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주짱의 하늘꿈 역사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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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셔널 트러스트(National Trust) 운동 - '문화유산국민신탁'

Gijuzzang Dream 2009. 10. 31. 23:50

 

 

 

 

 

 




 

‘땅 한 평 갖기’운동에서 시작된 내셔널 트러스트 운동

 

 “See The Unseen” 최근 매스컴에서 자주 접했던 어느 통신사 광고의 헤드 카피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라’는 이 한 문장을 인상적으로 기억하는 까닭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일’이 쉽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일. 그것은 쉽게 보이지 않는 것의 의미를 읽는 일,

지금은 미처 보이지 않는 가치를 ‘믿는 일’이라는 함축적인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윗세대들이 우리에게 물려준 많은 문화유산의 의미와 가치도 쉽게 보이지 않는다.

특히 판단의 잣대가 경제적인 가치 또는 돈이 되기 십상인 요즘 시대에선

낡아 허물어져 폐가처럼 버려진 옛집이나 흙먼지 날리는 작은 옛길,

땅값 오르지 않는 오래된 숲 같은 것들은 종종 허물고 밀어버려야 하는

‘낡고 쓸모없는 것’으로 취급받기도 한다.

 

그런데 그 한편에선 지금은 버려진 것들의 가치를 일깨우는 움직임이 있다.

문화유산과 자연환경을 국민의 뜻과 힘을 모아 보전해 나가자는 ‘국민신탁운동’도

그런 움직임의 하나다.

‘개발’과 ‘보존’ 사이의 해묵은 갈등을 ‘국민신탁’이라는 제3의 대안으로 풀어나가자는 움직임이다.

 

국민신탁. 언뜻 무슨 투자신탁을 연상케 하는, 조금은 어려운 이 단어는

100여 년 전 영국에서 시작된 내셔널 트러스트(National Trust)에서 유래했다.

시민의 힘으로 보존 가치가 있는 문화유산이나 자연유산을 매입해 영구적으로 보전해 나가자는

일종의 시민사회운동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내셔널 트러스트 운동(정확히 말하면 내셔널 트러스트 운동의 성격을 띤)은

시민운동 영역에서 먼저 시작되었다.

시민단체들의 환경운동과 개발논리가 부딪치던 1990년대 초반,

내셔널 트러스트 방식을 이용한 ‘공동소유운동’이 일어났다.

이른바 ‘땅 한 평 갖기 운동’으로 잘 알려진 광주 ‘무등산공유화운동’이 그 효시.

이어 부산 100만평 문화공원 조성 운동이 시작됐고

환경정의의 용인 대지산 매입운동, 서초구 우면산 일대를 보존하는 ‘우면산트러스트’도 뒤를 이었다.

 

‘공동소유운동’이 법적인 의미의 ‘신탁’운동으로 발전한 터닝 포인트는

아무래도 2000년 초 (사)한국내셔널트러스트의 설립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한국내셔널트러스트가 첫 번째 보전 대상지로 선정한 곳은 강화 매화마름 군락지.

시민 성금과 기부 등으로 매입해 보존해 온 이곳은

지난해 ‘람사르협약’에 따라 보존되어야 할 습지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어 (사)한국내셔널트러스는 서울 성북동의 최순우옛집, 동강 제장마을, 나주 도래마을옛집,

권진규 아틀리에, 연천 DMZ일원의 임야 그리고 최근의 청주시 산남동 ‘원흥이 방죽 두꺼비 서식지’까지

모두 7개의 시민문화유산과 자연유산을 확보하는 성과를 이루었다.

이는 모두 소유자의 기증이나 시민 모금으로 확보한 ‘시민유산’의 이름으로 보존되고 있다.

 

이렇게 시민운동 차원에서 내셔널 트러스트 운동의 성과가 모이고 한편에선 한계 또한 지적되면서

내셔널 트러스트 운동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해 줄 수 있는 ‘국민신탁법’ 제정을 위한 움직임이 일어났다.

내셔널 트러스트운동은 보존가치가 있는 문화유산이나 자연유산을 확보해

‘영구 보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운동.

그러나 당시의 법률로써는 이 ‘영구 보전’의 원칙을 지켜내기에는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국민신탁법’으로 영구 보전의 길을 열다

 

이렇게 시민운동 차원에서 시작된 내셔널 트러스트운동은

2006년「문화유산과 자연환경자산에 관한 국민신탁법」(이하 국민신탁법) 제정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국가 단위로는 영국과 미국에 이어 세 번째.

다른 나라에 비해 짧은 운동의 역사치곤 대단히 빠른 법제화였다.

 

국민신탁법은 내셔널 트러스트로 먼저 알려진‘국민신탁’을 이렇게 정의한다.

‘국민 · 기업 · 단체 등으로부터 기부 · 증여를 받거나 위탁받은 재산 및 회비 등을 활용하여

보전가치가 있는 문화유산과 자연환경자산을 취득하고 이를 보전 · 관리함으로써

현세대는 물론 미래세대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하여

민간차원에서 자발적으로 추진하는 보전 및 관리 행위.’(제2조)

쉽게 말하자면

‘국민들이 스스로 소유한 문화유산이나 자연환경자산을 기부하거나 기부금을 내어

보전 가치가 있는 문화유산이나 자연자산을 보전해 나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법은 또 국민신탁 법인이 보전하는 ‘보전재산’은

‘매각 · 교환 · 양여 · 담보 또는 신탁하거나 출자의 목적으로 제공하지 못하며,

이를 위반한 행위는 무효로 한다(제10조 제2항)’고 규정함으로써

국민신탁으로 보전하는 유산에 대한 법적 보호 장치도 어느 정도 마련했다.

또 각종 개발 행위로부터 국민신탁의 보전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로

국민신탁의 보전재산에 영향을 미치는 행정계획이나 개발 사업을 수립할 때에는

사전 협의(제21조)를 거치도록 했다.

 

그리고 이 법에 따라 2007년 문화유산국민신탁이 자연환경국민신탁과 함께 설립됐다.

문화유산과 자연환경자산 보전을 위한 일종의 역할 분담인 셈.

문화유산국민신탁은 보전 가치가 높지만 제대로 관리되지 못한 채 방치되어 있는 문화유산을

소유자로부터 기부받거나 시민들로부터 모금한 기부금 등으로 매입해

보존하고 활용해 나가는 임무를 맡았다.

또 문화유산을 소유한 정부나 지자체, 단체나 개인들과 ‘보전협약’을 맺어

문화유산을 직접 보전 · 관리하거나 지원해줄 수 있다.  



국민문화유산의 탄생…보성여관, 이영관가옥 그리고 시인 이상의 옛집

 

 

문화유산국민신탁이 현재 보전 · 관리하거나 예정인 문화유산은 세 곳.

전라남도 보성군 벌교읍의 ‘보성여관’(등록문화재 제132호)과

울릉도 도동리의 이영관가옥(등록문화재 제235호) 등 두 곳은

문화재청의 지원으로 지난 해 매입한 곳이다.

문화유산국민신탁은 문화재보호법 상의 관리단체로 지정돼 실질적인 보전 · 관리의 책임을 맡았다.

 

  

 

울릉도의 유일한 등록문화재 도동리 '이영관가옥'

 

 

 

 

  

 


 

 

 

 

 

 

 

 

 

 

이 가운데 보성여관

조정래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에서 토벌군들이 묵었던 ‘남도여관’으로 묘사되면서 꽤 알려진 곳.

보성여관이 자리한 벌교 읍내는 지금도 곳곳에 1930년대의 건축유산들이 많이 남겨져 있어

독특한 문화풍경을 이루는 데다 <태백산맥> 독자들의 필수 답사 코스로 여겨지는 지역이다.

그래서 문화유산국민신탁은 보성여관을 1930년대 소도시의 문화풍경과 세월의 흔적이 담긴

문화 공간으로 복원해 보전 · 활용해 나갈 계획이다.

 

 

 

 

 

 

 


  

  

 


 

-  구성/글 : 문화유산국민신탁 사무국 기획홍보부장 이은희

- 문화유산국민신탁 홈페이지에서 

 

 

 

 

문화유산국민신탁은 또 최근 법적인 의미의 첫 ‘보전재산’을 매입하는 성과도 거뒀다.

바로 요절한 천재 시인 이상이 세살 때부터 20여 년 동안 살아왔던 서울 종로구 통인동 ‘이상의 옛집’

매입한 것이다. 통인동 ‘이상의 옛집’은 국민은행이 매입기금을 지정 기탁해 매입한 것으로

기업의 전격 지원으로 문화유산을 신탁한 첫 번째 사례로 기록될 만하다.

 

이상의 옛집이 자리한 통인동, 누하동, 옥인동 등 서촌 일대는 중인들의 집단 거주지로

위항문학의 중심지이자 화가 이중섭과 이상범, 현진건, 이광수 등 많은 문인, 예술인이 머무르며

작품 활동을 했던 지역이기도 했다. 문화유산국민신탁은 서촌의 이런 지역적 특징을 살리고

시인 이상의 천재성과 문학, 삶을 기억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

이상의 옛 집터를 꾸미고 활용해 나갈 계획이다.

이 일은 (재)아름지기와 함께 해

문화유산국민신탁과 문화유산 보전 시민단체와의 첫 번째 협력 사업이 될 것이다.


 

'박제된 천재' 이상의 26년 7개월-EBS 지식채널e(이상 편)

 

오감도, 날개, 무한육면각체의 비밀...

시인이자 소설가, 건축가이자 화가였던 이상의 26년 7개월의 삶은

당대 문화판을 뒤흔든 기행들로 천재의 신화를 쌓았습니다.


EBS 지식채널e에서 방송된 두 편의 짧은 영상물 '26년7개월 :

시인 이상 편'은 박제된 천재의 삶을 함축적인 언어와 영상으로 보여줍니다.

 

이상을 이해하는 것은 이상의 옛집터라는 공간과 거기서 자라고 시를 썼던 이상이란 콘텐츠를
제대로 보전할 수 있는 첫 걸음이기에 우린 먼저 '박제된 천재' 이상의 짧은 삶과 만나려 합니다.

  

26년7개월(시인 이상 편) 1부(2007.7.16)




26년7개월(시인 이상 편) 2부(2007.7.30)





 

 이상의 옛집터, 매입에서 앞으로의 보전관리 계획까지

 - 문화유산국민신탁 홈페이지에서  


 


믿음으로 크는 나무, 문화유산국민신탁

 

국민신탁(國民信託)을 글자대로 풀이하면 ‘국민이 믿고 맡긴다’는 것이다.

‘맡긴다’는 행위에는 늘 ‘믿음’이 전제된다.

내 것을 내어 줄 대상이, 내가 맡겨놓은 것을 자기 것처럼 돌보고 아끼고 사랑해 줄 것이란 믿음이 없는 한

일어날 수 없는 행위다.

또한 그 믿음은 지금은 쉽게 보이지 않는 ‘버려진 문화유산’의 가치를 보는 일이자

우리 다음 세대를 위해 문화유산을 물려줄 책임이 우리 세대에게 있음을 인식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문화유산국민신탁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줄 아는’ 회원들과 시민들의 믿음으로 자라는 나무다.

지금은 막 싹을 틔운 새싹에 불과하지만 그 작은 싹이 언젠가는 아름드리나무로 자라

우리 아이들과 그 다음 세대, 또 그들의 아이들을 위해 달콤한 열매와 큰 그늘을 내어 줄 것이란

믿음으로 크는 나무다.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이 더 이상 무관심의 그늘 아래서 사라져가는 일이 없도록

많은 시민들의 혜안과 실천이 필요한 때인 듯하다.(문화유산국민신탁 홈페이지 www.ntch.kr)    


- 이은희, 문화유산국민신탁 기획홍보부장 / 사진, 문화유산국민신탁, 한국내셔널트러스트 제공

- 문화재청, 월간문화재사랑, 2009-0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