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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 (1808.5.3) 마드리드 프린시페 피오산에서의 처형

Gijuzzang Dream 2008. 2. 26. 23:21

 

 

 

 

 

고야 - 1808년 5월 3일,

 마드리드 프린시페 피오 산에서의 처형  

 

 

 

살인 · 공포 …  전쟁의 참혹성 고발하다

스페인 미술계 최고의 화가로 꼽히는 프란시스코 고야(Francisco de Goya y Lucientes, 1746~1828)는

궁정 수석화가로 제국주의 시대에 활동했다.

초기에는 화려한 왕실풍의 작품을 주로 그렸으나

점차 당시 궁정 사회의 인습과 무기력, 허영과 퇴폐 등의 부조리한 현실을 고발하는

실존주의적 경향의 작품을 그렸다.

후반으로 갈수록 전쟁과 폭력, 살인 등 죽음과 공포를 주제로 한

고야 만년의 ‘검은 그림’으로 불리는 작품들이 제작되는데

이는 40대 때 중병을 앓아 청각을 상실하고

프랑스 나폴레옹군의 에스파냐 침입이라는 사건과 연관이 있다.

여기서 당시 스페인 왕실과 프랑스 공화정과의 정치적 연관을 이해해야 한다.

나폴레옹의 동생 보나파르트가 1800년 스페인 대사로 마드리드에 임명되어

스페인의 영토를 프랑스에 주는 대신 정치적인 협약을 체결한다.

하지만 영국을 견제하기위해 스페인을 이용하려 했던 나폴레옹은 스페인 정치에 개입하였다.

당시 프랑스 부르봉 왕가의 후손인 스페인의 왕 카를로스 4세가 무능력하여

왕비 마리아 루이사와 그녀의 정부이자 총리인 마누엘 고도이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며

마드리드를 통치하고 있었다.

1804년 이후 고도이는 왕의 맏아들 페르디난도가 왕위를 계승하게 되면

포르투갈을 차지하려는 야심을 가지고 점차 프랑스와의 동맹관계를 깨고자 했다.

이에 화가 난 나폴레옹은 스페인에게 영국을 견제하기 위한 대륙봉쇄에 동참할 것과

하노버 점령에 필요한 군대를 제공할 것을 요구했다.

곧 스페인 왕실에서 입지가 약해진 고도이는 페르디난도를 왕으로 추대하려 했으나

페르디난도는 자신이 왕위에 오른다 해도 고도이가 왕위를 빼앗을 것을 걱정하여

비밀리에 나폴레옹의 지원을 요청했다.

 

스페인 원정군이 1808년 3월 마드리드로 진격하였고 대규모 폭동이 일어나자

나폴레옹은 카를로스 4세와 왕자 페르디난도, 그리고 총리 고도이를 퇴위시킨 후

탈레랑의 성에 가두었다. 이 사건으로 스페인 국민들의 원성은 커져만 갔다.

그전까지는 나폴레옹이 고도이 대신 페르디난도를 지원하고 있다고 믿었던 스페인 국민들은

나폴레옹에 대한 배신감을 느꼈다. 이에 마드리드 시민들은 프랑스에 대항해 봉기했고

프랑스 원정군이 시민들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프랑스군 150명, 스페인인 400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1808년 5월 2일 성난 군중이 성 앞으로 몰려와 공주들이 성을 떠나는 데 대해 반대했는데

이 과정에서 궁정의 마차를 호위하고 있었던 프랑스 군인들이 몇 명 죽었다.

이에 프랑스 군대는 성난 군중을 향해 발포하게 되었고 마드리드 주민들이 처형당했다.

이 사건이 발생하고 6년이 지난 1814년,
고야는 그날의 장면을 상기해 그린 작품이

<1808년 5월 3일, 마드리드 프린시페 피오 산에서의 처형〉이다.

 

  •  
  • 프란시스코 고야(Francisco Jose de Goya y Lucientes), 1814년,

    캔버스에 유채, 262x340cm. / 마드리드 프라도미술관 소장

  • Francisco de Goya. The Third of May, 1808: The Execution of the Defenders of Madrid.

    1814. Oil on canvas, 266 x 345 cm. Museo del Prado, Madrid, Spain

     

     

    고야는 프린시페 피오 산을 뒤로 하고 프랑스 군인들이

    밤에 스페인 민중을 처형하는 장면을 묘사하면서

    총을 쏘는 군인들의 얼굴은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더 비인간적인 모습으로 그리고 있다.

    줄을 맞춰선 군인들의 일률적인 움직임은 마치 기계같이 보여 더 비인간적인 면모를 부각시킨다.

    하지만 총살당하기 직전의 사람들은 다양한 몸짓과 표정들을 보이고 있다.

    분노와 패배감, 공포와 전율 등의 다양한 감정표현을 표현하였는데,

    어두운 화면 속에 중앙의 가장 눈에 띄는 흰색 상의와 노란색 바지를 입고

    두 손을 위로 든 모습의 남자가 보인다.

     

    이 작품은 기존의 종교화에서 보이는 긴장감과 성스러움이 느껴지지만

    이것을 부각시키려는 억지스러움 보다는

    스페인 국민들이 자유를 위해 생명을 잃어가는 모습을 통해

    전쟁의 비인간성을 고발하고자 한 것이다.

    이후 이작품은 1814년 5월 마드리드에서 개최된 추도식에서 공개되어 스페인 국민을 단결시켰다.
    - 조선일보 2007-03-29 [명화로 보는 논술]

    - 최혜원 / 블루 로터스 아트디렉터 · 경희대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