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주짱의 하늘꿈 역사방

알아가며(자료)

조선의 밤하늘을 수놓은 ‘불빛 기운’의 정체

Gijuzzang Dream 2009. 10. 16. 14:27

 

 

 

 

 조선의 밤하늘을 수놓은 ‘불빛 기운’의 정체

 

 

삭막한 도시에서도 자연이 매일 바꾸어 그리는 그림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 하나 있다.

창문 너머 끝없이 펼쳐진 ‘하늘’이란 흰 도화지가 바로 그것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이 바뀔 때마다 농도와 투명도가 서로 다른 파랑 물감을 풀어놓고,

그 위에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변하는 흰구름의 모양을 레고 조각 맞추듯 늘어놓는다.

밤이면 검은 먹물로 물들인 도화지에

점점이 뿌려진 별들과 한 달 주기로 같은 모양을 빚어내는 달이 휘영청 걸린다.

어쩌면 현대 도시의 풍경보다 더 적막했을 조선시대에도

하늘은 마찬가지로 그처럼 수시로 바뀌는 그림을 매일 그려댔다.

태양의 고에너지 입자들이 대기 중의 산소, 질소와 충돌하여 녹색 또는 적색의 빛을 방출하는 것이 오로라이다. 

그런데 조선시대의 하늘이란 도화지에 그려진 그림에는

단순한 풍경 이상의 뜻깊은 정치적 해석이 곁들여지곤 했다. 자연의 이상현상을 하늘의 꾸지람으로 여기면서

인간의 잘못을 되짚어 보는 ‘재이사상’ 때문이었다.

일식이나 흑점 등 태양에 이상현상이 나타나면

임금의 덕이 없다거나 혹은 신하가 임금의 총기를 가리는 것으로 해석했다. 또 혜성 등 새로운 별이 나타나는 것을 보고 인간사의 길흉을 점치기도 했다.

이렇듯 조선의 하늘에 그려지는 그림은 그 자체가

곧 인간사의 길흉화복과 똑같았다.

더구나 공해 한 점 없이 맑았던 조선의 하늘은 지금보다 훨씬 선명하고 아름다운 그림이 그려지던 무공해 도화지였으니….


조선의 하늘은 무공해 도화지

그런데 조선의 하늘에 그려지는 그림 가운데는 매우 아름다우면서도 신비로운 현상이 있었다.

한자로 적기(赤氣 ; 붉은 기운) 또는 기여화광(氣如火光 ; 불빛 기운)으로 기록되어 있는 이 현상은

조선왕조실록에 무려 200여 회나 등장한다.

“밤에 동방 · 북방 · 남방에 불빛과 같은 기운이 있었다.” (중종실록 1520년 3월 26일)
“밤 2경에 동 · 서 · 남 세 방면에 붉은 기운이 있었는데 불빛과 같았다.” (선조실록 1599년 3월 2일)
“밤 1경에 남서쪽에 불빛 같은 기운이 있었는데 3경과 4경에도 마찬가지였다.”(광해군일기 1617년 1월1일)

한밤중에 한 방면 또는 여러 방면에서 불빛과 같은 붉은 기운이 나타났다니

혹시 큰 산불이 일어났을 경우를 상상해볼 수 있다.

실제로 실록의 기록 중에서도 산불로 추정하는 내용이 있다.

1507년(중종 2) 1월 12일자에 의하면

“밤에 붉은 기운이 있었다고 독서당에서 보고했는데 정말 있었는가”하고 중종이 묻자,

“지난 달 그믐날 밤에 서북방에서 불빛과 같은 붉은 기운이 있었고

남방에서는 구름색이 누렇게 되었다고 합니다.

들으니 이날 고령 · 종산 등지에서 우연히 산불이 일어났다고 하는데 이 불빛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라고 승정원에서 답했다.

찬드라 망원경이 관측한 지구 오로라 


 

이에 대해 실록을 기록하는 사관은 다음과 같이 논평하고 있다.

“인군으로서 두려워하는 것은 천변이다.

그러므로 옛날 사람들은 사방에 있는 재이를 가지고 항상 인군을 경고하였던 것이다.

임금의 말을 출납하는 자리에 있으면서 하늘이 보이는 재변을 산불 빛에 돌려버리다니

이것은 상소의 사연을 불실하게 할 뿐만 아니라 인군으로 하여금 이변을 만홀히 여기는 길을 여는 것이니

아첨하는 데 가까운 일이다.”

즉, 그 붉은 기운은 산불로 인한 불빛이 아니라 하늘의 재변이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재이사상에 의해 임금이 자신을 되돌아보는 반성의 기회로 삼아야 함을 말하고 있다.

1737년(영조 13) 11월 3일자의 조선왕조실록에도 하늘에 붉은 기운 등이 나타남에 따라

임금이 이를 두려워하고 반성하는 데 힘쓰는 것이 좋겠다는 신하의 상소가 있었다.

하지만 이 두 기록은 극히 예외적인 사항일 뿐이다.

다른 기록들에서는 이 불빛과 관련해 어떤 일의 조짐이라든가 하는 재이사상의 논평이 전혀 없다.

이 불빛과 관련해 ‘밤 몇 시경 어느 방향에서 붉은 기운이 있었다’라는

간략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인조 집권 이후 불빛 기운 기록 집중돼

조선왕조실록 중 이 불빛 기록이 가장 많이 나타난 것은 인조실록이다.

인조실록에는 무려 약 50회나 이 수상한 불빛의 출현이 보이는데,

특히 1624년(인조 2)에서 1626년(인조 4) 사이에 집중되어 있다.

인조는 서인 세력과 손을 잡고 무력 정변을 일으켜 광해군을 폐위시키고 추대된 인물이다.

더구나 불빛 기운이 집중되어 나타난 시기는

인조반정에 참여했던 이괄이 난을 일으켜 민심이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또 1627년(인조 5)에는 후금이 군사를 일으켜 조선을 침략해 인조와 조정대신들이 강화도로 피난하는

정묘호란이 일어난 바 있다.

이처럼 인조 집권 이후 계속 혼란스러운 정치 상황이 연출된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한밤중 온 하늘을 뒤덮은 불빛 기운에 대해 실록은 어떠한 조짐이나 논평도 달지 않고 있다.

더구나 이 불빛 기운에 대한 기록은 조선왕조실록 이외에도

 BC 35년경인 고구려 시조 동명성왕 때의 ‘삼국사기’ 기록을 시작으로 하여

조선 중기 때까지 무려 700여 회나 등장한다.
 
도대체 이 불빛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지구의 하늘이 그려내는 가장 아름다운 그림 중의 하나로 꼽히는 오로라였다.

지난 2008년 영국 왕립천문학회가 발간하는 과학전문지 ‘천문과 지구물리’에

‘불빛 기운은 한국의 오로라였다’라는 제목의 논문이 게재되었다.

이 논문에 의하면 1626년 초는 태양 흑점의 극대기였는데,

당시 기록의 시간대와 관측 방향 등을 분석한 결과

1624년에서 1626년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에 연평균 20여 차례씩 등장하는 불빛 기운은

오로라일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또한 이에 앞서 박창범 고등과학원 교수 등은 고려사에 기록된 붉은 기운에 관한 기록들을 분석해 볼 때

당시 한반도에 나타난 오로라인 것으로 추정된다는 연구결과를 1998년에 발표한 바 있다.



날씨 맑은 한밤중에 관측 가능

오로라란 태양에서 날아오는 고에너지 입자들이 방패처럼 지구 주위를 둘러싼 지구자기장을 따라

극지 쪽으로 흘러가다가 상층 대기와 부딪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태양의 고에너지 입자들이 대기 중의 산소 또는 질소와 충돌하면 녹색 또는 적색의 빛을 방출하게 되는데,

그것이 밤하늘을 신비로운 빛으로 물들이는 오로라이다.

오로라는 보통 한 줄기 흰 연기가 피어 오르듯이 시작된다.

사진은 알래스카의 오로라 광경

오로라는 100~400㎞ 고도의 상층 대기권에서 생기므로,

그 밑의 대기층에 구름이 끼거나 하늘이 밝을 때는

관측하기가 어렵다.

즉, 날씨가 맑은 한밤중에라야 오로라를 잘 관측할 수 있다.

오로라를 볼 수 있는 시간은

보통 밤 10시에서 다음날 새벽 3시 사이인데,

그 시작은 성냥을 그어 불을 붙일 때처럼 하늘에서 한 줄기 흰 연기가 피어오르면서 장관이 연출된다.

그 후 부채살 모양의 빛줄기가 펼쳐지며 치솟아 오르는데,

 하나가 스러지면 다른 하나가 뒤를 잇는가 하면 여러 방향에서 동시에 타오르기도 한다.

하얀 입김처럼 타오르는 오로라는 커튼처럼 옆으로 늘어져 흔들리기도 하며 사이사이 녹색과 붉은색이 출현한다.

조선왕조실록 속에서 가끔 구체적으로 묘사된 ‘불빛 기운’도 이런 오로라의 모습과 상당히 유사하다.

“밤에 기운과 같은 흰구름 한 줄기가 동쪽에서 일어나 곧바로 서북방을 가리켰는데

길이가 하늘 끝까지 닿았다. 남서쪽에 불빛 같은 기운이 있었다.” (인조실록 1625년 11월 14일)
“밤 1경에 기운과 같은 흰구름 한 가닥이 서북방에서 일어나 남쪽을 향해 퍼져갔다.

남방에 불빛 같은 기운이 있었다. 4경에 같은 검은 구름 한 가닥이 서방에서 일어나

곧바로 동남쪽을 가리켰는데 길이가 하늘에 잇닿았다.” (인조실록 1626년 4월 3일)

오로라가 뿜어내는 흰 연기를 조선의 천문관원들은 흰구름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오로라를 관측한 적이 있었다.

지난 2003년 10월 30일 새벽 경북 영천에 소재한 보현산천문대에서

한국해양연구원 극지연구소 원영인 박사팀이 오로라를 직접 촬영하는 데 성공한 것.

그런데 이 촬영에는 ‘국내 현대 천문 역사상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그것은 우리나라가 오로라 관측대에 속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오로라는 위도 60~80도의 고위도 지역에서 발생하므로

대개 캐나다 중북부와 알래스카 중부, 시베리아 북부 연안, 스칸디나비아반도 북부 등지에서 볼 수 있다.

오로라는 위도 60~80도의 고위도 지역에서 주로 관측된다. 

우리나라 서울은 위도가 북위 37도 32분이며,

한반도 최북단인 함경북도 온성군 유포진 북단도

북위 43도 1분일 뿐이다. 그러면 최근 보현산 천문대에서

오로라 관측에 성공한 것은 어찌된 일일까?

그 당시 태양은 활동 극대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플레어라고 불리는 강력한 폭발을 아주 세게 발생시켰다.

이로 인해 지구 자기장이 심하게 왜곡되는 지자기 폭풍이

일어났고, 평소보다 더 넓은 지역에서도 오로라를 관측할 수 있었다. 이 같은 대규모 지자기 폭풍이 일어날 경우, 잘 하면 적도에 가까운 저위도 지역에서도 오로라를 목격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특이한 경우에 해당하는 일시적 현상일 뿐,

우리나라에서 오로라를 관측하기란 매우 어렵다.

실제로 조선왕조실록에서도 1779년(정조 3) 5월 12일 ‘불빛과 같은 기운이 있었다’라는 기록 이후

오로라를 추정케 하는 내용이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그럼 고구려 초기부터 17세기 중반까지 수없이 오로라가 관측된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나침반, 진짜 남북 방향과 약간 차이나

그에 대한 원인이 최초로 기록되어 있는 책은 11세기 중국 송나라 때 심괄이 지은 <몽계필담>이다.

당시 중국에서는 집을 지을 때 자침을 가벼운 갈대에 붙이거나 명주실에 달아매어 방위를 알아내곤 했다.

사천감을 지낸 심괄은 이 책에서 자침이 대략 남북을 가리키지만

그 남북 방향이 진남 · 진북과는 약간 다르다고 기술했다.

자침이 가리키는 방향이 진짜 남북 방향과는 약간 다르다니,

혹시 그때의 조잡한 나침반 제작 기술이 낳은 오차가 아닐까?

자기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은 진북, 진남과는 약간 차이가 난다. 

하지만 요즘 제대로 만들어진 자기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도 진북과 진남은 아니다. 직선으로 이으면 지구의 회전축이 되는 것이 바로 진북과 진남이다.

지구 회전축은 북극성을 향하고 있으므로 예로부터 여행시 길을 잃거나 항해를 할 때 북극성을 기준으로 하여 진북의 방향을 찾곤 했다.

그런데 왜 나침반의 N극은 진북을 정확히 가리키지 않는 것일까. 나침반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지구의 회전축인 진북과 진남이 아니라 지구가 만들어내는 지구 자기장이기 때문이다.

즉, 지구 자기장의 북극 · 남극과 지리상의 북극 · 남극은 다르다는 의미이다. 이와 같은 지구 자기장의 북극 · 남극은 진북(眞北) · 진남(眞南)과 구별해 '자북(磁北) · 자남(磁南)'이라 한다.

다시 말해 나침반의 N극이 가리키는 곳은 자북이고, 실제 지구의 북쪽 중심은 진북이다.

따라서 현재의 거의 모든 대형 선박들은 자이로컴퍼스라고 불리는 전륜나침반을 사용하고 있다.

자이로컴퍼스는 지구의 자전에 영향을 받아 움직이므로 지구의 자전축인 진북 방향을 정확히 가리킨다.


광화문의 방향이 다른 이유는?

일제 강점기에 훼손된 경복궁을 원형대로 정비하기 위해 경복궁 복원 정비사업을 추진하던 문화재청은

1865년 조선 고종 때의 경복궁 중건시의 광화문과 1910년 조선을 병탄한 조선총독부가 재정비한

광화문의 건물 방향이 약간 차이가 나는 것을 알아냈다.

조선총독부에서 건축한 광화문의 건물 방향은 경복궁 중심축을 기준으로 동쪽으로 5.7도 벗어나 있었다.

이에 대해 일제가 조선의 민족 정기를 말살하기 위해

일부러 경복궁 중심축과 약간 벗어난 방향으로 건축했다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진북과 자북의 차이를 주목한다면 이에 대한 좀 더 합리적인 해답이 나올 수 있다.

조선총독부에서 광화문을 재배치할 때는 진북을 기준으로 했지만,

고종 당시 경복궁을 중건할 때는 나침반을 이용한 자북을 기준으로 남북 방향을 정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광화문의 건물 방향에 대한 확실한 원인이 규명되지는 않았지만,

근대적인 서구식 측량법과 전통적인 측량법이 서로 다른 데서 빚어진 차이일 거라는 개연성은 충분하다.

현재 진북과 자북은 5도 가량 차이가 난다.

그럼 문제는 조금 수월해진다.

오로라는 태양에서 날아온 고에너지 입자들이 지구 자기장의 극지 쪽으로 흘러가다 상층 대기와 부딪쳐

일어나는 현상이니, 조선의 오로라 현상은 자북이 우리나라 부근에 위치해 있어서 나타난 것으로 보면

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그럼 왜 지금은 오로라가 관측되지 않는 것일까.

또한 지금 오로라를 자주 볼 수 있는 곳은 왜 북태평양 건너편인 캐나다와 알래스카 지역일까.

자북극의 위치는 현재 캐나다 서북부와 알래스카의 접경 지대인 레절루트 베이 부근(2005년 기준 북위 82.7도, 서경 114.4도)이다. 그곳은 진북에서 남동쪽으로 약 1천㎞ 떨어져 있다.

이에 비해 자남극은 호주 태즈메니아섬 남쪽 3천㎞ 지역에 있는데,

지구 회전축인 진북·진남과는 달리 지리적으로 서로 정확한 지구 반대편 지점이 아니다.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자북극

그런데 여기서 자북극의 ‘현재 위치’라는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흥미롭게도 자북극은 한 곳에 고정된 것이 아니라 계속 이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1831년 영국의 탐험가 로스에 의해 자북극이 처음 발견되었을 때는

현재의 자북극에서 1천㎞ 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다.

이처럼 자북극이 옮겨 다니는 원인은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지구 자기장의 태동 시스템에 따른 자연스런 현상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즉, 지구 자기장의 생성과정에서 그 원인을 찾아볼 수 있다.

1831년 영국의 탐험가 로스가 처음 발견한 이래 자북이 이동한 경로 


지구는 안쪽에서부터 내핵, 외핵, 맨틀, 그리고 가장 바깥층인 지각의 순서대로 쌓인 구조이다.

이 중 3천~5천㎞ 사이에 있는 외핵에서 지자기를 발생시킨다.

외핵은 철덩어리인 내핵과는 달리 철이나 니켈 등이 녹은 유체 상태로 존재한다.

따라서 지구 자전에 의해 외핵의 유체들이 서서히 회전하면

원래 있던 자기장으로 인해 유도전류가 발생하고,

이 전류의 흐름에 의해 다시 새로운 자기장이 형성되는 순환과정이 되풀이된다.

이를 바로 다이나모(발전기) 이론이라고 하는데,

현재로서는 천체가 자기장을 가지게 되는 원인을 가장 잘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지구의 바깥층은 고체이고, 외핵은 유체상태라는 점이 문제이다.

고체와 유체의 운동역학은 성질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또 지구 자전축이 기울어져 있고, 자전축 자체가 2만6천년을 주기로 하는 세차운동을 하고 있다는 점 등이

지구 자기장에 복잡한 영향을 주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런 여러 가지 원인으로 인해 자북이 움직이는 것으로 추정한다.

그럼 1831년 영국의 로스가 자북극을 처음 발견하기 훨씬 이전에는 자북이 어디에 위치해 있었을까.

바로 여기에 조선시대 때 관측된 오로라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

즉, 옛날에는 자북극이 지금보다 훨씬 한반도에 가까이 위치해 있었으며,

그로 인해 오로라를 자주 관측할 수 있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지난 2005년 미국 오리건대학 연구팀이 발표한 연구결과에 의하면

현재 알래스카에 위치한 자북은 매년 40㎞ 정도씩 북서쪽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으로 관찰됐다.

이는 지난 70여 년간의 자북 이동속도보다 7배나 빨리진 것이다.

이런 속도라면 앞으로 50년쯤 후에 자북은 시베리아 지역에 위치하게 된다.

그때가 되면 옛날 기록에 나타난 것처럼 우리나라의 하늘에 다시 울긋불긋한 오로라 그림이 그려질까.

 

- 이성규 기자 , 2noel@paran.com [이야기과학실록]
- 2009.10.08 /2009.10.22 ⓒ Science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