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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조건물에 여러 가지 빛깔로 무늬를 그려서 아름답고 장엄하게 장식한 것, 이것이 바로 단청에 대한 사전적 의미이다. 그러나 단청은 단순한 문양이나 목재보호 차원이 아닌, 우리의 전통의식과 활동을 반영하는 문화로 인식되어야 한다. 전통문화로서 단청이 가지는 의의와 단청의 보존 및 계승이 왜 제대로 이루어져야 하는지에 대해 알아본다.
목조 건축물은 외부환경으로 인한 피해, 특히 비바람에 썩기 쉽기 때문에 단청은 빼놓을 수 없는 필수 과정이다. 따라서 단청시공이 마무리되었을 때 온전히 완성된 건물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단청의 역할은 단순히 목재를 보존하고 보호하는데서 끝나지 않는다.
단청은 오행설에 근거한 오채색(五彩色), 즉 청·적·황·백·흑색을 기본으로 하여 일정한 규칙에 따라 문양을 그려 넣는다. 명확한 질서를 가지고 반복되는 패턴은 부재별로, 위치별로, 그리고 건물의 성격에 따라 그 차이를 둔다. 이는 단청에 사용된 문양과 색채가 각기 다른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사찰건축에 금단청, 궁궐건축에 모로단청, 서원건축에 긋기단청 이상을 사용하지 않는 등 그 건물의 주인이 누구냐에 따라 단청의 격을 달리한다.
신분제 사회에서 지위고하(高下)와 직책에 따라 복식(服飾)을 달리했듯이 목조 건축물 또한 문양과 배치가 다른 단청을 입힘으로써 그 주인의 격을 나타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간 단청에 대한 관심은 상당히 미비한 편이었다. 단청을 단순히 건축물을 꾸미는 장식화 이상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청은 우리 민족의 우수한 미의식을 담고 있는 전통회화의 한 부분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아야 한다.
대체로 조선후기에 이루어진 것들이다. 그나마 풍화(風化), 또는 각종 자연 재해 등으로 그 원형이 급격히 훼손되고 있으며 건조물에 가해진 각종 인재(人災)에 의해 건조물과 함께 그 운명을 다하고 있는 실정이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새롭게 단청을 시공하면서 전통 단청의 원형에 대한 기록조차 남기지 않아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이 그대로 사장돼 버려왔다는 것이다. 현재의 단청 시공 또한 많은 문제점을 낳고 있다. 건물의 격에 맞지 않는 단청 시공이 그것이다.
금단청은 불보살(佛菩薩)이 상주하는 주불전(主佛展)에 어울리는 것인데, 화려하게 장엄하려는 욕심이 지나쳐 건물의 격에 어울리지 않게 요사채나 비각(碑閣)에도 금단청을 올린 경우가 많다. 또한 서울의 궁궐 단청이 전국적으로 영향을 미쳐 지방의 사찰에 궁궐양식의 단청이 시공되는 예들도 있다. 이는 건물의 격에 어울리지 않을뿐더러 각 지방의 고유하고 다양한 단청양식이 사장되고 단청이 획일화, 형식화되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머리에 버선을 씌우고 승려에게 곤룡포를 입히는 꼴이다.
무엇보다 먼저 현존하는 전통 단청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조사 및 실측·모사 작업이 시급하다.
비록 실물은 남아있지 않지만 『고소천경길수집자료(故小川敬吉蒐集資料)』와 지전종구 구장(池田宗龜 舊藏)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대웅전 내부벽화 모사도가 남아있어 고려시대 단청을 추정하고 종합적인 복원을 가능케 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최근 이루어진 미황사 대웅전(보물 제947호) 단청 모사 작업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단편적이고 부분적인 모사가 아니라 건물 전체의 문양을 하나도 빠짐없이 기록하고, 현상대로 모사하고, 당시 사용된 안료 및 교착제의 분석 등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연구로 복원자료로서의 가치뿐 아니라 전통을 발전시키고 계승해 나가는데 훌륭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단청모사는 지난 2월 15일자 모 일간지의 ‘정밀 실측 자료가 제2의 문화재’ 의 내용을 적용해볼 때, 전통을 계승하고 전통문양의 현상을 보존하는데 있어서 기초자료를 제공한다는 의의가 있다. 또한 목조건물을 보수·복원하거나 전반에 걸친 재단청을 시행할 때를 위해서도 중요하고 필수적인 과정이라 하겠다. 부디 단청의 의미와 가치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여 더 늦기 전에 전통 문화로서의 단청을 보존하고 계승하는 일에 힘을 모을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 이수예, 사찰문화재보존연구소 공동대표(제32회 전승공예대전 회화부문 본상 수상자) - 문화재청, 월간문화재사랑, 2008-09-0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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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틀림 하나까지… '정밀 실측 자료'가 제2의 문화재
원형 복원의 유일한 근거국보 등 중요 목조문화재 143건 중 90건 아직 못갖춰
숭례문 화재 이후 중요문화재에 대한 정밀실측조사를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숭례문 방화같이 전혀 예상치 못한 사고나 천재지변으로 중요문화재가 훼손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고 이 때 정밀실측조사 자료는 문화재를 다시 원형대로 복구하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숭례문 화재가 난 다음날 문화재청과 전문가들이 원형 복원에 자신감을 보인 것은 서울시 중구청이 2006년에 작성한 <숭례문 정밀실측 조사보고서>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1984년 신도가 기도를 하다 촛불을 부주의하게 다뤄 불탄 전남 화순 쌍봉사의 3층목탑 형식의 대웅전(당시 보물 163호)이나 86년 방화로 불탄 전북 김제 금산사의 대적광전(당시 보물 476호)은 정밀실측 조사보고서를 토대로 원형을 복원할 수 있었다.
일반 문화재보고서는 문화재의 상태를 개략적으로 파악하고 있지만, 정밀실측 조사보고서는 매우 자세하다. 숭례문 정밀실측 조사보고서의 경우 각 부재의 크기, 높이 등 치수가 ㎜단위까지 자세하게 기록돼 있다.
일반 보고서는 건축물의 서까래를 서너 개 재어보는 정도지만, 정밀실측 보고서는 수십 개에 이르는 서까래 전부의 치수를 뒤틀림까지 그대로 기록한다.
숭례문보고서의 경우 조사당시 숭례문에 있던 부재 33점과 60년대초 보수할 때 대체한 옛 부재 35점 등 총 68점에 대해 나이테를 통해 연륜까지 측정했고 그 결과 1300년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것이 3점이나 있었고 1400년대, 1800년대, 1900년대의 부재도 있었다. 석축도 돌 하나하나의 치수를 쟀다. 이 같은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문화재에 대한 정밀실측 조사는 아직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문화재청은 99년부터 국보, 보물 등 중요 목조문화재 143건에 대해 정밀실측 조사를 하고 있으나 현재까지 이루어진 것은 보물 1호 흥인지문을 비롯해 밀양 영남루, 강릉 해운정, 쌍계사 대웅전 등 53건에 불과하다.
한해 4억원 정도의 예산으로 3~4건에 대한 정밀실측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숭례문이나 제주 관덕정처럼 관할 지방자치단체가 정밀 실측조사를 하는 경우도 있다. 목조문화재 외에 석탑, 부도 등 석조문화재는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정밀 실측조사를 하고 있다. 국가지정 석조문화재 286개 중 첨성대, 석빙고, 다보탑, 석가탑 등 95개에 대해 실측조사가 완료돼 있다.
이밖에 서울역사, 러시아공사관 등 근대문화재에 대해서도 정밀 실측조사가 이루어졌다. 이왕기 목원대 건축학부 교수는 “정밀 실측보고서는 불의의 사고가 있을 경우 문화재를 재현하는 근거자료로 문화재라면 반드시 만들어야 한다”면서 “건물 해체보수 등의 기회를 이용해 중요문화재부터 더욱 정밀하게 조사해나가야 할 것” 이라고 말했다. - 2008-02-15, 남경욱 기자 kwnam@hk.co.kr ⓒ 한국아이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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