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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12. 552호 (p 88~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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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운한 천재 허균] |
허균이 성리학의 이단? 천만의 말씀! |
양명좌파 이탁오의 ‘분서’ 인용한 것이 논란의 불씨 … 내용상으론 근거 없어 |
허균은 1614년 봄 중국에 가서 ‘임거만록(林居漫錄)’을 비롯한 문제의 책을 가져왔고, 이듬해 책의 오류를 해결하기 위해 다시 중국에 들어갔다.
이때 구입한 책들은 어떤 책들이었을까? 종계변무(宗系辨誣)에 관련된 책 몇 종은 이름이 밝혀졌지만, 그밖의 책은 어떤 것이었을까?
1614년 허균과 함께 서장관(書狀官)으로 북경에 파견됐던 김중청(金中淸)의 문집에 대단히 흥미로운 기록이 남아 있다.
상사(上使)가 ‘이씨장서(李氏藏書)’ 1부를 구해 신기한 글이라면서 나에게 보여주었다. 그 책은 스스로 제목을 붙인 뒤 전대(前代)의 여러 임금과 신하들을 평가했는데, 그 옳고 그름을 따지고 비평하는 것이 자신의 편견을 따르지 않는 것이 없었다.
순경(荀卿)을 두고는 덕행과 업적으로 보아 유신(儒臣)의 으뜸이라 하고, 우리의 맹성(孟聖, 孟子)을 낮추어 악극(樂克) · 마융(馬融) · 정현(鄭玄)의 반열 아래에 두었다. 명도 선생(明道先生, 程顥)은 겨우 끝자리에 끼어 육구연(陸九淵)과 어깨를 나란히 하였다. 이천(伊川, 程) · 회암(晦庵, 朱子) 두 부자(夫子)는 또 신도가(申屠嘉)의 아래에 있었으며, 소망지(蕭望之)는 행실과 업적을 높이 평가했다. 제 마음대로 올리고 낮추고 조금도 꺼리는 바가 없는지라, 나는 보고 깜짝 놀라 “이런 책은 불태워야 하고, 가까이해서는 안 될 것이오”라고 했다.
며칠 뒤 우연히 ‘경서실용편(經書實用編)’이란 책에 실린 풍기(馮琦)의 학문을 바로잡기를 청하는 상소문을 보았더니 “황상(皇上)께서 지난번에 장급사(張給事)의 말을 받아들이시어, 이지(李贄)가 세상을 속인 죄를 따져 물으시고 그의 책을 모두 불태워버렸다”는 말이 있었다. 이른바 이지란 자는 곧 ‘장서’를 지은 자로, 이학(異學)을 창도하고 그 무리 수천 명을 이끌고 날마다 주자(朱子)를 공격하는 것을 일로 삼은 자다. 그러다가 공론(公論)의 탄핵을 받아 성명(聖明) 아래서 복주(伏罪)되고, 그의 요사스럽고 괴이한 말을 실은 다소의 책 목판을 한꺼번에 깡그리 불살라버렸으니, 아름답도다! 조정에 올바른 임금과 신하가 있음이여.
상사는 곧 허균이다. 허균은 명말(明末)의 거대한 사상가 이지(李贄), 곧 이탁오(李卓吾)의 역사비평서 ‘장서’를 입수하고 감탄해 마지않았던 것이다. 이탁오는 ‘장서’에서 유가(儒家)의 역사의식을 전복한다.
이탁오는 시황제에 대해 천하를 하나로 통일한 ‘천고(千古)의 으뜸가는 제왕’으로 평가했던 것이다. 그는 재래의 역사비평을 전복하는 사유를 통해, 위의 인용에서 보는 바와 같이 맹자와 이정(二程, 程顥와 程를 아울러 이르는 말) · 주자 등 유가의 도통(道統)을 철저히 해체해버린다. 이 전복적 비평은 이탁오 자신의 반유가적(反儒家的) 역사관에 근거한다. 이탁오는 ‘장서’의 ‘장서세기열전총목전론(藏書世紀列傳總目前論)’에서 “삼대(三代) 전은 내가 논할 것이 없다. 삼대 뒤는 한(漢)·당(唐)·송(宋)인데, 중간의 1100여 년 동안 유독 비평이 없었던 것이 어찌 사람들에게 비평이 없었기 때문이겠는가. 모두 공자(孔子)의 비평을 자기 비평의 근거로 삼았기 때문에 비평이 있을 수가 없었던 것”이라고 말한다. 이탁오는 공자의 비평, 곧 유가적 역사관의 기원을 비판하고, 그 역사관의 독재에서 벗어날 것을 과감하게 주문했던 것이다.
- 주간동아 - 강명관 부산대 교수· 한문학 hkmk@pu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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