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끼며(시,서,화)

[과학으로 보면 더 재미있는 미술] 2. 고흐와 칼로

Gijuzzang Dream 2007. 11. 22. 11:27

 

 

 


 
[과학으로 보면 더 재미있는 미술]
 
 
 
 그들의 진통제는 예술이었다  
 

 

 

- 고흐 : 붕대로 귀를 감고 있는 자화상(1889)         - 프리다 칼로 : 부러진 척추(1944)



자화상으로 본 미술과 고통의 방정식

 

 

《고통. 두렵다. 피하고 싶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운명이라면….

고통을 운명으로 짊어진 두 화가가 있다.

네덜란드의 빈센트 반 고흐와 멕시코의 프리다 칼로.

보통 사람들이 겪지 못한 심리적, 신체적 고통에 평생 시달렸다.

그러나 이 사실을 모른 채 이들이 그린 자화상을 보면 그 고통을 짐작하기가 쉽지 않다.

 

21일 한자리에 모인 문국진(법의학) 고려대 명예교수, 권준수(정신과) 서울대 교수,

이명옥 사비나미술관장은

두 화가의 자화상에서 극심한 고통과 그 이면에 숨겨진 남다른 창조성까지 찾아냈다.

의학과 미술 전문가가 짚어 준 관람 포인트를 따라가 보자.》

 

 

○ 얼굴의 세부 구성요소에 주목하라

 

절친한 선배 화가인 폴 고갱과 크게 다툰 고흐.

괴로움을 참지 못해 스스로 자신의 귓불을 자르고 말았다.

고흐는 귀에 붕대를 감은 채 파이프를 물고 있는 자화상을 그렸다.

하지만 언뜻 보면 자화상의 표정이 그다지 괴로워 보이진 않는다.

 

문국진 =

“눈이 가운데로 몰려 있고 동공이 축소됐다. 안면 근육도 긴장돼 있다.

고갱에 대한 배신감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심정이 그대로 드러난 작품이다.”

 

전체적인 느낌이 아니라 얼굴의 세세한 부분을 관찰한 법의학자의 눈에는

자화상 속 표정이 고통스러워 보인 것이다.

 

어려서 소아마비를 앓은 칼로.

오른쪽 다리가 나뭇가지처럼 마른 채 제대로 자라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18세 때 버스와 전차가 충돌하는 사고로 척추와 갈비뼈, 골반이 부러지고

자궁을 다치는 처참한 부상을 당해 평생 30번이 넘는 수술을 받았다.

척추 대신 쇠파이프가 박혔고, 못이 온몸을 찌르는데도

멀리서 본 자화상 속 칼로의 얼굴은 어째 무표정한 것 같다.

문 교수는 특이하게도 눈썹에서 고통을 읽어 냈다.

 

= “치과 치료를 받는 환자는 입을 벌리고 있으니 아프단 말을 잘 못한다.

이때 노련한 의사는 눈썹을 보고 환자의 고통을 짐작한다.

아파서 이마를 찌푸리면 눈썹 사이에 있는 눈썹주름근이 수축하면서

눈썹의 안쪽 부분이 밑으로 당겨진다. 칼로의 자화상은 이를 표현하듯 눈썹이 일자로 붙어 있다.”

 

 

○ 몰입하면 세로토닌 분비, 고통을 줄여 준다

 

이명옥

= “고흐는 조울증을 앓았지만 화가로 활동한 약 10년 동안

자그마치 900여 점에 이르는 그림과 1700여 점이나 되는 스케치를 남겼다.” 

 

고흐가 그토록 그림에 몰입한 이유가

정신질환으로 인한 고통을 덜기 위해서였을 거라는 설명이 정신의학적으로 설득력을 얻고 있다.

 

권준수

= “한 가지 일에 집중하면 고통을 잘 느끼지 못한다는 연구 결과가 많다.

집중할 때 뇌에서 분비되는 베타엔도르핀, 세로토닌 같은 물질이 통증을 줄여 주기 때문이다.”

 

칼로의 작품에 등장하는 여인은 대부분 자기 자신이다.

그림에 몰입하면서 모진 신체적 고통을 조금이나마 잊으려 했을 것이다.

생존 본능이 미술로 나타난 셈이다.

 

= “의학에서는 환자가 다른 사람의 고통에 공감하면

자신의 괴로움이 어느 정도 해소된다고 느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예술가의 생애와 작품을 정신의학적으로 분석하는 ‘병적학’이라는

분야가 생겨난 이유이기도 하다.”

 

 

○ 고통은 창조성의 원천이다

 

정신의학자들은 고흐의 뇌 중 특히 이마엽(전두엽) 영역을 주목한다.

뇌의 가장 앞부분인 이곳에서 남다른 창조성이 생겨났을 거라고 추측한다.

 

= “은행 하면 어떤 단어가 떠오르는가? 돈이라고 많이 대답한다.

그런데 창조성이 높은 사람은 감옥처럼 엉뚱한 걸 떠올린다.

은행을 턴 도둑이 잡히면 감옥에 가니 말이다.

직접적인 관계보다 좀 더 먼 연관관계까지 한 번에 생각하는 것이다.”

 

이를 ‘분산적 사고’라고 부른다.

언뜻 보면 관계없을 것 같은 요소들을 조합해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 내는 과정이다.

정신의학에서 분산적 사고는 몰입과 함께 창조성을 발휘하게 하는 중요한 요소로 꼽힌다.

 

= “정신질환자의 20% 정도가 일반인보다 창조성이 높다는 보고가 있다.

남들이 경험하지 못한 고통을 겪은 화가들은

분산적 사고력이 발전하고 그림에 몰입하게 됐을 것이다.”

 

만약 고흐가 조울증 치료를 규칙적으로 잘 받았다면

창조성이 현저하게 줄어들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 2007.11.23

- 임소형 동아사이언스 기자 sohy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