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주짱의 하늘꿈 역사방

나아가는(문화)

고대신라의 금속, 공예기술

Gijuzzang Dream 2008. 2. 13. 21:50

 

 

 

 

 고대 신라시대의 금속 · 공예 기술

 

 

삼국시대의 금속공예품은

우리나라 금속공예의 대표적인 것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화려하고 다양하다.

 

특히 신라는 가장 화려한 금속문화를 꽃피운 나라로,

양과 질에서 모두 두드러져 다양한 종류의 금속제품이 제작되었고

또한 현존하는 것도 금관 및 관식, 과대 및 요패, 귀걸이, 팔찌, 반지 등 매우 다양하다. 

 
16세기 중국의 유명한 박물학서(博物學書)인 이시진(李時珍)의 『본초강목(本草綱目)』에는

“페르시아 동은 거울을 만드는 데 좋고, 신라 동은 종을 만드는 데 좋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는 중국에서 진유의 본고장으로 꼽히던 페르시아의 동합금 기술과

신라의 동합금 기술이 동등하게 평가되고 있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신라의 우수한 청동합금기술로 만들어진 범종(梵鐘)은

그 탁월한 공예 미와 음색, 음량의 신비로움 등으로 세계적으로 이름이 높다.

신라의 주종 기술자들은 '신라종'이라고 불리는 특색 있는 범종 양식을 이룩하였다.

신라종의 고리에는 하나의 용머리에 두발이 달린 용뉴가 달려있으며

그 옆에는 종의 내부와 관통하는 음관(音管)이 있다.

종신(鐘身)의 어깨와 종구(鐘口)의 둘레에는

당초문이나 보상화 무늬를 새긴 상대(上帶)와 하대(下帶)가 있다.

이들 사이로 유곽, 당좌를 배치하며

당좌 사이에는 비천이나 불, 보살, 나한상들이 표현되기도 하는데

특히 비천상의 조각 기술이 뛰어나다

 

 

   

 

 

 

 

 

대표적인 신라종인 성덕대왕신종(聖德大王神鍾, 국보 제29호)은

지름 227㎝, 높이 333㎝의 큰 종으로 그 형태와 조각과 종소리가 아름답다.

조각 문양은 장식적 효과 외에 서로 다른 두께와 질량으로 다른 주파수로 합성음을 만들어 내었다.

이를 통해 신라의 청동 공예 및 주조기술의 발달과 규모가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 

정교하고 과학적인 신라의 금속기술

 

우수한 신라의 청동 공예기술은 불상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백률사의 금동약사여래입상(국보 제28호)은

높이 1.77m의 서 있는 불상으로 조형기법이 매우 우수하다.

불국사의 금동비로자나불좌상(국보 제26호)과 금동아미타여래좌상(국보 제27호)을 통해

사실적이며 세련된 통일신라시대의 불상을 엿볼 수 있다.

                                                    

금동불상은 청동을 이용하여 만들어졌으며 아말감법으로 표면에 금이 도금되어

신라 시대에 이미 도금기술이 발달되어 있었음을 나타낸다.

아말감법이란 수은에 금을 용해시켜 아말감으로 만든 다음

소지금속에 아말감을 올리고 수은의 비등점 357℃ 가까이서 가열하여 수은을 증발시켜

금피막을 생성하는 것을 말한다.

이 방법은 크고 복잡한 제품에도 사용하기가 용이하므로

고대의 주요한 피복방법으로 이용되어 왔는데,

복잡한 구조인 금동제 불상 및 장신구는 모두 이러한 방법으로 피복하였음이 틀림없다.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감은사지 동삼층석탑의 사리장엄구(보물 제1359호)도

신라인들의 정교한 금속공예기술을 볼 수 있는 좋은 예이다.

사리함의 외함은 순 구리로, 내함은 청동으로 만들어졌으며 금으로 도금되었다.

사리병 뚜껑에 장식된 누금세공은 공예기술의 정수를 보여준다.

누금 세공기술은

금실이나 금 알갱이를 얇은 금판에 장식하여 만든 금 공예품 혹은 그 기술을 말하는데

오리엔트 지역에서 먼저 발달하여 동아시아로 전해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장신구와 장식마구의 표면을 장식하는 세공 기법으로

누금세공품이 처음 등장한 것은 낙랑고분인 석암리 9호분 출토 금제 교구(국보 제89호)이며,

그 후 신라의 황남대총을 비롯한 4세기 후반의 고분에서 출토된 유물에서 발견되었다.

 

 

  

 

신라 시대의 철기 기술도 매우 발달했음을 확인할 수 있는데

신라 98호와 155호 고분에서 각각 출토된

단조제품인 철제 도끼와 주조 제품인 철제 솥을 보면 알 수 있다.

 

철은 청동보다 용융점이 높아 자연 송풍을 이용해서는 주조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철주조품 생산은 매우 어려웠다.

그러나 출토된 철제 솥을 통해 신라시대에 이미 제철과 주조기술이 있었음이 증명되었으며,

탄소함량이 낮은 철강으로 만들어야 하는 철제 도끼의 특성상,

당시 제강 기술 역시 발달했었음을 알 수 있다.

 

귀금속의 세공기술은 신라의 대표적 공예기술이었다.

황남대총에서 출토된 금관 및 수하식(국보 제191호)의 경우는

신라의 대표적인 금 공예품으로 그 아름다움 때문에 금관의 상징물로 예시되고 있다.

이러한 유형의 금관류는 주로 5세기를 중심으로 제작되어 6세기 초반에 사라졌다.

 

  

 

신라시대의 대표적인 금속문화재를 통해 옛 사람들의 과학적 지식과 슬기를 알아보았다.

범종의 뛰어난 청동합금기술, 철제 정의 주조기술,

불상의 세련된 조형기법과 사리장엄구에서 볼 수 있는 탁월한 공예 미와 과학적인 독창성은

현대 과학기술로도 재현하기 어려운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입증하고 있다.
- 강성군 한양대학교 신소재공학부 교수 / 일러스트 : 홍동선

- 게시일 2008-02-04 / 월간문화재사랑

 

  

 

========================================================================================================================

  

 

 

 

 

   주철장 원광식 

                 그 맑은 종소리 울려 퍼져 인간의 모든 번뇌 씻어 버려라 

 

세상의 모든 번뇌 종소리에 담고

열일곱이었다. 나는 종을 제작하는 일을 하던 아버지 연배인 팔촌형님의 양자가 되었다.

할아버지가 해오시던 일을 형님을 거쳐 내가 물려받게 된 것이다.

종에 대한 사명감 같은 건 없었다.

그저 먹고 살기 위해서였다.
엄한 교육을 받으며 기술을 전수 받았다.

나는 종을 만들며 살고 있었지만, 종은 아직 내 인생 깊은 곳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있었다.

 

1960년대 사찰과 교회가 늘어나면서 종을 만들어 달라는 주문도 엄청 늘었다. 

돈 버는 재미에 힘든 줄도 모르고 종을 만들었다. 그러다 사고가 났다. 폭발 사고였다.

달궈진 붉은 쇳물이 나의 오른쪽 눈으로 튀어 올랐다.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나는 눈을 잃은 슬픔에 젖어 세상 속을 헤매었다. 나의 인생이 어떻게 되는 건지 두려웠다.

 

그런데 1년 뒤 나는 다시 작업장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수덕사에서 한국 최대의 범종을 만든다고 했을 때, 나는 머리를 깎고 수덕사로 들어갔다.

3년 걸려 있는 힘을 다해 범종을 완성하면서 종 만들어 팔던 내가 점차 변하기 시작했다.

 


끝이 없는 길

끝이 없는 길을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산 너머 산이라고 할까. 내가 도달할 수 없는 그곳에 내가 찾는 소리가 종의 모습으로 묻혀있다.

종을 제외시켜 놓고는 내 인생을 생각할 수 없어 나는 오늘도 그곳으로 향한다.


담장이 아무리 높아도 앞마당에 피어난 꽃의 향기를 막을 수 없고, 창문을 굳게 닫아도 스며드는 밤하늘의 달빛을 막을 수는 없는 일이지 내게 종은 그런 존재다.

말하자면 꽃 피고 지는 일이거나, 사람이 살다가 죽기도 하는 그런 일.

그걸 막을 수 있는 힘은 이 세상에 없다.

간혹 바람이 불어오거나 폭풍우가 몰아치기도 하지만 절망하지 않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종이 내게 준 꿈 때문이다.


지금도 종을 만들고 있지만 항상 부족하

다는 생각뿐이다.

종이 내는 소리에 스며들어 나를 찾기 시작하던 청춘의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이 길을 처음부터 다시 걸어서 오로지 종을 위해 살고 싶다.

그리하여 마지막 순간까지 종을 만들다 죽고 싶다.

세상에 울려라, 천 년의 종소리

한국 종의 비밀은 신라의 종이 품고 있다.

신라의 장인들은 종을 만들 때 밀랍주조공법으로 만들었다.

섬세한 문양과 매끄러운 표면, 한국 종 특유의 웅장한 소리는

진짜 한국 종인 밀랍주조공법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나는 가슴이 설레었다. 그리고 신라의 종을 꿈꾸기 시작했다.

밀랍주조공법이란 무엇인가.

그 비밀을 캐내기 위해 중국과 일본을 돌아다니고,

경주 남산의 흙을 샅샅이 뒤졌다.

신라의 흙에 그 비밀이 있을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지 10여 년, 나는 밀랍주조공법으로

한국 종의 맑은 소리를 재현하는 데 성공했다.


비밀은 남산의 활석에 있었다.

활석은 모양을 만들기 쉽도록 무르고, 내화력이 좋고,

밀랍이 열에 녹아내리지 않게 하는 신비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종을 만든 지 40여 년, 그동안 내가 만든 종은 모두 7000여 개.

고유한 우리의 전통 문화와 예술에는 너무나 창의적인 우리 조상들의 숨결이 살아있다.

나는 한국인들이 우리의 종이 얼마나 우수하고 아름다운 것인지 알아주기를 소망한다.
   

- 글 : 이지혜 / 사진 : 임재철

- 게시일 2008-01-14 / 월간문화재사랑

  

문화재가 있는 풍경


- 국보 제29호 성덕대왕신종의 비천상

신라 경덕왕이 부왕인 성덕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구리 12만근으로 
종을 만들다가 완성을 보지못하고 세상을 뜬다. 
다음 왕위에 오른 혜공왕은 어린아이를 끓는 쇳물에 넣어 종을 만들었고, 이 종은 '에밀레 에밀레'하고 운다하여 에밀레 종이 되었다.
그래서일까?

종소리는 더욱 장엄하고 비천상의 모아진 두손이 더욱 애닯다.
- 월간문화재사랑

'나아가는(문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벼루 - 조선초기 풍속도 일월연  (0) 2008.02.14
조선시대 왕릉  (0) 2008.02.13
우리나라의 도교 흔적을 찾아서  (0) 2008.02.13
각자장(刻字匠) 오옥진  (0) 2008.02.13
소목장 설석철  (0) 2008.0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