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작환(繳還)기능
"중죄인을 풀어주라는 조치를 거두소서"
왕명을 돌려보내는 막강권한
승정원에서 아뢰기를, “신들이 조금 전에 의금부의 초기에 비답하신 것을 보니 유동환 등을 풀어주라는 명이 있었습니다. 이 죄인들은 크나큰 죄를 범한 자들인데 유배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곧바로 풀어주라고 하신 것은 천만 뜻밖의 조치입니다. 신들이 왕명을 출납하는 소임을 맡고 있는지라 감히 이를 작환(繳還)합니다. 삼가 바라건대 재차 숙고하시어 내리신 명을 거두소서”하였다.
사림 세력이 중앙 정계에 진출하여 공론 정치를 주도해감에 따라 그들의 정치적 지향에 맞춰 승정원은 언론 기능이 강화되었다. 이 과정에서 위와 같은 승정원의 ‘작환(繳還)’기능이 정착하고 관행화되었다. 작환(繳還)이란 임금의 전교나 비답, 비망기 등을 봉행할 수 없다고 되돌려 보내는 것을 말한다.
승지들이 해야할 일을 적어놓은 ‘은대편고(殷臺便攷)'
임금의 지시를 취소하기를 청하는 것은 승정원만이 하는 것은 아니지만 승정원에서 행하는 작환은 왕명의 시행 보류가 아니라 아예 반포를 하지 않고 되돌리는 것이기 때문에 그만큼 강력한 기능이었다. 이 기능이 관행화되자 국왕은 임금과 신하 간의 분의가 해이해진 것이고 권력이 아래에 있는 것이라 여겨 승지들이 왕명을 되돌리는 데 화를 내는 일이 많았다.
영조 48년(1772년) 5월11일에 대간이 언관에 대한 영조의 처분이 지나쳤다는 내용으로 소장을 올리자 영조는 격노하여 그를 향리로 내쫓으라고 명하였다. 영조는 이어 비가 내리지 않는 것이 자신의 부덕 때문이라고 하면서 “문을 닫고 잘못을 반성한다(두문생건, 杜門省愆)”는 네 글자를 궁문에 붙이도록 지시를 내렸다. 그러나 이 때 승정원의 승지들이 이 지시를 되돌려 보냈다. 그러자 영조는 더욱 노하여 “임금이 내린 명령인데도 이렇게 되돌렸으니 오늘날 조선이 승지의 조선이란 말이냐”라고 하면서 작환한 승지를 청주로 내치라고 명을 내리기도 하였다.
작환이 관행화되자 승정원은 국왕과 충돌했을 뿐만 아니라 대간들의 비난을 받는 일도 잦았다. “어제 옥당의 상소를 도로 내주라고 명하신 것은 실로 전에 없던 지나친 조치였으니 왕명의 출납을 맡은 부서에서 마땅히 전교를 되돌려 보냈어야 하는데도 승정원의 신하들은 으레 하듯 명을 받들기만 하고 감히 되돌리지 않았습니다. 신은 그날 해당 승지들을 경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영조 3년 2월4일에 지평 김수석이 임금의 잘못된 조치를 되돌리지 않고 그대로 봉행한 승지를 비난한 상소이다. 이 소장이 올라오자 도승지 이하 승지 전원은 자신들의 잘못을 시인하고 체직해 줄 것을 청하는 소장을 올렸다.
승지들은 왕명의 출납을 미덥게 하는 것을 자신들의 소임으로 여겼다. 그래서 국왕의 온당치 않은 지시에 대해서는 되돌림으로써 국왕이 잘못을 범하는 일이 없게 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런데 조선 중기 이후로 당론 정치가 두드러지면서 왕명의 온당함에 대한 판단도 당파적 이해에 종속되는 경우가 많았다.
영조 7년 4월10일에 사간원과 사헌부에서 영조 4년의 역란이 역적 유봉휘로부터 야기된 것이라고 하여 그의 관작을 추탈할 것을 청하였다. 이 때 영조는 오래 전 일을 제기하여 임금의 마음을 떠보고 조정을 어지럽히려 한다고 여겨 두 대간의 관직을 삭탈하고 서울 밖으로 내쫓으라고 명한 일이 있었다. 다음날 사간 서명구가 승정원이 곧바로 이러한 처분을 되돌려야 함에도 수수방관만 했다고 비난하는 상소를 올렸다. 좌승지는 영조의 명은 중도를 지나친 처분이므로 즉시 되돌려 취소하기를 청해야 했다고 하면서 그러지 못한 자신을 체직해 줄 것을 청하였다. 그러나 도승지와 우승지는 문제를 원만히 마무리하려는 온당한 처분이므로 애당초 되돌릴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였다.
어느 제도이든 거기에는 당대의 가치와 사상이 담기게 마련이다. 그래서 어떤 제도의 변천 과정과 실상을 확인하다 보면 당대를 바로 볼 수 있는 창을 하나 얻을 수 있다. 승정원일기는 매일의 정사를 기록한 방대한 자료인 만큼 이런 창이 무수히 독자를 기다리고 있다고 하겠다.
- 오재환/ 민족문화추진회 전문위원
- 경향, 2006년 11월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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