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의 상형토기
인물이나 동물 및 특정한 물건을 본떠 만든 토기를 상형토기라 한다.
상형토기는 속이 비어있거나 뿔잔 등이 붙어 있어 주전자나 잔과 같은 역할을 하도록 만든 것과
배, 수레, 뿔, 집, 신발, 방울모양 토기 등 물체의 형상을 본떠 만든 것이 있다.
(뿔잔, 부산 복천동 등 출토)
신라와 가야지역에서 많이 발견되고 있는 상형토기는
대부분이 무덤에서 출토되고 있어 일상생활에 사용된 것이 아니라
장례의식이나 술이나 물을 담아 따르는 데 사용되었다고 추정된다.
또 죽은 사람의 안식과 영혼의 승천과 같이 사후세계에 대해 어떤 상징적 기원을 표현한 것으로
일정한 의식에 사용된 후 매장된 토기로 파악되기도 한다.
따라서 부장용으로 많이 제작되는 고배, 장경호, 옹 등이
일반적인 종류의 토기와는 다른 의미를 지닌 것으로 분류할 수 있다.
기마인물형토기, 전 김해
가야의 대표적인 상형토기로는 사람이 말을 타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한 ‘기마인물형토기’를 들 수 있다.
이것은 김해지방에서 출토되었다고 전하는데 굽다리 위에 말과 무사가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말에게는 고구려벽화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모양의 말갑옷이 입혀져 있는데,
최근 함안 도향리 마갑총에서 발견된 철제의 말갑옷과 같은 구조여서
이러한 갑옷이 실제로 제작되어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말을 탄 무사도 투구와 갑옷을 입고 있으며 왼손에는 방패, 오른손에는 창을 들고 있어
당시 가야무사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라 생각된다.
김해 덕산리출토 기마인물형토기 너비 14.7㎝, 높이 23.7㎝, 밑지름 9.2㎝ / 5-6세기 김해 금관가야시대 국보 제 275호, 김해시 대동면 덕산리 출토,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1980년대 초 김해시 대동면 덕산리에서 도굴된 것을 문화재수집가 이양선 박사가 구입해서 1993년 다른 유물과 함께 국립경주박물관에 기증.
기마인물형 토기의 세부모양은 나팔모양의 받침(가야의 굽다리접시=高杯와 동일한 형태) 위에 직사각형의 편평한 판을 설치하고 그 위에 말을 탄 무사 형태이다. 받침대에는 약간의 돌대가 있는 2단의 띠가 둘러싸고 있고, 띠 아래위에 수직으로 투공(透孔)을 배치하였으며, 그 사이에는 거치문(鋸齒文)이 장식되어 있다. 말의 몸에는 장방형의 판으로 엮은 형식의 갑옷(馬甲)이 입혀있고, 말머리꾸미개(馬甲)를 하고 있다. 무사는 양쪽 다리를 등자(橙子) 위에 올려놓고 있으며, 왼손에는 마름모무늬(菱形文)가 채워진 방패를 쥐고, 오른손에는 창과 같은 무기를 쥐고 있으며 몽골 바리모양(鉢形)의 투구와 경갑(頸甲)을 갖추고 있다. 오른손에는 기다란 둥근 막대기를 쥐고 있는데 앞쪽이 잘리고 왼손에는 큼직한 방패로 앞을 가리고 있다. 아직까지 실물이 전하지 않는 방패를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주목받고 있는 방패의 앞면에는 한가운데 평행으로 능형(마름모무늬)의 구획이 그어져 있고 그 주변에는 사선이 나란히 채워져 있다. 무사의 등 뒤에는 파손된 막대기가 붙어있는데 그 정확한 용도는 짐작하기 어렵다. 사실적으로 묘사된 마갑, 직선으로 다듬어진 말갈기, 약간 회화적인 바리모양 투구, 기마인물보다 훨씬 큰 두 뿔잔(角杯)이 인상적이다. 이처럼 찰갑(札甲)과 마구(馬具)를 착장한 말과 인물이 빼어난 솜씨로 당시의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 한편 이 기마형인물토기는 출토지가 확실한데다 아직까지 발견된 사례가 없는 방패가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어서 가야토기뿐만 아니라 삼국시대 말갖춤(馬具)과 무기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현재 기마인물형토기는 김해시 청사는 물론 시내 주요거리 곳곳에 김해의 상징물로 설치되어 있다.
집모양 토기
가야, 5-6세기, 경북 현풍, 높이 12.5
경북 현풍에서 출토되었다고 전하는 집모양의 상형토기는
정면 1칸, 측면 2칸의 단층집 모양으로 갈대나 억새를 이어 만든 초가이다.
곡식을 담는 창고로서, 풍요를 기원하는 농경사회의 전통적인 신앙과
저승에서도 풍요로운 생활을 계속하기를 바라는 염원에서 만들었다.
집모양토기는 기둥으로 받쳐 올린 고상가옥(高床家屋) 형식과
일반적인 지상(地床)식의 두 가지 형식이 있으며 지붕에 올린 재료에 따라 초가와 기와로 나뉜다.
경사진 맞배지붕의 꼭대기에는 고양이 한 마리가 쥐를 잡기 위해 기다리고 있고,
이것을 모르는 쥐 두 마리는 장난스럽게 사다리를 오르고 있다.
집을 본떠 만든 이 토기는 높은 사다리와 곡식을 훔치러가는 쥐의 묘사 등으로 미루어 보아
곡식을 저장하는 창고이거나 창고 기능을 겸하였던 살림집으로 보인다.
쥐에 의한 피해가 많았을 시대에 오히려 쥐를 해학적으로 표현한
우리 조상들의여유가 돋보이는 장면이다.
이런 상형토기는 기형이 특이하고 대상물이 비교적 사실적이고 정확하게 표현되어 있어
사라져버린 고대의 기물에 대한 많은 정보를 알 수 있게 해 준다.
- 박진일, 국립중앙박물관 고고관 가야실
- 국립중앙박물관 큐레이터와의 대화(제 111회) 2008년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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