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을 보는 눈’ |
중국 도공 스카우트 '고려청자'로 꽃피웠다 |
1. 고려청자와 상감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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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1월 1일부터 연말까지 매주 월요일 오후 5시 정부대전청사 후생동 대강당에서 열리는 유홍준 문화재청장의 특설강좌 ‘문화유산을 보는 눈’을 매주 목요일 문화면에 지상중계합니다.
문화재청 직원과 대전시민, 정부대전청사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모두 8차례 계속될 이번 강좌는 첫 강좌에서부터 대전뿐 아니라 전국에서 모인 800여명의 청중들로 성황을 이뤘습니다. 잘 알려진대로 유청장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등의 베스트셀러가 된 저작을 통해 국토 곳곳에 흩어져 있는 문화유산의 가치와 중요성을 일깨워준 바 있습니다. 지상중계 ‘문화유산을 보는 눈’은 한국문화재를 대하는 대중의 문화감각을 한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 유청장 특유의 다채로운 시각과 입담을 담아 한국 문화유산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전하게 될 것입니다. |
중국 도공 스카우트 '고려청자'로 꽃피웠다
지금 우리가 미술품으로 얘기하는 고려청자는
흙을 빚고 유약을 발라 섭씨 1300도가 넘는 불에서 구워낸 자기입니다.
인간이 만든 밥그릇 중 아직 자기를 능가할만한 좋은 것을 못만들어냈습니다.
나무와 금속기, 유리, 알루미늄, 플라스틱 등 여러가지로 만들어봤지만
아직 세라믹보다 사용하기 좋고 위생적인 게 없습니다.
잘 깨져 계속 만들어 낼 수 있는 것도 자기의 상품적인 가치입니다.
그런데, 청자의 빛깔을 내는 것이 1000년 전에는 고난도의 기술이었습니다.
중국사람들이 약 1500년 동안 연구 노력한 결과로 나온 게 청자입니다.
중국도 AD 3~4세기 월주가마(越州窯)에서 나온 누런빛 나는 초기 청자에 이어
9세기가 넘어서야 완벽한 청자를 만들어냅니다.
중국사람들이 청자를 완벽하게 만들어 낸 다음 고려사람들이 그것을 계속 역추적해
11세기 고려청자를 만들어냈습니다.
중국 청자는 12세기 송나라 휘종황제 때 전성기를 맞는데, 우리도 12세기 인종 때 피크를 달립니다.
중국 사람들이 1500년동안 연구노력 끝에 만들어낸 결과를
우리는 역추적해 200년만에 따라잡은 것입니다.
기원 후 1000년부터 1600년 사이 600년동안 전세계에서 자기를 만든 나라는
중국과 한국 밖에 없습니다. 일본도 못만들었고 베트남의 경우, 안남(安南)자기란 것이 있는데,
이는 15세기 청화백자로 질이 떨어집니다.
유럽에선 '차이나(China)'란 단어가 중국이라는 뜻과 함께 자기를 의미하듯
중국에서 수입해 쓰다가 18세기에 처음 자기를 만들었으며
일본도 임진왜란 때 우리 도공을 데리고 가 17세기부터 백자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렇다면 왜 청자일까요.
도자기는 운명적으로 청자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령 백제토기 가마에 토기를 집어넣고 장작을 때면 재가 날려 태토 위에 얹히게 됩니다.
온도가 1100도로 올라가면 재가 태토 속의 광물질과 화학반응을 일으켜 허옇게 더께가 끼고,
다시 1200~1300도로 올라가면 잿물과 태토가 결합해 반짝이는 유리질(glaze)화 현상이 나타나는데,
이게 자연유(自然釉)입니다.
중국사람들이 잿물을 가지고 계속 실험해 유리질 현상을 발전시켜 나온 것이
3~4세기 월주가마청자입니다. 누런빛이 나지만 황자(黃磁)라고 부르지 않고 청자라고 부른 것은
운명적으로 청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화학적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모두 중학교 때 물상시간에
산화제2철의 황변(黃變)현상과 산화제1철의 녹변(綠變)현상에 대해 배운 적이 있을 겁니다.
청자의 비밀은 흙 속에 들어 있는 미량의 철분이 불의 작용에 어떻게 변화하느냐에 있습니다.
원소기호로 Fe인 철분이 산소와 같이 결합해 Fe2O3의 단계에 있는 것을 산화제2철이라고 하는데
이 단계에서 구워지면 황자라고 말하고 싶은 누런색을 띱니다.
이 단계에서 가마의 불구멍을 막고 불을 계속 지피면
흙 속의 산소를 빼앗겨 Fe2O3가 산화제1철(FeO)로 환원되는 데
바로 이 때 초록빛으로 변하는 녹변현상이 나타납니다.
1350도를 24시간 유지시켜줘야 녹변현상을 일으킬 수 있으니 굉장히 어려운 기술입니다.
중국에서도 9~10세기 제대로 색깔이 난 월주가마의 청자와 구별해
누런빛 나는 청자를 고월자(古越磁)라 부릅니다.
중국 북방에선 올리브빛이 나는 등 청자의 색깔이 다양해 보이지만,
청자의 기본적인 색깔은 파란빛(blue)의 청색이 아닌 초록빛(green) 나는 청색입니다.
고려에서 청자를 본격적으로 만들기 시작한 10세기 후반
대표적인 청자가 993년 제작된 '순화 4년명 청자항아리'입니다.
고려 태조의 묘실 제1실에서 사용하는 항아리로 최길회(崔吉會)가 만들었다는 기록이
항아리 밑바닥에 쓰여 있습니다.
이 기록으로 최길회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이름이 알려진 도공이 됐습니다.
그런데, 이것도 색깔이 노랗고 유약은 완전히 용해되지 않아 줄줄 흘러내려 있는 등
청자로 보기 어렵지만 청자로 불러줍니다.
993년 수준에서는 굉장히 발달한 청자였기 때문에 고려 태조의 사당에서 사용했던 것입니다.
해주와 고양, 인천, 시흥, 용인 등 당시 수도인 개성 주변과 전남 강진 및 전북 고창 등 서해안에서
각각 청자를 만들려고 경쟁했는데, 결국 강진 용운리가마의 승리로 귀결됩니다.
강진에는 지금까지 알려진 가마만 250여 개에 달합니다.
12세기 중엽 전북 부안 유천리가마에서 상감청자가 제작되는데,
이후 고려 명품은 강진 용운리, 사당리와 부안 유천리에서 만들어졌습니다.
강진 용운리 10-1호 청자가마(康津郡 龍雲里 10-1號 靑磁窯)
: 전라남도 강진군 대구면 일대(全羅南道 康津郡 大口面 一帶)는
고려시대(高麗時代) 청자제작의 중심지 가운데 하나이다.
이 곳에 복원된 가마(窯)는 대구면 용운리발굴조사(發掘調査)에서 발견된 10-1호 가마이다.
이 가마는 굴뚝 부분이 파괴되어 남아 있지 않으나 불을 때는 봉통부분과 가마벽(窯壁)
그리고 불창구멍 등이 남아 있어 청자가마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이 가마는 고려전기에 운영된 것으로 보이며 초기청자가 제작되었다.
요즘 가스가마와 달리 당시 가마의 성공율은 20%도 안됐으며
청자 가마터에서 보이는 10~15m 되는 퇴적층을 통해 실패작이 얼마나 많았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초기청자는 밑에 해무리굽을 한 대접(찻잔)이 중심을 이루는데,
이 해무리굽은 11세기 중국 월주가마에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고려청자의 기원과 관련,
신라토기에서 자체 발전해 9세기에 청자가 만들어졌다는 애국적인 해석에서부터
당나라가 망하고 5대10국의 혼란기 때 월주 도공이 피난와 기술을 전해줬다는 설 등
다양한 주장이 있지만
제가 수긍하는 설은 초기 청자의 기법과 문양이 월주가마의 것과 유사점이 많은 것으로 보아
월주의 중국 도공을 스카우트해오지 않았을까 하는 겁니다.
12세기가 되면 비로소 제대로 된 청자가 만들어집니다.
청자하면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를 거쳐 현재 박물관에 수장된 전세품(傳世品)으로 생각하는데
그런 청자는 없고 모두 근, 현대에 들어와 무덤이나 바다 속에서 발굴하거나 건져낸 것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저승 갈 적에 청자그릇 하나라도 무덤 속에 넣어주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저승에 가 부처님을 만났을 때 그 분께 차 한잔 공양할 찻잔을 만들어 넣어준 것이지요.
조상들의 이 고마운 풍습 덕분에 고려청자의 세계를 뒤늦게나마 알게 된 것입니다.
사실 1350년쯤 청자가 사라지고 분청사기와 백자가 사용되고 이어 조선시대가 시작되면서
청자라는 단어조차 잊어지고 일부 지식인들만 존재를 알았을 뿐입니다.
그러다가 1905년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고 경의선 서울~개성 구간을 건설할 당시
고려 무덤에서 청자가 나오면서 다시 세상에 알려지게 됐습니다.
한 농민이 진상한 청자그릇을 처음 본 고종황제가
"세상에 이렇게 파란 그릇이 있느냐? 이게 어느 나라 사람이 만들었느냐? 뭐라고 부르느냐?"고
했다는 일화가 이를 입증합니다.
(왼쪽) 창공에 새털구름과 학이 가득한 모습을 디자인한 청자상감 운학문 매병, 높이 42cm,
42개의 동그라미 원창을 만들어 원창 안의 학은 위로 향하고 원창 밖의 학은 모두 아래쪽을 향하게
해 다양한 가운데 일정한 질서를 부여한 상감청자 중 최고 명품이다.
(오른쪽) 고려 인종 무덤인 경기도 장단의 장릉(長陵)에서 발견된 ‘청자 참외모양 꽃병’. 높이 22.8cm.
고려청자 최전성기 때의 유물로 꽃잎모양의 입, 참외모양의 몸체,
화판(花瓣)을 직선으로 디자인한 굽이 조하를 이룬 명품이다.
특히 목을 성큼 길게 뽑아 유물다운 기품을 뽐내고 있다.
고려청자를 소개하는 어떤 책이든지 간에 제1장, 제1절, 첫 페이지에 소개되는 것은
1146년 세상을 떠난 인종의 무덤인 장릉에서 출토된 '청자 참외모양 꽃병'입니다.
도자기를 보는 아름다움은 3가지로 형태미와 빛깔, 문양을 듭니다.
화려하다, 야무지다 등의 감정을 주는 형태미와 피부(때깔)가 고와야 제대로 살아나는 빛깔,
문양이 그것입니다.
이 꽃병은 임금을 위한 꽃병인 만큼 궁중문화가 가질 수 있는 권위가 들어있습니다.
이 청자는 목이 좀 길다는 느낌을 받는데 이렇게 목을 잡아 뺀 과장은
왕이 가질 수 있는 권위를 보여줍니다.
12세기 고려청자는 음각이나 양각 무늬를 넣는 문양효과가 신통치 않자
복숭아, 참외, 거북이, 오리, 표주박, 죽순, 대마디 무늬 등 조각적으로 발전한
다양한 형태의 상형(象形)청자가 많이 만들어진 것이 특징입니다.
일본 오사카 시립 동양도자미술관의 '청자상감 죽학무늬 매병'이나
야마토분카칸(大和文華館)의 '청자흑유 표주박 모양 병',
미국 프리어갤러리의 '청자 음각 연꽃무늬 표주박모양 주전자' 등
12세기 전성기 때 고려청자는 멋진 젊은 여인의 몸매에 비유할 때 설명이 잘 들어맞는 경우가 많습니다.
고려청자 중 가장 양이 많은 것은 찻잔인데 기록은 없지만 차문화가 번성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쨌든 고려청자는 1123년, 고려 인종 원년에 송나라 휘종황제가 보낸 사신으로 왔다가
이듬해 돌아가 <선화봉사 고려도경>이란 책을 남긴 서긍(徐兢)이
비색(翡色)을 내는 고려청자를 송나라 휘종황제가 만든 관요(官窯)인 여요(汝窯)의 청자와 비슷하다고
평가할 정도로 국제적으로 인정받았습니다.
송나라의 태평노인도 <수중금(袖中錦)>이란 저서에서 '고려 비색이 천하제일이다'고 했습니다.
너무도 귀하고 아름다워 궁중에서만 사용되는 비밀스러운 색깔이란 뜻을 가진
중국 월주의 '비색(秘色)'과 달리 우리는 비취색 '비(翡)'자를 쓴 것이 다른 점입니다.
청자를 버리고 곧 청백자(靑白磁)의 길로 간 중국에 비해,
고려사람들은 청동그릇에 홈을 파고 은실을 밀어넣어 무늬를 그린 '청동 은입사'나
나무에 조개껍데기를 박아넣고 옻칠을 한 '나전칠기' 기법에서 영감을 얻어
상감(象嵌)청자를 만들게 됩니다.
양각이나 음각이 아니라 문양을 새겨넣는 상감청자중 가장 오래된 것은
1159년에 죽은 문공유(文公裕)의 무덤에서 출토된 것으로 전해지는
'청자상감 보상당초무늬 대접'입니다.
상감청자와 분청사기는 중국에는 없는 우리가 이룩한 위대한 발명입니다.
늦어도 13세기 초 상감청자의 시대로 들어선 뒤에는 고려청자의 90%가 상감청자로 만들어집니다.
연꽃과 연판, 연당초, 모란꽃, 모란당초, 국화꽃, 국화당초, 국화 절지(折枝), 봉황, 학, 구름, 운학(雲鶴),
버드나무와 물새를 그린 포류수금(蒲柳水禽) 등 고려인들의 서정을 읽을 수 있는 다양한 무늬가
상감청자의 문양으로 나타납니다.
상감청자의 최고 명품으로 손꼽히는 것은 '청자상감 운학무늬 매병'입니다.
'꽃병이냐 술병이냐'로 한국꽃꽂이협회와 한국주류협회 사이에 논쟁까지 벌어졌던 청자 매병(梅甁)을
푸른 하늘로 생각하고 거기에 새털구름과 학으로 가득찬 모습을 문양으로 담은 것입니다.
상감청자로 발전할 때 갈색이 나타나는 철유(鐵釉),
검은색이 나타나는 흑유(黑釉),
백자, 산화동을 사용한 붉은 무늬의 동화(銅畵)청자도 함께 만들어져 고려청자의 다양성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양식도 생성과 발전, 쇠퇴의 길을 걷듯이
고려청자도 14세기에 들어와 원나라의 간섭을 받는 동안 서서히 쇠락의 길을 걷게 됩니다.
실용성은 강화됐지만 기형이 무디고 둔중해지며, 빛깔은 탁해지고, 무늬도 소략해집니다.
특히 1350년 무렵 왜구가 쳐들어오자
고려정부가 해안에서 50리 이내에 백성들이 살지 못하도록 하자
강진가마와 부안가마가 문을 닫게 됩니다.
결국 청자를 만들던 도공들은 전국으로 다 흩어져버리고 고려청자의 시대도 막을 내리게 됩니다.
- 정리〓 문화일보, 최영창기자
- 문화일보, 2004/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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