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민(憐憫)에 대하여
1895년 2월9일(음력), 보국안민(輔國安民 · 위태로운 나라를 돕고 고통에 빠진 백성을 편안케 함)과 척왜양(斥倭洋 · 일본과 서양세력을 배척함)의 기치(旗幟) 아래 동학농민군을 이끌다 체포된 전봉준(全琫準)에 대한 1차 심문이 열렸다.
법아관원(法衙官員)이 ‘고부민란(古阜民亂)’을 일으킨 연유를 물었다.
“처음부터 학정(虐政)을 했다면 그 즉시에 난을 일으키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그 일대의 백성이 참고 참다 못해서 끝내는 부득이 난을 일으켰다.” “너는 피해가 없으면서 어찌하여 난을 일으켰는가?” “일신의 피해를 면하려고 난을 일으키는 것을 어찌 남아(男兒)의 할일이라 하겠는가. 백성의 원한이 맺혀 있었기에 백성을 위하여 학정을 없애고자 했을 뿐이다.”
전봉준의 공초록(供招錄 · 진술서)에 따르면 심문관은 고부군수 조병갑(趙秉甲)이 부임(1892년 4월)한 뒤 줄곧 탐학(貪虐)을 거듭했는데도 뒤늦게 난리를 일으킨 연유가 뭐냐, 너는 ‘아침 밥 저녁 죽’으로 살던 형편이어서 수탈(收奪)당할 것이 없었다면서 왜 난리에 앞장섰느냐, 물은 것이다.
전봉준은 답했다. ‘참고 참다 못해서, 백성을 위하여’라고.
조선 정부의 심문관은 전봉준에게 “너는 피해가 없으면서 어찌하여 난을 일으켰느냐?”고 했다. 요즘으로 치면 왜 제3자가 개입했느냐는 얘기다. 반상(班常)의 신분제를 체제의 근간으로 하는 봉건왕조의 관리가 ‘약자들의 연대’를 인식했을 리 없다.
약자에 대한 연민(憐憫)조차 없는 원칙, 약자의 고통과 분노는 외면한 채 더불어 사는 사회공동체를 이룰 수 없다. 사람의 얼굴을 한 법치, 약자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법치가 정의롭게 작동한다면 굳이 엄정한 법치를 강조할 까닭이 있겠는가. 소통 없는 원칙, 연민 없는 법치가 지배하는 세상은 삭막하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다.
- 2009.03.01 신동아, 통권 594호(p154~157) '전진우의 세상읽기' 중에서
|
'하루하루~(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랜디 포시(Randy Pausch) - 마지막 강의 'The Last Lecture' (0) | 2009.04.10 |
---|---|
꽃샘바람 (0) | 2009.04.09 |
일터를 즐겁게 만드는 리더의 7가지 조건 (0) | 2009.03.08 |
낭떠러지와 난간 (0) | 2009.03.05 |
비비디 바비디 부♬ (0) | 2009.03.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