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사기열전(史記列傳)’ ⑥] 굴원 가생 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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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서 좌절된 꿈, 문학이 품어 날개를 달아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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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원 가생 열전’의 굴원은 정치인으로서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지만 그의 시는 남았다. 천재적인 재능을 타고났으나 보통의 여인네들이 누리는 소박한 행복마저 갖지 못했던 허난설헌은 한(恨)을 시로 풀어내 국제적으로 이름을 날렸다. 이들의 삶에서 인생의 덧없음과 문학의 힘을 확인할 수 있다. |
박경리 선생의 시 ‘옛날의 그 집’ 을 보는 어둔 저녁이다. 대하소설 ‘토지’를 집필한 소설가 박경리 선생은 그 시절 어둡고 외로운 마음이 들면 시를 쓰면서 견딘 모양이다. 좋은 시가 한 인간의 품에서 어떻게 태어나는지를 보여준다. 박경리 선생의 내밀한 속내가 엿보이는 시집이라 가까이 두고 간혹 잠든 아이 얼굴 들여다보듯 읽는다.
그 시에 이런 구절이 있다.
달빛이 스며드는 차거운 밤에는 이 세상 끝의 끝으로 온 것 같이 무섭기도 했지만 책상 하나 원고지, 펜 하나가 나를 지탱해 주었고 사마천을 생각하며 살았다
나는 이 시를 읽으면서 전국시대의 위대한 비극시인 ‘굴원’을 연상했다. 비극의 화살은 궁형을 받은 사마천에게 정통으로 박혔지만, 이 넓은 세상에 사마천 혼자 그 화살을 맞았을까?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화살은 날아오고, 인간은 이를 피하지 못한다.
‘사기열전’에서 빛나는 대목은 굴원과 백이, 형가 등 인간 비극성의 육화다. 비극이 인간을 만들고 그 인간이 글을 쓰고 칼을 든다. 비극은 그리스 로마와 동아시아, 즉 동서양을 관통하는 궤적으로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굴원은 이름이 평이고, 초나라 왕실과 성이 같다. 그는 초나라 회왕의 좌도(左徒 · 초나라의 관직명)로 있었는데, 보고들은 것이 많고 기억력이 뛰어났으며, 잘 다스려질 때와 혼란스러울 때의 일에 밝았고, 글 쓰는 능력이 탁월했다. 그는 궁궐에 들어가서는 군주와 나랏일을 의논하여 명령을 내렸으며, 밖으로 나와서는 빈객을 맞이하고 제후들을 상대하였다. 회왕은 그를 매우 신임하였다.’
사마천은 이렇게 굴원을 소개하며 그가 왕족의 족보를 가졌음을 밝힌다. 굴원의 시조인 굴하는 초나라 무왕의 아들로 ‘굴’이라는 지역을 다스리게 되어 ‘굴’이라는 성을 받았다. 좌도는 왕의 곁에서 정치적인 조언을 하고, 조서나 명령의 초안을 잡아 보고하고, 외교 협상 등의 주요한 일을 맡았던 요직이다. 왕과 성이 같고, 정치적 요직에 있는 굴원이 글까지 잘 썼으니 왕은 그를 믿고 의지했을 것이다. 왕의 곁에서 사랑받는 그를 시기하는 자가 없었다면 굴원은 위대한 정치인으로서 초나라를 부국강병의 길로 이끌었을 것이다. ‘이끌었다’가 아니라 ‘이끌었을 것이다’라고 한 것은 이후 굴원에게 닥친 고난 때문이다.
분통함을 시로 달래고
회왕은 굴원에게 국가 법령을 만들도록 지시했다. 이때 굴원의 정치적 라이벌인 상관대부(上官大夫)의 중상모략이 펼쳐진다. 정치세계는 권력이라는 달콤한 열매를 따기 위해 상대방의 입안에 들어있는 것까지 손가락으로 뽑아내는 인면수심의 세계이기도 하다. 상관대부는 굴원이 법령을 만들면서 하는 행동이 ‘교만하고 안하무인’이라며 왕에게 고한다. 상관대부가 굴원에게 법령의 초안을 좀 보자고 했는데, 완성되기 전까지는 그럴 수 없다고 한 데 대한 보복이었다.
왕의 판단으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던 시절이었다. 귀가 얇은 왕은 조금씩 굴원을 멀리하기 시작한다. 권력의 자리에서 밀려난 굴원은 무엇을 하였을까? 권력을 되찾기 위해 자기 세력을 모으고, 와신상담하면서 상관대부를 밀어낼 궁리를 했을까? 아니다. 시인 굴원은 엇나가는 세상과 나라와 사람을 ‘걱정’했다. 그리고 그 ‘걱정’이 시가 되었다. 굴원의 대표작 ‘이소(離騷)’는 ‘걱정스러운 일을 만나다’란 뜻이다. 깊은 사색에 빠져 이 시를 짓고 아픈 가슴을 달랬다.
‘이소’ 창작동기를 사마천은 이렇게 적었다.
‘대체로 하늘은 사람의 시작이며, 부모는 사람의 근본이다. 사람이 곤궁해지면 근본을 뒤돌아본다. 그런 까닭에 힘들고 곤궁할 때 하늘을 찾지 않는 자가 없고, 질병과 고통과 참담한 일이 있을 때 부모를 찾지 않는 자가 없다. 굴원은 도리에 맞게 행동하고, 충성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여 군주를 섬겼지만, 참소하는 사람의 이간질로 곤궁하게 되었다. 신의를 지켰으나 의심을 받고, 충성을 다했으나 비방을 받는다면, 원망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굴원은 이처럼 분통하고 원망스러운 마음에서 ‘이소’를 지은 것이다.’
‘이소’의 첫 구절은 굴원 자신의 태생에 대한 내용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님을 그리는 여인의 ‘한’을 통해 자신의 심경을 대변한다. 왕과 자신의 관계를 그리운 님과 실연한 여인의 관계로 설정한 것이다. 여인은 님이 자신을 다시 부르기를 간절히 애원한다. 이 서사는 비극적인 서정시의 낭만성을 지니고 있다. ‘이소’는 종종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오디세이’와 비교된다. 호메로스는 트로이전쟁을 배경으로 장편 서사시를 쓰지만, 굴원은 전쟁과 모험의 세계 대신에 한 여인의 한을 신화와 함께 펼쳐 보였다.
- 신동아, 2009.06.01 통권 597호(p502~513) - 원재훈, 시인 whonjh@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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