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도기와 영도다리 | ||||||||
치세에는 붓을 잡고 난세에는 칼을 찬다는 말이 있으나 치세에도 붓을 잡고 난세에도 붓을 잡은 이들이 있었으니 부산 영도의 대한도기주식회사에서 도화를 그린 사람들을 두고 한 말이다.
피난생활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붓을 잡고 그림을 그리지 않을 수 없었고, 그런 그들에게 많은 일자리를 제공한 곳이 대한도기이다.
직접 생산하는 방식으로 1917년 부산 영도에 설립한 '일본경질도자주식회사'가 전신이다. 일본경질도자주식회사는 곧 조선경질도자주식회사로 이름을 바꾸고 경남 고성(固城)산 고령토와 함경북도 생기령(生氣嶺)산 점토로 투연식(投煙式) 각요(角窯)에서 석탄을 연료로 사용하여 양식기, 일본식기, 조선식기 등을 고급 도자기를 생산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 동남아, 남미 등으로 수출하기도 하였다. 이 회사는 해방 후 적산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양산출신의 지영진(池榮璡 1899-1972)에게 불하되어 '대한도기'로 이름을 바꾸었다.
대개 대한도기에 적을 두고 연명하였다. 이때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김은호, 변관식, 장우성, 김학수, 이규옥, 이중섭 등과 당시에는 미대생이었던 김세중, 서세옥, 박노수, 문학진, 장운상, 박세원, 권영우 등이었다. 이들은 대체로 난초나 이름 모를 풀꽃 등을 주로 그렸으나 특별히 풍경이나 풍속화류를 도자기에 그리는 일도 맡았다.
우연찮게도 소림 조석진의 외손인 소정은 일찍이 조선총독부 관립 공업전습소 도기과를 졸업한 이력이 있어 도화(陶畵)와의 인연은 깊은 편이었다. 더욱이 변관식은 보성중학교를 나온 지영진과 동갑으로 교류한 사이였다. 따라서 소정은 도기과를 나온 인연과 사주와 갑장인 연비로 해방 직후부터 대한도기에 출입을 하였는데 그 때의 인상에서 남긴 실경산수가 <영도교>이다. 영도는 조선 후기까지 사람이 살지 못하게 한 섬으로 목마장의 역할만 하던 것을 조선말기 군영이 설치되고 사람들이 몰려 들어가자 교통의 수단은 통통배에만 의지하였다. 이에 일제는 조선경질도자회사의 출퇴근과 인근 공업지역을 뭍으로 잇고자 1934년 1,000톤급 기선의 운항을 가능케 하는 도개교(跳開橋)로 영도다리를 놓은 것이다. 해방이 되자 소정은 이 다리를 건너 대한도기로 들어갔으며 대한도기의 사장 방에서 도자산업과 도화에 의견을 나누면서 영도다리를 바라보았으리라. 당시 대한도기는 100여자가 넘는 가마를 4대씩이나 갖추고 원료 창고를 비롯한 태토 배합실, 유약 조성실, 제형실, 소소(素燒)실, 회부(繪附)실, 시유실, 용유(熔釉)실, 금요(錦窯)실, 하조(荷造)실, 갑발 제조실, 시험실, 직공 기숙사 등등 연건평 3천여평에 달하는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이 가운데 사무실은 가장 오른 편에 위치하였고 그 이층의 바다 쪽으로 난 방이 사장실이었다. 그러기에 그는 1948년(戊子)에 이곳 대한도기의 사장실에서 바라다 보이는 풍광을 그대로 그린 그림으로 <영도교>를 남겼다. 도1. 변관식, <영도교> 1948년, 부산광역시 문화재자료 제28호, 지본담채, 137.0×33.5cm, 동아대학교박물관 鐵粱揭而闢 船出海通門
機事紛綸外 遙山靜自存 戊子 新春 小亭 쇠 교량이 높이 들어 열리면, 배는 이 문을 지나 바다로 나아간다. 기계 소리는 멀리까지도 시끄러운데, 먼 산은 고요히 그대로 있네. 무자년 이른 봄 소정
고원견산(高遠見山), 아미산(峨嵋山) 등 대한도기에서 바라 본 부산의 산세가 대단히 정확하다. 산들과 당시 적산 가옥이 즐비한 부산의 풍경에서 변관식의 실경산수가 진면목을 보여준다. 끈이 되어 진 것이 아닐까 상상해 본다. 또 이 그림이 매개가 되어 도화를 그리는 이들이 꼬리를 물고 대한도기로 모여들었다면 지나친 비약일런지… 그는 여기에서 1951년(辛卯)에 <진양풍경>이란 명품 도화를 남기기도 하였다.
그 같은 기대감에 이 다리 근처로 점집이 수십 개 생겨 삶이 고된 이들의 정신적 안식처가 되기도 하였다. 옛 형상을 고치게 된다니 그림으로만 남은 소정의 <영도교>를 보며 “아! 옛날이여”를 되뇌어 본다. - 문화재청, 문화재칼럼, 2008-08-2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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