부드러운 수건으로 불상을 닦아서 깨끗이 할 것이며,
모든 이름난 향을 태워서 주변을 향기롭게 하고, 본 곳에 안치할지니라」
이와 같이 부처님오신날에 탄생불을 모셔놓고 관불의식을 봉행하는 것은
석가모니불이 이 세상에 탄생하였음을 축하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각자의 마음속에 있는 번뇌를 씻고 그 공덕으로
괴로움에서 벗어나 병에 걸리지 않고 부귀와 안락함을 얻으며 소원을 이루게 해주는 의식이기도 하다.
즉, 『관세불형상경(灌洗佛形像經)』에서도
「향화 등의 여러 가지 물건으로 불상을 씻겨 드리는 사람은 소원하는 것을 모두 성취한다」라는
관불의 공덕을 언급하고 있다.
이제 곧 맞이하는 부처님오신날 관불의식에서는 행하는 이 모두 소원성취하기를 빌며,
또한 「관불회를 거행할 때 모두 욕불게를 노래하여 부르기를,
‘제가 이제 모든 부처님의 씻겨 드리고, 깨끗한 지혜로 공덕이 가득한 부처님을 장엄하오니,
오탁(五濁)에 빠진 중생으로 하여금 더러운 생각을 여의고
모두 함께 부처님처럼 청정한 법신을 증득하게 하소서’」라는
『백장청규(百丈淸規)』속의 관불게(浴佛偈)처럼
관불의식을 통해 각자의 소원과 발원이 원만히 회향되기를
만물이 소생하고 봄의 꽃들이 향연을 베푸는 이즈음에 조용히 기원해본다.
- 최춘옥, 문화재청 부산국제여객부두 문화재감정관실 감정위원
- 2009-05-04 문화재청, 문화재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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