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보다 더 한국을 사랑한 서양인, 헐버트
“나는 웨스트민스터 사원보다 한국 땅에 묻히기를 원하노라.” 평소에 이렇게 말하며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하다 한강변 마포나루 양화진 묘지에 묻힌 서양인은 누구일까. 격동기인 구한말에 한국에 와 개화, 계몽 활동에 앞장선 호머 헐버트(1863~1949) 박사다. 그가 작고한 지도 60년, 한 갑자(甲子)가 지났다.
헐버트 박사의 애틋한 ‘애한(愛韓)’ 정신이 한국인들의 기억에서도 거의 사라져가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이를 좌시할 수 없어 벌떡 일어선 의인(義人)이 있다. 그는 헐버트의 생애를 재조명하기 위해 수십 년 동안 열정을 바쳤다. 한국인을 위해 평생을 헌신하다 이 땅에서 숨진 헐버트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의리라 여겼기 때문이다.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 김동진 회장이 주인공이다.
금융인으로 일하며 틈틈이 헐버트의 삶을 연구한 김 회장은 최근 오랜 집념의 산물인 ‘파란눈의 한국혼 헐버트’를 출간했다. 안정적인 일상을 보내던 금융인 김동진은 무엇 때문에 헐버트에 몰두하게 되었을까.
청년 시절, 김동진은 우연히 헐버트의 저서 ‘대한제국멸망사’를 읽고 가슴이 쿵쾅거렸다. 벽안(碧眼)의 서양인이 그렇게 방대하고 치밀한 한국 역사를 기술했다는 점에서 놀랐고 또 그에 대해 존경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애정이 없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김동진은 헐버트의 업적을 정리하는 것이 자신의 운명적인 사명임을 직감했다. 그때부터 주경야독의 생활이 시작됐다. 직장 일을 마치고 나면 헐버트와 관련된 자료를 모으고, 읽고, 정리했다. 헐버트의 모교인 미국 다트머스 대학, 컬럼비아 대학 등을 방문해 도서관에서 자료를 찾느라 며칠을 보내기도 했고 ‘뉴욕타임스’ 등 신문과 잡지의 100년 전 기사들을 뒤지느라 밤을 새우기 일쑤였다. 한국에서는 서울대의 한국교육사고(史庫), 독립기념관, 고서점가 등을 훑었다. 적잖은 사재가 들었다.
1989년 케미컬은행의 미국 뉴욕 본사에 근무하던 김 회장은 헐버트의 맏손자를 극적으로 만났다. 맏손자로부터 헐버트의 생애와 관련한 귀중한 자료를 얻고 증언을 들었다. 연구하면 할수록 헐버트는 귀감이 될 만한 인물이었다. 1999년 김동진은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를 만들어 박사의 업적을 알리고 후손들을 한국에 초청하는 등의 사업을 전개했다.
고종, 몸소 영어 문제 낭독
이 책은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헐버트 박사님 영전에 이 책을 바칩니다’라는 헌사(獻辭)로 시작한다. 헐버트의 삶의 궤적을 살펴보자.
1863년 미국 버몬트 주 뉴헤이번의 명문가에서 태어난 헐버트는 다트머스 대학을 졸업하고 유니언 신학대학을 2년간 다녔다. 한국 최초의 근대식 관립학교인 육영공원 교사로 부임하러 1886년 7월4일에 한국 땅에 발을 디뎠다. 그때 서울에는 콜레라가 창궐해 도성 안팎에서 매일 2000여 구의 시체가 치워졌다. 콜레라 공포, 장마와 불볕더위 속에서 개교를 서둘렀다.
미국에서 온 교사는 헐버트, 벙커, 길모어 등 3명이었다. 고종의 관심 속에서 훗날 ‘매국노’의 대표 인물이 되는 이완용 등 학생들이 입학했다. 헐버트는 5대양 6대주 지도를 보여주며 학생들에게 넓은 세계를 설명했다. 영어 발음을 제대로 익히게 하는 데 주력했으나 일부 학생은 엉터리 발음을 도저히 고치지 못했다. 하루에 외워야 하는 문장을 나눠주고 암송을 마치지 못하면 집에 보내주지 않았다. 영어로 일기를 쓰는 연습도 시켰다.
고종은 육영공원 수업을 참관하기도 했으며 경복궁에 학생들을 불러 영어시험을 치르도록 하기도 했다. 고종이 영어 문제를 직접 읽어 학생들이 답안을 작성하는 일도 있었다. 고종은 영어 문장을 읽을 줄은 몰랐으나 한글로 표기된 문제를 낭독했다는 것이다. 헐버트는 이때 영어 발음을 표기하는 한글의 우수성을 깨닫고 한글을 본격적으로 연구한다.
헐버트는 1888년 9월 결혼을 하려고 미국에 잠시 갔다가 신부와 함께 한국으로 곧 돌아온다. 헐버트는 안정된 생활을 누리게 되자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체계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한다. 그는 매우 학구적인 인물이었다. 한국의 역사, 지리를 공부하는 한편 학생들에게 가르칠 교과서를 한글로 집필했다. 1889년에 탄생한 ‘사민필지(士民必知)’라는 교과서가 그것인데 ‘선비와 백성 모두가 반드시 알아야 할 지식’이라는 뜻이다. 세계 지리, 천체, 각국 정부 형태, 풍습, 산업 등 다양한 분야를 망라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순 한글 교과서다. 이 교과서를 대중용으로 손질해 1891년 초판 2000부를 인쇄했는데 이는 당시로는 엄청난 부수였다.
- 고승철, 저널리스트 - 2010.09.01 통권 612호(p618~621) 신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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