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으로 보면 더 재미있는 미술]
꿈 그림과 화가의 무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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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헨리 퓨젤리(John Henry Fuseli, 1741~1825) / ‘악몽(Nightmare)’
헨리 퓨젤리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악몽(1790~91)>은 미지의 영역을 소재로 그린 그림이다. 그는 <악몽>을 다섯 번 그렸는데, 1781년 작품이 그 첫번째이다.
창백해 보이는 여인이 팔을 늘어뜨린 채 누워있고 여인의 가슴 위에 올라탄 incubus(인큐버스: 잠자는 여인을 범한다는 꿈속의 악마)의 뒤쪽으로 커튼 뒤에서 눈동자가 없는(장님) 악령의 백마가 머리를 안쪽으로 들이밀고 있다. 그 인상이나 나부끼는 갈기가 섬뜩하고 불안감을 조성한다.
여인은 지금 얼마나 무서운 악몽을 꾸고 있는지 대충 짐작이 간다. 가위눌림 경험자는 두말 할 것 없겠지만 가위눌림을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은 그림을 통해 대략적으로나마 가위눌림의 기분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19세기 화가 헨리 퓨젤리는 환상적인 꿈의 세계를 선보인 화가로 유명하다. 스위스 출신으로 영국에 귀화한 퓨젤리는 셰익스피어와 밀턴 · 단테 · 호메로스 · 중세 전설 등에서 영감을 받았으며, 페스트와 관련된 잔혹한 이야기와 묵시록적인 이야기에도 관심이 많았다. “예술에서 가장 탐사되지 않은 부분은 꿈”이라고 언급할 정도로 인간의 내면에 대한 끝없는 호기심을 지닌 화가였다.
퓨젤리의 그림은 결국 우리가 의지와 확신을 잃거나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 그로 인해 악몽이 우리 영혼을 낚아채는 상황을 그렸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것이지만, 특별히 이런 공포를 조장하는 시대가 있다. 퓨젤리는 자신의 시대로부터 이런 징조를 보았고, 그래서 그 전율을 이렇듯 생생히 표현한 것이다. - 영화, 그림 속을 걷고 싶다(영화의 상상력은 어떻게 미술을 훔쳤나), 한창호, 돌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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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바도르 달리 : 나르시스의 변형(The Metamorphosis of Narcissus): 1937
꿈을 일상으로 바꾼 천재 예술가 살바도르 달리.
《나는 늘 똑같은 짓을 되풀이하는 인간의 맹목적인 습성에 경악한다. 은행직원이 수표를 먹지 않은 것에 놀라고, 나 이전에 어떤 화가도 흐물거리는 시계를 그릴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란다.》
천재를 열망하는 세상을 향해 ‘나는 천재이다’라고 깜짝 선언한 화가가 있다. 바로 초현실주의 스타 화가인 달리이다.
독자여, 그대가 설령 미술에 관심이 없을지라도 혓바닥처럼 축 늘어진 달리의 시계는 기억하리라. 치즈처럼 물렁한 달리표 시계는 미술교과서와 상업광고에도 단골로 등장하니 말이다.
달리가 흐느적거리는 시계를 개발한 덕분에 시계처럼 정확한 인간이 되기를 갈망한 사람들은 긴장감을 떨치고 한결 여유를 갖게 되었다. 아울러 시간은 정확하고 견고한 것이라는 고정관념에서도 해방되었다.
그렇다면 시간의 노예가 된 현대인에게 원초적 시계를 선물한 달리를 천재로 불러도 무방하지 않을까? 사실 천재라는 단어만큼 평범한 사람들의 열등감을 자극하는 단어는 드물다.
과연 천재는 어떤 사람일까? 백과전서의 저자이자 프랑스 사상가인 디드로의 입을 빌려 천재를 정의해본다. ‘정신의 확장, 상상력, 영혼의 활달함, 그것이 천재이다.’
디드로의 이론에 따르면 달리는 분명 천재이다. 그는 엄청난 상상력과 샘물처럼 솟는 아이디어, 기발한 발상으로 사람들의 잠든 의식을 단숨에 깨우곤 했으니까. 그런 달리가 자신의 독특한 예술관, 사랑, 인생, 속내를 파격적으로 털어놓은 책이 지금 소개할 ‘살바도르 달리’이다.
그는 이 자서전에 아이처럼 치졸한 발상과 불경스럽도록 자유분방한 성의식, 편집광적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 천재성을 뽐내는 이기주의자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하지만 허풍쟁이 달리라고 흉보지 말자. 왜? 그것이 곧 천재예술가의 특권이니까.
생각해 보라. 만일 자아에 대한 확신, 혹은 자기를 존중하는 마음이 없다면 그토록 지나친 열정을 가지고 미친 듯 예술에 몰입할 수 있었을까? 그래서 시인 장 콕토는 ‘천재는 자신과 사랑에 빠진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흔히 세 살에서 일곱 살까지를 창조성의 황금시대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이 시기의 아이들은 불꽃같은 열정으로 세상을 공부하고 농축된 호기심과 탐구심을 자양분 삼아 창의성과 상상력을 활짝 꽃피우기 때문이다. 그런 사례에 비추어 볼 때 달리는 영원한 아이인 셈이다.
그래서일까? 책을 읽던 도중 소설 양철북과 영화 아마데우스가 머리에 스쳤다. ‘양철북’의 주인공 오스카는 위선과 증오로 가득 찬 세상을 거부하고 속물적인 삶에 오염되지 않기 위해 세 번째 생일날, 자신의 의지로 신체적 성장을 멈춘다. 그리고 그는 영원한 아이로 살아가는 운명을 선택한다.
한편 ‘아마데우스’의 살리에르는 천재성 대신 천재를 알아볼 능력만을 준 신을 저주하며 열등감의 원천인 모차르트를 죽음으로 이끌며 그 또한 파멸의 길을 걷는다. 오, 천재에 대한 선망과 감탄, 그리고 질투여! 독자여, 만일 그대가 영원한 아이이며, 천재인 달리의 비밀을 알고 싶다면 꿈을 일상으로, 일상을 꿈으로 변형시킨 위대한 연금술사의 자서전을 꼭 탐독하기 바란다. - 세상을 바꾼 삶의 기록<자서전 30선> - 이명옥 사비나미술관 관장
그리스신화에 의하면, "… 리리오페는 너무나 아름다운 아기를 출산하였습니다. 리리오페는 점 잘 보기로 유명한 테이레시아스에게 자기의 아들 나르시스의 미래에 관해 물어봅니다. 테이레시아스는 나르시스가 자신을 보지만 않는다면 천수를 누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나르시스의 미모는 너무나 뛰어나 그를 한번이라도 본 사람들은 모두 사랑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나르시스는 자존심이 어찌나 강한지, 사람들이 자신의 몸에 손 하나 대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테이레시아스의 불길한 예언처럼, 사냥하다 지친 목을 축이려던 나르시스는 물에 비친 자신의 그림자를 보고 반해버린 것이었습니다. 물에 비친 제 모습에 넋을 잃은 나르시스는 물에 입술을 대었으나 하릴없었습니다. 물에 비친 그림자를 만져 보려고 손도 집어넣어 보았으나 역시 부질없는 짓이었습니다. 물에 비친 그림자를 사랑할 수 없음을 알고 결국 죽음에 이르고 맙니다. 그러나 신은 그를 다시 꽃으로 환생 시켰습니다. 이 꽃이 바로 수선화입니다 … "
이 그림 보면, 사람이 웅크린 모습 같기도 하고, 손 모양 같기도 한 형체가 손에 달걀을 쥐고 있는데, 그 달걀에서 꽃이 피어나고 있다. 이 모습이 물가에 비치어 똑 같은 영상을 만들어 내는데, 물 표면에 있지 않고, 물 에 떠오른 형상으로 표현되고 있다.
그림 오른쪽 상단에는 체스판처럼 보이는 바닥 위에 다비드상처럼 홀로 우아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사람 형상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변형되기 전의 나르시스의 모습이다.
화면 중간의 뒤쪽에는 여러 사람들의 작은 형상들을 볼 수 있다. 이 사람들이 바로 나르시스를 연모했던 수많은 사람들이다.
또한그림을 약간의 거리를 두고 시선을 고정시킨 채 최면상태의 나르시스형상을 계속해서 보게 되면 결국 나르시스형상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순간에 바로 신화의 변형이 시작된다. 왜냐하면 나르시스의 이미지가 물에 비친 자신의 영상에서 나온 손의 이미지로 변형하기 때문. 손끝에는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뜻하는 달걀(생명의 씨앗)이 있고, 이 달걀에서 나르시스의 꽃이 부활하게 되는데, 즉 그림이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달리의 나르시즘은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개념이다. 더욱 연못의 물 안에 반사되어진 이미지와 현실적 이미지 사이의 혼동은 그 배경에 깔린 죽음의 이미지와 함께 이러한 이중 이미지 뒤에 감추어진 거의 불가사의한 상징이다.
이 작품은 달리가 "편집광적 비평적 방법(paranoiac-critical method)"이라 부르는 방법으로 나르시스의 변형을 환상적이고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
초현실주의자들은 프로이드의 심리학에서 밝혀낸 무의식과 본능의 세계를 밖으로 노출(해방)시킴으로써 새로운 사회를 창조하고자 하였다. 그러므로 <꿈과 욕망>은 초현실주의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소재였으며 “자동기술법”과 같은 표현방법을 통해 화면에 그것을 노출시켜 인간의 의식적인 의도와 이성을 조롱하였다.
초현실주의자들이 선호한 “자동기술법”이란 모든 의식을 배제한 채 무의식 상태에서 손이 움직이는대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데칼코마니(Decalcomanie)가 그 자동기술법의 하나이다. 반으로 나눈 도화지 한 면에 물감을 뿌리고, 이를 눌렀을 때 생겨나는 혼색의 우연 효과가 아름답고 환상적인 작품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달리는 이러한 자동기술법과는 달리 깨어 있는 동안에도 유효한 꿈을 지속시켜 주는 정신착란을 객관화하고 체계화할 것을 주창했고, 이것이 바로 "편집광적 비평적 방법"이다.
1930년 달리는 편집광적 비평적 방법을 "정신착란 현상을 연상케 하는 비이성적 인식의 즉흥적인 방법"으로 정의하고 있다. 편집증을 마치 "자신의 거만한 찬양"처럼 인식하고 있으며, 예술가가 예술적 재료로서 그 자신의 강박관념과 욕구를 조직화, 체계화하는 방법이라고 한다. 이것이 달리의 회화작품에 있어서 진정한 정수이며 정신착란의 주제들과 결합하여 전통적인 그의 회화기법, 즉 정밀한 소묘나 완벽한 원근법 안에 반영되어 있다. 따라서 달리의 “편집광적 비평적 방법”은 현실을 보다 더 잘 알기 위하여 이용된 것이다.
달리가 독자적으로 만들어내 기이한 인물들의 저변에서 우리는 한 예술가의 뛰어난 지성과 광범위한 교양을 느낄 수 있으며, 그림을 지식의 확장수단으로 간주한 한 창조적 인간상을 볼 수 있다.
달리는 회화의 목적은 '의식세계와 무의식세계, 내적세계와 외적세계 사이의 육체적 장벽을 동시에 제거하고, 현실과 비현실 및 명상과 행위를 서로 합하여 혼합되어 전 생명을 지배하는 초현실성을 창조하는 것' 이라고 주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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