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 떠나고(답사)

해남 대흥사(대둔사)

Gijuzzang Dream 2007. 12. 5. 22:23




■ 대 흥 사
    
    



    △해남의 문화유산해설사 전희숙님.


    다음에 또 찾아가야만 되는 숙제를 안고 돌아온 대흥사.....
    일지암까지 담엔 꼭 들러야지요.


    △대흥사의 부도밭.... 청허당 서산대사의 묘탑.


    △초의선사 부도 (위당 신관호=신헌의 "초의탑")




    △해탈문을 들어서면,




    △ 대흥사의 사랑나무를 지나, 침계루를 지나, 대웅보전을 만난다.
    "침계루"는 원교 이광사의 글씨.




    △저녁 어스름이 짙어져 제대로 볼 수 없었던 대흥사의 대웅보전
    기단 밑에 시주자의 이름, 



    소맷돌 아랫쪽의 석수(石獸),

    차양을 붙들어맬 수 있는 쇠고리.



    △원교 이광사의 "대웅보전" / 추사 김정희의 "무량수각"








■ 대 흥 사
    
    



















    △천불전 들어가는 입구의 "가허루" 현판은 창암 이삼만의 글씨

    △천불전의 옥불... 꽃창살

    
    
    △임진왜란때 의병활동을 한 서산대사, 사명당, 처영을 기리기 위한 사찰 내의 유일한 유교사당인 표충사







    △정조의 친필사액 "표충사"

    △위당 신관호의 "어서각" 과 "표충비각"





    △13대종사와 13대강사를 배출한 대흥사의 조사전

    △다성(茶聖) 초의선사와 일지암 현판(강암 송성용의 글씨)

    △제주에 유배중인 추사가 초의선사에게 써보낸 "일로향실"
    - 기주짱의 답사기록 중에서 ...
     
    ♬♩♪ 양강석의 오카리나 연주 - You Raise Me Up


 
 

 

 

 - 대흥사 가는 길 -

 

두륜산 대흥사 가는 길엔 봄빛이 완연하다.

대흥사 매표소를 지나면 흙길은 아니지만 걷기 좋은 길이다.

이 길을 두고 예전엔 ‘구곡장춘’이라고 했다. 봄길이 그만큼 길고 좋다는 뜻이다.

삼나무를 비롯해 아름드리 나무들이 많다. 양쪽에 나무들이 우뚝 솟은 길을 따라 걷는 기분이 상쾌하다.

대흥사 입구에 유선여관이 있다. 한옥 여관으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도 나온 명소다.

유선여관을 지나 부도밭 옆을 스치면 대흥사다.

대흥사는 큰 절이다. 백제 때 지었다. 13명의 대종사와 13명의 대강사를 배출했다.

대흥사의 천불전은 18세기에 지어진 절이지만 달문이 아름답다. 문지방이 달처럼 휘어져 있다.

창은 꽃창살로 장식돼 있다. 단청은 세월에 바래 희미하다.

나무 한 그루를 통째로 가져와 왼쪽 기둥으로 썼다. 늙은 절의 아름다움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곳이다.


대흥사에 가면 현판 글씨 하나도 눈여겨 봐야 한다.

 

대웅보전의 글씨는 남도의 명필 원교 이광사가 썼고, 바로 옆 무량수각은 추사 김정희의 작품이다.

추사와 초의, 원교에 얽힌 이야기도 내려온다.

천하 명필이던 추사는 남도 명필로 꼽히는 원교가 쓴 현판을 보고 유치하니 떼어버리라고 했다.
추사는 9년 동안 제주도에서 귀양살이를 하고 돌아오다 해남 대흥사에 들러 원교의 현판을 다시 걸라고 했단다.

 

제주도에서 세한도를 그리고, 대흥사 일지암의 초의선사에게 명선(茗禪)이란 명작을 보냈던 추사는

유배가 끝났을 때는 글솜씨뿐 아니라 칼칼하던 성질도 죽고, 더 깊은 사람이 됐나 보다.

대흥사는 의병을 일으킨 서산대사가 주석했고,

서산대사를 기리기 위해 정조대왕이 표충사란 사당을 세우고 현판을 썼다.

- 2008년 03월 06일, 경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