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혼천시계"는 인류의 보물
새 1만 원권 지폐에
송이영(宋以穎)이 1669년(현종 10)에 만든 혼천시계(국보 제230호)의 혼천의(渾天儀) 부분과
조선의 천문도 천상열차분야지도(국보 제228호) 및 한국천문연구원의 1.8m 천체망원경 그림이 포함됐다.
혼천시계에는 시간을 알려주는 자명종과
시보(時報)장치, 천상(天象)의 운행을 자동으로 작동시키는 혼천의가 있다.
혼천의는 동아시아에서 전통적으로 사용한 천문의기(天文儀器)로
천체의 위치를 측정하고 시간과 절기를 측정할 수 있다.
고대 중국의 우주관인 혼천설(渾天說)을 구상한 모형으로 밑받침 위에
3층짜리 둥근 고리 형태의 각종 환으로 구성됐다.
복잡하게 보이지만 좌우 대칭을 이루는 구조가 안정된 모습이어서 신비한 우주를 연상시킨다.
천체를 관측하는 혼천의는 왕권을 상징하며 왕도정치사상을 구상화한 상징적인 도구로
유교적 정치이념을 구상한 천문의기였다.
조선의 역대 왕은 다양한 형태의 혼천의와 혼천시계를 제작했다.
명망 높은 유학자는 제각기 혼천의를 만들어 후학이 천문(天文)을 살펴 천상의 운행을 이해하도록
교육용으로 사용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도(道)의 원리를 이해하려는 유학자에게 혼천의(혼상)는 중요한 학습도구의 하나였다.
혼천시계에서는 시계의 동력장치가 혼천의의 극축과 연결된다.
시계가 움직이면 혼천의의 장치가 하늘의 움직임을 자동으로 보여준다.
혼천시계의 구조는 시계 부분과 혼천의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시계 부분에는 동력을 제공하는 두 개의 추가 있는데
하나는 시계를 작동시키고 또 하나는 타종장치를 작동시킨다.
시계장치에는 진자를 이용한 탈진장치, 시간을 알려주는 시패(時牌)와
구슬장치로 신호를 보내서 종을 치게 하는 타종장치가 있다.
구슬을 이용한 신호장치는 우리 과학기술의 전성기였던 세종 때 장영실이 만든 자격루의 전통을 잇는다.
진자를 이용한 탈진장치는 서양에서 1657년 처음 개발했다고 알려진,
당시로는 최첨단인 서양식 기계시계의 장치를 이용했다.
혼천시계의 혼천의는 천문을 관측하는 것이 아니고 시계와 연결되어 하늘의 움직임을 보여준다.
혼천의의 안쪽 고리 중에서 삼신의(三辰儀)는 하루에 한 바퀴 회전한다.
삼신의에는 28수(宿) 별자리를 표기한 하늘의 적도가 있다.
황도환에는 태양이 실에 매달려서 매일 1도씩 움직여 1년이 지나는 동안 해당 절기(당시 양력의 개념)를
알려 준다.
백도환에 연결된 달의 위상변화장치는 음력 날짜에 해당되는 합삭과 초승달, 상현달, 보름달, 하현달의
모습을 보여준다. 아쉽게도 국보 제230호인 혼천시계에는 달을 보여주는 장치가 훼손돼 없어졌다.
혼천시계에 관해 책을 집필한 중국 과학사의 대가인 영국의 조지프 니담 교수는
“조선의 혼천시계는 동아시아 시계사에서 획기적인 유물로 전 세계에 널리 알릴 만한 가치가 있다”고
극찬했다. 송이영이 만든 혼천시계는 조선의 전통적인 시계기술의 축적과 천문학적 원리를 바탕으로
당시 서양의 최첨단 기계시계(진자 사용) 기술을 집약했다.
동서양 자동시계의 주요한 특징을 잘 조화시킨 새로운 모델의 천문시계이며
17세기 최신 세계지도까지 반영해 창조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혼천시계는 서양과 중국, 일본에도 없는 한국의 독창적 창제품(創製品)이며
세계에서 유일하게 현존하는, 인류의 소중한 과학문화재이다.
우리는 지갑 속의 1만 원권 지폐를 꺼내 만질 때마다 선조의 과학정신을 느껴볼 수 있다.
- 이용삼 충북대 교수 · 천문우주학
- 2008년 07월 14일 ⓒ The Science
조선시대 ‘과학의 정수’ 다시 숨을 쉬다
"드디어 돌아간다! 시계가 돌아가고 종소리가 울린다!”
1669년 제작된 국보 제230호 혼천시계(渾天時計)가 336년 만에 원형으로 복제돼 작동하기 시작했다.
이용삼(천문학) 충북대 교수, 이용복(천문학) 서울교대 교수,
과학문화재 연구복원기관인 ‘옛 기술과 문화’의 윤명진 대표와 김상혁 연구실장 등으로 구성된
혼천시계 연구팀이 서울시과학전시관의 의뢰를 받아 1년간의 실험 끝에 성공한 것이다.
지난해 여름 실험을 시작한 연구팀이 혼천시계의 완벽한 복제품을 만들어 작동에 성공한 것은
지난달 초. 그 후 연구팀원들은 매일 24시간 혼천시계를 지켜보며 오차를 점검하고 수정하는 데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그 결과 혼천시계는 24시간에 3분 이내의 오차만 보이며 돌아가고 있다.
혼천시계의 작동을 지켜본 전상운(全相運 · 한국과학사) 문화재위원은
“고려대 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국보 혼천시계의 일부 부품이 훼손돼 있어 그동안 추론만 해왔다”면서
“이번 작업으로 혼천시계의 작동 메커니즘을 완전히 파악하게 됐다”고 말했다.
전 위원은 “1960년대 말 미국 스미스소니언박물관이 특별전시 및 복제품 제작을 건의했을 정도로
혼천시계는 탁월하고 유명한 과학 문화재”라면서
“이번 작동 성공은 우리 전통과학의 우수성을 입증한 쾌거”라고 평가했다.
연구팀은 27일 서울 성북구 동선동 성신여대 앞에 위치한 ‘옛 기술과 문화’의 지하 전시실에서
발표회를 가질 예정이다. 8월 초부터는 서울 관악구 봉천동 서울시과학전시관에 복제품을 전시한다.
혼천시계란
혼천시계의 나무상자 속에 들어 있는 시계 부품.
왼쪽에 있는 추(점선 안)의 동력에 의해 톱니와 진자가 움직이고
이것이 오른쪽의 원판을 움직이게 하면서 시간을 알려주게 된다.
혼천시계는 조선 현종때의 천문학자 송이영(宋以穎)이 1669년 만든 천문시계.
추의 움직임에 의해 진자가 작동하는 서양식 자명종의 원리를 이용한 기계식 시계다.
진자를 이용한 시계가 서구에서 발명된 것은 1657년.
서구보다 불과 12년 늦게 자체적으로 진자시계를 만든 셈이다.
추의 동작으로 진자를 움직이면 자(子) 축(丑) 인(寅) 묘(卯) 등 12지(支)의 팻말이 나타나
시간을 표시해 주고 매시 정각 종을 울린다.
동시에 시계 장치가 바로 옆의 혼천의(渾天儀)에 연결되어 해와 달 등 천체의 움직임까지 보여준다.
영국의 과학사학자인 조지프 니덤 씨는
1980년대에 “세계 유명 박물관에 꼭 전시해야 할 인류의 과학문화재”라고 극찬한 바 있다.
시계 부분은 나무상자 속에 설치돼 있고 그 옆에 혼천의가 연결되어 있다.
나무상자는 가로 120cm, 높이 98cm, 폭 52cm. 혼천의의 지름은 40cm이며
중심에 위치한 둥근 지구의(地球儀)의 지름은 약 8.9cm다.
- 이광표 동아일보 기자, 2005년 07월 20일
340년 만에 복원한 혼천시계
조선시대 ‘혼천시계(渾天時計)’가 340년 전의 원형 그대로 복원됐다. 국립중앙과학관은 17일 무거운 추가 내려갈 때 생기는 에너지로 움직이는 조선시대 혼천시계를 원형 그대로 복원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국보 230호인 이 시계는 1669년 처음 만들어졌으며 태양의 위치와 날짜 등을 알려주는 달력에 해당하는 ‘혼천의’와 시간을 알려주는 시계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무거운 추가 하루(약 24시간)에 걸쳐 서서히 내려가며 시계와 혼천의를 가동한다. 추가 내려가며 만드는 에너지는 톱니바퀴 여러 개가 맞물려 돌아가는 ‘탈진장치’로 전달된다. 탈진장치는 톱니바퀴가 돌아가는 속도를 일정하게 유지시켜 시계의 정확도를 높여준다. 자시에 해당하는 밤 11시에 9번 종을 치고 2시간마다 종소리가 한 회씩 줄어들다가 오전 11시가 되면 다시 9번 종을 친 뒤 종소리가 한 회씩 줄어든다.
국립중앙과학관 과학기술사연구실 윤용현 연구관은 “복원된 혼천시계는 매일 특정한 시간에 추를 위로 올려주기만 하면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으며 하루에 발생하는 오차는 1∼2분”이라고 설명했다. 관람객이 직접 시계장치의 핵심부품을 조작해 볼 수 있는 ‘혼천시계 작동원리 체험관’도 별도로 운영된다. - 2009년 08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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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사회에서 하늘의 움직임을 살펴 역법을 제정하고
하늘의 이치를 살펴 농사에 필요한 시(時)와 때(날짜)를 알려주는 일은
국왕이 실천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덕목 중 하나였다.
세종시대에는 1432년부터 1438년까지 다양한 천문관측기기와 시계를 제작해
정밀한 천문시계 기술을 갖추게 된다.
당시에는 앙부일구 현주일구 천평일구 정남일구를 비롯한 해시계와
해와 별로 시간을 알 수 있었던 일성정시의를 개발했다.
자동시보장치를 갖춘 자격루, 혼천의와 혼상이 물의 힘으로 운행하는 천문시계를 제작했다.
장영실이 세종을 위해 만든 옥루라는 물시계는 당시의 모든 기술을 집약한 첨단 시계장치였다.
15세기 조선의 시계제작 기술은 당시 세계적 수준인 이슬람 및 중국과 동등한 위치에 오르게 됐다.
중국은 명(明)에서 청(淸) 왕조로 교체되면서
대통력(大統曆)을 대신하여 서양의 역법인 시헌력(時憲曆)을 사용했다.
조선에서도 1654년부터 시헌력을 시행하면서 새로운 역법에 부합하는 천문시계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당시 서양에서는 14세기부터 17세기까지 기계식 톱니 기어를 갖춘 추동력의 시계를 사용했다.
시간의 정밀성을 높이기 위해 추동력을 일정한 속도로 내려가도록 하는 기술적 해결이 필요했다.
당시에 사용하던 폴리오트 방식의 시계장치를 획기적으로 개선한 사람이 크리스티안 하위헌스이다.
그는 1657년 세계 최초로 진자장치를 이용하여 정밀한 시계를 제작했다.
놀랍게도 이 진자장치는 1669년 조선으로 건너와 혼천시계의 동력장치로 사용됐다.
1669년에 제작한 혼천시계는
조선에서 발전시킨 혼천의 제작기술과 서양식 자명종의 동력을 결합해 제작한 독창적인 천문시계이다.
이 천문시계는 조선시대 관상감(당시의 천문기관)의 천문학교수였던 송이영이 만들었다.
그는 서양의 자명종을 연구하여 혼천의와 결합해 획기적인 시계를 발명했다.
송이영은 당시의 천문역법인 시헌력을 시행하는 데 높은 지식을 겸비했고
천문관측에 능통했던 대표적인 천문학자이다.
혼천시계는 홍문관(당시의 학술기관)으로 보내져
여러 학자가 천체운행의 원리와 서양 역법의 이해, 천문관측과 시간측정 교육에 활용했다.
조선 후기에도 시계제작의 전통은 이어졌다.
1762년 홍대용은 자신의 집에 농수각이라는 천문대 시설을 갖추고
혼천의와 자명종을 결합하여 혼천시계를 제작했다.
19세기 초에도 강이중과 강이오가 혼천시계를 만든다.
강이오의 아들인 강건과 강윤은 여러 가지 휴대용 앙부일구(해시계)를 제작했다.
강건과 강윤의 자제도 앙부일구를 제작했다.
집안 대대로 시계를 제작한 것은 조선시대 과학기술사에서도 대단히 특별한 일이다.
조선시대의 시계제작 기술은 오늘날의 연구자에게 계승됐다.
2005년 국내외 학자의 축적된 연구 성과로 실제 움직일 수 있는 혼천시계 모델을 완성했다.
이후 혼천시계 부품에 대한 개선 연구와 고증 절차를 통해 이달에 새로운 혼천시계를 복원했다.
세계 시계제작사의 측면에서 매우 희귀하고 중요한 유물이고,
선조들의 과학적 창의성이 뛰어난 과학기기이며, 과학문화 유산의 복원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혼천시계의 복원전시로 전통과학기술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고
미래 과학기술의 토대를 이루는 계기를 마련했다.
국립중앙과학관을 찾는 관람객은 혼천시계와 혼천시계의 과학원리를 활용한 체험시설을 통해
이런 의미와 재미를 함께 느낄 수 있다.
- 김상혁 중앙대 강사 혼천시계 복원 참여연구원
- 2009년 8월 27일 ⓒ The Sci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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