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 고려궁성 (만월대) 남북 공동 제3차 발굴조사 |
문화재청(청장 이건무)은 남북역사학자협의회(위원장 서중석)와 공동으로
2008년 11월 4일부터 12월 23일까지 50일간의 일정으로
고려 궁성유적(만월대)에 대한 제3차 남북 공동 발굴조사를 실시할 예정이다.
개성 만월대는 400여 년간 고려의 황제가 정무를 펼치던 정궁(正宮)으로서,
송나라 사신이었던 서긍이 기록한 「고려도경」에 당시의 웅장하고 화려했던 모습이 잘 기록되어 있다.
이에 따르면 고려의 궁궐은 자연지세를 최대한 살린 독특한 건물배치를 이루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개성 고려궁성에 대한 발굴조사는 2007년 2차례에 걸쳐 실시되었으며,
40여 동의 건물지와 청자를 비롯한 1,200여 점의 유물을 수습하여 세인의 큰 관심을 받은 바 있다.
특히 길이 48m에 이르는 대형 건물지와 지금까지 알려진 바 없는 원통형의 이형청자는
고려궁궐의 웅장함과 화려함을 잘 보여준다고 평가되었다.
이번에 추진될 제3차 발굴조사는 만월대 유적의 서북지구(3,000㎡)를 대상으로 실시할 예정이며,
1차 시굴조사에서 확인된 바 있는 경령전(제례祭禮 건물지)에 대한 정밀조사와 함께
궁궐의 배치구조와 성격을 명확히 규명하는 학술적 성과를 기대하고 있다.
개성 만월대 남북 공동 발굴 사업은,
남과 북이 문화적 공감대를 기반으로 협력 가능성을 넓힌다는 측면에서 큰 의미가 있다.
문화는 우리 민족의 역사만큼 오랫동안 우리 민족의 삶이었기에,
남북 간의 정치적 · 경제적 가치관 차이를 넘어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공감대를 쉽게 형성할 수 있는 분야로 계속 그 맥을 이어가야 할 것이다.
▲조사구간 전경
▲제1축대 전경
▲제1건물지 및 제2축대 전경
▲제3, 4 건물지 전경
▲수막새
▲암막새
▲기타 와전류
▲기와명문 탁본
▲도기류
▲용두, 잡상
▲자기류, 청자기와
- 담당자 : 국제교류과 이은영, 국립문화재연구소 고고연구실 이상준
- 문화재청, 2008-11-05
2008년 개성 고려궁성 (만월대) 발굴조사 성과 발표 |
- 경령전 및 그 주변 건물지 배치상태 및 구조 확인 - |
문화재청(청장 이건무)과 남북역사학자협의회(위원장 서중석)는 북측의 조선중앙역사박물관, 민족화해협의회와 공동으로 2008년 11월 4일부터 12월 23일까지 개성 고려궁성(만월대)에 대한 제3차 남북공동발굴조사를 실시하여 1차 시굴조사에서 일부 확인된 경령전(景靈殿, 태조 왕건을 비롯한 5대왕의 어진 신위를 모신 제례공간)과 주변 건물들의 정확한 규모 및 배치상태를 확인하였다. 동서 2,267cm, 남북 1,015cm의 장방형 기단(基壇, 건물을 건립하기 위하여 지면에 흙이나 돌을 쌓고 다져서 단단하게 만들어 놓은 곳)위에 정면 5칸, 측면 3칸으로 형성되어 있었다. 건물 남편에는 3개의 문과 계단을 설치하였으며 남편을 제외한 3면은 바깥쪽 초석열(礎石列)을 따라 벽을 쌓아올렸는데, 이는 예단의 후벽과 양측벽에 별도의 시설(御眞을 걸거나 벽화를 그리기 위한 시설)을 하기 위한 용도로 판단된다. (기단크기 : 동서 1,880cm, 남북 1,008cm, 정면 3칸×측면 3칸) 건물의 정면과 양측면에 계단을 설치하였고, 건물 주위에 청석(靑石)을 방형으로 잘라 만든 전(塼)을 깔아 놓았다. 특히 이 건물 남편에서 길이 200㎝, 너비 90㎝ 크기의 석제 기초시설이 동서 대칭으로 2개소 확인되었는데, 가장자리를 따라 내부를 낮게 파낸 점으로 미루어 보아 석물 등을 놓기 위한 기초시설로 판단된다. 송악산에서 남북방향으로 경사져 내려오는 구릉에 2개의 동서방향 축대(높이 약 4m)를 쌓아 계단식 평탄면을 조성한 다음 경령전을 비롯한 중요건물을 세우고, 그 주위를 회랑식 건물로 에워 싼 폐쇄적인 구조임이 확인되었다. 이는 경령전 일곽(一廓 하나의 담장으로 둘러친 지역)이 제례를 위한 특수 공간이므로 여타 생활공간과 분리한 것으로 이해된다. 「赤項○○」,「德水○○」,「板積○○」, 「月盖○○」가 새겨진 기와 외에 「板占戶」등의 새로운 명문기와와 청자, 문고리 · 경첩 등 약 3,000여 점의 다양한 유물이 다수 수습되어 실물자료가 부족한 고려사 연구에 많은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 다양한 자료를 확보하여 고려궁성 및 도성제 연구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 조사구간 전경 (남동-북서)
▲ ‘다’건물지군 전경 (동-서)
▲ 17호 · 18호 건물지 및 ‘다’지구 마당 전경 (남-북)
▲ 17호 건물지 전경 (남서-북동)
▲ 청자양각보상당초문대접
▲ 청자반구병 |
- 담당자 : 국제교류과 이은영, 국립문화재연구소 고고연구실 이상준
- 문화재청, 2009-01-02
고려 개성 만월대 궁성유적 남북한발굴조사
남북 합의에 따라 2007년 5월부터 7월(5.15~7.13), 9월부터 11월까지(9.3~11.16) 120일에 걸쳐,
고려 궁궐터인 개성 ‘만월대' 궁성유적의 중심인 회경전(會慶殿) 영역의 서편구역 30,000㎡에 대한
시굴조사 및 일부구간에 대한 남북공동 발굴작업을 실시하였다.
개성은 고려 474년간 도읍으로, 수많은 사찰을 비롯한 다양한 문화유적이 분포하고 있다.
특히 개성시 만월동 송악산(松嶽山)기슭에 위치한 고려궁성 유적은
지금까지 흔히 ‘만월대(滿月臺)’로 불려지며 당시의 화려했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조사 결과, 입지와 성격에 따라 각기 중심축을 달리하여 조성된 다수의 건물지가 드러나
회경전 서편구역의 건물배치 양상을 밝힐 수 있었는데,
특히 지금까지 그 실체가 잘 알려지지 않은 ‘亞’자형 건물지의 구조상 특징을 확인할 수 있었고,
「고려사」에 기록된 경령전(景靈殿)으로 판단되는 건물을 확인하는 성과를 올렸다.
경령전은 고려왕조를 상징하는 건물로 태조(太祖)와 역대 왕들의 진영(眞影)이 모셔졌는데,
기록에 따르면 종묘(宗廟)에 정식으로 모셔진 신위(神位)와는 별개로 궁궐에 신위를 모신 건물로
알려져 있다.
이번 조사에서 출토된 가장 특징적인 유물은
길이가 65cm에 달하는 용도를 알 수 없는 원통형 청자인데
지금까지 기형(器形)이 알려진 바 없는 매우 특징적인 유물이다.
유물은 녹청색의 색조에 몸체에는 모란문과 포도당초문을 복잡하게 음각하였으며
윗부분과 아랫부분의 끝단 중앙에는 지름 4cm의 원형 구멍이 뚫려져 있다.
그리고 암 · 수기와의 등문양에 인장이 찍힌 100여 점의 인장와(印章瓦)가 출토되었다.
인장에 새겨진 명문은 「赤項文昌」, 「赤項京夫」, 「赤項惠文」,「板積水金」, 「月盖○○」등으로,
특히 ‘板積’ · ‘月盖’가 새겨진 기와는 「고려사」에서 확인되는
‘판적요(板積窯)’, ‘월개요(月盖窯)’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개성 만월대 공동 발굴 사업은,
남과 북이 문화적 공감대를 기반으로 협력 가능성을 넓혔다는 측면에서 큰 의미가 있다.
문화는 우리 민족의 역사만큼 오랫동안 우리 민족의 삶이었기에,
남북 간의 정치적 · 경제적 가치관 차이에도 불구하고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공감대를 쉽게 형성할 수 있는 분야로 계속 그 맥을 이어가야 할 것이다.
- 문화재청, 2008-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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