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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에 없어도 되는 것/ 최한기

Gijuzzang Dream 2011. 11. 21. 20:48

 

 

 

 

 

 

 

 

 내 인생에 없어도 되는 것

 

좋아하던 물건도 오래되면 싫증이 나서 마침내 버리게 되는데,
이는 그것이 아니더라도 살아가는 데에 손해될 것이 없기 때문이다.

玩物之情。久則厭心生。畢至於賤棄。
완물지정。구즉염심생。필지어천기。


以其雖非此。無所損於生道也。
이기수비차。무소손어생도야。

- 최한기(崔漢綺 1803~1877)  

<명남루수록(明南樓隨錄)> 《기측체의(氣測體義)》

 

 

 

이 글은 조선 후기 실학자 혜강(嵇康) 최한기의 글에 나온 구절입니다.

일이나 물건을 좋아하는 마음[완물지정]은

그것이 없더라도 살아가는 데 지장이 없기 때문에

한때 좋아하더라도 언젠가는 싫증이 나서 마침내 버리게 되고,

반대로 기(氣)를 밝히는 즐거움[명기지락(明氣之樂)]은

오랠수록 더욱 도타워져서 마침내 나는 물론 천하 사람에까지 미치니

이는 사람의 도리를 밝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기일원론(氣一元論)으로 대표되는 혜강의 기본적인 사고에 따르면,

완물은 바로 명칭(名稱)ㆍ명분(名分)ㆍ형식(形式)이며,

기는 바로 내용(內容)ㆍ실질(實質)ㆍ실제(實際)를 말합니다.

 

혜강은 완물지정의 허망함에 대해 다음과 같이 풀이합니다.

순오(淳熬)ㆍ도진(擣珍)은 세상의 좋은 음식이지만

늘 먹는 사람은 반드시 그 지극한 맛을 알지 못하고,

관현(管絃)ㆍ고취(鼓吹)는 세상의 즐거운 음악이지만

늘 듣는 사람은 반드시 즐거운 것을 알지 못한다.

 

부귀한 처지에 있는 사람은 녹(祿)과 지위의 즐거움을 알지 못하고,

산림(山林)에 숨은 선비는 유적(幽寂)의 취미에 싫증을 낸다.

그러나 이 네 가지를 얻지 못한 사람으로서 보면,

좋은 음식을 바라고 즐거운 음악을 바라고,

부귀를 바라고 산림을 바라지만

바라는 대로 되지 못하는 사람이 많으며,

혹 그것을 얻은 사람이라도 흐뭇하게 여기는 사람은 적고

불만스럽게 여기는 사람이 많다.

또 몇 달 몇 해 못 가서 남에게 빼앗기거나 남에게 전해 주게 되는데,

그 사이에 풍파가 번갈아 일어나서 영욕(榮辱)이 상반되니,

이것이 어찌 인생에 본디 갖추어져야 할 것으로

잠시도 떠날 수 없는 것이겠는가?

  

이 세상의 팔진미(八珍味)로 꼽히는 순오나 도진 같은 음식,

좋은 음악, 부와 권력, 심지어 선비의 유적(幽寂) 같은 고상한 취미도

얼마 지나면 스스로 버리기도 하고

혹은 상황이나 타의에 의해 잃기도 하는데,

과연 그들이 인생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면

버리거나 빼앗기는 일은 절대 없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혜강은 학문에 대해서도

허무한 것과 성실한 것 두 종류가 있다고 말합니다.

허무한 학문은 실효를 거두지 못하는 망탄설(妄誕說)에 그치는 반면,

성실한 학문은 자신은 영화를 얻고

타인에게는 혜택을 주는 실효를 거둔다는 것입니다. 

내 인생에 있어 실제로 중요하고 유익한 일이면 오래될수록,

심력을 기울일수록 더욱 친근해져 잠시도 떠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이 글은 올 한 해 내게 무익했던 완물지정은 무엇인지,

거기에 허투루 쓴 시간은 얼마나 되는지를 한 번 짚어보게 합니다.

 

글쓴이 : 오세옥(한국고전번역원)

- 한국고전번역원, [고전명구 171] 내 인생에 없어도 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