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중국 섬서성 서안시(西安市)에서 출토된

6세기 북위-동위(北魏-東魏)시대의 금동여래 삼존상은 놀라운 발견이었다.(도 1-1)

상태도 좋거니와 양식이 앞서 소개한 용흥사 출토 보살의 영기화생 도상과

똑같은 형식과 양식을 띠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불상만을 보아왔지 그 불상이 탄생하는 과정은 지나쳐 왔었다.

그러니 불상을 올바로 연구할 수 없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역시 대좌만을 채색분석하여 설명하기로 한다.(도 1-2, 1-3)

대좌 밑 부분에 용의 정면 얼굴이 있고 양 입가에서 빨갛게 칠한 역동적인 제1영기싹 영기문이

그저 단순한 녹색 영기문이 함께 폭발적으로 발산하고 있다.

이 용의 얼굴을 귀면이라고 혹은 짐승얼굴이라고 부르니 입에서 나오는 것이 무엇인지 보일 리 없다.

바로 이 중앙의 용의 모습이 가장 중요하다.

이 용으로부터 위의 노란 색으로 칠한 영화된 연꽃이 피어나고

반구형 평평한 씨방 위에 여래가 화생하여 안전하게 서 있을 수 있다.

연꽃잎에 두 개씩 있는 불룩한 타원형의 모양은 영기로 가득 차 있는데 실제로 이런 모양의 연꽃은 없다.

영화시키기 위하여 변형시킨 영기꽃이다. 영기꽃 가운데서 씨방이 솟아 있다.

이 씨방 안에 있는 씨앗들이 보주로 변하는데,

이런 상징도 새로이 발견한 것이므로 앞으로 몇 회에 걸쳐 자세히 다룰 것이다.

마침내 이 씨방에서 여래가 화생한다.

 

우리의 눈에는 연꽃만 보였으므로 연화화생이라고 불러왔지만,

대좌 밑의 엄청난 폭발력을 지니고 있는 용의 존재를 지나쳐 버려서

용과 연꽃대좌의 관계를 설명할 수 없었다.

이 불상에서 가장 근원적으로 중요한 것은 용이며 용의 입에서 강력하게 발산하는 영기문이다.

중앙의 대좌의 밑 부분에서 양쪽으로 보살을 탄생시키기 위하여 영기문 대좌가 다시 형성된다.

붉게 칠한 면(面)으로 된 연이은 제1영기싹 영기문에서 용이 화생하고,

용의 입에서는 면으로 된 제1영기싹 영기문이 탄력 있게 여러 갈래가 발산하고 있다.

그 사이로 연꽃이 나와 연화대좌를 만든 다음 보살이 화생한다.

원래 씨방의 ‘씨앗=보주’는 보살의 발에 가려져서 보이지 않지만 마땅히 있어야 하므로 그려 넣었다.

즉 용의 입에서 영기문들이 나오고 영기문에서 연꽃이 화생하므로 역시 보살의 영기화생이다.

 

무릇 모든 여래와 보살은 물에서 화생하므로 원래는 여래와 보살의 영수화생(靈水化生)이라 해야 한다.

그러나 영화된 물을 용으로 형상화하여 역동적인 용의 입에서 마침내 보살이 화생하는 형국이니,

여래나 보살의 탄생에 있어서 용의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광배의 ‘불꽃무늬’, 법의의 지느러미모양 등은 틀린 용어

올바른 용어 쓰지 않으면 여래를 올바로 볼 수 없어

 

용보다 더 근원적인 영기싹의 존재로부터 화생한 여래와 보살이니,

용이란 만물생성의 근원임이 확실해 진다. 그러므로 여래와 보살 역시 만물생성의 근원이 되는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여래와 용이 동격(同格)으로 만난다.

 

그런데 용의 입에서 나오는 영기문의 형태는

광배에서 보이는 여래의 머리 위의 보주로부터 발산하는 영기문과 비슷하다.(도 1-1)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즉 단지 용의 입에서 영기문이 발산하는 것이 아니고,

용의 내부에 있는 무량한 보주들에서 발산하는 영기문이다!

광배의 중심에는 항상 보주가 존재한다. 그 보주는 여래로부터 발산하는 보주이다.

보주를 공부하다 보면 보주가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스스로 알게 될 것이다.

그 보주에서 아래쪽으로 영기문이 발산하는데,

여래의 대좌의 용의 입에서 발산하는 영기문과 같은 느낌을 준다.

 

또한 큰 광배 전체에는 ‘화염문(火焰文)’, 혹은 우리말로 ‘불꽃무늬’가 ‘있다’고

일본학자나 한국학자들은 누구나 쓰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틀린 용어이다.

왜 여래의 몸에서 불꽃무늬가 나오는가. 그러므로 여래의 몸에서 영기가 발산한다는 개념도 없다.

단지 ‘무엇이 있다’가 아니라, ‘여래와 보살의 몸에서 영기(문)가 발산하고 있다’고 말해야 한다.

동양의 불교미술 연구 100년의 역사에서 아직도 화염문이라 부르니

여래의 본질을 어떻게 밝혀낼 수 있단 말인가!

화염문도 일본에서 만들어진 용어인데 우리가 무조건 따르고 있다.

 

또 법의의 끝자락이 양쪽으로 뻗어 있는데 일본과 한국학자들은 ‘지느러미 모양’이라고 말한다.

그것도 틀린 말이다.

여래와 보살로부터 발산하는 역동적인 영기문을 받아서 옷자락이 양쪽으로 힘 있게 뻗치는 것이다.

‘영기에서 무엇인가 화생하고 화생한 한 것에서는 반드시 영기가 발산한다’는 것이

나의 영기화생론의 골자이기도 하다.

이 삼존불에서는 영기문으로 된 대좌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서

그 전체를 100이라 하면, 연꽃의 비중은 그 30%쯤 된다.

그런데 연꽃마저 영기화된 존재여서 영기문의 범주 안에 들어가니

우리는 여래와 보살을 화생시키는 근원적인 것을 100% 지나치고 있는 셈이다.

이제 우리가 그동안 잃어버렸던 상징을 회복하여 가지게 되므로 해서, 여래와 보살의 개념마저 달라진다.

 

용에서 직접 여래가 탄생하는 도상은 만들기 어려워서 조형 상 영기문과 연꽃을 거쳐 탄생시킨다.

용에서 혹은 영기에서 여래가 탄생한다는 기록은 경전에 없다.

그러나 옛 예술가들은 놀라운 상상력과 사상을 정확히 파악하여 조형화하여 오히려 불교경전을 보완한다.

 

그래서 나는 조형미술은 모두 조형언어로 된 대장경이라고 말하고 있다.

조형미술을 통하여 절대적 진리의 세계를 체험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런데 이처럼 용에서 화생하는 여래가 우리나라에도 있을까. 아, 있다!

팔공산 비로봉에 석가여래 마애불이 있는데 연화대좌 밑에 두 분의 용이 교차하며 서리고 있지 않은가!

원래 그 용이 존재하지 않으면 연꽃도 필 수 없고 여래도 탄생할 수 없다.(도 2-1, 2-2, 2-3)

생명의 화신인 여래는 물이 없으면 탄생할 수 없다.

물을 형상화한 영기싹-용-연꽃이 없으면 여래는 탄생할 수 없다.

생명의 근원인 여래를 탄생시키기 위하여 물을 형상화한 모든 조형들을 질서지어,

‘물→영기싹→용→연꽃→여래’라는 도상의 과정을 예술가들은 창조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