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무라 마스오 와세다大 명예교수
50년간 조선문학 연구
“꼴 보기 싫은 일본인이라고? 하지만 누구보다 박지원과 윤동주를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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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동안 한국문학 순례를 이어온 일본인 교수가 있다. 그는 유실될 뻔했던 윤동주 시인의 묘소를 중국 지린(吉林)성 룽징(龍井)에서 찾아낸 윤동주 연구자다. 또한 광복 이후 단절된 남북한 문학을 수십년 동안 등거리에서 연구해온 유일한 학자다.
그는 ‘백두산 이남에서 현해탄에 이르는 지역에서 살았던, 또는 살아가고 있는 민족이 낳은 문학작품’을 직접 만나기 위해 지난 50년 동안 그 먼 길을 걸어왔다. 수시로 찾는 남북한 외에도, 중국의 조선족 문학작품을 연구하기 위해 화가 부인과 함께 지린성에서 1년 동안 머물기도 했다.
오무라 마스오(大村益夫 · 75) 와세다대 명예교수. 백발성성한 노교수의 ‘조선문학 순례’는 지금도 계속된다. 이쯤에서 “왜?”라는 의문부호가 나오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인도 아닌 일본인이 한국문학을 대상으로 ‘미치지 않고는 원하는 곳에 도달할 수 없다 (若汝不狂 終不及之)’는 말을 온전히 실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부터 꼭 50년 전인 1958년 3월, 25세 오무라 청년이 조선어와 한글을 배우려고 찾아간 도쿄 소재 조선회관에서 만난 300여 명의 조선인 또한 “일본인이 왜 조선어를 배우려 하는가?”라고 하지 않았을까?
실제로 청년 오무라는 강당 정면에 김일성 사진이 커다랗게 걸려 있던 조총련계 학교에서 끊임없이 의심받는 외톨이였다. 입학허가도 간신히 받아냈다고 한다. 처음에는 그를 창씨개명한 한국인으로 의심하다가, 그게 아니란 것이 밝혀지자 이번에는 괴짜 취급을 했다. 나중에야 그는 자신이 간첩으로 의심받은 걸 눈치 챘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그 학기 초급반에서 마지막까지 남은 학생은 그를 포함해 세 명에 불과했다.
불쌍한 일본인, 꼴 보기 싫은 일본인
그런데 이를 어쩌랴. 그로부터 50년 하고도 반년이 더 지난 2008년 9월20일 ‘조선문학 순례 50년’이라는 타이틀로 시드니에서 열린 오무라 교수 초청 문학세미나에서 “무슨 이유로 한평생을 바쳐서 한국문학에 천착하느냐?”는 질문이 또다시 나왔으니.
오무라 교수는 잔잔하게 미소 지으면서 답변을 머뭇거렸다. 그러다가 아내 쪽을 바라보았다. 이심전심인가. 아키코(74 · 화가) 여사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불쌍한 일본인을 위해 내가 대신 답변하겠다”는 농담을 시작으로 다음과 같은 답변을 이어갔다.
아래의 글은 문학세미나 현장에서 채록한 답변이다. 그러나 정확하게 채록할 수 없었던 부분을 10월6일 호주-일본 간의 국제전화 인터뷰를 통해 보충한 것임을 밝혀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와세다대 대학원 석사논문을 쓰다가 접한 조선문학의 우수성과 풍부함에 반했다. 오무라 교수는 애초에 구한말 개화기의 신문학을 연구했지만,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와 각종 소품문(단상, 일기, 편지글 등 짧은 산문) 등을 접한 다음부터다. 그는 조선을 빼고는 동아시아를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다고 생각했다. 세계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청일전쟁과 러일전쟁도 한반도를 계기로 발발하지 않았는가. 게다가 불교와 유교를 연구하면서 조선을 빼면 동아시아 전체의 사상을 파악하기 힘들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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