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한 이후에 제작되는 많은 전도들은 정상기의 대전도를 바탕으로 축소한 것들인데,
도리도표(道里圖表)에 수록된 전도(全圖),
19세기 전반에 제작된 목판본 〈해좌전도(海左全圖)〉등이 대표적이다.
이처럼 정상기의 <동국지도>는 그의 후손과 다른 지도제작자들에 의해 수정, 보완되면서
조선후기 지도사의 큰 흐름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1834년 제작된 김정호의〈청구도(靑邱圖)〉도 바로 정상기의 동국지도를 바탕으로
수정, 보완되었던 전도였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조선시대 지도학의 금자탑이라 할 수 있는
1861년 김정호의〈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는 그의〈청구도〉를 바탕으로
보완 · 발전시킨 것인데 이 역시 그 뿌리를 거슬러올라가면
정상기의 <동국지도>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구한말 일본을 통해 근대식 지도제작의 기법이 서서히 도입될 때에도
정상기의 지도는 여전히 정부에 의해 제작되는 각종 전도의 기본도로 사용되고 있었음을
감안할 때, 동국지도가 조선후기 지도사에 미친 영향은 지대했다고 볼 수 있다.
근대적 지도제작기술이 도입되기 이전에 제작된 동국지도와 같은 전통시대의 지도들은
현대의 지도와는 제작기술이나 표현방식 등에서 많은 차이가 있다.
단순히 정확도의 관점에서 전통시대의 지도를 평가한다면
여전히 미숙한 지도에 불과할 것이다.
정상기의〈동국지도〉도 이로부터 자유롭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과거 하나의 지도가 탄생하기까지에는
뛰어난 지도 제작자의 독창적인 노력도 있었지만 역사적으로 축적된 많은 경험과
당시 사회에서 공유되고 있던 지식과 관념들이 뒷받침되어 있다.
그만큼 지도는 회화와 같은 예술작품과는 다른 강한 사회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동국지도>는 비록 정상기 개인의 역작이라 할 지라도
그 속에는 조선시대에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던 지도제작의 문화적 역량이 담겨져 있으며
우리의 국토에 대한 애착과 자부심을 표현하려 했던 선조들의 땀이 배어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