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아가는(문화)

궁중음식, 수라상

Gijuzzang Dream 2008. 8. 6. 21:28

 

  

   

 궁중음식, 조선 최고의 맛을 전하다

 

 

 

지금의 세상은 능력이 있어 원하기만 하면

어느 나라 어느 곳에서라도 맛있는 음식을 얼마든지 먹을 수 있는 세상이다.

최고로 맛있는 음식이란, 좋은 재료가 우선이겠지만

맛있는 맛을 알아채는 미각도 있어야 한다.

날 때부터 갖고 태어나는 미각 즉, 절대미각은 자라면서 점차 길러져야 하므로

어떤 환경에서 식생활을 영위하였나가 중요한 요인이 된다.

그리하여 동·서양을 막론하고 왕족이나 귀족 계급사회에서

맛있는 음식은 가장 크게 발전되어 왔다.

 

우리나라도 최고의 맛을 가진 음식이라면 왕들이 먹었던 궁중음식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궁중음식, 궁중요리라고 흔히들 말하는 궁중의 음식, 그 실체는 무엇일까?

실제 궁중음식이라 하면

왕권 중심 국가였던 부족국가부터 삼국, 고려, 조선에 이르는 오천 년의 역사 가운데

왕들이 어진(御進)하셨던 음식을 말하겠지만, 당시에 대한 실물의 보존이나 기록물이 없기에

오늘과 가장 가까운 시대인 조선 왕조의 음식으로 이야기를 풀어 볼까 한다. 




당대 최고의 권력을 가진 임금의 수라상에 대한 편견 그리고 진실

 

옛 음식의 전수는 실물을 만들어 보일 수 있는 전승자나 구전자,

또 그것을 바탕으로 한 기록물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현재의 궁중음식도 이러한 과정을 거쳐 형성되었다.

 

다행히도 조선 왕조의 궁중음식은

마지막 왕조 - 고종, 순종, 윤비(순정효황후)를 모셨던 주방상궁과 궁녀들에 의해 구전되어

전통음식 중 가장 정수로 여기는 자리를 굳건히 차지하고 있다. 

 

흔히들 궁궐 내 왕과 왕족은 모든 면에서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며,

특히 식생활은 이보다 더하여 매일같이 고기음식과 술로 호식하고,

잦은 연회로 유흥만을 일삼았다는 편견을 갖고 있다.

 

그러나 궁중은 실제 백성들과 마찬가지로 끼니때가 되면,

항시 밥을 먹어야 했다. 그것이 곧 수라상으로,

일반사람의 식사보다 음식 가짓수나 상차림 규범만 다를 뿐

그리 유별난 것은 못되었다.

 

제 나라에서 생산된 먹을거리를 각 지역에서 때가 되면 일정하게 궁으로 진상해 와 다양한 재료가 솜씨 있는 이들을 통해, 하나밖에 없는 귀한 분을 위해 만들어지니 찬의 가짓수도 많고 맛도 최고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또한, 왕들의 식사는 조리하는 이가 직접 식단을 짜서 만들기보다는

내의원 의원들의 관리, 감독 하에 만들어져 상에 올리게 되었다.

즉, 궁궐에서는 왕의 건강을 음식으로 우선 보살피는 식의를 두어,

 ‘음식을 우선 잘 먹는 것이 약보다 낫다’라는 원칙으로

식재료의 성질과 독의 여부 분별 등 해박한 의학지식을 통해

임금을 보필하였다.


이밖에도 임금의 식사에 관한 내용은 왕조실록에서 찾을 수 있다.

물론, 왕조실록은 왕의 거동 내지 정치에 대한 내용 일색으로

임금의 일상생활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국가가 전쟁 중이거나 가뭄과 같은 천재지변, 국상 등을 치르게 되면,

왕족들의 식사도 고기음식을 피하고 끼니도 줄이며 음식가짓수도 줄이라는 하교가 내려진다.

그러나 연산군처럼 사치스럽게 살며 육식을 즐기던 이도 있고,

정조처럼 자신의 상차림을 적게 차려 검소함을 보인 왕도 있었다.

 

 

사료로 전해지는 조선 왕조의 식문화, 그 오묘한 이야기

현재의 궁중음식이

1900년 초 마지막 왕조의 실증자들에게 전수받은 것이라면,

그 이전의 궁중음식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것은 바로『의궤(儀軌)』라는 기록물에서 해답을 얻을 수 있다.

 

궁에서는 각종 행사와 길례, 가례, 빈례, 제례 등 의례가 빈번하게 있었고,

의례의 순서에 맞추어 각종 음식을 갖춘 상차림 등을 필수적으로 차리게 되어 있었다.

의궤는 나라에 큰일이 생겼거나 경사스러운 일이 있을 때,

항시 참고로 삼기 위해 일의 논의 과정, 준비 과정, 의식 절차, 진행 상황, 행사 후 포상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그 중 18종이 남아있는 연회의궤에서 궁중음식의 전모를 알 수 있다.

 

연회의궤는 궁중음식을

진찬(進饌), 진연(進宴), 진작(進爵), 수작(授爵)으로 표시하는데,

왕, 왕비, 대왕대비, 세자, 세자빈의 상이 따로 차려지고 의례 순서에 따라 음식상이 달리 올려진다.


뿐만 아니라, 궁중 관련 TV 드라마를 통해 궁중음식의 비법을 적은 요리책이

마치 오랜 세월에 걸쳐 전해져 내려오는 것으로 잘못 알려져 있는데,

실제 의궤 안에는 조리법의 내용은 없고 오직 상차림과 그 안에 드는 음식,

소요되는 재료의 분량만이 나타나 있어 음식 재현의 한계가 있다.

 

궁중음식을 알 수 있는 또 하나의 기록물은

궁중에서 열린 소규모의 접대식이나 제사식 상차림을 두루마리 종이에 적은 음식발기이다.

마찬가지로 조리법은 적혀 있지 않다.

이밖에 궁중음식의 다양함을 행사 일정에 따라 일자별ㆍ신분별로, 하루 일시를 나누어 보여준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가 있다.

1795년,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역에 어머니 혜경궁홍씨를 모시고 가서

회갑 잔치, 과거시험, 군사훈련 실시, 양로연 잔치 등을 한 내용이다.

 

아침상으로 어머니께 올린 내용을 보면,

검정 옷칠을 한 둥근상과 곁상에 은기(銀器), 화기(畵器)를 담아 15그릇을 올렸다.

음식 내용으로는 홍반, 냉이국, 돼지내장과 청어볶음, 은어구이, 민어, 대구자반, 장조림, 꿩포, 숭어전,

양지머리편육, 대구알, 굴젓, 거여목과 승검초나물, 석박지와 갓물김치, 간장, 초장,

그리고 별미로 초계탕, 쏘가리와 갈비구이, 붕어찜이다.

정조가 받은 상은 7가지로 음식 내용은 비슷하나 전, 젓갈, 나물, 별미음식은 제외되어 있다.

 

 

 

현재 알려진 궁중의 수라상 12첩은

일반에서 차리는 9첩의 잘 갖추어진 상에 3첩의 별미음식을 보탠 것이다.

밥, 탕, 조치, 찜, 전골, 김치, 장을 제외한 12가지 반찬은

더운 구이, 찬 구이, 전, 편육, 나물, 생채, 조림, 장아찌, 젓갈, 마른 찬, 회, 수란이다.

이들은 은기에 담겨 붉은 칠을 한 크고 작은 원반과 사각반에 올려지게 된다.

 

오늘날 전해진 12첩의 종류는 언제 것인지 확실치 않으나,

당대 구전하고 재현해 준 한희순 상궁이나 김명길 상궁 등 마지막 궁녀들의 전수받은 내용을

후손들에게 그대로 전해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다만, 조선왕조 500년을 대표하는 상차림은 아니라는 점을 밝힌다.

 

왕이 국가 운영을 잘하여 백성이 살기 좋다면 진상이 제대로 되어

왕의 수라상은 각양각색의 반찬으로 가짓수가 많게 차려짐이 당연하니,

왕은 편안히 식사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즉, 왕은 수라상 하나만으로도 백성들의 생활상을 짐작할 수 있었다고 하겠다.

 

 

절대 미각을 만족시켜라 !
역대 왕들의 기호로 본 궁중음식

 

500년 역사 속의 궁중음식과 왕들의 식성은 알 수 없다 해도

마지막 왕후인 윤비를 낙선재에서 1977년까지 모시며,

왕조의 흔적을 구술해 준 김명길 상궁의『낙선재 주변』이란 책자에서

궁중의 식생활 풍속과 그들이 모셨던 고종과 순종, 윤비의 식성을 알 수 있음은 다행한 일이다.

 

고종은 구한말 파란만장한 풍운을 겪으며 불면증에 시달리게 돼

낮과 밤이 바뀌어 밤을 새는 일이 비일비재해 그때마다 밤참을 반드시 드셨다고 한다.

밤참으로는 겨울에는 설렁탕과 온면, 여름에는 냉면을 좋아하셨으며,

음료로는 사이다와 식혜를 즐기셨다.

고종이 즐겨 드시던 냉면은 배를 많이 넣어 담근 동치미국에

꾸미로는 편육, 배, 잣을 가득하게 덮어 그 맛은 담백하고 달며 시원하였다 전한다.


순종은 효심이 지극하여 아버님 고종의 상중에 고종께서 혼전에 나가

즐겨 드시던 밤 ,사과, 증편 등이 올려 있는지 확인하고 난 뒤 배례를 하셨다고 한다.

한 번은 제물로 올린 사과가 상해 있음을 발견하고, 수랏상을 받지 않으셨다 한다.

 

또한, 낙선재 뒤에는 진간장독 50여 개가 병정처럼 서 있었고,

김완길이라는 상궁이 장고 옆 기와집에서 궁녀 두세 명을 데리고 살며,

간장, 고추장 항아리를 정갈하게 간수하였다고 한다.

음식 종류에 따라 약식, 조리개, 두텁떡을 할 때에는 조청처럼 달고 진한 간장을 써서 맛을 내었다.

특히, 간장에 더욱 신경을 썼던 점은

고종, 순종이 맵고 짠 것을 싫어해 장, 고추장을 많이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 년에 한두 번 된장찌개를 찾으실 때나

‘절미된장조치’를 김연옥 상궁이 신이 나서 만들어 드렸다고 한다.


고종은 다정다감하여 수라를 들면서 주방나인들과 재미있는 말씀을 많이 했지만,

순종은 전혀 말씀이 없으셨다 한다. 또한, 순종은 치아와 위장이 약하여

차돌박이조리개(차돌박이 고기를 푹 삶아 고아 경단처럼 뭉쳐 조린 반찬)과

황볶이탕(쇠고기를 채 썰어 고명하여 볶아 끓인 국)등 아주 무른 것만을 드셨다 한다.

 

수라상에는 흰밥과 붉은 밥을 올렸는데,

이름난 지방에서 진상된 쌀로 작은 곱돌솥에 일인분씩 밥을 지어

그 냄새가 마치 잣죽 끓이는 냄새와 같았다고 한다.

특히, 붉은 밥의 붉은 색은 팥물을 들여 만들었는데,

고종과 순종은 뚜껑조차 안 열어보셨다 하며, 수라를 다 드신 후에는 보리차를 드셨다 한다.
 
우리는 현재 가장 귀한 고급 식문화이자, 가장 몸에 좋은 음식으로 궁중음식을 최고로 여기고 있다.

하지만 먹을거리의 지나친 홍수 속에서 억지로 없는 음식을 찾기보다는

이제부터라도 지금의 시대에 걸맞는 건강음식을 찾아

내 몸에, 내 체질에 맞게, 영양 충만한 식사를 하는 것만이

역대 왕의 절대 음식을 먹는 길이요, 조선 왕조의 삶을 계승해 나가는 길이라 할 수 있겠다.

- 한복려 궁중음식문화연구원장,  중요무형문화재 제38호「조선왕조 궁중음식」전수조교
- 사진 제공 : 궁중음식문화연구원

- 문화재청, 문화재포커스

 

 

 

 

 

- 'Sunset Glow' / 양강석(오카리나 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