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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포터에서 비틀즈까지 :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의 본령, 영국의 NT운동

Gijuzzang Dream 2009. 10. 31. 23:51

 

 

 

 




 

영국 내셔널 트러스트(NT)운동의 특성과 방식

 

잉글랜드 서북부에 위치한 레이크 디스트릭트(Lake District)라는 지역은

시인 워즈워드가 살면서 주옥같은 시를 썼던 곳으로 유명하다.

빼어난 자연풍광 덕택에 이곳은 영국의 1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이는 내셔널트러스트(National Trust=NT)란 시민보전단체가

그 곳의 많은 땅을 소유하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 단체가 많은 땅을 가지게 된 것은

베아트릭스 포터(Beatrix Potter)란 사람이 1943년 죽으면서

전 재산을 영구보전을 위해 기증했기 때문이었다.

 

‘미스 포터’란 영화의 실제 인물인 베아트릭스 포터는

토끼를 의인화해 그림으로 만든 동화, 그 유명한 ‘피터 래빗(Peter Rabbit)의 이야기’ 저자다.

20세기 팝 그룹을 대표하는 비틀즈는 영국 리버풀 출신이다.

비틀즈 멤버 중 존 레논(Johh Lennon)이 5살부터 18년간 살았던 멘딥스(Mendips)집은

현재 내셔널 트러스트가 소유 · 관리하고 있다.

아내인 오노 요코(Ono Yoko)가 2000년에 구입한 뒤 내셔널 트러스트에 기증했다.

‘리버풀 사람들과 존 레논, 그리고 전 세계의 비틀즈 팬들을 위해 이 집을 보존하고 싶다’는 게

오노 요코가 기증하게 된 이유였다.

초기 비틀즈 음악의 산실이면서 레논의 생애사를 담고 있는 멘딥스는

이렇게 해서 내셔널트러스트의 관리 하에서 영구히 보전되고 있다.

 

영국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은 지금까지 크게 4 단계를 거치면서 발전해 왔다.

첫째(1895~1907년)는 토지보유에 의한 보전이란 운동론이 최초로 형성되던 단계다.

둘째(1907년~1920년대)는 1907년 국민신탁법(The National Trust Act)의 제정에 의해

국가적 지지를 얻고 조직의 권한이 정비되던 단계다.

셋째(1930년대~1950년대)는 1931년 재정법(The Finance Act) 제정으로 토지 집적이 용이해지면서

자산보유단체로 특화되고, 아울러 1937년부터 전원주택보전사업(Country Houses Scheme)을 추진한

결과로 사회적 위상이 공고해진 단계다.

넷째(1960년대부터 현재)는 1956년에 시작된 ‘넵튠사업(Enterprise Neptune, 해안선보전운동)’에

전 국민이 참여하면서 회원이 급증하여 지금과 같은 조직으로 자리를 잡아가는 단계다.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의 첫 성과는

출범 이듬해인 1896년 서섹스(Sussex) 지방의 알프리스톤(Alfriston)이라는 마을에 소재한

오래된 사목관(Clergy House)의 매입이었다.

쓰러져가던 이 건물을 매입하는 데 10 파운드가 들었지만 수리에 30배인 300파운드가 소요되었다.

모든 비용은 처음부터 모금운동을 통해 조달되었는데, 이 자체가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이 되었다.

 

영국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의 발전은 회원증가 추세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1895년 출범 당시 회원수는 100명에 불과했고,

50년 뒤인 1945년까지만 해도 7,850명이었지만,

1956년 넵튠운동이 시작되면서 급증하기 시작해

1960년 9만7천, 1970년 22만6천명, 1981년 100만에 달한 후 2008년 356만 명이 되었다.

특히 지난 5년간 회원 수가 무려 100만 명이 증가했고

재정도 20% 흑자를 이룩할 정도로

최근에 올수록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의 성과는 더욱 괄목하다.

19세기 운동이면서 21세기 운동으로서 성과를 거둘 수 있는 것은

최소 100년 이상을 내다보는 영국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의 독특한 방법 덕택이다.



환경 및 문화 자산의 국민 트러스트화

 

2007년 현재, 영국 내셔널트러스트는 전 국토의 1%에 해당하는 25만 헥타르,

1호 국립공원(Lake District)의 30%, 전국 해안선의 10%인 700마일, 역사적 건물 166개, 정원 160여 곳,

성 19개, 산업유산 47개, 교회건물 49개, 선술집 및 여인숙 건물(Pubs and Inns) 35개,

선사 및 로마시대 유적 9곳, 경관공원 73곳, 유기농 농장 700여개,

기타 건물 2만5천여 채(이중 5천 채는 일반가옥과 전원주택), 소장 문화예술 품 100만여 점,

법정 보호종의 50%, 보전습지의 16% 등을 소유 · 보전하고 있다.

이 방대한 자연 및 문화유산을 보전하기 위해

연간 3억8천만 파운드(약 8천 억원, 2007~8년 기준)의 수입을 가지고,

직원 4,300명, 자원봉사자 43,000여명, 회원 340만 명이 전국에 걸쳐 활동하고 있다.

 

영국 내셔널트러스트는 영국의 최대 NGO이면서 세계적으로 규모가 가장 큰 회원(보유)단체에 속한다.

이러한 활동상은 1960년대 이후 급성장하면서 다져진 것이지만,

사실 100여 년 이상 축적해 온 경험과 시행착오를 거쳐 얻은 값진 성과다.

 

영국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의 진정한 성과는

자연 및 문화유산을 단지 많이 보유하고 있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이 많은 유산을 시민이 자발적으로 영구히 지켜가는 데 있다.

이것의 가능성은 이른바 ‘양도불능의 원칙’에 있다.

내셔널트러스트란 이름으로 확보한 자산은

자연유산, 문화유산 관계없이 어떤 경우에도 소유의 양도가 불가능하다.

이는, 1907년 의회입법으로 제정된 ‘국민신탁법’에 의해

내셔널트러스트란 ‘민간’단체에게 부여된 보전을 위한 최고의 ‘공적’ 권한이다.  

 

이러한 법적 장치에 의해 두 가지 보전의 효과가 생겨나게 되었다.

하나는 사실상의 영구보전이다.

이는 ‘어떤 경우도 양도를 할 수 없는’ 제한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시민들의 자발적 기부·기여·기증으로 확보되고 시민들의 자발적 노력으로

‘영구히 보전됨으로써’, 자연 및 문화유산의 범주 중에서

이른바 ‘시민유산(Civic Heritage)’이란 부분이 생겨났다.

시민유산은 국가의 것도 개인(기업포함)의 것도 아닌,

국가와 개인 사이에 있는 제3 주체(집합적 주체)로서 ‘시민들’이 공동으로 소유한 자산을 의미한다.

일종의 공동체 자산 혹은 사회적 자산인 셈이다.

양도 불능의 ‘시민자산’이기 때문에 영국 정부도 함부로 손대지 못한다.

 

부득이하게 트러스트 자산에 변경을 가하거나 처분을 해야 할 경우는

‘시민유산’인 만큼 시민들한테 의사를 물어봐야 한다. 이 때 시민은 영국 의회를 가리킨다.

의회 2/3의 동의가 있을 때 이러한 조치가 가능하지만,

지난 100년의 역사 동안 이러한 사례는 2~3건에 불과하다.

 

영국 내셔널트러스트가 ‘매입과 소유’의 방식으로 보전을 추구하되

양도불능의 법적 틀을 처음부터 갖추게 된 것은 운동 창시자들이 겪었던

‘앞선 보전운동들의 쓰라린 좌절’ 때문이었다.

출범 전 이들은 ‘사적 소유제’ 하에서 이루어지는 각종 개발의 상황에선

유산의 보전이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일련의 운동 실패를 통해 뼈저리게 체험했다.

 

그러나 영구소유만으로 유산의 아름다운 가치가 자동적으로 보전되고

국민 모두가 향유할 수 있는 것이 되지 않는다.

여기에 영국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의 또 다른 비법들이 있다.

 

영국 내셔널트러스트는 자연유산과 문화유산을 함께 묶어

보전을 해 왔다.

자연과 문화의 구분이 갈수록 모호해지는 오늘날의 현실을

감안하면,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이 19세기 운동이면서

21세기 운동으로 성공할 수 있는 비결의 하나가

바로 자연과 문화를 구분하지 않고

통합적으로 보전하는 운동 방법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영국 내셔널트러스트는

보전 자산의 매입만큼이나 유산으로서 가치를 엄격하게

관리 · 보전하는 데도 많은 자원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자산의 매입과 자산의 보전관리가 연동됨으로써

시민유산으로서 영구보전이 실현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신규 자산의 매입보다 보유하고 있는 자산의 보전관리에 더 역점을 두고 있다.

2007~8년 기준으로 볼 때, 보전자산의 매입에 전체예산의 1.9%(약 140억원)를 지출했으나,

보전자산의 관리에는 44.6%(약 3천2백억원)를 투여했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성금, 기부, 기증으로 인한 ‘신탁의 다양화’

 

영국 내셔널트러스트가 시민유산의 가치를 지키는 방법의 또 다른 차별성은

유산을 ‘일상적으로 활용하면서 보전’하는 점이다.

내셔널트러스트는 보유하고 있는 대부분의 보전지를 시민들한테 개방해

시민유산의 관람 · 이용 · 활용을 다양하게 허용하고 있다.

이를 통해 영국 내셔널트러스트는 ‘살아 있는 유산’으로 가치를 지켜갈 뿐 아니라,

무엇보다 ‘문화상품 혹은 환경상품’에 준하는 경제적 가치를 창출한다.

또한 이용과 활용을 통해 시민들의 보전의식을 고취시키면서,

동시에 문화 향수권을 충족시켜 시민들의 삶의 질을 높여 준다.

 

영국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의 이 모든 가능성은

운동이 처음부터 끝까지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에 의해 이루어지는 데 있다.

시민들은 스스로의 호주머니를 털어 지켜야 할 보전자산을 확보하는 데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또한 자발적인 노력 봉사를 통해 확보한 보전자산을 시민유산으로 가꾸고 지켜가는 데도

자발적으로 참여한다.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을 가동시키는 엔진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점에서 현세대와 미래세대가 함께 그 가치를 공유하는 자연 및 문화유산을

시민들의 자발적 노력으로 지켜가는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은

이 시대 우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시민보전운동’이라 할 수 있다.   


- 조명래  단국대 교수, 한국 내셔널트러스트 이사  / 사진, 한국내셔널트러스트 

- 문화재청, 월간문화재사랑, 200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