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8.08. 547호 (p 82~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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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광과 '지봉유설'] |
우물 안 조선, 세계로 안내하다 |
광범위한 독서와 메모 통해 이룬 수작… 성리학 뛰어넘어 열린 지식의 땅 서양 인식 |
책한 권을 소개하자. 지봉(芝峰) 이수광(李光, 1563~1628)의 ‘지봉유설(芝峰類說)’이다. 중·고등학교에서 암기식 교육을 ‘제대로’ 받은 사람이라면, ‘지봉’ 하면 ‘이수광’, ‘이수광’ 하면 ‘지봉유설’이 절로 떠오를 것이다. 물론 읽어보았을 리는 없을 것이다.
이야기를 편히 하기 위해, 번거롭겠지만 이 책의 목차나마 잠시 훑어보자.
‘지봉유설’은 모두 20권이다. 1권은 천문 · 시령(時令) · 재이(災異), 2권은 지리 · 제국(諸國), 3권은 군도(君道) · 병정(兵政), 4권은 관직, 5권은 유도(儒道) · 경서(經書) 1이다. 6권은 경서 2, 7권은 경서 3 · 문자(文字), 8권-14권은 문장(文章) 1에서 문장 7 까지다. 15권은 인물 · 성행(性行) · 신형(身形), 16권은 언어, 17권은 인사(人事) · 잡사(雜事), 18권은 기예(技藝) · 외도(外道), 19권은 궁실(宮室) · 복용(服用) · 식물(食物), 20권은 훼목(卉木) · 금충(禽蟲)이다.
중세인이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분야를 망라하고 있다. 이 중 8권에서 14권까지 모두 7권, 즉 3분의 1 이상이 문장(문학)이다. 조선이 문인의 나라였던 것을 이런 데서도 확인할 수 있다.
‘지봉유설’ 이전의 한국 역사에서 이와 유사한 저작은 없었다. ‘지봉유설’은 이런 방면의 최초의 저작인 것이다. 이런 까닭에 이 책의 탄생 과정이 너무나도 흥미롭다. 나는 이렇게 상상한다. 독서광들은 책을 읽으면서 메모의 충동을 느낀다. 하지만 다음 내용이 너무 궁금하기 때문에 시간을 낼 수 없다. 또는 대다수의 인간이 그렇듯 게으름을 타고난 탓에 실천은 충동을 따르지 않는다.
하지만 드물게 부지런한 독서가도 있다. 중요 부분을 옮겨 적는가 하면, 요약도 하고 비평을 곁들이기도 한다. 시간이 흐르면 메모는 더미를 이루고, 그 더미는 스스로 질서를 갖는다. 그 질서에는 독서가의 독서 취향이 자연스럽게 반영돼 있다. 어느 날 메모를 뒤적이면, 자연적으로 생겨난 그 질서는 이제 독서가에게 독서와 메모의 방향을 권유한다. 세월이 더 흘러가면 메모는 쌓이고, 산이 된 메모는 자연히 책으로 변신한다. 성실한 독서의 결과는 새로운 저술이 되는 것이다.
나는 ‘지봉유설’이 이런 과정을 거쳤으리라 상상한다. 따라서 ‘지봉유설’은 특별한 책이라고 할 수 없다. 지봉의 독서와 메모의 결과일 뿐이다. 다만 그 독서와 메모는 너무나 광범위하다.
등장인물만 2265명 방대한 내용
이수광은 1614년 52세 때 이 책을 탈고한다. 자신이 작성한 범례에 의하면, 이 책은 3435조목으로 이루어져 있고, 등장하는 인명은 2265명에 달한다. 방대한 내용이 아닐 수 없다. 인용한 서적의 저작자는 무려 348명이다. 생각해보라. 348명의 저작자가 얼마나 거창한 규모인지는 책을 써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 주간동아 - 강명관 부산대 교수 · 한문학 hkmk@pu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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