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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가며(자료)

신라 호국의 염원, 사천왕사

Gijuzzang Dream 2009. 9. 18. 19:41

 

 

 

 

 

 

 

사천왕사 관련 문헌기록

 

『三國史記』『三國遺事』

 

 

 

 

 

 

 

1.『三國史記』關係記事

 

 


(1) 券7, 新羅本紀 7, 文武王下

 

十九年春正月中侍春長病免舒弗邯天存爲中侍二月發使略耽羅國重修宮闕頗極壯麗夏四月熒惑守羽林六
月太白入月流星犯參大星秋八月太白入月角干天存卒創造東宮始定內外諸門額號四天王寺成增築南山城

 

19년 봄 정월에 중시 춘장이 병으로 면직하고, 서불한 천존을 중시로 삼았다.

2월에 사자를 보내어 탐라국을 경략하였다. 궁궐을 다시 수리했는데 지극히 장엄하고 화려했다.

여름 4월에 화성이 우림성을 지켰다. 6월 금성이 달의 분야에 들어가고, 유성이 삼대성의 분야를 침범했다.

가을 8월에 금성이 달의 분야에 들어갔다. 각간 천존이 죽었다.

동궁을 처음으로 짓고, 비로소 안팎 여러 문의 편액을 정했다.

사천왕사가 이룩되었으며, 남산성을 더 늘려 쌓았다.

  


(2) 券12, 新羅本紀 12, 景明王

 

三年四天王寺塑像所執弓弦自絶壁狗子有聲若吠者以上大等金成爲角飡侍中彦邕爲沙飡我太祖移都松岳郡

 

3년 사천왕사의 흙으로 만든 불상이 쥐고 있던 활시위가 저절로 끊어지고,

벽에 그린 강아지가 소리를 냈는데, 짖는 것과 같았다.

상대등 김성을 각찬으로 삼고 시중 언옹을 사찬으로 삼았다.

우리 태조가 송악군으로 도읍을 옮겼다.

 

(3) 券38, 志 7, 職官上

 

四天王寺成典景德王改爲監四天王寺府惠恭王復故衿荷臣一人景德王改爲監令惠恭王復稱衿荷臣哀莊王
又改爲令位自大阿飡至角干爲之上堂一人景德王改爲卿惠恭王復稱上堂哀莊王又改爲卿位自奈麻至阿飡爲
之赤位一人景德王改爲監惠恭王復稱赤位靑位二人景德王改爲主簿惠恭王復稱靑位哀莊王改爲大舍省一
人位自舍知至奈麻爲之史二人

 

사천왕사 성전:경덕왕이 고쳐서 감사천왕사부라 했으나, 혜공왕이 옛날대로 회복했다.

금하신은 한 명으로 경덕왕이 고쳐서 감령이라 했으나,

혜공왕은 고쳐서 다시 금하신이라 했고, 애장왕이 또 고쳐서 영이라 했다.

관등은 대아찬으로부터 각간까지가 이 벼슬을 한다.

상당은 한 명으로 경덕왕이 고쳐서 경이라 했으나,

공왕이 다시 상당이라 불렀고, 애장왕이 또 고쳐서 경이라 했다.

관등은 내마로부터 아찬까지가 이 벼슬을 한다.

적위는 한 명으로 경덕왕이 고쳐서 감이라 했으나, 혜공왕은 다시 적위라 불렀다.

청위는 두 명으로 경덕왕이 고쳐서 주부라 했으나,

혜공왕이 다시 청위라 불렀고, 애장왕이 고쳐서 대사라 했다.

성은 한 명으로 관등은 사지로부터 내마까지가 이 벼슬을 한다. 사는 두 명이었다.
- 참조: 이병도, 2002『, 三國史記』, 을유문화사.

 

 

 

 

 

2『三國遺事』關係記事

 

(1) 券1, 紀異 1, 善德王知幾三事

 

...三王無恙時謂群臣曰朕死於某年某月日葬我於利天中群臣罔知其處奏云何所王曰狼山南也至其月日
王果崩群臣葬於狼山之陽後十餘年文虎[武]大王創四天王寺於王墳之下佛經云四天王天之上有利天乃知大
王之靈聖也...

 

셋째는 왕이 병이 없었을 때에 여러 신하에게 일렀다.
“내가 아무 해 아무 달 아무 날에는 죽을 것이니, 나를 도리천 속에 장사지내시오.”
여러 신하는 그곳을 알지 못하여 물었다.
“어느 곳입니까?”
“낭산 남쪽이다.”
그 달 그 날에 이르러 왕이 과연 세상을 떠났으므로, 여러 신하들이 낭산 남쪽에 왕을 장사지냈다.

그 후 10여 년에 문무대왕이 사천왕사를 왕의 무덤 아래에 세웠다.

불경에 사천왕천의 위에 도리천이 있다고 했으니, 그제야 대왕의 신령하고 성스러움을 알게 되었다.


 

(2) 券2, 紀異 2, 文武王法敏

 

...時唐之游兵諸將兵有留鎭而將謀襲我者王覺之發兵(擊)之明年高宗使召仁問等讓之曰爾請我兵以滅麗
害之何耶乃下圓扉鍊兵五十萬以薛邦爲帥欲伐新羅時義相師西學入唐來見仁問仁問以事諭之相乃東還上
聞王甚憚之會群臣問防禦策角干金天尊奏曰近有明朗法師入龍宮傳秘法以來請詔問之朗奏曰狼山之南有
神遊林創四天王寺於其地開設道場則可矣
時有貞州使走報曰唐兵無數至我境廻海上王召明朗曰事已逼至如何朗曰以彩帛假構宜矣乃以彩帛營寺
草構五方神像以瑜伽明僧十二員明朗爲上首作文豆婁秘密之法時唐羅兵未交接風濤怒起唐舡皆沒於水後改
創寺名四天王寺至今不墜壇席〔國史大改創在調露元年己卯〕後年辛未唐更遣趙憲爲帥亦以五萬兵來征又作
其法舡沒如前是時翰林郞朴文俊隨仁問在獄中高宗召文俊曰汝國有何密法再發大兵無生還者文俊奏曰陪
臣等來於上國一十餘年不知本國之事但遙聞一事爾厚荷上國之恩一統三國欲報之德新創天王寺於狼山之南
祝皇壽萬年長開法席而已高宗聞之大悅乃遣禮部侍郞樂鵬龜使於羅審其寺王先聞唐使將至不宜見寺乃別
創新寺於其南待之使至曰必先行香於皇帝祝壽之所天王寺乃引見新寺其使立於門前曰不是四天王寺乃望德
遙山之寺終不入國人以金一千兩贈之其使乃還奏曰新羅創天王寺祝皇壽於新寺而已因唐使之言因名望德寺
〔或系孝昭王代誤矣〕...

 

이때 당나라의 유병인 여러 장수와 병졸이 머물러 있어 신라를 습격하려 했다.

왕은 이를 알고 군사를 일으켰다. 이듬해에 당나라 고종이 인문 등을 불러들여 꾸짖었다.
“너희들이 우리 군사를 청하여 고구려를 멸망시켰는데 우리를 침해하다니 무슨 까닭이냐?”
이에 옥에 가두고 군사 50만 명을 교련하여 설방을 장수로 삼아 신라를 치려고 했다.

이때 의상법사가 유학하러 당나라에 건너가 인문을 찾아보니 인문이 그 사실을 알렸다.

의상은 곧 돌아와서 임금에게 아뢰니 임금은 매우 두려워하여 여러 신하를 모아 막을 계책을 물었다.

각간 김천존이 아뢰었다.
“요사이 명랑법사가 용궁에 들어가서 비법을 배워왔으니 그를 불러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명랑법사가 아뢰었다.
“낭산 남쪽에 신유림이 있으니, 그곳에 사천왕사를 세우고 도량을 열면 좋겠습니다.”
당나라 군사를 비법으로 물리치다
그때 정주에서 사람이 달려와서 보고했다.
“당나라 군사가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우리 국경까지 와서 바다 위를 순회하고 있습니다.”
왕은 또 명랑법사를 불러 물었다.
“일이 이토록 급박하게 되었으니 어찌하면 좋겠소?”
“채백으로 절을 임시로 만들면 될 것입니다.”
이에 채백으로 절을 짓고 풀로 5방의 신상을 만들며

유가의 명승 열두 분으로써 명랑을 우두머리로 삼아 문두루의 비밀법을 지었다.
그때 당나라 군사와 신라 군사가 접전하기 전에 바람과 물결이 사납게 일어나서

당나라 배가 모두 물에 침몰되었다.
그 후에 절을 고쳐 짓고 이름을 사천왕사라 하니, 지금까지 단석이 없어지지 않았다.

『국사(國史)』에는 이 절을 고쳐 지음이 조로원년 기묘에 있었다 했다.
그 후 신미년에 당나라에서는 다시 조헌을 장수로 삼아 또한 군사 5만 명을 이끌고 쳐들어오므로

또 그 법을 썼더니 그전처럼 배가 침몰했다.

이때에 한림랑 박문준이 인문과 함께 옥에 있었는데 고종은 문준을 불러 물었다.
“너희 나라에는 무슨 비법이 있기에

우리가 많은 군사를 두 번이나 동원해도 살아 돌아오는 사람이 없느냐?”
문준은 아뢰었다.
“배신들이 상국에 온 지 십수년이나 되었으므로 본국의 일을 알지 못하오나,

다만 멀리서 한 가지 사실만 들었을 뿐입니다.

곧 저희 나라가 상국의 은혜를 많이 입어 세 나라를 통일했으므로,

그 덕을 갚으려고 새로 천왕사를 낭산 남쪽에 세우고

황제의 만년 수명을 축원하면서 법석을 길이 열었다는 사실뿐입니다.”
고종은 이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여 이에 예부시랑 악붕귀를 신라에 보내어 그 절을 살펴보게 했다.

왕은 당나라 사신이 온다는 말을 미리 듣고 이 절을 보여서는 안 될 것으로 여겨,

이에 따로 그 남쪽에 새 절을 짓고 기다렸다. 사신이 와서 청했다.
“먼저 황제의 수명을 빈다는 천왕사에 가서 분향하고자 합니다.”
그를 새 절로 인도하여 보였더니

그 사신은 문전에 서서 “이것은 사천왕사가 아니고 망덕요산의 절이오”하면서 끝끝내 들어가지 않았다.

나랏사람이 금 천냥을 그에게 주니 당나라에 돌아가서 아뢰었다.
“신라에서는 천왕사를 짓고 황제의 수명을 새 절에서 축원할 뿐입니다.”
당나라 사신의 말로 인하여 새 절을 망덕사라 했다. 어떤 이는 효소왕 때의 일이라 하나 잘못이다.

 

 

(3) 券2, 紀異 2, 景明王


第五十四景明王代貞明五[四]年戊寅四天王寺壁狗鳴說經三日禳之大[未]半日又鳴七年庚辰二月皇龍寺
塔影倒立於今毛舍知家庭中一朔又十月四天王寺五方神弓弦皆絶壁狗出走庭中還入壁中

 

제54대 경명왕 때인 정명 4년 무인에 사천왕사 벽화의 개가 울어서

사흘 동안 불경을 강설 풀이하여 이것을 물리쳤더니 한나절이 채 안 되어 또 울었다.
정명 7년 경진 2월에는 황룡사 탑 그림자가 금모 사지의 집 뜰 안에 한 달이나 거꾸로 서 있었다.

또 10월에는 사천왕사 오방신의 활줄이 모두 끊어졌고,

벽화의 개가 뜰로 쫓아나왔다가 다시 벽 속으로 들어갔다.

 

 

(4) 券4, 義解 5, 良志使錫


...又善筆札靈妙丈六三尊天王像幷殿塔之瓦天王寺塔下八部神將法林寺主佛三尊左右金剛神等皆所塑也
書靈妙法林二寺額又嘗彫造一小塔竝造三千佛安其塔置於寺中致敬焉其塑靈妙之丈六也自入定以正受所
對爲式故傾城士女爭運泥土...

 

또 필찰을 잘하여 영묘사의 장륙삼존상과 천왕상과 전탑의 기와와 천왕사 탑 밑의 팔부신장과

법림사의 주불 삼존과 좌우 금강신 등이 모두 그가 만든 것이다.

영묘사와 법림사의 편액을 썼으며, 또 일찍이 벽돌을 조각하여 작은 탑 하나를 만들고,

아울러 3천불을 만들어 그 탑을 절 안에 모셔두고 예를 드렸다.

그가 영묘사의 장륙상을 만들 때 입정하여 삼매에서 뵌 부처를 모형으로 삼았는데

온 성안의 남자와 여자들이 진흙을 다투어 운반했었다.
- 참조: 김원중, 2003『, 三國遺事』, 을유문화사. (정리: 진주옥)

 

 

 

 

■ 四天王寺關聯論考

 

... 1999년 이전 생략 ...

- 권영택, 1999「新羅 佛敎受容에서의 密敎의 역할」『石堂論叢』28, 東亞大學校石堂傳統文化硏究院.

- 崔應天, 1999「文武王代의 美術 -彫刻과 金屬工藝-」『新羅文化』16, 東國大學校新羅文化硏究所.
국립경주박물관, 2000『, 新羅瓦塼』.
- 권강미, 2001「統一新羅 四天王像 硏究」, 동아대학교석사학위논문.
- 김리나, 2001「통일신라전기 사천왕상에 관한 연구」, 경주대학교석사학위논문.
- 金昌鎬, 2001「新羅 密敎사원 四天王寺의 역사적 위치」『密敎學報』3, 威德大學校密敎文化硏究院.
- 조원영, 2001「新羅中代 神印宗의 成立과 그 美術」『釜山史學』40·41, 부산경남사학회.
- 權悳永, 2002「韓國古代 金石文 綜合 索引」, 학연문화사.
- 權寧弼, 2002「헬레니즘 造形의 慶州傳播 - 헤라클레스 熱風과 四天王像-」,
『중앙아시아연구』7, 중앙아시아학회.
- 남궁현, 2002「統一新羅 佛敎彫刻의 密敎的 要素에 관한 考察: 石塔 浮彫像을 中心으로」,
동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 山田隆文, 2002「韓半島出土塼佛-その使用方法について-」『佛敎考古學』2, 위덕대학교박물관.
- 張忠植, 2002「新羅 四天王寺址 壇石의 考察」『佛敎學報』39, 동국대학교불교문화연구원.
- 진성규 · 이인철, 2003『신라의 불교사원』, 백산자료원.
- 안미영, 2003「新羅中代 寺刹의 密敎的 성격」, 경주대학교석사학위논문.
- 郭敬淳, 2004「신라 四天王寺 雙塔에 관한 硏究 -發生背景을 중심으로-」『慶州史學』23, 慶州史學會.
- 김상태, 2004「新羅時代 伽藍의 構成原理와 密敎的 相關關係 硏究」, 홍익대학교박사학위논문.
- 김상태 · 박언곤, 2004「四天王寺의 密敎的 特性에 關한 硏究」,
『大韓建築學會論文集計劃系』20권 4호(통권186호), 大韓建築學會.
- 김연민, 2005「新羅 文武王代 明朗의 密敎思想과 그 의미」, 국민대학교석사학위논문.
- 김정수, 2005「6~9세기 신라 목탑형태의 변천에 관한 연구」, 경기대학교박사학위논문.
- 허형욱, 2005「實相寺 百丈庵석탑의 五方神像에 관한 고찰」『미술사연구』19, 미술사연구회.
- 金理那, 2006「文武王의 佛敎美術 후원」『韓國古代佛敎彫刻比較硏究』, 문예출판사.

- 盧潤相, 2006「新羅時代 蓮花文수막새 硏究: 慶州地域 寺址發掘出土品을 中心으로」,
동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 崔장미 · 車順喆, 2006「2006년도 사천왕사지발굴조사의 성과와 의의」『新羅史學報』8, 新羅史學會.
-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2006『사천왕사지 발굴조사(1차) 자문회의 자료집』.
-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2007『사천왕사지 발굴조사(2차) 자문회의 자료집』.
- 유홍도, 2008「통일신라시대 전돌 연구」, 숙명여자대학교박사학위논문.
- 지병목, 2008「경주 사천왕사 발굴조사 성과와 의의」,『 한국건물지 고고학회 제2회학술대회 발표자료집』, 한국건물지 고고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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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경주박물관]특별전 "사천왕사" :  http://blog.daum.net/gijuzzang/8514548

 

● 고고학자 조유전과 떠나는 한국사 - 사천왕사를 지은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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