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앞에서 모든 것이 엄숙하고 성스럽듯이 초기의 원시화폐는
신에게 바치는 일종의 지불수단이었다.
우리의 삼국유사에서도 그런 대목이 나온다.
신라 경덕왕(760년) 때 월명사(月明師)가 죽은 누이동생을 위해 재를 올리고
향가를 지어 제사를 지냈는데 이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가사가 보인다.
“風送飛(紙)錢資逝妹 … ”(바람은 紙錢을 날려 죽은 누이동생의 路資로 삼게 하고 … )
혹자는 이것을 누이동생의 혼이 극락세계로 가는 도중에 여비로 쓸 수 있도록 지전(紙錢),
즉 지폐를 제단에 올려놓은 것으로 해석하여
신라시대에도 화폐가 사용되었다는 주장을 엉뚱하게 내놓기도 한다.
화폐는 곧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 파는 교환수단이라는
현대적 인과관계를 거꾸로 투사시킨 결과이다.
여기서 종이돈[紙錢]은 실제로 오늘날과 같은 지폐가 아니라
종이를 한 가운데 둥글게 뚫어 돈을 흉내낸 것이었다.
죽음과 관련된 화폐는 극락을 무사히 갈 수 있도록 기원하거나 무덤 자리를 얻기 위해
지신(地神)에 바치는 지불수단의 대용물이었다. 우리가 지금 생각하듯이 화폐 최초의 기능은 교환수단이 아니었다.
시장관념에서 탈피하여 또 다른 화폐의 상징성(심볼리즘)으로 볼 때만이
최초의 원시화폐를 올바르게 해석할 수 있다.
생전에 지었던 죄를 씻고 신에 대한 채무를 갚기 위해
화폐의 최초 기능은 지불수단에서부터 시작되었던 것이다.
화폐를 통해 뭔가를 기원하는 상징성 또는 주술적 염원은
오늘날 현대화폐에서도 종종 보인다.
전자화폐가 완전히 지갑 속에 있는 동전이나 지폐를 대체하기 전까지
화폐의 주술성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현대화폐의 주술성을 잘 연구해보면 여러모로 재미있고 유익하다.
옆방 선배교수가 10만원짜리 수표를 주면서 지폐로 바꿔달라고 한다.
부의금을 넣는데 수표는 실례가 되니까 지폐로 넣어야 된다는 것이다.
저승길에 은행이 없기도 하지만 동전과 지폐에만 화폐의 상징성이 작동되는 모양이다.
첨단유리 온실로 장미화훼를 하는 정사장은
지갑 한켠에 1만원짜리 한 장, 5천원짜리 한 장을 간직하고 다닌다.
바로 연로한 아버지와 어머니가 주신 세배 돈인데 일종의 부적인 셈이다.
1년 동안 그렇게 지니고 다니다가 그 다음 세배 돈을 받으면 바꿔 넣는다고 한다.
또 하나의 에피소드도 있다. 한 번은 부모님께 용돈으로 빳빳한 새 돈을 드렸더니
이 분들이 아까워서 돈을 못 쓰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다음번부터는 용돈을 헌 돈으로 드렸다고 한다.
그렇다면 아이들한테는 용돈을 새 돈으로 주는 것도 지혜가 되리라.
대개 부자들의 공통점은 돈을 사랑하는데 있다.
사랑과 집착이 다르듯이 돈을 악착같이 모은다고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진짜로 돈을 벌고 싶다면 돈에게 “너를 사랑한다!” 마법을 걸어야 한다.
일본에서 가장 세금을 많이 내고 있는 아이토 히토리(56) 씨의 부자되는 비결에도
그것이 있다. 돈을 사랑하고 아껴야하며,
지폐의 그림방향을 맞추어 지갑에 넣어두면 돈이 들어온다고 한다.
내가 좋아하는 (주)전인석유 사장도 돈의 철학에 대해선 만만치 않다. * 돈을 깨끗이 사용하라. 찢어진 곳은 테이프로 붙이고 구겨진 곳은 잘 펴서 사용하라
(인두에, 다리미에 다려서) * 돈이란 인간과 마찬가지로 사랑받기를 원한다.
아껴주고 잘 관리해주면 외출했다가도 더 많은 친구를 데려오지만
그렇지 않으면 집을 나가 버린다. * 물건을 사거나 남에게 돈을 줄 때는 헌 돈을 골라서 주지만 새 돈을 먼저 주어야 한다.
새 돈은 밖에 나가서 친구를 데리고 내 지갑 속으로 들어온다.
새 돈을 받은 사람은 순간의 가벼운 즐거움과 좋은 감정을 갖게 된다.
새 돈을 내주는 연습을 하다 보면 돈 씀씀이가 크게 줄어들 것이다.
새 돈이 아깝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 지갑 속에는 헌 돈을 소지하여라.
헌 돈에는 수많은 사람의 손을 경유하면서 많은 사람의 기(氣)가 묻어 있어
내 지갑 속에 좋은 힘을 줄 것이다.
- 원용찬 현 전북대 경제학부 교수
- [원용찬파워노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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