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근대문화유산 35] 공주의 관문으로서 상징적인 교량
◆ 공주 금강철교 ◆
금강 수계의 발전과 함께 근대도시로서 탈바꿈하였다. 그러나 철도노선이 대전을 중심으로 건설되면서 공주의 격렬한 이전반대운동에도 불구하고 1932년 10월 충남도청이 대전으로 옮겨지게 된다. 이러한 시기에 도청 이전의 보상 차원에서 당시 공주 주민들의 절실한 요망사업이었던 다리건설을 요구하게 된다. 금강철교를 놓기 이전에는 30여 척의 배 위에 널판을 깔아 놓은 ‘배다리’를 이용하여 금강을 왕래하였다고 하니 그 불편은 짐작할 만하다.
공주읍과 장지면을 연결하기 위해 1933년 공주로 들어가는 입구에 금강철교를 건설하였다. 당시 전국적으로 건설된 철교는 대부분 철도교(鐵道橋)였으나 금강철교는 도로교(道路橋)로서 그 예가 드물다. 다리의 주요구조로는 3연식 곡현 트러스와 11연식 겔버교, 교각은 철근콘크리트구조이다. 금강철교는 당시 새로운 철근콘크리트 공법이 실용화되면서 트러스와 아치를 조화시킨 구조적 미를 엿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공주의 관문으로서 상징적인 역할을 해왔던 철교로서 2006년 3월 2일 등록문화재 232호로 등록·관리하고 있다.
당시 교량설계의 높은 수준을 잘 반영하고 있다. 한편 1950년 7월12일 한국전쟁 중에 교량의 2/3가량이 군사작전상 폭파되어 1952년부터 복구공사를 시작하였다. 철골은 흥화공작소에서 설계하고 노량진공장에서 제작하여 1956년 9월에 완공된 뒤 지금까지 수차례의 크고 작은 보수공사를 통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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