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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켜(연재자료)

승정원일기 연재 - 18. 대간의 직언은 무죄

Gijuzzang Dream 2007. 11. 3. 17:51

 


 

18. 대간(臺諫)의 직언(直言)은 무죄


 

“전하의 지혜만 쓰기 좋아하면 망국....”

질타 사법권까지 행사


조선시대 대간(臺諫)은 사헌부와 사간원의 관원을 합해서 부르는 명칭이다.

종2품 사헌부 대사헌 이하 정6품 사간원 정언까지가 여기에 해당하였고,

백관을 규찰하며 왕에게 간언(諫言)하는 일이 주임무였다.

그들이 올리는 계사를 대계(臺啓)라 하는데 궐내 승정원 옆의 대청(臺廳)에서 결정하여 진계하였다.

내용은 시정(時政)에 관련된 사안을 망라하였고

지방 관리부터 조정 대신, 왕이 모두 논의의 대상이었다.

‘이목지신(耳目之臣)’으로 불리는 대간은 그 위상이 시대별로 차이는 있었으나

조선조에는 시종 정치의 중심축을 이루고 있었다.


승정원일기에는 기일(忌日), 대제(大祭), 그에 따른 재계일(齋戒日)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일자에 대계가 실려 있다.

 

일기 인조 3년 7월에 왕과 대간이 대립한 사건이 나오는데, 당시 대간의 위상을 가늠해볼 만하다.


인조가 광해군을 폐출하고 왕위에 오른 지 3년,

동궁 소현세자의 정비(正妃) 간택을 위해 금혼령과 함께 처녀단자를 올리라는 왕명이 전국에

내려졌다. 한성부가 서울과 지방의 단자를 수합하여 조정에 올렸는데,

윤의립의 딸이 단자에 들어 있는 것이 문제의 발단이었다.

윤의립은 전해에 일어난 이괄의 난에 역적으로 처형된 윤인발의 숙부뻘이었다.

7월28일 조강(朝講) 석상에서 사간원 사간 이성급이 윤의립의 딸을 단자에서 뺄 것을 주청하자,

왕은 대간이 남에게 사주받은 것이라며 계청을 일축하였다.

이에 이성급은 바로 사직을 청했고 왕은 이성급이 불경스럽게 대든 것이 괘씸하여

결국 삭직하라는 명을 내리기에 이르렀다. 일이 커지자 승정원이 중재에 들어갔다.


“대간은 간언을 하는 것이 직임입니다.

그래서 이 관직에 있는 자는 침묵한 채 구차하게 용납받는 것이 충성을 하는 것이 아니고,

과감히 직언(直言)하여 거리낌이 없는 것이 바로 참으로 임금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중략)

천둥과 벼락이 치면 꺾이지 않는 것이 아무것도 없으니, 이토록 엄하게 견책하시면

앞으로는 대간으로 있는 자가 전하를 위하여 하고 싶은 말을 숨김없이 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왕이 뜻을 굽히지 않자 이후 매일 대간들이 삭직의 명을 환수하라는 계사를 올리기 시작했고

홍문관도 동참하기에 이르렀다. 급기야 주강에 입시한 대신들까지 대간을 두둔하고 나섰다.

마침내 우의정 신흠까지 나서 왕을 회유하였고, 결국 8일째 되던 날 왕은 삭직의 명을 거두게 된다.

 

 


인조가 “그대들은 대관(臺官)의 기를 꺾으며 욕보이는 것이 잘못이라는 것만 알고

군주의 기를 꺾으며 욕보이는 것이 중죄가 됨을 모르는 것”이라고 분통해하자,

대간들은 “명색이 간관(諫官)인데, 그 말이 합당하면 흔쾌히 받아들여 널리 시행하면 되고,

그 말이 부당하더라도 또한 관대하게 용서하면 되는데,

어찌 대번에 견책을 가하여 그의 기상을 꺾어 버린단 말입니까”라고 응수하며 왕을 질타하였다.

역린(逆鱗: 왕의 심기)을 건드리면서 직언을 하는 것은 왕권중심 체제에서 신민들이 가장 꺼리고

두려워할 일이었지만 대간은 비린지언(批鱗之言)도 용납된 자리였다.


대간은 또한‘집법지신(執法之臣)’이라고도 한다. 대간의 간언이 단순히 언론에 그치지 않고 왕권까지 견제하며 사법권을 행사하고 정치적 효력을 발휘하던 시대, 직언은 어디까지 할 수 있었을까? 인조 4년 대사헌 정경세 등이 올린 계사는 그 한도를 보여준다.


"처음에는 청명(淸明)하시어 모든 일을 잘 강구하시더니 고작 수년도 지나지 않아 점점 끝을 맺지

못하십니다. 옛날부터 국가가 망하는 데는 그 길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간언(諫言)을 막고 자기 지혜를 쓰기 좋아하면 재앙을 받는 것이 더욱 혹독하였습니다.

전하께서는 전고(前古)를 두루 보셨으니 어찌 이에 대해서 모르시겠습니까.

그러나 간언을 듣기 싫어하시는 병통이 갈수록 심해지시니 신들이 본래 이렇게 되신 이유를 압니다.

영명한 성상의 자질은 전대(前代)보다 뛰어나시어 신하들을 굽어보시고

모두 자신보다 못하다고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 오세옥/ 민족문화추진회 전문위원

- 경향, 2006년 12월25일

 

 

**** 이상 1회- 18회까지의 <승정원일기를 읽는다> 시리즈는

     국사편찬위원회, 민족문화추진회 공동기획/ 경향신문 연재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