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옛 장신구(裝身具)
우리나라 장신구의 역사는
신석기시대 유적에서 발견된 관옥(管玉)이나 짐승 이빨, 뼈 등으로 만든 장식물로부터 시작된다.
당시의 장신구는 몸치레를 하여 자기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욕구를 충족시키는 수단으로서 뿐만 아니라
주술적(呪術的)인 의미도 강했다.
사회의 형성 및 발전과 더불어 장신구는
사회적지위를 나타내는 신분의 표상으로 활용되기도 했으며,
현세의 욕망과 기원을 담은 길상 상징물로서 애호되기도 했다.
장신구는 시대가 올라갈수록 주술적인 성격을 강하게 지니고 있으며,
시대가 내려올수록 단순한 미적 욕구충족을 위한 수단이 되는 경향을 보인다.
‘장신구(裝身具)’를 직역하면 신체를 치장하는 물건이라는 뜻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목걸이, 흉식(胸飾), 팔찌와 같이 몸을 직접 꾸미는 물건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신체를 감싸는 것, 즉 관모(冠帽), 옷, 신[履], 장갑, 그리고 이런 것들을
더욱 돋보이고 아름답게 하기 위해 매달거나 부착하는 모든 것을 장신구라 할 수 있다.
장신구를 그 성격에 따라 몇 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는데,
주술적 의미가 강한 것, 기능성과 장식성을 동시에 가진 것, 단순히 아름다움만 추구한 것 등이다.
주술적 의미가 강한 것으로는
선사시대 사람들이 목걸이로 사용했던 맹수의 송곳니, 고분 벽화 속 인물의 모자에 꽂힌 새 깃털,
신라시대 금관에 보이는 ‘出’자형 장식이나 새 깃털 모양의 장식 같은 것들이 그 예에 속한다.
이와 같은 장식물을 제작하거나 장식하는 행위의 배경에는 토테미즘, 또는 애니미즘이 자리 잡고 있다.
기능성과 장식성을 동시에 갖춘 것 중 대표적인 것으로
조선시대 여인들이 치마 섶에 매달았던 은장도, 향낭이 달린 노리개 같은 것이 있다.
은장도는 호신(護身)을 목적으로 만들어졌지만 몸치레용으로도 활용된다.
비녀도 마찬가지로 긴 머리카락이나 머리 장식물을 고정시키기 위한 도구이지만
미술적으로가공하여 장신구로 활용하고 있다.
이밖에 관복의 흉배나 궁중 여인들이 머리에 장식하는 첩지와 같이
신분의 높고 낮음에 따라 내용과 형식에 차이가 있는 장신구들도 있다.
또한 주술성이나 실용성이 전혀 없이 단순히 미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장신구들이 있는데
목걸이, 팔찌 등이 그것이다.
장신구도 다른 문화현상과 마찬가지로 각 나라마다 고유한 특색을 지니고 있다.
특히 옷에 매달거나 부착하는 장신구는
그 민족의 옷의 빛깔이나 형태 등과 매우 밀접한 관련성을 지닌다.
중국이나 일본의 여성복은 작은 문양들이 옷 자체에 수놓아지는 경우가 많고,
채색도 비교적 강한 대비를 보이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여기에다 허리에 두르는 요대(腰帶)가 악센트를 주는 구실을 하고 있어
별도의 장식물의 필요성이 덜한 편이다.
그러나 색채가 비교적 안정되고 형태가 단순한 한복을 입는 우리나라에서는
옷에 악센트를 주는 노리개나 주머니 같이 매다는 장신구가 특별히 발달했다.
장신구 하나에도 한 민족의 생활문화와 미의식이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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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관(花冠) 여자의 예장(禮裝), 또는 나라 잔치 때 기생, 무동(舞童)들이 쓰던 관(冠)이다. 이 화관은 종이로 틀을 만든 후 색 천으로 씌웠고, 구슬과 술로 화려하게 장식하였으며, 화관 양옆으로 비녀(족두리 비녀)를 꽂도록 되어 있다. 화관에는 칠보로 장식한 칠보화관과 구름무늬를 새겨 만든 운관(雲冠)이 있는데, 이 화관은 칠보화관계열이다. 원래 궁에서 갖추는 화관 양식은 외간에서는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게 되어 있으나, 조선 영조 때 가체금지령 이후 서민들도혼례 때에는 사용할 수 있게 했다. 팬아시아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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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걸이 우리나라에서는 일찍부터 남녀의 구별 없이 애용해 왔던것으로, 삼국시대의 고분에서 금관, 대금구 등과 함께 상당히 많이출토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귀걸이는 그 제작 기술이 우수하며 그 형태와 제작기법에서 시대적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삼국시대의귀걸이에는 한 개의 고리만으로 이루어진 소환식(素環式) 귀걸이와 가는 고리에 자그마한 고리가 달린 것, 수식(垂飾)이 달린 것 등 세 종류가 있다. 사진의 금제 태환이식(보물 제455호)은 신라시대 귀걸이로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하트 모양의 장식이 달린 금제 심엽장식 귀걸이는 백제시대 것으로 국립공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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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와 가락지
전통시대의 상류사회나 궁중 여인들은 금, 은을 비롯하여 칠보, 옥, 마노, 산호, 호박, 비취, 진주, 구리 등으로 만든 반지를 끼었다. 그런데 계절에 따라 낄 수 있는 것이 있고 끼어서는 안 되는 것이 있었던 듯하다, 여름에는 금반지 끼는 것을 꺼리고 겨울에는 옥반지를 피했다고 한다.
혼례를 치를 때 신부에게 선물하는 가락지는 혼례를 인륜지대사의 하나로 중시하는 유교사회에서 이성지합(異姓之合)과 부부 일심동체의 상징으로통한다. 우석대학교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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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녀 부녀자의 머리 모양은 고대 이후 고려시대까지 별다름이 없어 고려의 여인들도 머리에 작은 비녀를 꽂았다. 비녀는 재료와 잠두(簪頭)의 수식에 따라 예장 때와 평상시에 사용하는 것이 다르다.
또 젊은 사람과 나이 든 사람, 계절에 따라서도 달리하였다. 예컨대 계절에 따라 10월 초하루부터 용잠, 2월에는 모란잠, 4 · 8 · 9월에는 매죽잠이나 옥모란잠을 꽂는다. 사진의 용잠은 가을에서 겨울 동안 꽂는 비녀인 셈이다.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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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찌
일반적으로 금, 은, 동, 옥 등으로 고리 모양을 만들어 팔에 끼는 것을 말한다.
원시시대 유물로는 조개 껍데기의 가운데 부분을 깬 다음 갈아서
고리로 만든 조개팔찌가 있으며, 이밖에도 청동팔찌, 마노팔찌 등 여러 가지 재료로
만든 팔찌가 선사유적지에서 출토된 바 있다.
삼국시대에는 금, 유리 등의 고급 재료로 만들기도 하였는데,
팔찌와 관련하여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조선시대 장신구 유물 중에서는
팔찌가 전혀 보이지않는다는 것인데, 이것은 지나친 장식을 싫어하는
조선사회의 보편적 미의식 때문에 생긴 현상이 아닌가 생각된다.
사진의 팔찌는 경주 황남대총에서발굴된 신라시대 팔찌로
화려하면서도 애잔한 느낌을 주는 옥팔찌이다.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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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리개 엮은 매듭, 기교를 부렸으되 순진함을 간직한 장식물, 수십 가닥의 색실로 꼬아 만든 농염한 술로 구성되어 있는 노리개는 한복 장신구의 뛰어난 공예미를 보여준다.
세부장식 문양은 박쥐, 동자, 나비, 거북, 오리, 매미, 자라, 귀면 등 동물과 가지, 고추, 포도송이, 천도, 연꽃, 석류, 불수(佛手) 등 식물들이 주종을 이루고 있으며, 호로병, 자물쇠, 향낭, 도끼, 장도 등 생활 주변에서 취한 것 도 자주 등장한다.
노리개는 미화 욕구충족을 위한 장신구로서 뿐만 아니라, 친가와 시부모로부터 받는 예물로, 또는 다음 세대의 자녀들에게 물려주는 모정의 정표로서의 의미도 지니고 있다. 사진의 왼쪽 것이 향갑노리개이다. 개인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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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패(錢佩) : 열쇠패
삼각 장식은 비단 조각을 이용하여 삼각 모양을 겹으로 만들고 솜을 탄탄히 넣은 다음 둘레를 색실로 휘갑쳐서 만든다. 이때에 작은 고리를 만들어서 삼각이 된 위의 변에 끼워 둔다. 그리고 양쪽 다리 끝부분에는 풀솜에 물감을 들여서 만든 술을 달아서 귀여움을 강조한다. 그리고 천으로 만든 줄로 별전을 주저리주저리 엮어 함께 매단다. 길게 늘어뜨린 술은 장수의 의미가 있고, 별전에는 부귀와 행운을 비는 뜻이 담겨 있다. 개인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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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불노리개 여러 개의 삼각 장식을 줄로 엮어 네모 바탕에 매단다. 바탕에는 ‘수(壽)’자와 모란꽃을 수놓았다. 아이가 별 탈 없이 건강하고 부귀를 누리며 오래 살기를 바라는 뜻이 담겨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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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머니 주머니는 작은 물건이지만 손이 많이 가고 아기자기한데다가 부적과 같은 뜻을 지니고 있기도 해서 부녀자들이 무척 사랑하였다. 개인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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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배 흉배는 관복과 같은 색의 비단에 다양한 문양을 면밀하게 수놓아 관복을 아름답게 장식해 주며, 또한 상하의 계급을 뚜렷하게 나타내는 구실을 한다. 계급의 표시가 되는 봉황, 학 등의 주도안을 중심으로 구름, 파도, 바위, 물결, 불로초, 물방을 꽃, 영지 등을 수놓는다. 봉황 흉배는 왕손의 부인이 사용하였고, 운학 흉배는 문관 2품이 사용하였다. 개인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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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 / 한국민예미술연구소장. 홍익대와 동 대학원에서 한국미술사를 전공하였고
우리문화연구원장, 문화재 감정위원, 정신문화연구원 책임편수연구원 등을 두루 역임하였다.
저서로 『사찰장식 그 빛나는 상징의 세계』,『전통문양』등 다수가 있다.
- 경기문화재단, <기전문화예술> 2005년 11,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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