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의진의 <아침편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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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한채, 방 한칸 | |||
봄바람, 봄비에 봄눈, 오늘은 봄햇살. 볕 좋은 곳에 자리를 깔고 점심때까지 뒹굴며 보냈다. 여독에 몸살기운까지 겹쳐 며칠 끙끙 앓다가 간신히 추슬러 낸 몸이다.
지난주는 노래를 불러 달라는 곳이 있어 남쪽나라에 잠깐 다녀왔다. 팔자가 기구하고 잡다하여 언제부터인가 노래를 짓고 노래를 부르며 살고 있다. 집시들의 악기 우쿨렐레 기타를 둘러메고 공항에 내렸다. 친구 작업실이 있어 10여 일 그곳에 짐을 부렸다. 오래되고 낡은 목조 건물이라 춥고 쿰쿰하다. 겨울엔 처음 방문이어서 유독 내 양지바른 집이 그리웠다. 반가운 친구들과 재회하고, 즐거운 시간들을 보냈으나 침낭에 누워 잠을 청할 때는 어김없이 장작불로 데운 후끈한 아랫목 생각이 간절하였다. 김치를 한 움큼 꺼내 칼로 썰지도 않고 찢어 먹었다. 난로에서 끓은 물로 차를 우려 마시고, 여행 중에 사온 책들을 구경하다 졸기도 한다.
역시 우리 집이, 내 나라가 최고야. 집 한채, 방 한칸 없는 사람들의 설움을 정말 알 것 같다. 수십년 타향살이의 서글픔까지도, 아주 조금은. |
- 2008년 02월 27일
꼬부랑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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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작시롭게 비찌락질(비질)을 해불드랑게요.” 요즘 정치판에 대해 한마디씩. “아조 세종대왕 뿌렁구를 뽑아부는 수준이듬마. 여그가 워디 엘에이땅이여. 나랏말쌈을 가지고 지앙부리믄(말썽 일으키면) 안되재.” 낫놓고 기역자는 알아도 빨래집게를 에이자로 볼 사람은 없는 요쪽 동네는, 영어하고 생전 담쌓은 동네다. 그냥 우리는 이렇게 살다 죽을 것이다. 가끔 내 거처에 외국인 친구들도 놀러오는데, 한번은 마을에 사진찍으러 내려갔다가 꼬부랑 할매들에게 ‘만짐’을 당하고 얼굴이 새빨개져 ‘헬프 미!’ 뛰쳐올라오기도.
만져보니 진짜 금발이더라, 코끼리도 아니고 코가 뭐할라 그렇게 크냐느니…. 처음 보는 금발 총각을 우왁스럽게 만지셨을 일을 생각하면 웃음부터. 헬로우, 땡큐, 빠이빠이 정도면 영어완전정복. 그렇지, 사람은 정으로 만나는 것이지 ‘말빨’로 만나는 것이더냐. 전세계적으로 효성을 다해볼 작정이신가. - 2008년 01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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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주지 않는 삶 | |||||||||
우리 집 당호가 회선재(回仙齋)인데, 문패에다 ‘회선재 임의진’이라고 써두었다.
회선재라는 여자랑 사느냐고, 회씨라는 희귀 성씨도 있느냐고, 그런데 왜 통 보이지 않으시냐며 우체부가 캐묻는다. 나도 그 우렁각시가 어떤 여자인지 궁금하다.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문패에 적힌 이름들을 구경한다. 신문 방송에 나올 일이 절대 없는 인물들. 내 다정한 이웃사촌들, 아마도 내 기억과 글 속에서나 오래오래 등장할 이름들이다. 우리 동네엔 왜 저런 인물 하나 안나왔을까 어르신들이 한마디씩 아쉬워하시는데, 나는 생각이 전혀 다르다.
군홧발로 나라를 말아 잡수신 장군님들을 비롯하여 지체 높으신 정치인들의 그간 정황들을 되돌아보면 낮고 가여운 사람들 괴롭히고 제 식구만 배불리고 거짓말 밥 먹듯 하는, 나쁜 쪽으로 솔선수범이었다. ‘알아주는 삶’이라고 하는 것이 보통 그런 이력이었다. 현수막 하나 만들어 걸어주고 싶은 심정이다. 말주변 없고, 큰 대(大)자 붙은 야망이라곤 전연 없는, 그러나 참말 정직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산촌에 은거하여 ‘알아주지 않는 삶’에 만족해하는 우리네 선한 이웃들이야말로 진짜배기 ‘큰 인물’이 아닐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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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송이 수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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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매화, 홍매화, 산수유와 함께 마당 한 구석 샛노랗고 탐스러운 수선화가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부러울 것 없는 정원에서, 행복한 정원사가 되어 살고 있다.
키 작은 수선화 앞에 쪼그리고 앉아 나르시시즘에 한껏 빠져보기도.
물 속에 비친 자기 모습을 사랑한 나르시스는 결국 물에 빠져 죽고 말았다.
나르시스가 빠진 호숫가 언덕에 핀 꽃을 수선화라 불렀단다.
꽃시장에서 수선화를 몇 뿌리 더 샀다. 내년에는 산밭에서도 수선화를 보려고,
밭두렁 한 쪽에다 수선화를 심었더니 지나는 마을 분마다 나를 삐뚜름 바라보신다.
“이제 가지가지 다 하시는구먼.”
콩이나 심고 호박이나 심지 무슨 꽃이냐는 표정들.
그러나 세상에는 나같은 낭만파 농부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브라더스 포’가 불렀던 ‘일곱 송이 수선화’ 를 따라 부르며,
수선화가 핀 언덕밭으로 모두 모여들리라.
“눈부신 아침 햇살에 산과 들 눈뜰 때, 그 맑은 시냇물 따라 내 마음도 흐르네.
가난한 이 마음을 당신께 드리리. 황금빛 수선화 일곱 송이도.”
- 2008년 03월 26일 글·그림 / 임의진 목사 · 시인
- ‘브라더스 포’가 불렀던 ‘일곱 송이 수선화’
:::::: Brothers Four / "Seven Daffodils(일곱송이 수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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