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하대 출토 청동솥(銅鼎)
원삼국시대 청동솥
국립중앙박물관 고고관 원삼국실에 들어가면 중앙 진열장에 커다란 덩치의 반구상 몸을 튼튼한 세 다리로 버티고, 양 쪽에는 약간은 어색한 듯한 커다란 귀를 가진 청동솥이 진열장이 비좁다는 듯이 떡 버티고 서 있다. 이 청동솥은 외형적으로 다른 것들보다 훨씬 크다는 점에서 놀랍기도 하지만, 우리나라 남부지역에서 처음으로 발굴을 통해 드러난 고고유물이라는 점이 더욱 큰 의미를 가진다. 이것이 긴 잠에서 깨어나 처음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때 현장에서 산파역할을 하였던 발굴담당자로서 흐뭇함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리고 그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발굴하던 옛 일을 회상하노라면 발견당시의 감격을 잊을 수가 없으며, 한편으로는 다른 발굴에 비해 상당히 힘들게 조사하였던 기억이 새삼 떠오른다. 청동솥이 출토된 울산 하대유적(下垈遺蹟)은 회야강(回夜江) 상류에 위치한다. 남북으로 길게 뻗은 해발 150m정도의 산줄기에서 동쪽으로 흘러내린 여러 구릉 가운데 한 구릉에 해당된다. 참고적으로 울산 하대유적은 남쪽에서 북쪽으로 가면서 청동기시대부터 기원후 3~6세기까지 구릉마다 시간적인 차이를 가지며 유적이 형성된 점이 특징이다.
대부분은 분묘유적이지만, 평지에는 주거지유적도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유적의 서쪽 산 너머에는 우리나라 최초로 발굴된 환호(環壕)유적인 검단리유적(檢丹里遺蹟)이 있다. 울산 하대유적은 이전부터 도굴꾼의 훈련소로 알려질 정도로 도굴이 심하여 구릉마다 포탄을 맞은 듯 여기저기 도굴구덩이가 뚫려져 있었다. 얼마나 도굴이 심하였던지 발굴당시 비가 오고 나면 산길에서 물에 씻겨 드러난 수정제 곡옥이나 구슬 등을 쉽게 줍기도 하였다. 이 유적이 학계에 처음 알려진 것은 1970년대이며, 1991년에야 비로소 발굴조사를 하게 되었다. 발굴조사는 1991년과 1992년 2차에 걸쳐 이루어졌다. 조사는 워낙 도굴이 심한 탓에 유구 굴광선(掘壙線) 확인작업부터 난관에 부딪쳤다. 발굴 과정 중에 하나하나 문제점을 해결하며 드러낸 유적은 대형목곽묘와 소형목곽묘가 서로 중복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대형목곽묘 1기에 소형목곽묘 4~5기가 중복되기도 하였는데, 이런 유구의 중복과 심한 도굴로 인해 유구 굴광선 확인작업이 어려웠던 것이다.
이로 인해 조사원 중에는 스트레스를 엄청 받아 위장병에 걸리는 일까지 벌어졌다. 아무튼 조사 초기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원활히 진행되던 발굴조사기간이 종료될 무렵 누구도 예상하지 않았던 청동솥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유구 굴광선 확인작업을 마치고, 내부조사를 하기 위해 평면적으로 흙을 제거하고 있을 때였다. 부식된 흙이 동그랗게 드러나자 도굴구덩이가 많았던 탓에 이를 확인하기 위해 삽으로 팠는데, 삽 끝에서 무언가 딱딱한 물체에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그래서 삽을 놓고 발굴용 흙삽으로 조심스럽게 흙을 제거하자 오늘날 여성들이 신는 구두의 굽처럼 생긴 녹슨 청동 다리가 하늘을 향해 뒤집어진 채 모습을 드러냈다. 다른 부분의 흙도 제거하자 청동솥의 배부분이 드러났다. 이때가 초가을 해가 저물어가기 시작하는 무렵이었다. 일단 유물을 수습을 할 것인가, 아니면 이대로 두고 다음날 다시 수습할 것인가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유물의 안전을 위해 바로 수습하기로 결정되었다. 그래서 기록할 수 있는 사진기 및 비디오 등 당시 현장에 있었던 모든 장비를 부랴부랴 준비하고, 노출과 동시에 출토당시 상황을 야장에 기록하였다. 유물이 완전히 드러나자 모두들 엄청난 크기의 청동솥에 놀라 아무 말도 못하고 탄성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이때가 천여 년의 세월을 땅 속에 묻혀 있다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다.
기초자료조사를 마친 후 보존처리를 거쳐 지금의 자리에 있게 된 것이다. - 윤태영(국립중앙박물관 고고부) - 박물관신문, 2008년 10월(제 44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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