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일상)

또 다시, 임의진 / 시골편지's (3)

Gijuzzang Dream 2008. 4. 11. 14:16

 

 

 

 임의진의 <아침편지>

 

 

 

마음 씻음
 

봄볕엔 며느리를 내보내고 가을볕엔 딸을 내보낸다는,

우스개 속담이 있단다. 요즘 여긴 얼굴이 검게 탈 만큼 따가운 햇살이 연일 쨍쨍하다.

챙 넓은 모자를 눌러쓰고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과 함께 영산강 둑을 따라 걸었다.

봄볕에 그을린 얼굴들이 아부재기를 치며

제발 운하만은 막아달라고 법회도 가졌다.

기도하는 사람들의 착한 염원이 부디 꺾이지 않기를,

큰절로 마중하고 큰절로 배웅한 하루였다.

담양에 이거한 지 한참 되었는데도

이렇게 잘 보존된 습지가 가까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연동사라는 예쁜 절 주지 스님이랑

가끔 칼국수도 먹고 하는데,

마음이 바빠 한밤중 불쑥 찾아갔다.

삼라만상 자연에 대한 감사와 공경을 담은 지역의 종교인 모임이라도 하나 꾸려내자고,

둘이서 먼저 뜻을 모았다.

 

“절에 가니 파리가 스님을 따라 합장을 하네”라는 바쇼의 시가 있는데,

나도 파리처럼 합장을 하고 기도했다.

아마 두꺼비며 소금쟁이, 아기풀꽃들, 물고기떼도 모두 그런 기도를 바쳤으리라.

예수님은 들에 핀 꽃을 보고 하늘을 나는 새를 보라 했다.

그대는 하루 종일 무엇을 보고 무엇을 생각하며 사는가.

빌딩 숲에서 나와 가끔 꽃을 보고 새를 보라.

흘러가는 강물에 마음을 씻으라.

우리들 마음이 재물에 어두워지니 운하다 뭐다 허깨비들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큰일이다, 큰일 났다.
- 2008년 04월 16일

 

 

 

 

 

집 한채, 방 한칸

봄바람, 봄비에 봄눈, 오늘은 봄햇살.

볕 좋은 곳에 자리를 깔고 점심때까지 뒹굴며 보냈다.

여독에 몸살기운까지 겹쳐 며칠 끙끙 앓다가 간신히 추슬러 낸 몸이다.

지난주는 노래를 불러 달라는 곳이 있어 남쪽나라에 잠깐 다녀왔다.

팔자가 기구하고 잡다하여 언제부터인가 노래를 짓고 노래를 부르며 살고 있다.

집시들의 악기 우쿨렐레 기타를 둘러메고 공항에 내렸다.

친구 작업실이 있어 10여 일 그곳에 짐을 부렸다.

오래되고 낡은 목조 건물이라 춥고 쿰쿰하다.

겨울엔 처음 방문이어서 유독 내 양지바른 집이 그리웠다.

반가운 친구들과 재회하고, 즐거운 시간들을 보냈으나

침낭에 누워 잠을 청할 때는 어김없이 장작불로 데운 후끈한 아랫목 생각이 간절하였다.

드디어 공연을 마치고 집에 당도.

김치를 한 움큼 꺼내 칼로 썰지도 않고 찢어 먹었다.

난로에서 끓은 물로 차를 우려 마시고, 여행 중에 사온 책들을 구경하다 졸기도 한다.

 

역시 우리 집이, 내 나라가 최고야.

집 한채, 방 한칸 없는 사람들의 설움을 정말 알 것 같다.

수십년 타향살이의 서글픔까지도, 아주 조금은.

- 2008년 02월 27일

 

  

 

 

꼬부랑말

 

“무작시롭게 비찌락질(비질)을 해불드랑게요.” 요즘 정치판에 대해 한마디씩.

“아조 세종대왕 뿌렁구를 뽑아부는 수준이듬마. 여그가 워디 엘에이땅이여.

나랏말쌈을 가지고 지앙부리믄(말썽 일으키면) 안되재.”

낫놓고 기역자는 알아도 빨래집게를 에이자로 볼 사람은 없는 요쪽 동네는,

영어하고 생전 담쌓은 동네다. 그냥 우리는 이렇게 살다 죽을 것이다.

할매들 몇분이 중국에 댕겨온 일 말고는 외국물을 먹은 사람은 내가 전부.

가끔 내 거처에 외국인 친구들도 놀러오는데,

한번은 마을에 사진찍으러 내려갔다가 꼬부랑 할매들에게 ‘만짐’을 당하고

얼굴이 새빨개져 ‘헬프 미!’ 뛰쳐올라오기도.

 

만져보니 진짜 금발이더라, 코끼리도 아니고 코가 뭐할라 그렇게 크냐느니….

처음 보는 금발 총각을 우왁스럽게 만지셨을 일을 생각하면 웃음부터.

헬로우, 땡큐, 빠이빠이 정도면 영어완전정복.

그렇지, 사람은 정으로 만나는 것이지 ‘말빨’로 만나는 것이더냐.

남녘 북녘 꼬부랑할머니는 본척 만척 하는 자들이 미국 할머니들에겐 꼬부랑말을 앵겨보겠다네.

전세계적으로 효성을 다해볼 작정이신가.

- 2008년 01월 30일

 

 

  

 

 

알아주지 않는 삶

 

우리 집 당호가 회선재(回仙齋)인데,

문패에다 ‘회선재 임의진’이라고 써두었다.

 

회선재라는 여자랑 사느냐고, 회씨라는 희귀 성씨도 있느냐고,

그런데 왜 통 보이지 않으시냐며 우체부가 캐묻는다.

나도 그 우렁각시가 어떤 여자인지 궁금하다.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문패에 적힌 이름들을 구경한다.

신문 방송에 나올 일이 절대 없는 인물들. 내 다정한 이웃사촌들,

아마도 내 기억과 글 속에서나 오래오래 등장할 이름들이다.

바야흐로 선거철. 잘난 위인들의 이름 석자가 거리마다 나부낀다.

우리 동네엔 왜 저런 인물 하나 안나왔을까 어르신들이 한마디씩 아쉬워하시는데,

나는 생각이 전혀 다르다.

 

군홧발로 나라를 말아 잡수신 장군님들을 비롯하여

지체 높으신 정치인들의 그간 정황들을 되돌아보면

낮고 가여운 사람들 괴롭히고 제 식구만 배불리고 거짓말 밥 먹듯 하는, 나쁜 쪽으로 솔선수범이었다.

‘알아주는 삶’이라고 하는 것이 보통 그런 이력이었다.

이맘 때면, 무지렁이 이웃들의 이름자를 모조리 주워 담아

현수막 하나 만들어 걸어주고 싶은 심정이다.

말주변 없고, 큰 대(大)자 붙은 야망이라곤 전연 없는, 그러나 참말 정직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산촌에 은거하여 ‘알아주지 않는 삶’에 만족해하는 우리네 선한 이웃들이야말로

진짜배기 ‘큰 인물’이 아닐까?
- 2008년 04월 02일

 

 

 

 

 

 

산나물 반찬

대밭에 차를 길러 죽녹차를 만드는 친구가 있는데 차씨를 한 되박이나 주어 나도 심었다.

전에 심은 차 묘목은 잘 자라주니 내후년쯤 처음 찻잎을 딸 수 있을 듯 보인다.

 

차씨를 심고, 곧 전시회가 잡혀있어 며칠 틀어박혀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까치떼들이 하도 울어쌌는거라. 개코가 달렸나 도대체 어찌 알았을꼬.

일가친척까지 시꺼멓게 몰고 와설랑 ‘잔치 잔치 열렸네’ 차씨를 파먹고 계셨다.

 

나야 식료품 가게도 갈 수 있고 그대에게 찾아가 밥 한 끼 얻어먹을 수 있지만서도

새들은 산에서 먹을 걸 다 해결해야 한다.

그래 너무 원망하지 않기로 했다. 잘 생각했지?

차야 친구한테 얻어먹으면 되는 거고….


예전 사람들은 산에서 먹을거리를 모두 해결했다.

 

허균이 엮은 ‘한정록’에 보면 이러한 이야기가 잘 소개되어 있다.

 

“매화로는 국을 끓여먹고, 무나 옥란으로는 국수를 만들고, 모란으로는 음료를 달이며,

장미와 산수유로는 장을 담근다. 구기자와 파, 자형화, 등나무꽃으로는 반찬을 만들 수 있다.

그 밖에 콩꼬투리, 오이지, 나물순, 송홧가루, 죽순은 산에 사는 사람들의 반찬이다.”

 

지금은 맥이 끊겨 어떻게 반찬을 해먹는지 도통 알 수 없는 게 안타까울 따름.

이 산 저 산 의지하여 사는 벗님들로부터 산나물에 밥 비벼 먹자는 초대를 받곤 한다.

애고, 요놈의 인기는 당최 식을 줄을 모른다니깐.

- 2008년 04월 23일

 

 

 

 

 

일곱 송이 수선화

 

청매화, 홍매화, 산수유와 함께 마당 한 구석 샛노랗고 탐스러운 수선화가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부러울 것 없는 정원에서, 행복한 정원사가 되어 살고 있다.

키 작은 수선화 앞에 쪼그리고 앉아 나르시시즘에 한껏 빠져보기도.

물 속에 비친 자기 모습을 사랑한 나르시스는 결국 물에 빠져 죽고 말았다.

나르시스가 빠진 호숫가 언덕에 핀 꽃을 수선화라 불렀단다.

꽃시장에서 수선화를 몇 뿌리 더 샀다. 내년에는 산밭에서도 수선화를 보려고,

밭두렁 한 쪽에다 수선화를 심었더니 지나는 마을 분마다 나를 삐뚜름 바라보신다.

“이제 가지가지 다 하시는구먼.”

 

콩이나 심고 호박이나 심지 무슨 꽃이냐는 표정들.

그러나 세상에는 나같은 낭만파 농부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브라더스 포’가 불렀던 ‘일곱 송이 수선화’ 를 따라 부르며,

수선화가 핀 언덕밭으로 모두 모여들리라.
“눈부신 아침 햇살에 산과 들 눈뜰 때, 그 맑은 시냇물 따라 내 마음도 흐르네.

가난한 이 마음을 당신께 드리리. 황금빛 수선화 일곱 송이도.”
- 2008년 03월 26일 글·그림 / 임의진 목사 · 시인

 

 

 

 

 

- ‘브라더스 포’가 불렀던 ‘일곱 송이 수선화’

::::::  Brothers Four / "Seven Daffodils(일곱송이 수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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