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내셔널 갤러리
- 현실과 가상의 세계를 오가는 누드화 <거울보는 비너스>
런던의 트라팔가 스퀘어에 있는 내셔널 갤러리는 대중들에게 공개한 첫 번째 미술관은 아니지만 공공 서비스 개념을 처음으로 도입한 미술관이다. 내셔널 갤러리는 미술관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출입허가증을 요구하지도 않았으며 무료입장의 원칙을 고수했다. 또한 어린아이들을 입장시킨 최초의 미술관이다. 1250년부터 1900년대에 이르기까지 영국 미술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르네상스, 독일, 네덜란드 등 서유럽 미술 걸작들을 소장하고 있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다루면서도 정형화된 방식에서 벗어나 작품의 주제를 일상적인 방식으로 표현한 작품이 벨라스케스의 <거울 보는 비너스>다.
벨라스케스는 이탈리아 미술을 찬미했지만 이탈리아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한 유럽의 화가들과 달리 르네상스의 아카데미 규범을 결코 따르지 않았다.
<거울 보는 비너스>는 1600년대 스페인 미술역사상 보기 드문 누드화로 여성을 관능적이고 우아하게 묘사했다. 벨라스케스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 그리스 로마의 신화에서 제목을 빌려왔지만 사실 현실의 여성을 표현한 작품이다. 화가들은 여성의 관능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해 비너스를 즐겨 그렸는데 그것은 당시 현실 속의 여인을 표현하면 비난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녀의 살갗은 장밋빛으로 빛나고 풍만한 엉덩이에 비해 허리는 유난히 가늘다. 비너스는 뒷모습조차 관능적이다. 큐피드의 손목에는 리본이 들려 있다. 리본은 비너스의 아름다움과 큐피드와의 관계를 상징한다. 이 작품에서 큐피드가 없다면 침대에 누워 있는 여인의 누드를 적나라하게 표현한 것임이 금방 드러난다. 벨라스케스는 여인이 비너스라는 것을 상징하기 위해 큐피드를 화면에 등장시켰다. 이는 현실과 가상의 이미지의 관계를 탐구하려는 벨라스케스의 의도다. 화면 속에 허구의 공간까지 보여주기를 원했다. 이 작품은 거울을 이용한 그의 작품 중 하나이면서 벨라스케스의 유일한 누드화다. 또한 이 작품은 동시대의 누드화에서 보여주었던 풍만함에서 벗어나 당시로서는 획기적으로 누드를 날씬하게 표현했다. 로마에 체류하고 있던 중 당시 20살이었던 정부 플라미니아 트리바에게 실제로 관능적인 포즈를 요구했다. 플라미니아 트리바는 로마의 상류층 여인으로 벨라스케스의 아이를 낳았다. 이 작품의 관능성으로 인해 1914년 한 여권 운동가에 의해 난도질 당하기도 했다.
영국 사회를 풍자한
- 호가스 <유행에 따른 결혼>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서 18세기 영국 사회를 풍자한 작품이 윌리엄 호가스의 <유행에 따른 결혼>이다. 호가스는 주체할 수 없는 끼와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18세기 영국 사회를 유머러스하면서도 세련되게 풍자했다.
돈이 없는 귀족들은 신분상승을 꿈꾸었던 신흥 부자들과 결혼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영국 상류사회에 퍼져 있던 정략결혼으로 인해 불행한 결혼생활이 사회적으로 비난을 받기 시작했다.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이 작품의 모델은 스콴너더필드 백작의 아들과 상인의 딸이다. 실제로 상인의 딸의 정부였던 변호사 실버팅은 질투에 눈이 멀어 매춘부와 방탕한 생활을 하고 있던 스콴너더필드 백작의 아들을 죽이고 그 사건으로 젊은 미망인은 독약을 먹고 자살한다.
Marriage a la Mode
(1)The Marriage Contract.
(2)Shortly After the Marriage. (3)The Visit to the Quack Doctor. (4)The Countess's Morning Levee. (5)The Death of the Earl. (6)The Suicide of the Countess.
1743. Oil on canvas. 70×91, National Gallery, London, UK.
그 당시 영국에서 유행하던 결혼의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 옆에 기지개를 하고 있는 여인이 도시 상인의 딸로서 두 사람은 부모에 의해 중매 결혼한 신혼부부들이다. 유흥가에서 밤을 새고 돌아온 남자의 옷차림은 흐트러져 있고 그의 주머니에서 빠져 나온 레이스 모자는 정부와 함께 있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밤새 카드놀이를 즐겼음을 알 수 있다. 또 바닥에 넘어진 의자와 펼쳐진 책은 신혼부부의 절제되지 못한 생활을 암시한다. 집사의 주머니에는 목사의 설교집이 꽂혀 있는데 그 설교집은 신혼부부의 방종한 생활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집사의 마음을 암시하고 있다. 결혼을 재산취득의 수단이나 신분상승의 수단으로 여겼던 영국 귀족사회의 허영을 날카롭게 풍자했다. 그는 연극처럼 한 장면마다 줄거리의 변화를 주어 당대의 도덕적 관념을 상기시켰다. 호가스의 도덕관이 녹아 있는 작품들은 영국뿐만이 아니라 유럽 전역에서 인기가 많아 대부분 판화로 제작되어 대중들에게 다가갔다. - 박희숙, 서양화가, 미술 칼럼니스트 - 2009.04.29 [명화산책] ⓒ ScienceTimes
유럽인들에게 18세기는 산업혁명의 세기이며 산업혁명으로 힘을 길러 해외로 뻗어나가던 모험의 세기였다. 이런 변화를 바탕으로 문학계에서는 『걸리버 여행기』와 『로빈슨 크루소』처럼 모험과 개척정신을 강조하는 소설들이 쏟아져 나왔다. 또한 제인 오스틴과 같은 여류작가들이 사회적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영국과 프랑스를 비롯한 대부분의 유럽 국가도 해외에 진출해 식민지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세계 각지의 식민지에서 막대한 물자가 흘러들어오면서 유럽 사회는 엄청난 변화를 겪게 된다. 이제껏 느껴보지 못했던 물질적 풍요를 누리게 되면서 도덕적으로 해이해졌고 생활풍습은 문란해졌다. 대부분의 벼락부자들이 그렇듯 유럽의 부유층들도 파티와 향락에 빠져 가정 문제가 심각한 문제로 대두하게 된 것이다. 부유층들이 사는 모습을 재미있게 표현한 ‘요새 유행하는 결혼풍속도’ 시리즈를 남겼다. 이 그림들은 영국 사회의 문제점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어 많은 인기를 끌었다.
‘결혼식 직후’ 또는 ‘비밀 이야기’라는 작품을 보자. 이 그림은 한마디로 도덕이 무너진 영국의 부유층 가정을 그린 것이다. 많은 미술학자는 이 그림이 밤새 외도를 하고 돌아온 남편, 그동안 애인과 밀회를 즐긴 아내, 이 둘을 한심하게 생각하는 집사, 이렇게 세 사람을 묘사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우선 벽난로 위에 올려져 있는 부처의 모습은 유럽의 부유층들이 식민지 경영의 경험을 통해 아시아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는 것을 방증한다. 남편의 목에 붙어 있는 붕대는 외도를 일삼은 남편이 성병 치료를 받고 있다는 의미라고 한다. 또 오른쪽을 보면 남편이 피곤함에 지쳐 의자에 기대 있는데 강아지가 남편의 왼쪽 주머니에서 무엇인가를 끄집어내고 있다. 강아지가 입에 물고 있는 것은 다른 여자의 속옷이라고 한다. 이 그림 속 남편처럼 결혼한 사람이 다른 사람과 정을 통하는 경우 간통죄가 성립된다. 간통죄는 역사상 중죄로 여겨져 왔다. 지금도 회교 국가에서는 간통죄를 저지르면 군중이 돌을 던져 죄인들을 죽이는 곳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간통죄를 처벌해 왔는데 이미 고조선 시대부터 간통을 처벌했다는 주장도 있다. 현재 우리나라 형법은 간통죄를 저지른 당사자 모두를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과거에는 간통죄를 저지른 사람들은 대개 구속하는 등 엄격한 처벌을 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여성이 저지르는 범죄의 절반 정도는 간통죄다. 이 정도로 간통이 성행하니 시대에 맞지 않게 엄격한 간통죄 때문에 쓸데없이 전과자만 양산한다는 비판도 있다. 그동안 간통죄가 헌법에 어긋난다는 청구가 다섯 번 있었지만 헌법재판소는 그러한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불륜 남녀들을 간통죄로 처벌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가 다시 문제가 되고 있다. 간통죄 폐지를 찬성하는 사람들은 세계적으로 간통죄를 형사처벌하는 나라가 얼마 되지 않는다는 증거를 제시하며 개인의 사생활에 나라가 간섭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형법상 간통죄가 지금까지 남편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한 입장이던 아내들의 법적 권리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다. 수천년 동안 우리가 익숙해진 간통죄에 대해 이번에도 헌법재판소가 합헌 결정을 내릴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간통죄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날은 오래지 않아 올 것으로 보인다. 김형진씨는 미국 변호사로 법무법인 정세에서 문화산업 분야를 맡고 있다. 『미술법』『화엄경영전략』 등을 썼다.
- 중앙선데이, 2011.08.21 - 김형진의 미술관 속 로스쿨 <23>작품에 나타난 간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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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ecret, G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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