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의 도공 이삼평, 아리타 도자기를 만들다
| ||
|
아리타에 정착한 조선 도공들의 자취를 찾아
요시노가리에서 아리타(有田) 가는 길은 나가사키(長崎) 자동차 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이어진다.
야마토(大和)와 다쿠(多久)를 지나 다케오(武雄)에 이르러 차는 고속도로를 빠져나온다.
차는 다시 35번 국도를 따라 사세보(佐世保) 방향으로 향한다.
이 길은 사세보로 이어지는 기찻길과 나란히 달린다.
요시노가리를 떠난 지 45분 만에 차는 아리타 시내 중심부에 닿는다.
아리타는 이마리(伊萬里) 만으로 흘러 들어가는 아리타 강 상류 골짜기에 위치하고 있는
인구 1만2600명의 소읍이다. 그래서인지 도시가 골짜기를 따라 길게 형성되어 있다.
본행평구(本幸平區)에서 내린 우리는 조선시대 이곳에 정착한 조선 도공들의 자취를 찾아본다.
이들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이 이삼평(李參平)이다.
우리는 먼저 조선 도공 이삼평을 도조(陶祖)로 모신 '도산(陶山) 신사'로 향한다.
도산 신사는 이곳 시내 중심부에서 동쪽으로 100m쯤 떨어져 있다.
가는 길에 우리는 철로를 지나간다.
이 철로는 사세보(佐世保)나 나가사키(長崎)로 가는 기차가 주로 다닌다.
철로를 건너기 전에 도산 신사임을 알리는 석주가 서 있다.
철로 아래를 지나 언덕에 오르자 도산 신사의 도리이가 보이고 그 너머로 본전으로 오르는 계단이 보인다.
두 개의 도리이가 차례로 서있는데 앞의 것은 이끼가 끼어 고색창연한 모습이다.
상단에 팔루궁(八樓宮)이라는 글자가 보인다.
뒤의 것에는 도산 신사라는 편액과 함께 상하로 두 줄의 글귀가 선명하다.
'향산영요천추옥(鄕山榮耀千秋沃) 홍택분방만고녕(鴻澤芬芳萬古寧)'이라는 글자로,
'고향 마을의 영화와 빛남이 천 년간 이루어지고, 큰 은혜와 좋은 냄새가 만고에 이어지기'를
바라고 있다.
도잔 진자를 우리식으로 읽으면 도산 신사
도리이를 지나 왼쪽을 보니 도산 신사에 대한 설명이 나무판과 도자기판에 자세하게 되어 있다.
도산 신사의 주제신(主祭神)은 오진천황(應神天皇, 270~310))이고
상전신(上殿神)이 나베시마 나오시게(鍋島直茂)와 이삼평이다.
오진천황은 야요이시대 후반에서 야마토 시대로 넘어가는 시기 왜국의 왕이었고
백제의 왕인박사를 통해 한문학을 수용했다.
그리고 나베시마는 임진왜란 때 이삼평 등 조선 도공을 끌고간 사가번(佐賀藩)의 번주다.
도산 신사는 아리타에서 도자기를 만든 할아버지(陶祖) 신들을 위해 1658년 만들어졌다.
특히 이삼평의 혼령이 이곳 아리타 명산(皿山)에 살면서 신명을 불러 일으켜
아리타 도자기가 번창하기를 바라고 있다.
도산 신사의 일본식 발음은 '도잔 진자'이며, 현재는 '수에야마 진자'라 부르기도 한다.
현판을 지나면 본전으로 오르는 계단이 나온다.
계단을 오르면 다시 도자기로 만든 도리이를 지나 본전으로 가게 되어 있다.
도리이에는 '도산사(陶山社)'라는 현판이 보이는데,
현판을 감싸고 있는 문양과 기둥의 무늬가 참 아름답다. 도자기로 만든 장식은 이것만이 아니다.
도리이와 본전 사이에 큰 청화백자가 하나 세워져 있고,
좌우에는 백자로 만든 사자가 두 마리 신사를 지키고 있다. 도자기 고장다운 모습이다.
도산 신사의 본전은 어째 이렇게 쓸쓸한 걸까?
|
이들을 지나니 세 칸짜리 목조 건물이 우리를 맞는다.
가운데 칸 위로 금줄이 처져 있고, 금줄에는 소원지가 끼워져 있다.
건물은 유리창으로 되어 있고 지붕은 부식되어서인지 푸른 빛을 띠고 있다.
안으로 들어가 보고 싶으나 잠겨 있어 들어갈 수가 없다.
유리창으로 되어 있지만 어쩐 일인지 안이 잘 들여다보이지 않는다.
건물이 서향을 하고 있어 서쪽으로 넘어가는 햇빛이 비쳐든다.
2월 하순의 찬 기운과 은은한 석양빛이 비쳐들어 쓸쓸하기 이를 데 없다.
이곳을 찾는 사람도 우리 일행 밖에는 없다. 그나마 봄을 알리는 매화꽃이 있어 쓸쓸함이 조금은 상쇄된다.
본전 뒤로 가니 곡물의 신들을 모시는 작은 규모의 또 다른 신전이 보인다.
이곳은 일본 신사에서 흔히 볼 수 있듯이 나무와 기둥에 붉은 색을 칠했다.
본전과는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
이곳에서 우리는 산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이삼평비를 찾아간다.
신사에서 비까지는 가파른 산길로 300m를 올라가야 한다.
또 길이 가파르기 때문에 S자형으로 왔다갔다 올라가야 한다.
산에 오르면서 보니 저 아래로 아리타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
아리타는 산 속에 둘러싸인 아주 작은 소읍이다.
만약 이곳에 도자기 산업이 번창하지 않았다면 시골의 작은 마을로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조선의 도공 이삼평이 이곳에서 고령토를 발견하여 도자기 산업을 일으킴으로써
경제력을 가진 도시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산에 오르면서 보니 서쪽 산으로 해가 내려가면서 붉은 빛을 토해낸다.
우리가 요시노가리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이곳에 너무 늦게 도착해서 벌써 해가 지고 있는 것이다.
방향을 돌려 위쪽을 보니 저 멀리 도조 이삼평비가 보인다.
위쪽으로 올라가면서 좁아져 사각뿔을 모양을 하고 있는 비로
파란 하늘과 저녁의 어스름과 어울려 예술적인 느낌을 준다.
그렇지만 비까지는 아직 2층의 계단을 더 올라가야 한다.
|
이삼평 비석에서 보고 느낀 것
계단을 한 층 올라가니 가운데 쌍사자석등이 있고
좌우로 계단을 통해 다시 또 한 층을 올라가도록 되어 있다.
쌍사자석등은 일본 신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등롱과는 다른 우리의 양식이다.
계단을 오르니 화강석에 위에서 아래로 써내려간 '도조이삼평비(陶祖李參平碑)'라는 예서체의
반듯한 글씨를 볼 수 있다. 일본 땅에 와서 한 개인을 기리는 이렇게 큰 비석을 보니 감개가 무량하다.
또 이 비석을 통해 역사의 아이러니를 생각하게 된다.
만약 이삼평이 조선의 도공으로 평생을 살았다면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채 고향인 공주 땅 어딘가에 묻혔을 텐데,
일본에 포로로 잡혀옴으로써 그의 이름이 일본과 유럽에까지 알려지고 신사에까지 모셔지게 되었으니
아니러니가 아니고 뭐란 말인가?
그리고 조선 중기의 도공치고 지금까지 이름을 남긴 이 그 어디 있단 말인가?
고향에서는 잊혀진 이삼평이 이곳에서는 神이 되어 있었다.
도조 이삼평(1579~1655)은 공주군 반포면에서 태어나 도공으로 활동하다
1597년 정유재란 때 사가번 번주(藩主) 나베시마 나오시게의 포로가 되었으며
1598년 일본의 가라쓰(唐津)에 상륙하였다.
그는 1605년 도공들을 이끌고 아리타의 뎅구다니(天狗谷)에 정착했으며,
1616년 근처의 이즈미야마에서 고령토를 발견함으로써 뎅구다니요를 열 수 있었다.
이때부터 아리타 도자기가 만들어지기 시작했으며, 아리타 지역이 일본 도자기의 원조가 되기에 이른다.
이곳에서 만든 도자기는 지명을 따 아리카 도자기로 이름 붙여졌으며,
12km 떨어진 이마리(伊萬里) 항을 통해 일본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아리타 도자기는 반출항의 이름을 따 '이마리 도자기'로 불리기도 한다.
아리타 도자기의 명성은 점차 일본을 찾은 유럽 사람들에게 알려져 유럽에까지 수출되기에 이른다.
더욱이 아리타 도자기는 독일의 마이센 지역으로 들어가
유럽 최초의 도자기가 만들어지는데 큰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를 인연으로 아리타시와 마이센 시는 현재 자매도시가 되어 교류를 계속하고 있다.
|
아리타에 정착한 이삼평은 이름을 일본식인 카나가에 산페이(金ヶ江三兵衛)로 바꾸고
도자기 제작에 온 정열을 바쳤던 것 같다.
아리타 시민들은 그가 가마를 연 지 300년이 되는 1916년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비를 세웠다.
그리고 이듬해인 1917년부터 도조제(陶祖祭)와 함께 도자기 축제를 열고 있다.
나는 비석을 한 바퀴 돌면서 사면을 살펴본다. 그러나 특별한 내용은 적혀있지 않다.
전면의 비명, 측면의 건립연월일, 후면의 기부자 명단이 전부다.
그를 기리는 글귀를 찾을 수 없는 것이 좀 아쉽다.
아리타가 골짜기 도시인지라 해는 이미 산 너머로 사라졌고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비석에도 어스름이 내리기 시작한다.
아직도 2월의 찬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한다. 우리는 이삼평 비를 뒤로 하고 아쉽지만 산을 내려온다.
-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2월23일 큐슈의 아리타를 방문하고 쓴 글이다.
이삼평 도조가 도산을 평정했다.
내려오는 길에 만난 이삼평 비문과 도산 시비
도산 신사를 내려오면서 보니 그 사이 도자기 도리이 옆에 있는 등에 불이 켜져 있다.
청자색을 띤 도자기와 등에서 퍼져 나오는 밝은 주황색 불빛이 잘 어울린다.
아리타에서 본 최고의 장면이다.
계단을 내려와 다시 오른쪽으로 가니 도자기로 만든 이삼평 비문과 도산 시비가 보인다.
비문에는 이삼평의 일대기가 적혀 있고, 시비에는 도산을 노래한 송시(Ode)에 대한 이야기가 적혀 있다.
도자기에 새겨진 '도조 이삼평 비'의 문구 일부를 옮기면 다음과 같다.
도조 이삼평 비
아리타도자기의 시조인 이삼평공은 조선국(현재의 대한민국) 충청도 금강 출신으로 전해지며
1592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에 출병했을 때 나베시마 군에 붙잡혀 길안내 등의 협력을
명령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삼평공은 사가현지 시조인 나베시마 나오시게가 귀국할 때 일본으로 데리고 왔다.
그 후 귀화하여 출신지의 이름을 따서 그 성을 ‘가나가에’라고 지었다.
처음에는 참모인 다쿠 야스즈미에게 맡겨져 오기군 다쿠마을에 살며 손에 익힌 기술로 도자기가마를
이루었으나 양질의 백토를 구하지 못해 영내 각지를 찾아 돌아다녔다고 한다.
1616년경 마츠우라군 아리타마을의 미다이바시에 가마를 짓고
드디어 이즈미야마에서 최상급의 원료가 되는 백자광을 발견하자
가미시라가와로 옮겨 살며 순백색의 자기를 만들어 냈다.
이것이 일본에서 처음으로 백자 도자기가 소성된 유래라고 전해지고 있다.
그 후 이 제조기술은 수많은 도공들에 의해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며
이삼평공은 아리타 도자기의 시조일 뿐만 아니라 일본의 요업계의 대 은인이다.
오늘날도, 도자기 관련업종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은 이 선인이 남긴 은혜에 진심으로 감사하며,
그 품격을 높이 받들어 존경하고 있다.
여기에 <2005 한일우정의 해>를 기념하여, 한일양국인의 진정한 이해와 우호친선이
더 한층 발전하는 동시에 이 뜻깊은 교류의 역사가 영원히 후예에 전해지기를 기원한다.
- 2005년 7월 칠일 이삼평공헌장위원회
도산 시비에는 1918년 니시마츠우라(西松浦) 군수가 지었다는 시 '도산'(陶山)에 대한 해설을 적어놓았다.
이삼평 비에서 내려다 본 아리타 마을의 아름다움과 당시 아리타 도자기의 명성을 노래했다고 한다.
도자기 안내문 옆으로 돌에 새겨진 '도산'이라는 시비가 있어 여기에 옮긴다. 오언절구의 한시이다.
눈 아래 집들이 즐비하게 보이고 眼底家如櫛
도자기 굽는 연기가 발아래서 올라온다. 窯煙起脚間
솔바람이 그것을 떨어뜨리듯이 松風自落事
이삼평 도조가 도산을 평정했다. 李祖鎭陶山
아리타 도자기의 과거와 현재
비문과 시비 옆으로는 도산신사를 관리하는 듯한 건물들이 보인다.
등롱이 있고 그 옆으로는 봄을 알리는 매화꽃이 피어 있다.
아직 만개하지는 않고 피기 시작하는 단계이다. 약간 산그늘이 져서 그런 것 같다.
하나는 백매화이고 다른 하나는 홍매화이다. 도자기 신을 모시는 신사와 잘 어울린다.
신사를 내려와 아리타 시내로 오면서 다시 철길을 건넌다.
마침 하우스텐보스에서 후쿠오카로 가는 기차가 지나간다.
기차에 쓰여 있는 글자를 보니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하우스 텐 보스가 아니라 후이스 텐 보쉬(Huis Ten Bosch)이다.
후이스는 하우스의 네덜란드식 표기이고, 텐은 관사 2격으로 '-의'에 해당한다.
그리고 보쉬는 숲을 뜻하는 부쉬의 네덜란드식 표현이다.
그렇다면 후이스 텐 보쉬는 '숲 속의 집'이라는 뜻이 된다.
후이스 텐 보쉬는 사세보에 있는 테마 리조트 공원으로 네덜란드 풍의 작은 도시이다.
과거 일본이 네덜란드와 교류한 인연으로
1992년 나가사키현 사세보에 이 리조트가 생겨날 수 있었다고 한다.
사세보는 현재 일본의 대표적인 군항으로 바다 쪽으로의 교통이 편리한 편이다.
그렇지만 일본 각지에서 도로나 철도를 이용해 하우스 텐 보쉬에 갈 경우 이곳 아리타를 지나게 되어 있다.
|
철길을 지나 우리가 차를 내렸던 시내 중심부로 다시 오니 아리타칸(有田館)이 눈에 들어온다.
아리타칸은 아리타 지방에서 생산되는 현대 도자기를 전시하는 전시관으로 유명하다.
다기, 도자기, 자기 인형 등 400여 점의 자기 제품이 전시되어있다고 한다.
그런데 벌써 저녁 6시가 넘어 문이 닫혀 있다.
걸려 있는 현수막을 보니 자기로 만든 세계 최대의 시골인형을 이곳에 전시한다고 쓰여 있다.
그러고 보니 7단 장식으로 된 세계 최대의 도자기 인형을 볼 기회를 놓치고 만 셈이다.
여러 설명문을 보니 아리타칸은 아마 자기로 만든 시골 인형을 대표 상품으로 전시해 놓은 것 같다.
아리타(www.town.arita.saga.jp)에는 그 외에도 큐슈 도자문화관, 아리타 도자미술관 등이 있어
도자기로 만든 생활용품과 예술품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
현재 아리타는 일본 최대의 도자기 산지로 150개의 도요(陶窯)와 250개의 도자기 상회가 운영되고 있다.
|
길가에 있는 도자기 상점들을 보니 백자가 주류를 이루고 가끔 청자도 보인다.
백자는 하얀 바탕에 파란 문양을 그린 것으로 아주 깨끗하고 청초한 느낌을 준다.
문양의 종류도 다양한데 꽃이 주류이고 나비와 풀 등이 부차적으로 쓰이고 있다.
또 도자기 상품도 다양하다. 밥그릇, 물그릇, 술병 등 생활자기가 많은 편이고,
개나 닭 그리고 돼지 같은 동물 모양의 장식용 도자기도 있다.
그리고 연적이나 볼링핀 같은 재미있는 도자기도 보인다.
이곳 아리타에는 이삼평의 묘가 있고 또 이삼평의 동상이 있다.
이삼평의 묘는 시내 중심부에서 서쪽으로 600m 가면 있다.
그 근처에는 유명한 덴구다니 요의 유적이 남아 있어 아리타 도자기의 과거 역사를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시간이 없어 이들을 찾아갈 수가 없다.
지도를 보니 이삼평의 동상은 이곳에서 조금 떨어진 이즈미야마(泉山)에 있는 것으로 나와 있다.
|
|
조선 도공들에 의해 전해진 도자기 기술이 꽃을 피운 곳은
사가현의 아리타 외에 가고시마현의 사쓰마(薩摩)이 있다. 좀 더 정확히는 나에시로가와(苗代川)이다.
우리에게 심수관요(沈壽官窯)로 알려진 도자기가 바로 사쓰마 지역 나에시로가와에서 생산되었던 것이다.
1598년 사쓰마 번으로 끌려온 박평의와 심당길이 도자기를 만들기 시작했고
그 전통이 14대 심수관에 의해 현재까지 계승되고 있다.
하라즈루에서 보낸 하룻밤
아리타에서 우리는 차를 타고 숙소가 있는 하라즈루(原鶴: www.harazuru.jp)로 향한다.
사실 하라즈루는 온천 휴양지일 뿐 그 외 볼거리는 없는 편이다.
하라즈루에 가려면 나가사키 자동차 도로를 타고 토수(鳥栖)까지 우리가 왔던 길을 되돌아 간 다음
오이타 자동차도로를 타고 계속 동쪽으로 가야 한다.
이미 밖이 어두워져 경치를 구경할 수는 없지만 가끔 나타나는 표지판을 통해
오고리(小郡)와 아사쿠라(朝倉)를 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 차는 하기(杷木)에서 고속도로를 나온 다음 치쿠고가와(筑後川)를 건너
하라즈루 그랜드 스카이 호텔로 들어간다. 10층쯤 되는 현대식 호텔로 일본적이기보다는 국제적이다.
|
안으로 들어가니 시설 역시 국제화되어 있다.
호텔 가운데 중정(中庭) 있고 그 주변으로 복도와 객실을 배치했다.
방에 들어가 보니 침대가 있는 서양식 방이다.
온천은 1층에 있으며 수온이 50도 정도 되는 단순천으로 유황성분이 들어있다고 한다.
짐을 푼 다음 2층의 식당으로 내려가 보니 저녁이 준비되어 있다.
식당의 시스템도 역시 국제적이어서
중국식으로 음식을 둥근 테이블에 놓고 돌려가면서 먹을 만큼만 떠먹는 식이다.
우리가 오늘 먼 거리를 다니면서 많은 지역을 답사하다 보니 저녁이 늦은 편이다.
차려진 음식이 성찬은 아니지만 우리 회원들 맛있게 식사를 한다.
식사를 끝내고 회원들은 각자 방으로 들어간다.
나도 역시 컴퓨터를 켜고는 오늘 하루를 정리한다.
사진을 옮기고, 오늘 있었던 일 중 중요한 사항들을 기록한다.
그러고 보니 오늘 우리가 후쿠오카 현과 사가 현을 누비고 다닌 셈이다.
내일은 이제 구마모토 현으로 넘어가야 한다.
▲ 하라즈루 풍경: 하룻밤 자고 나니 밤 사이에 눈이 왔다. ⓒ 이상기
- [대한해협과 현해탄 건너뛰기: 큐슈 북부답사] 아리타, 2
- 2008.04.03 오마이뉴스, 이상기 기자
● 아리타 야키 ‘도조(陶祖)’ 이삼평 : http://blog.daum.net/gijuzzang/8514792
● 사쓰마의 도자기 핏줄, 심수관家 : http://blog.daum.net/gijuzzang/8514793
'나아가는(문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주 오량동토기요지 발굴조사 - 영산강유역 대규모 옹관가마터 (0) | 2009.10.15 |
---|---|
근대공예유물 (0) | 2009.10.14 |
궁궐 굴뚝의 꽃담 (0) | 2009.10.06 |
우리춤 승전무 - 통영칼춤과 북춤 (0) | 2009.10.06 |
거대한 힘으로 만들어진 습곡구조의 아름다움 (0) | 2009.10.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