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주짱의 하늘꿈 역사방

찾아 떠나고(답사)

아차산성과 보루군(堡壘群)

Gijuzzang Dream 2011. 5. 27. 22:52

 

 

 

 

 

 

 

 

 

 아차산성(阿且山城)과 보루군(堡壘群)

고구려 온달장군의 흔적을 이곳에서

 

 

 

 

 

현재의 임진강 유역으로부터 서울 시내를 관통하는 한강 유역은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간의 치열한 영토분쟁의 현장이다.

서로 점령하고 점령당하는 지역으로 우열이 없을 정도였다.

자연히 삼국의 관방시설이 한강을 경계로 조밀하게 배치되어 있다.

 

대표적인 곳으로 한강 이남의 풍납토성, 몽촌토성과 더불어 한강 이북의 광진구 아차산성과

그 일대 보루군을 들 수 있다. 특히 광진구 아차산 일대의 보루군은 고구려의 방어시설로 유명하다.

 

아차산은 서울의 광진구와 중랑구, 경기도 구리시에 걸쳐 있으며,

용마산과 망우산 등 주변 산지와 연결되어 있는데 조선시대까지는 이 모두를 아차산이라고 불렀다.

지하철 5호선 아차산역과 광나루역을 이용하여 등산을 하는데

광나루역에서 하차하여 아차산 생태공원을 경유하여 오르면 아차산성을 맨 먼저 볼 수 있다.

생태공원 내에 아차산 고구려 역사문화 홍보관이 있어

아차산 일대의 고구려 유적을 소개하고 사진을 전시하고 있다.

산성을 뒤로 하고 계속 오르면 아차산 정상까지 4개의 보루를 볼 수 있다.

아차산역에서 하차한다면 영화사 방향으로 이동하여 절 뒤편에 나있는 등산로를 따라 20분 정도 오르면

고구려정(高句麗亭)이 나오고 연이어 보루군을 볼 수 있다.

산성을 보기 위해서는 관리사무소 방향으로 하산해야 한다.

 

 

 

 

아차산에는 산성 이외에 능선을 따라 작은 봉우리마다 ‘보루’라고 하는 군사유적이 있다.

보루(堡壘)란 적을 방어하거나 적의 움직임을 살피기 위해 주로 산꼭대기에 만든 요새인데,

대규모 병사나 일반인이 거주하는 산성과 달리 이동로 확보를 위해 주변 전망과 감시를 주로 하는 곳으로

소규모의 병사가 잠시 체류하기 위한 목적으로 지어졌다.

 

아차산성은 광진구 광장동 5-11에 소재하고 있으며 사적 제 234호로 지정되어 있다.

한강가에 위치해 남북 교통의 요지에 쌓았던 이 산성은 높이 200m의 산꼭대기에서 시작하여

동남쪽으로 한강을 향하여 완만하게 경사진 산중턱 이상을 둘러서 약 1km 가량의 성벽을 쌓은 것이다.

 

산성의 대부분은 서울시에 속하지만 북쪽 성벽은 경기도 구리시에 접해 있다. 

이 산성은 『삼국사기』에 기록된 아단성(阿旦城)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기록에  의하면 백제 책계왕 28년(286)에 수리하였다는 기사와

396년에는 고구려 광개토대왕이 성을 빼앗았으며,

475년 백제의 수도 한성이 고구려군에 함락되었을 때 백제 개로왕이 이 성에서 피살되었다고 하고 있다.

또한 고구려 평원왕의 사위로 용맹을 날리던 온달장군이 이 아단성 밑에서 신라군과 싸우다가

화살을 맞아 전사했다고 한다.

 

대체적으로 아차산성은 백제에 의해 처음 만들어졌고, 

이후 신라가 관방시설로 이용하였다는 설이 유력하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태조가 아단을 아차(阿且)로 고쳐 아차성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아차산 일대의 보루군은 한성백제의 도성이었던 풍납토성과 한강 이남지역이 한 눈에 들어오는 곳에 있어,

한강을 사이에 두고 대치관계에 있었던 고구려와 백제의 긴장된 관계를 잘 보여주고 있다.

아차산을 필두로 이웃 용마산, 망우산, 봉화산, 저 멀리 상계동의 수락산까지

고구려는 대략 20여 개의 보루를 설치하였는데 산악지역 뿐만 아니라 한강변의 낮은 구릉에도

지금은 사라졌지만 구의동 보루와 자양동 보루가 있어 아차산 일대와 한강변 평지를 조망할 수 있었다.

이러한 보루들은 고구려 남진정책의 전초기지로 그 역할을 잘 감당하였다.

 

 

 

이러한 보루는 과연 어떤 모습이고

당시 이곳에 있던 병사들은 어떻게 활동하고 생활하였을까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응당 발굴조사 결과로 유추할 수 있겠다.

 

구의동 보루의 경우 소규모의 요새 건물이 추정되고 있다.

복원 조감도(그림)에서 그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구의동 산에 있는 홍련봉 보루에서는 최소 8개 이상의 건물지와 온돌 ․ 저수시설이 발굴되었는데

이는 봉우리에 긴 타원형 석벽을 쌓고 내부에는 온돌을 갖춘 막사형 건물과 저수시설이 있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바로 저수시설이다.

평지와 달리 산에 있는 경우 가장 곤란을 받는 것이 바로 식수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이 지역에는 적의 매복이 많았다고 볼 수 있다.

정찰과 일시적인 타격 등의 목적으로 서로의 정예군이 도처에 매복하는 곳으로

식수를 구하러 다니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그러기에 산 정상의 요새 부근에서 빗물을 받아다가 식수로 쓰기 위한 집수정 시설이 발견되는 것이다.

 

다만 아차산 정상부에 있는 제4보루는 이 일대 병사들의 본거지 역할을 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아차산 제4보루 복원 조감도(그림)에서 보듯이 현재의 중대급 규모의 건물이 세워졌다.

또한 무기류를 만들고 수리하기 위한 대장간 시설도 설치되어 있었다.

 

휴일 아차산에 올랐다. 산이 낮고 등산로가 평탄해서 남녀노소 부담 없이 등산할 수 있는 곳이다.

그렇지만 한강변으로는 여전히 높고 경사가 급한 절벽이 연이어 있었다.

산 정상부에 있는 제4보루에 서보니 한강 일대가 한 눈에 들어왔다.

이 일대를 차지하고 이를 지키기 위해 하루에도 수없이 접전을 치러야했던 역사적인 현장에서

한강은 오늘도 말없이 제 갈 길을 가고 있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사종민(서울역사박물관 교육대외협력과장)

2011.01.20  하이서울뉴스.  [서울역사기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