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아가는(문화)

양력으로 바뀐 설날 음력 설에 담긴 과학적 의미

Gijuzzang Dream 2010. 2. 20. 03:00

 

 

 

 

 

 

양력으로 바뀐 설날 음력 설에 담긴 과학적 의미

 

45일이 사라졌다…

 

 

 

 

1895년의 고종실록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상한 점을 하나 발견할 수 있다.

11월 16일까지의 기록만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하루에도 몇 개씩의 기사가 실리는 실록인데, 어떻게 약 45일치의 기록이 통째 빠져 있는 걸까?

그 해답은 바로 전날인 11월 15일자의 고종실록에 나온다.

그날 기사 내용을 살펴보면 단발령을 시행하며,

개국 후 줄곧 사용했던 중국의 연호를 버리고 주체적으로 건양이란 연호를 사용한다고 되어 있다.

조선의 제26대 임금

고종황제 

또 “정월 초하루를 이미 고쳐 태양력을 쓴다”는 내용도 나온다.

이는 그때부터 음력을 버리고 양력을 사용한다는 의미이다.

음력 1895년 11월 16일의 바로 다음날이 양력 1896년 1월 1일이 된 것이다.

‘건양(建陽)’이란 연호는 양력을 새로 세운다는 뜻이다.

첫 양력 설을 맞은 1896년 1월 1일자의 고종실록을 보면

“음력 을미년(1895년) 11월 17일”이라는 표시와 함께

“각부 대신들과 각국의 공사들이 고종에게 새해 문후를 하였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이런 칙령이 내려진 것은 친일파인 김홍집 내각의 을미개혁으로 인해서였다. 당시 일본은 을미사변을 일으켜 명성황후를 시해하고 김홍집 내각을 앞세워 조선의 사회체제를 일본과 동일하게 만들려고 이런 개혁을 추진했다.


 


우리 고유의 달력은 태음태양력

이날 양력으로 개정되기 이전까지 우리 민족이 줄곧 사용해온 ‘음력’은

달의 차고 기우는 모습을 기준으로 만든 달력 체계이다.

달이 태양과 일직선상에 있어 전혀 보이지 않는 합삭일로부터 다음 합삭일까지를 한 달로 하는데,

달이 지구 주위를 한 바퀴 도는 데엔 약 29.53일이 걸린다.

때문에 음력의 한 달은 대체로 29일과 30일이 반복된다.

‘음력’은 달의 차고 기우는 모습을 기준으로 만든

달력 체계이다. 

음력의 1년은 354일밖에 되지 않아 실제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도는 365.24일보다 11일 가량이 짧다.

이런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음력에는 19년에 윤달이 7번 들어간다.

또 태양을 기준으로 하는 입춘, 우수 등의 24절기도 도입했다.

24절기는 태양이 움직이는 길인 황도를 15도 간격으로 나눠

태양이 각 점을 통과하는 시기를 나타낸다. 이 24절기의 도입으로 계절의 변화와는 잘 일치하지 않은 음력의 결점을 보완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 조상이 사용한 음력은 순수하게 달의 운동만을 기준으로 삼은 ‘순태음력’이 아니라 계절에도 맞춘 ‘태음태양력’이었다.


 


새해 첫날은 동지가 되어야

하지만 태양의 운동주기에 맞춰진 양력도 아주 과학적이지는 않다.

우선, 태양력이라면 ‘동지(12월 22일)’를 새해 첫날로 삼아야 했었다.

동지 이후부터 태양이 새롭게 생명력을 갖고 낮의 길이가 길어지기 때문이다.

즉 달을 중심으로 따지면 동지가 초승달인 셈이다.

그런 이유로 우리 조상들은 동지 때 찹쌀가루로 만드는 새알심을 자기 나이만큼 빚어 동지 팥죽을 먹어야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고 여겼다.

로마제국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 

양력에서 지금의 1월 1일이 정해진 것은 교황 그레고리 13세가 부활절 날짜를 바로잡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365일을 12개월로 나누는 규칙에서도 양력은 매우 비과학적인 면을 지니고 있다. 7월(July)은 로마 시대의 권력자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졌고 8월(August) 역시 아우구스투스의 이름을 땄다.

그러나 아우구스투스는 자기 삼촌인 율리우스의 이름을 딴 7월이 31일인데 자신의 이름을 딴 8월은 30일밖에 없는 것에 불만을 품고 8월도 31일로 만들었다. 덕분에 양력의 한 달은 28일에서 31일까지로 들쭉날쭉해져 버렸다.

이 같은 이유로 1930년대에 엘리자베스 아켈리스(Elizabeth Achelis) 세계달력협회장은 양력을 고쳐 이상적인 달력을 만들려는 시도를 한 적도 있다.


 


시간의 처음과 끝은 인간의 구분

하지만 양력이 더 과학적이니 음력이 더 낫다는 등의 비교는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음력은 나름대로 당대 기준에서 최고의 과학이었으며,

우리가 지금 주로 양력을 사용하는 것은

현대 사회에서 달의 움직임보다는 한 해의 주기와 계절의 변화가 중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설의 의미는 선(立) 날, 즉 ‘선다’에서 유래했다고도 하며, 낯설다는 뜻이라고도 한다.

또 삼가다 혹은 몸을 사린다는 뜻의 옛말인 ‘섧다’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어쨌든 설은 그저 기쁜 날이라기보다는 한 해를 새로 시작하며 조심스럽게 첫 발을 내딛는다는 의미를

지닌다.

인간의 입장에서 양력과 음력을 따지고 한 해를 새로 시작하는 설이란 명절을 정했을 뿐이지

사실 우주의 시간은 시작과 끝의 경계가 없다. 이 아득함 속에서 설은 그저 하나의 매듭 역할을 할 뿐이다.

이번 설도 각자의 매듭을 단단히 여미는 날이 되었으면 한다.

 

- 2010년 02월 12일 ⓒ Science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