훔쳐보고 싶은 욕망, 목욕하는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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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목욕하는 장면만큼 남자의 호기심과 은밀한 욕망을 자극하는 것도 없다.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몸매를 가졌더라도 여자는 목욕하는 모습을 남에게 보여주기 꺼린다. 여자에게 목욕은 씻는 행위 이상도 이하도 아니며, 사랑하는 사람에게 씻는 모습까지 드러내 보이고 싶어하지 않는다.
사랑을 기다리는 여인의 목욕 장면을 그린 작품이 프레더릭 레이턴 경의 ‘목욕하는 프시케’ 다.
이 작품은 2세기 로마 시인 아폴레이우스가 쓴 ‘황금나귀’에 나오는 이야기를 소재로, 프시케가 결혼식을 앞두고 목욕하는 장면을 그렸다.
공주 프시케가 너무도 아름다워 사람들은 그녀와 미의 여신 비너스를 비교했다. 이에 화가 난 비너스 여신은 프시케가 괴물과 사랑에 빠지도록 하라고 아들 큐피드에게 명령한다. 하지만 큐피드 자신이 프시케를 본 순간 그만 사랑에 빠져 사랑의 화살을 자기 자신에게 쏘고 그녀를 궁전으로 데리고 온다. 큐피드는 비너스 여신의 명령을 어긴 것이 두려워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고 밤마다 프시케를 찾아와 사랑을 속삭인다.
그림에서 프시케는 대리석 궁전에서 결혼식을 앞두고 목욕을 하려고 흰 속옷을 벗고 있다. 결혼식을 앞둔 신부답게 행복과 설렘 그리고 수줍음으로 뺨이 붉게 물들어 있다. 프레더릭 레이턴 경(Lord Frederick Leighton, 1830~1896)의 이 작품에서 황금색 천은 결혼식을 상징하며 배경에 있는 검은색 커튼은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밤마다 찾아오는 큐피드를 암시한다.
목욕의 즐거움은 역시 대중목욕탕에서 찾을 수 있다. 집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뭔가가 있다. 대중목욕탕이 가장 사치스러웠던 때가 로마시대다. 로마에 수도 시설이 설치되면서 목욕문화가 발달했다.
로마시대의 목욕문화를 가장 잘 표현한 작품이 로렌스 알마 타테마의 ‘인기 있는 관례’ 다.
‘인기 있는 관례’ A Favourite Custom. Sir Lawrence Alma-Tadema. 1909. Oil on panel. 66×45cm, The Tate Gallery, London, UK
이 작품은 사치와 쾌락의 장소였던 로마시대의 목욕탕을 재현한다. 흰색의 둥근 대리석 욕조에서 두 여인이 목욕을 하고, 계단 위엔 하녀가 수건을 들고 있다. 화면 오른쪽에는 마시지를 받으면서 대화를 나누는 여인들과 하녀들이 있다. 열려 있는 출입구에서 하녀들은 커튼을 치고 있고 커튼 사이로 목욕탕에 들어오기 위해 사람들이 줄지어 있는 모습이 보인다.
로렌스 알마 타테마(Sir Lawrence Alma Tadema, 1836~1912)의 이 작품은 종교나 역사적 사실보다는 인물의 행동을 자연스럽게 묘사하는 데 치중했다. 타테마는 로마 신혼여행 중 폼페이 유적을 보고 감명을 받아 고대 로마 시대를 화폭에 재현했다.
여자라면 누구나 대리석 욕조에 장미꽃잎을 띄우고 목욕하는 호사를 누리고 싶어하지만, 작은 동네에서는 대중목욕탕도 사치다. 시골소녀들이 전통적인 방법으로 목욕하는 장면을 담은 작품이 앤더스 소른의 ‘목욕하는 달라나 지방의 소녀들’ 이다.
‘목욕하는 달라나 지방의 소녀들’ Girls from Dalarna in the sauna Anders Zorn - 1908년경, 캔버스에 유채, 86×53cm,스웨덴 스톡홀름 국립미술관 소장
이 작품은 스웨덴 전통 다스투를 묘사했다. 다스투는 화로에 돌을 데워 열기욕을 하고 데워진 돌에 물을 부어 증기욕하는 방식을 말한다. 겨울에는 차가운 눈으로 마무리하는 것이 스웨덴의 전통 목욕법이다.
한 소녀는 풍만한 엉덩이를 보이며 나무 목욕통에 들어가 있고 서 있는 소녀는 빨간 불빛을 받으며 작은 바가지로 바닥에 물을 붓고 있다. 소녀의 물기 묻은 풍만한 엉덩이가 나무 목욕통과 대조를 이루면서 에로티즘이 강하게 나타난다.
이 작품은 앤더스 소른(Zorn, Anders, 1860~1920)이 파리에서 활동을 끝내고 1896년 고향으로 돌아가 제작한 것이다. 앤더스 소른은 작품에 지역민과 지역 풍경을 주로 담았다. 빛과 물에 관심이 있었다. 이 작품 역시 그의 관심 대상이던 물이나 살갗에 닿은 빛의 효과를 보여준다. - 박희숙, [작가 박희숙의 Art 에로티시즘 ④] - 신동아, 2009.04.01 통권 595호(p406~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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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프시케'의 시련
의학용어로 정신병을 'psychosis'라고 하는데
그 어원은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프시케(Psyche)라는 아름다운 처녀의 이름에서 유래된다.
영어의 psychosis, 독일어의 psychose는 모두 그리스 어원인 Psyche+osis에서 생긴 말이다.
그리스어로 osis는 경과 특히 병적인 경과를 뜻하는 꼬리말로 쓰인다.
그러므로 프시코오제(psychose) 또는 싸이코시스(psychosis)라는 의학용어는
혼(魂)의 병적상태 즉 정신병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아름다운 처녀 프시케와 사랑의 신 에로스(Eros, 아모르, 큐피드로도 불린다)의 사랑이야기는
기원 2세기경 로마의 시인 '아풀레이우스'가 쓴 것으로
유럽에서는 멀리 가버린 남편이나 애인을 찾아 헤매는 여인을 그리는 대표적인 이야기이다.
옛날 한 임금에게는 딸이 셋이 있었는데 세 딸 모두 예뻤으나
그 중 막내딸 프시케는 황홀하리만큼 예뻐 어지간히 예쁜 두 언니도 그녀 앞에서는 초라할 정도였다.
이 소문을 들은 사람들이 그녀의 미를 찬미하기 위해 온 나라에서 모여 들어
미의 여신인 비너스(아프로디테)의 신전은 찾아오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모욕을 느낀 미의 여신은 복수를 하기로 마음 먹었다.
이렇게 프시케의 아름다움과 비너스 여신의 분노를 잘 표현한 그림은
영국화가 로드 프레드릭 레이톤(Lord Fredric Leithon 1830~1896)이 그린
'목욕하는 프시케(1830)'이다.
‘목욕하는 프시케’
Leighton, 목욕하는 프시케, 1890년경, 유화, 62.3x189.4cm
'에로스'는 사랑의 전령사이자 사랑 그 자체의 신.
'육체적 사랑'을 의미하고 즉 쾌락을 위한 육체의 결합을 상징한다.
'프시케는 그리스어로 '나비=영혼'을 뜻하며 '정신적인 사랑'을 의미한다.
즉, 에로스와 프시케와 사랑은 육체와 정신을 모두 충족시키는 '완전한 사랑'이다.
프시케(psyche)는 성인이 된 에로스가 반한 여인으로 유명하다
프시케는 아프로디테가 질투할 만큼의 미모를 지닌 소녀였는데,
자존심이 상한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로마신화의 비너스)는
아들 에로스에게 프시케를 아주 쓸모없는 사람과 사랑에 빠지게 만들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프시케를 본 에로스(큐피트)는 오히려 자신이 사랑에 빠지고 만다.
에로스는 서풍 제피로스에게 프시케를 자신의 궁전으로 데리고 오게 한다.
에로스는 밤마다 궁전에 들려 프시케와 달콤한 밀회를 나누며
그때마다 프시케에게 자신은 프시케를 굉장하 사랑하고 있다고 고백하면서
한편으로는 자신이 누구인지 알려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목욕하기 위해 하늘거리는 하얀 옷을 벗는 프시케의 모습은
보는 이가 얼어버릴 만큼 너무나도 아름답다. 레이턴경이 그린 프시케 그림 속에 나오는
프시케는 어찌보면 나르시스와 같이 자아도취가 강한 것 같다.
왜냐하면 나르시스가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반했듯이
프시케도 역시 목욕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매혹되어 버린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남자의 뜨거운 사랑과 화려한 궁전에서 프시케는 무척이나 만족스러웠지만
자신의 사랑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궁금증은 갈수록 커졌다. 자신을 찾아온 두 언니가
시샘에 겨워 그 사람이 괴물이면 어떻게 하냐, 얼굴을 한번 보라고 부추긴다.
그날밤 결국 프시케는 에로스가 잠든 틈에 등잔을 들고 자신의 남자를 확인하게 된다.
등불 때문에 드러난 에로스의 얼굴을 본 프시케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름다움에 이끌려 얼굴을 확인하려는 순간 에로스의 어깨 위로 기름 한 방울이 떨어지면서
에로스는 깜짝 놀라 일어난다. 프시케로부터 배신당한 에로스는 화가 나서 자리를 박차고
날아가 버렸다. 에로스가 사라지자 화려한 궁전도 감쪽같이 없어져버렸다.
이후에 프시케에게 엄청난 고난이 다가오지만 에로스를 향한 프시케의 사랑으로
프시케를 향한 에로스의 사랑으로 둘의 사이는 희극으로 끝맺는다.
프시케의 아름다운 몸매 뒤로 검은 휘장 아래 두 마리의 비둘기가 보이는데
비둘기는 비너스의 신조(神鳥)로 비너스의 질투와 분노를 나타내는 것으로
프시케의 앞날을 예고하는 듯하다. 여신은 자기 아들 에로스에게 "네 화살로 프시케를 쏘아서,
이 세상에서 가장 못 생긴 남자를 연모하도록 만들어라"고 명령했다.
에로스의 화살에 맞은 사람은 물불을 가리지 않고 사랑을 하게 되는 것이다.
에로스는 어머니의 명령대로 프시케를 찾아갔는데 그만 그녀를 보자마자 넋을 잃고 바라보다가
화살로 자기 가슴을 찌르고 말았다. 그 결과 사랑의 신이 프시케를 연모하게 되어 상사병에 걸리게 되었다.
한편 프시케의 두 언니들은 행복한 결혼을 해서 왕비가 되었건만
아름다운 프시케만은 누구하나 청혼하는 이가 없었다.
그것은 에로스가 사랑의 화살을 다른 사람에게 쏘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처녀가 되어가는 딸을 안타깝게 생각한 아버지는 아폴론 신에게 신탁을 청했는데
아폴론은 "네 딸에게 예복을 입혀 바위산 꼭대기에 혼자 두면 누군가가 데리고 갈 것이다.
그녀의 남편은 몸에 날개가 달린 무서운 뱀이니라"는 신탁을 내렸다.
그것은 상사병에 걸린 에로스가 미리 아폴론 신에게 도움을 청해 두었기 때문에 내려진 신탁 내용이었다.
신탁의 명령에 따라 프시케는 죽음의 신부로서 음산한 치장을 한 채로 산 정상에 버려졌다.
산위에 홀로 누워있는 프시케의 주위에는 어느덧 땅거미가 내려앉더니 어두워져버렸다.
두려움에 떨며 눈물 흘리고 있던 프시케는 별안간 아주 기분 좋은 서풍이 불어옴을 느끼고
이내 몸이 하늘로 떠 올라감을 느꼈다. 에로스가 품에 안은 것이다.
이 장면을 그림으로 그린 것이 화가 부그로(Adolphe William Bouguereau 1825~1905)가 그린
'프시케와 에로스(1889, 타스마니아, 타스마니아 아트, 그림 2)'로서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과 더불어 에로스가 프시케를 가슴에 안고 하늘로 오르는 장면인데
프시케는 탈진된 상태에서 자기의 몸을 가누지 못하는데 어떻게 보면 황홀해서 무아지경에 빠진 것 같다.
에로스는 자기의 소원대로 프시케를 얻었으니 만족과 기쁨에 찬 표정으로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고 있다.
▲ 에로스와 프시케 Cupid and Psyche
윌리암 부그로(Adolphe William Bouguereau, 1825-1905)
▲ The Abduction of Psyche, 1895
윌리암 부그로(Adolphe William Bouguereau, 1825-1905)
프시케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향기로운 꽃바람이 불어오는 폭신한 풀밭 위였다.
평화로움으로 가득 차고 불안과 공포는 사라졌고,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누군가가 그녀의 몸을 품었는데,
처음 느껴본 황홀감에 도취돼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잠이 들고 말았다. 눈을 떴을 때는 환한 아침이었다.
살펴보니 맑은 시내가 흐르는 꽃동산 위에는 눈부시게 화려한 큰 성이 있었는데,
사람은 그림자조차 보이질 않는다.
그때 어디선가 "이제부터는 이 성은 프시케님의 집이고 저희들은 모두 당신의 종들입니다"하는
목소리가 들리더니 길을 안내했다. 그 목소리를 따라 들어갔더니 성 안에는 호화로운 가구가 가득하고
아름다운 음악이 흘러나오며 식탁에는 산해진미가 차려져 있었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밤마다 에로스는 프시케를 찾아와 동침하지만, 눈뜨기 전엔 이미 사라져 버렸다.
그러나 프시케는 행복하기만 했다. 이렇게 행복한 두 남녀의 모습을 조각으로 표현한 것이
조각가 카노바(Antonio Canova)의 '아모르와 프시케'(1793, 파리, 루브르 박물관, 그림 3)이다.
두 남녀의 포옹으로 사랑을 표현했으며
지극히 행복한 정도를 강직된 아모르 날개의 높이로 표현하고 있다.
한편 동생이 잘 사는 것을 보고 시기한 언니들은, "네 남편은 필경 괴물일테니,
잠자고 있는 틈에 등잔불로 비추어 보아서 괴물이면 단도로 찔러 죽이라"고 충동질을 했다.
마음 약한 프시케는 남편이 절대로 자기 얼굴만은 보지 말라고 타이르던 것을 잊어버리고
남편의 얼굴을 보고야 말았다. 하지만 프시케의 남편은 괴물이기는커녕 꽃미남 에로스였다.
남편의 얼굴을 보고 황홀해진 프시케는 그만 들고 있던 등잔불의 기름을 쏟았고
에로스는 몸에 화상을 입었다. 놀라서 깬 에로스는 "어리석은 여인이여, 이제 마지막이다"라는
말만 남기고 날아가 버렸다. 이리하여 프시케는 남편을 찾아 방랑길에 나서게 된다.
프시케는 절망적으로 남편을 찾아다니다가 어느날 비너스의 성에 도달하게 되었다.
프시케를 본 여신은 "네가 앞으로 내 며느리가 되려면 이제부터 내가 주는 네 가지 과제를 하여야 하며,
그것이 불가능할 때는 죽음만이 너를 기다리게 될 것이다"고 소리쳤다.
프시케가 무슨 일이든 하겠다고 대답하자
여신은 하루 사이에 산더미 같이 쌓인 여러 가지 곡물을 보리, 조, 수수 등 종류별로 나누어 갈라 놓을 것,
난폭한 숫 산양의 황금 털을 깎아올 것,
생명수 샘에서 생명수를 받아 올 것, 저승의 왕비 베르세보네에게 가서 미의 상자를 받아 올 것 등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과제들을 주었다.
하지만 각고의 노력과 다른 이들의 도움으로 프시케는 과제를 완수했다.
결국 사랑으로 다시 만난 푸시케와 에로스 사이에서는 딸이 태어났는데
‘Voluptas(쾌락)’이라 이름붙였다.
▲ <프시케와 에로스>Amor and Psyche,
also known as Psyche Receiveing Her First Kiss of Love.
프랑수아 제라르(Francois-Pascal-Simon Gerad, 1770-1837) 남작,
1798, 캔버스에 유채, 186x132cm. 프랑스 Louvre, Paris.
그러나 그 과정이 말할 수 없이 힘들어 프시케는 미칠 지경에 달하곤 했다.
물론 프시케라는 말이 '정신, 혼, 나비' 등의 의미도 지니지만 정신병을 'phsycosis'라고 하게 된 것은
프시케의 미칠 듯 한 고뇌에서 유래된 것이다.
- 문국진 박사, 고려대 명예교수
- 기획취재부 송병기기자 bgsong@kimsonline.co.kr / 본지 312호 34면 [신화속 의학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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