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有生必有死, 而形與心俱滅, 此儒者之言而理之常也. 佛者曰形滅而心不滅, 仙者曰形與心俱不滅, 二者雖非理之常, 世之好怪者, 或信焉. 寫眞者之言, 又曰心滅而形不滅, 其爲說尤神. 然吾謂寫眞者極其藝, 則耳目若視聽焉, 口若言焉, 毛髮若動焉. 使百世之下如見其爲人, 其於道亦可謂奪造化之竗, 而與仙佛者參矣.
雖然心滅而形不滅, 果何益於其人, 亦何補於後世哉! 今又有人焉, 宗儒者而統仙佛以爲道, 若是者其可謂道乎! 其言曰, 儒者曰形與心俱滅, 固理之常也, 然形與心旣滅矣, 使後世之人何以知堯舜之爲聖·桀?之爲狂乎? 於是乎記言記事之學作焉, 言與事傳而其心傳, 形或附而傳焉, 若書之二典三謨, 非所謂形滅而心不滅者乎? 鄕黨非所謂形與心俱不滅者乎? 若是者非所謂宗儒者而統仙佛以爲道乎?
君子之所貴者, 在心不在形, 其心旣傳於後世歟? 其形傳之可也, 不傳之亦可也. 其心無可傳於後世耶? 其形固不能獨傳也. 故寫眞者之道, 惟寫眞者專之, 君子不由也.
湖南人朴善行, 以寫眞名於京師, 請爲余寫眞. 余笑而謝曰, “使吾形可傳, 雖微子, 必將有形之者矣. 吾何待於子?” 於其歸也, 聊爲序以贈之.
<해설>
이 글은 정조의 사부이자 당대의 저명한 문인인 남유용(1698~1773)이
박선행이란 초상화가에게 써준 글이다.
자신의 초상화를 그려주겠다는 호의를 정중하게 거절하고서 거절한 이유를 설명하여 그에게 주었다.
이 글에서 언급한 사진(寫眞)은 옛날의 진영(眞影) 곧 초상화를 가리킨다.
카메라로 인물의 생생한 모습을 기록하는 현대의 사진과 글자가 같다.
지난날의 사진과 현대의 사진은 이름이 같은 만큼 유사한 점이 있다.
자신의 얼굴 모습을 생생하게 재현하여 대상화하려는 의도를 가졌다는 점에서 그렇다.
남유용은 일백 세대 뒤의 사람이라도 그 사람을 직접 본 듯 느끼게 만드는 초상화의 위력과,
초상화가의 능력을 먼저 치켜세웠다.
인물의 형상을 후세에 남기는 능력 때문에
불교나 선도와도 견줄 수 있는 도를 지닌 기예라고 평가했다.
초상화의 가치를 이렇게까지 인정한 것은 의외다.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한 핵심은 삶과 죽음에 따른 마음과 형체의 변화이다.
살아있을 때에는 마음과 형체가 모두 존재하지만 죽음과 함께 마음과 형체는 사라진다.
유불선(儒佛仙)의 차이에 따라 죽음 뒤의 인간을 보는 견해가 다르다.
유가는 죽음과 더불어 인간의 마음도 형체도 사라진다고 보았다. 그것이 떳떳한 이치라는 것이다.
초상화를 그리는 사람은 그런 생각을 한편으로 인정하면서도,
인류의 귀감이 되는 훌륭한 사람은 그 마음과 형체를 보존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으며,
이에 따라 마음을 보존하는 글과 형체를 보존하는 초상화의 필요성을 제기하였다.
후세에 전할 만한 가치가 있는 마음의 소유자는
초상화를 그려 그의 형체를 후세에 남겨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초상화가의 주장에 대해 남유용은
후세에 전할 만한 가치가 있는 마음을 소유한 존재라면 형체는 자연스럽게 전해질 것이므로
본인이 초상화를 그리려 애쓸 필요가 없다고 하면서, 초상화 그리기를 거부하였다.
이 글은 초상화를 그리는 문제를 놓고 철학적 차원에서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
남유용은 유교를 신봉하는 자의 입장에서 바라본 사진론을 제시하고 있다.
그가 이 글을 쓰던 시대는 아무나 초상화를 그릴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다.
위대한 성취를 거둔 사람만이 자신의 얼굴 모습을 그림으로 남길 수 있었던 시대였다.
그런 이유로 해서 초상화에 매우 무거운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초상화는 이 시대에 와서 사진으로 대체되었다.
더구나 과학기술의 발달로 누구나 자유자재로 자신의 인물사진을 남길 수 있게 되었다.
지금 사람들의 눈에는 남유용의 논리가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그의 생각이 다소 지나친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용모를 남기고 싶어하는 인간의 근원적인 욕망에 대해서 한번쯤은 생각해 보게 하는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