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린 외교 3,000리길 … 통신사 나가신다 |
정사 부사 등 많을 땐 500명 12차례 일본행 … 죽음 각오할 여행(?) 숭례문에서 긴 여정 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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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지난 6년 동안 한국에 남아 있는 조선의 옛길 10곳을 답사했다. 이제 더 갈 곳이 없어진 상태에서 찾아낸 것이 조선시대 통신사들이 일본으로 향했던 통신사 길.
한국인의 조상들은 일본에 가기 위해 300일 가까운 시간 동안 3000리 길을 걸었다.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 걸으며 한일관계를 새로운 각도에서 조명하는 것, 그것이 한국의 옛길을 사랑하는 일본인인 나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조선 왕조는 기본적으로 쇄국정책을 취하면서도 이웃 나라와의 교류만은 꾸준히 이어 나갔다. 교류 대상국은 중국과 일본인데, 중국에 대한 외교는 ‘사대(事大)’, 일본과의 외교는 ‘교린(交隣)’이었다. 이 교린 외교의 주역이 바로 ‘통신사’다.
통신사(通信使)는 일본의 요청으로 파견하였는데, 말 그대로 국서(왕의 서신)를 일본 장군에게 전달하기 위한 사신으로, 이처럼 통신사의 파견이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은 명, 청 교체라는 국제환경의 변화 속에서 안으로는 내정을 확립하고, 밖으로는 새로운 통교관계의 안정을 모색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 말기까지(1811년, 순조 11) 모두 12차례 파견되었다.
처음 네 번은 임진왜란의 전쟁 중 일본에 잡혀간 포로 송환 협상을 목적으로 했기 때문에
‘회답 겸 쇄환(刷還)사’라고 불렀다.
친선 외교를 위한 ‘통신사’ 교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임진왜란 전후 처리가 다 끝난 뒤부터다.
사신의 목적지는 에도막부(江戶幕府) 장군의 거처인 에도, 지금의 도쿄이다.
조선 왕조는 일본의 명목상 군주인 천황을 배제하고,
에도막부의 장군을 ‘일본 왕’이라고 부르며 정식 외교 대상자로 삼았다.
통신사행은 선린우호를 상징하는 외교사행으로 이조참의에 해당하는 정사(正使)를 비롯하여 400-500명의 규모로 구성되었으며, 체재 기간은 6-12개월 정도였다. 대마도에서 에도(江戶, 지금의 도쿄)까지 가는 통신사의 행렬 규모는 통신사절단을 비롯하여 이를 수행하는 쓰시마번서(對馬藩士), 그리고 접대를 맡은 지방의 번사(藩使)까지 합하면 2,000여 명 이상이나 되었다.
통신사 일행은 바쿠후쇼군(幕府將軍)에게 조선 국왕의 국서(國書)를 전달하고 각지의 일본인들과 주자학, 문학, 의학, 미술 등 각 분야에서 활발한 문화교류를 하였다. 통신사 파견을 바탕으로 적어도 1876년(고종 13) 개항 이전까지는 양국 간에 신뢰를 바탕으로 한 교린(交隣)관계가 유지될 수 있었다.
천왕 배제 에도막부와 대면
사신은 정사(정3품 이상) · 부사(정3품) · 종사관(5, 6품) 등 3명으로 구성되었고, 거기에 제술관(기록원) · 역관 · 화가 · 의사 · 사자관(서예 담당) 등 임무 수행이나 문화 교류를 위한 많은 인원이 더해져 많을 때는 무려 500명의 대행렬을 이루었다.
이제부터 내가 따라 걸으려는 길은 바로 통신사 행렬이 일본 도쿄로 향한 길이다.
옛길 걷기의 진정한 재미는 막상 길을 걷는 것보다 자료를 뒤지며 길을 알아내는 데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옛길을 하나하나 찾아내는 것은 흥미진진하다. 나도 길을 걷기에 앞서 우선 한국 내 행로를 알기 위해 조선 자료들을, 일본의 길을 알기 위해 일본 문헌을 찾아 뒤졌다.
<증정교린지(增訂交隣志)> 등 조선시대의 일본 외교 길잡이 책을 보면 ‘노문식(路文式)’이라는 꼭지에 통신사 길에 대한 언급이 있다. ‘노문’이란 통신사가 가는 경로를 적은 여행 일정표 겸 통행증. 통신사 지나가는 길 중간의 마을 수령들은 노문을 보고 사신을 위한 접대 준비를 했으며, 역(驛)에서는 말이나 마부를 마련했다고 한다. ‘노문식’은 관례적으로 통신사가 가는 길을 명시한, 말하자면 ‘관습법’이었다.
남쪽으로 내려가기에 앞서 마지막으로 한 일은 지금의 서울역 맞은편에 있던 남묘(南廟)를 참배하는 것. 남묘는 청계천가에 있는 동묘와 마찬가지로 중국 촉(蜀)나라 용장 관우를 모신 사당인데, 통신사들은 혼자 천 리를 주파한 관우에게 절하며 앞길의 안녕을 기린 것이다.
나도 통신사들이 서울을 떠나며 숙배를 올렸던 창경궁을 찾아 길의 시작을 다짐했다. 가을 단풍과 궁궐의 단청색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 창경궁에서부터 나의 여정도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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