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켜(연재자료)

<조유전의 문화재 다시보기> 포항중성리 신라비

Gijuzzang Dream 2010. 10. 21. 13:17

 

 

 

 

 

 

 인부가 발견한 신라최고 비석 - 포항 중성리신라비

 

 

 

 

 

 

옛 비석이 발견되면 문헌사학자들을 흥분을 감추지 않는다. 왜 그럴까?

이유는 간단하다. 학자들은 비석에 새겨진 문자를 통해

그때까지 몰랐거나 의심되었던 당시의 일들을 해석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포항 중성리신라비(浦項中城里新羅碑)의 발견은 극적인 우연이었다.

 

이 비는 5월 포항시가 흥해읍 중성리 도로개설 작업장에서 주민생활개선사업을 벌이다 발견되었다.

도로변의 흙을 덤프트럭에 실어 나르고 있었는데

흙에 묻혀 함께 나온 이 비석은 그대로 길 옆에 방치돼 있었던 것이다.

이 마을에 살면서 일용 잡부로 일하던 김헌도씨가

이 돌의 모습이 비교적 평평하고 길이도 1m 정도에 지나지 않아 조경돌로 쓸모가 있겠다는 생각에서

새끼줄에 묶어 집으로 끌어다 놓았다.

 

그런데 비가 내려 빗물에 표면이 일부 씻기면서 글자가 보였다.

그래서 묻어 있는 흙을 물 조리로 뿌려가면서 빗자루로 쓸어 비문을 확인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모두 200자가 넘는 글자가 새겨져 있음을 확인하고 대학 교수에게 부탁해 판독하도록 했다.  

이 결과 이 비가 늦어도 서기 501년 아니면 그 이전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게 되었다.

 

이로써 포항중성리신라비는 1,500여년의 긴 잠에서 깨어 우리 눈앞에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지금까지 발견된 신라시대 비석 가운데 가장 오래됐다.

 

만약 김씨가 집으로 옮겨다 놓지 않았다면 트럭에 실려 어디론가 옮겨져 다시 땅속에 묻혔거나

아니면 다른 용도로 사용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철렁해진다.

 

삼국시대를 대표하는 비석으로는 집안에 있는 고구려 광개토대왕비가 있지만,

신라 진흥왕비는 북한산, 창녕, 마운령, 함초령에 척경비를 세웠다는 기록대로 모두가 확인됐다.

그러나 북한산순수비를 제외하고 비가 서 있었던 정확한 곳은 지금까지도 찾지 못했다.

 

그 뿐 아니라 삼국시대의 비석으로

경주 남산신성비, 영일 냉수리비, 울진 봉평비, 단양 적성비 등 신라비와

중원고구려비, 백제사택지적비가 있지만 하나같이 우연히 발견되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중성리신라비의 내용을 보면 한마디로 재산 분쟁에 따른 소송의 판결문인데

빼앗긴 재산에 대한 진상을 조사해 본래의 주인에게 돌려주고 후세에 본보기를 삼도록 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가시지 않는다.

 

당시 화강석에 한자를 새길 수 있는 사회였다면 분명 문서로 기록하면 되었을 것인데

왜 굳이 어렵게 돌에 새겨 보관했느냐는 것이다.

더구나 고구려, 신라, 백제 삼국은

모두가 하나같이 자신들의 역사서가 있었음이 알려져 있어 더욱 이해하기 어렵다.

삼국시대 사람들은 기록서가 없어질 것을 미리 알고 돌에 새겨두는 선견지명을 보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 2009/10/21 ⓒ한국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