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가며(자료)

개성의 첨성대

Gijuzzang Dream 2007. 11. 13. 22:46

 

 

 

 

 개성의 첨성대  

 

 

 

 

 

박권수(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학예연구사)

 

 

고려의 황도였던 개성은 경기도에 속하면서도 우리가 아직 자유롭게 왕래하지 못하는 곳에 위치해있다.

하지만 남북관계의 개선으로 남북합작공단이 개성과 휴전선 사이에 들어선 마당에

일반인들이 개성시내를 둘러보고 오는 일은 이제 단순히 시간문제로 보인다.

서울에서 승용차로 불과 1시간이면 닿을 수 있는 개성을 가기 위해서

우리는 무려 50여 년의 시간을 둘러왔던 셈이다.

 

잘 알려져있다시피, 개성에는 황궁터인 만월대와 선죽교, 남대문, 성균관, 영통사지 등과 같이

500년 왕조의 역사를 간직한 수많은 유적과 유물들이 남아 있다.

그런데, 이들 유적과 유물 중에서 한국과학사를 연구하는 필자의 눈길을 사로잡는 것이 있으니,

바로 첨성대가 그것이다.

흔히 ‘첨성대(瞻星臺)’라고 하면 경주에 있는 첨성대만을 떠올리기 쉽지만,

개성에도 황궁터인 만월대 서쪽에 화강석으로 만들어진 첨성대가 우뚝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개성의 첨성대는 높이 약 2.8m 정도의 사각 화강암 기둥 5개가 사방과 중앙에서 윗부분의 정사각형 형태의 돌마루(한변 약 2.6m 내외)를 받치고 있는 모양을 지니고 있다.

이런 형태는 7세기 초에 만들어진 경주 첨성대의 호리병 모양과도 완전 다른 것이다.

 

개성 첨성대의 돌마루와 기둥에는 세 개의 구멍이 남아있다고 하는데, 이들 구멍이 관측기구들을 설치하는 데 사용된 것인지 확실히 알 수 없다.

 

그 축조연대또한 확실하지가 않아

혹자는 10세기로, 혹자는 13-14세기 경으로 추정한다.

실물을 보지 못한채 단지 사진과 전언을 통해서

유물을 파악할 수 밖에 없는 필자로서는

그 둘레에 놓여있는 약 24개의 작은 돌기둥이

애초 이 첨성대가 만들어질 당시부터 놓여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첨성대를 보호하기 위해 후세에 만든 울타리의 일부분인지 알 수 없다.

 

그런데, 이처럼 특이한 형태의 개성 첨성대는

향후 한국과학사 연구자들 사이에서 논쟁의 대상이 될 소지가 다분한 유물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개성의 첨성대는 경주 첨성대와 마찬가지로

순전히 ‘과학적인 의미의 천문 관측활동’을 하기 위해 만든 유물로 보기가 힘든 면을 많이 지녔기 때문이다.

 

흔히 첨성대는 고대의 ‘천문대’라고 소개되므로,

사람들은 첨성대가 단순히 천문관측을 위한 구조물이라고만 여긴다.

하지만, 과연 개성의 첨성대는 천문관측에 적합한 구조물로 볼 수 있을까?

그렇지가 않다.

왜냐하면, 우선, 개성의 첨성대를 보면 관측자가 오르내리기 불편한 형태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는 현대그룹 계동 사옥 앞에 남아있는 조선시대의 관천대와 비교해보면 쉽게 알 수 있는 바이다.

즉 조선시대의 관천대는 돌로 쌓은 계단을 통해 쉽게 오르내리게 만들어져 있는 것이다.

 

또한 개성의 첨성대가 천체관측 기구를 설치하기에 넉넉한 공간을 가지고 있는지 여부도 의문스럽다.

그렇다면 개성 첨성대의 이와 같은 특이한 모양과 구조는 무엇을 의미할까?

 

사실 이런 지적과 의문들은 1970년대 이후 한국과학사 연구자들 사이에서 벌어진 ‘경주 첨성대 논쟁’ 과정의 초기에 제기되었던 것들과 비슷하다.

 

당시까지 경주 첨성대는 ‘천문관측을 위한 구조물’이라고만 알려져 있었는데,

1970년대 이후 일부 연구자들이 첨성대가 별에 제사를 지내는 ‘재단이었다’거나

‘불교의 수미산의 모양을 본따 만든 종교적 유물’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물론 여기서 다시 그 논쟁들을 자세하게 소개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한국과학사 연구자들은 이런 논쟁을 거치면서 고대인들이 수행한 첨성(瞻星, 占星),

즉 별을 관측하는 행위의 의미를 보다 폭넓게 이해하기 시작했으며, 그 결과

경주 첨성대를 ‘천문대이자 재단이기도 한’ 구조물로 파악하는 견해를 대체적으로 수용하게 되었다.

 

이렇게 본다면, 개성의 첨성대는 경주의 첨성대와 마찬가지로 전통시대 역사와 과학유물에 대한

우리 근대인의 상식과 통념에 다시 한번 도전하는 유물이 될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북한 핵문제가 해결되고 북미관계가 개선되면,

개성공단을 수백만평으로 확장하고 그 배후에 30만명 이상의 북한 노동자들이 거주할 신도시를

건설하고자 하는 정부의 원대한 계획이 실현될지도 모르겠다.

비록 그 계획이 모두 실현되지 않더라도 개성은 이미 낡아빠진 ‘냉전시대의 상식’을 뒤엎고

남북한이 함께 살아갈 공동의 미래를 열어가는 ‘역사적인 공간’이 되어가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러니 천년고도 개성의 밤하늘 아래에서 첨성대에 올라

하늘에 드리워진 그 상서로운 변화의 상(象)을 읽어볼 날을 손꼽아 기다릴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