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 흥 사 |
△해남의 문화유산해설사 전희숙님. |
■ 대 흥 사 |
△임진왜란때 의병활동을 한 서산대사, 사명당, 처영을 기리기 위한 사찰 내의 유일한 유교사당인 표충사 |
- 대흥사 가는 길 -
두륜산 대흥사 가는 길엔 봄빛이 완연하다. 대흥사 매표소를 지나면 흙길은 아니지만 걷기 좋은 길이다. 이 길을 두고 예전엔 ‘구곡장춘’이라고 했다. 봄길이 그만큼 길고 좋다는 뜻이다. 삼나무를 비롯해 아름드리 나무들이 많다. 양쪽에 나무들이 우뚝 솟은 길을 따라 걷는 기분이 상쾌하다. 유선여관을 지나 부도밭 옆을 스치면 대흥사다. 대흥사는 큰 절이다. 백제 때 지었다. 13명의 대종사와 13명의 대강사를 배출했다. 창은 꽃창살로 장식돼 있다. 단청은 세월에 바래 희미하다. 나무 한 그루를 통째로 가져와 왼쪽 기둥으로 썼다. 늙은 절의 아름다움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곳이다.
대웅보전의 글씨는 남도의 명필 원교 이광사가 썼고, 바로 옆 무량수각은 추사 김정희의 작품이다. 추사와 초의, 원교에 얽힌 이야기도 내려온다. 천하 명필이던 추사는 남도 명필로 꼽히는 원교가 쓴 현판을 보고 유치하니 떼어버리라고 했다.
제주도에서 세한도를 그리고, 대흥사 일지암의 초의선사에게 명선(茗禪)이란 명작을 보냈던 추사는 유배가 끝났을 때는 글솜씨뿐 아니라 칼칼하던 성질도 죽고, 더 깊은 사람이 됐나 보다. 대흥사는 의병을 일으킨 서산대사가 주석했고, 서산대사를 기리기 위해 정조대왕이 표충사란 사당을 세우고 현판을 썼다. - 2008년 03월 06일, 경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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