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베끼고,수입해서라도 “내 책으로” | |||||||||
‘미암일기’에 수집 경로 상세히 기술… 임진왜란 등 거치며 장서 사라져 아쉬움 |
책모으기에 가장 좋은 방법은? 거저 받는 것이다.
나 역시 명색이 공부를 한다 하여, 학계 선후배에게서 귀중한 연구물을 종종 거저 받는다. 출판사에서도 가끔 책을 보내준다. 이렇게 해서 서재에 쌓인 책이 제법 된다. 하기야 엄밀히 말해 거저는 아니다. 언젠가는 대가를 치러야 할 것들이다.
각설하고 지난 호에서 미암 유희춘이 교서관과 지방의 책판에서 책을 다시 인쇄해 장서를 구축했다고 말한 바 있는데, 그는 이 방법 외에도 다양한 경로로 책을 모으고 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앞서 말했다시피 거저 얻는 것이다.
‘미암일기’에는 선물로 받은 책에 대한 기록이 풍부하게 남아 있다.
(1) 이산(尼山) 김판윤(金判尹) 수문(秀文)의 편지와 ‘강목(綱目)’ 150책이 선물로 왔다. 백 년에 한 번 있을 큰 은혜라 할 만하다.(1567년 11월9일) (2) 김동지(金同知) 홍윤(弘胤)이 ‘의례주소(儀禮註疏)’ 17책을 선물하였다.(1568년 2월16일) (3) 전 찰방(察訪) 권공(權公) 수약(守約)이 ‘문한류선(文翰類選)’ 당본(唐本) 64책, ‘초당두시(草堂杜詩)’ 10책, ‘동래박의(東萊博議)’ 2책을 보내왔다. 큰 선물이다.(1568년 8월18일) (4) 저녁에 병조참의 박군(朴君) 근원(謹元)이 당본 ‘통감(通鑑)’ 9책을 보내왔다. 너무나도 큰 선물이다.(1570년 6월13일)
‘미암일기’에는 이런 대가 없는 책의 기증 사례가 허다하다. 물론 서적을 선물한 사람이 어떻게 해당 서적을 마련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다만 친교가 있는 지방관이 유희춘이 책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자신이 맡고 있는 고을에서 제작한 목판본을 그에게 기증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또 자신에게 필요 없는 책을 유희춘에게 증정하기도 했을 것이다. 이와 같은 기증 방식은 사대부 사회 내부에서 서적을 유통시키는 자연스럽고 보편적인 방법의 하나로 상정할 수 있다.
중개인 통해 책 팔 사람 수소문
한데 기증 역시 유희춘이 서적을 손에 넣었던 방법의 하나일 뿐이다. 기증은 타인의 호의에 기대는 불확실한 방법이다. 따라서 의식적으로 서적을 구입하려 한다면 공짜가 아닌, 즉 일정한 대가를 치르고 구입하는 방법이 가장 유력한 것이다. 다시 말해 매매다.
그는 상당한 양의 책을 매매하고 있다. 책의 매매라면 즉각 서점을 떠올리겠지만, 유희춘의 시대에는 서점이란 것이 없었다. 유희춘의 서적 구입은 개인과 개인 간에 이루어지는 물물교환에 가깝다.
다음 예를 보자.
(1) 교서 저작(著作) 정염(丁焰) 군회(君晦)가 찾아와 함께 ‘예기(禮記)’를 화매(和賣)하여 사는 일과 ‘본초(本草)’의 빠진 권(卷)을 인출(印出)하고, ‘서하집(西河集)’을 인출하는 등의 일을 의논하였다.(1568년 6월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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