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가며(자료)

'석학과 함께하는 인문학강좌' - 김석철 명지대석좌교수(건축가)

Gijuzzang Dream 2009. 8. 25. 14:40

 

 

 

 

 

 

한국학술진흥재단 제2기 ‘석학과 함께하는 인문학 강좌’

 

 김석철 명지대 석좌교수(건축학)

 

- 건축과 도시와 인문 -

 

 

 

 

 

 

 

 

 (1) "인문학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 

 어린 시절 동·서양 고전에 몰입 

 

 

 

 

한국의 대표 건축가를 들라면

김석철 명지대 석좌교수(66, 아키반 건축도시연구원 대표)를 빼놓을 수 없다.

그의 이력을 보면 세계적인 건축 거장으로서 손색이 없다.
 
21세기 도시선언인 '메가리데(Megaride) 헌장' 기초에 참여했으며,
런던 AA스쿨 등에서 강의했다.

현재 베네치아아 대학, 뉴욕 콜롬비아 건축도시대학원, 북경 칭화 대학의 초빙교수이며,

명지대 건축대학장을 맡고 있다.

김석철 명지대 석좌교수 

베네치아대학 초청으로 카드룽 궁에서 '김석철 건축전'을,

자그레브 국립박물관에서 '백남준-김석철 2인전',

도쿄와 바르셀로나에서 '아시아를 넘어서' 등의 전시회를 가졌고,

베이징 포츈 플라자, 베로나 뮤지엄 등의 국제현상 심사위원으로 초대됐다.
제1회 한국건축문화대상, 제1회 한국건축전대상, 철탑산업훈장, 보관문화훈장 그리고 안트리온(Antrion) 디자인 어워드 대상, 아시아건축사대회(Arcasia) 어워드 2000 금상 등을 수상했다.

주요 작품으로 자하라 주거단지, 예술의전당,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한국예술종합학교,

해인사 신불교단지, 제주 영화박물관, 경기고100주년기념관, 베이징 BDA 주거단지, 베이징 iCBD 등이

있으며, 인류 문화유산인 아제르바이젠의 바쿠 신도시, 고대 중국 문명의 발상지인 취푸 신도시 건설에

참여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세계적인 건축 거장들과 함께 제주 관광지 조성에 참여하고 있는 중.


너무나 크고 넓은 세계에 감격

김석철 교수는 11일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린 '석학과 함께하는 인문강좌' 강연을 통해

자신이 이처럼 건축사로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이면에는 인문학 공부가 있었다고 말했다.

인문학 안에는 세상의 깊이, 잠재력, 가능성 등이 모두 포함돼 있다는 것.

김 교수의 인문학 순례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시작된다.

1943년에 태어나 경기고에 재학 중이던 김 교수는

"지금 같은 입시 열풍이 없을 때여서 대부분의 시간을 책을 읽으며, 지낼 수 있었다"고

지난 과거를 술회했다.

'건축과 도시와 인문'이란 주제로 열린

석학과 함께 하는 인문강좌 


"당시 나는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읽고 나서 너무 큰 감동을 받아 며칠 동안 학교에도 못 갔으며,

괴테의 '파우스트'를 읽은 밤에는 잠을 이루지 못했으며,

보들레르의 '악의 꽃'을 읽으면서 너무도 크고 넓은 세계에 감격했다."

"그렇게 서양 문학에 몰두하다가, 중국 문학에 빠져들게 되었다.

동양 문명의 큰 울림을 서서히 알게 되면서 중국과 한국 고전을 한문으로 직접 읽고 싶어졌다.

한국일보의 한문강좌 광고를 보고 해암 선생을 찾았다.

반년 가까이 다니면서 주로 시문과 소설을 읽었다.

'매월당집' '열하일기' '어부사' '적벽부' '도화원기' 등을 읽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해암 선생이 더 좋은 선생에게 배우라 하시며,

동대문에 사시는 호정 선생 댁으로 데려갔다. 그동안 배운 것을 말씀드렸더니 잡문만 배웠다고 하셨다.

그때부터 본격적인 중국 고전읽기가 시작됐다."

"선생께서는 철학을 하려면 동양 문명의 지적 기반인 '논어' '맹자' '중용' '대학'을 알아야 한다며,

'대학'부터 공부를 시작하셨다. 미리 읽고, 다 외어야만 했다.

이전의 책 읽기와는 다른 본격적인 책 읽기가 시작된 것이다."


인문과 과학기술 넘나든 독서 효과

"'대학'을 끝내고, '논어'를 다 읽어갈 때쯤 고교 3년 막바지가 됐다.

철학과에 가서 수리 철학을 할 셈이어서, 해석기하학과 독일어를 선택 과목으로 하고

하루 세 시간씩 따로 한문 공부를 하다가, 입시를 앞두고 생각지 않았던 건축과를 가게 돼

남은 두 달 동안 이과 공부를 해야 했다. 물리학과 화학이 필수여서 한문 공부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 날 호정 선생을 찾아뵈었더니 말년에 좋은 제자를 다른 곳에 보내게 됐다며 서운해 하시면서,

그러나 지난 일 년간 공부를 잊지 말고, 시간 나는 대로 '맹자' '중용', 그리고 '주역'을 다 읽도록 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전공이 제일이니 우선 건축을 먼저 깊이 공부해야 한다 하시며,

보시던 사서삼경을 주셨다."

고대 로마 집터 

김 교수는 서울대 건축학과에 입학한 후

거의 1년간 호정 선생을 찾아뵙지 못했다고 말했다.

1년 뒤 찾아뵈었을 때는 다른 곳으로 가신 후였고,

그 후 '논어'와 '맹자', '중용' 등을 혼자 읽었으나.

선생과 함께 읽었을 때와는 너무 달랐다며

선생과 공부하던 때를 그리워했다.

그러나 동·서양 문헌을 탐독한 결과는

건축가로서의 혜안을 가져다주었다고 말했다.

로마 시내에 있는 고대 로마도시, 포로 로마노에 들어섰을 때

김 교수는 "이보다 더 위대한 도시가 태어나서는 안 된다"는 말을 즉시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자신이 포로 로마노가 얼마나 훌륭한 도시인지 알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정치와 경제, 문화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인문학과 과학기술을 넘나든 독서 몰입이 건축가로서의 여정에 큰 도움을 주었으며,

그 도움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김 교수는 말했다.


40년 만에 바쿠시에서 차라투스트라 다시 만나

현재 진행 중인 중국의 취푸 신도시 건설 역시 자신의 인문학적 지식이 큰 도움을 주고 있다고 밝혔다.

사서삼경, 주역 등을 탐독한 결과 유교 도시인 취푸 신도시의 의미를 알 수 있었고,

이는 곧 '주역과 풍수지리 원리에 의한 도시'를 만들고자 하는 자신의 노력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자신이 아제르바이젠의 바쿠 신도시 건설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은

어린 시절 니체의 저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탐독한 결과에서 비롯됐다고 말했다.

1959년 초여름 하숙집에서 이어령 선생께 '신이 존재하는지'에 대해 질문하니,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어보라고 하셨고, 그 책을 읽은 후 큰 충격을 받았다고 회고했다.

이때 조로아스터교에 대해 알게 되고, 조로아스터교의 성지인 바쿠에 대해 알게 됐는데,

나이가 든 후 자신이 책으로만 읽었던 바쿠에 신도시를 건설할 줄은 꿈에도 몰랐었다고 말했다.

책을 읽은 지 거의 40년 만에 바쿠에서 차라투스트라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며,

감격적인 상봉이 '인문학, 과학기술을 넘나든' 독서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강조했다.

김 교수는 "지금도 여전히 많은 책을 읽고 있으나, 가벼운 책 읽기의 즐거움만 알지,

책을 통한 학문의 정진은 잊고 있다"고 스스로를 탓했다.

"톨스토이, 니체, 하이데거, 대학, 논어 등을 읽을 때 가졌던 순수한 학문에의 열정이 일상이 되어야

나의 삶도 의미가 있는 것"이라며, 다른 사람들도 자신의 경험담을 참조해줄 것을 주문했다.

- 2009.07.13

 

 

 

 

 

 

 (2) 학생이 총장 역할… 세계 최초 대학

 한국에도 대학도시 있어야...

 

 

볼로냐 대학 

서양의 중세 문명은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B.C. 395년경에 시작해

약 1천 년간 이어졌다.

15세기에 있었던 르네상스, 인쇄술 발명,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등과 함께 막을 내렸는데, 서구 중세 문명을 평가하는 데 있어 여러 가지 다른 시각들이 있다.

18일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린 '석학과 함께하는 인문강좌'에서 건축가 김석철 씨(명지대 석좌교수)는 일부 역사가들이 중세를 '암흑시대'라고 말하고 있지만, 자신이 유럽의 주요 도시들을 둘러보았을 때 중세는 결코 암흑시대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도시로 이탈리아의 볼로냐를 예로 들었다.

볼로냐가 인류 문명사에 있어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이곳에서 세계 최초의 대학이 만들어졌기 때문.

대학과 의회 민주주의제도가 후대 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볼로냐에 세계 최초 대학이 탄생했다는 사실은 가볍게 지나칠 일이 아니라고 김 교수는 말했다.

볼로냐는 기원전 190년경에 에트루리아인이 세운 펠시나를 로마가 식민화한 도시다.

6세기 교황령이 되었다가, 12세기 초 자치 도시 코뮌(commune)이 됐다.

중세에는 교황파와 황제파의 세력 다툼으로 번갈아 지배를 받았으나,

교황 율리우스 2세에 의해 교황령으로 합병된 후 약 300년 동안 번영을 누렸다.

 


교수들 하루만 결강해도 보충강의

이곳에 세워진 세계 최초의 대학은 학생들이 만들었다.

12세기 법률을 연구하려던 젊은이들이 볼로냐에 길드를 조직하고, 교수를 채용했다.

그들은 학문 공동체를 조직하고, 규칙을 만들었다. 

학생들이 만든 규칙을 교수들이 따르지 않으면, 벌금을 물리거나 해고했다.

교수들은 병에 걸리거나 결혼하는 경우를 빼고는 결강할 수 없었다.

단 하루만 결강해도 해당 학기에 보충강의를 해야 했다.

14세기까지 볼로냐를 비롯한 이탈리아 대학의 통제권은 학생들에게 있었다.

학생들이 대학을 만든 목적은 전문 교육을 받은 후 교수, 법률가, 의사, 성직자 등이 되기 위해서였다.

자연스럽게 대학은 의학이나 법학 같은 실용적 학문이 주류를 이뤘다.

 

이탈리아 볼로냐 시 

교수가 학생이 납부한 등록금으로 살아야 하는 대학의 첫 모델이 볼로냐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리고 이 학생조합(student union)은 이탈리아, 에스파냐, 프랑스 등으로 급속히 전파됐다.

파리 대학은 볼로냐 대학과 달리 교사들이 만들었다.

12세기 노트르담 성당학교에 모인 교사들은 길드를 형성한 후 파리 대학을 설립했다. 파리 대학은 학생이 아닌 교수가 전권을 가진 현대 대학의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토마스 아퀴나스 등이 파리 대학을 나왔다.

그러나 파리 대학 운영방식에 불만을 품은 학생들이 있었다.

이들은 영국으로 건너가 옥스퍼드 대학을 만들었다.

그러나 학생 통제권을 받는 대학에서 교사들의 불만이 폭발했다.

불만을 품은 교사들은 옥스퍼드를 떠나 같은 영국 내에 케임브리지 대학을 만든다.

케임브리지 대학에서는 교수 자격을 철저히 통제했다.

시 수여된 최초의 학위, 즉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아야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었고,

학사 학위는 이보다 나중에 생겼다. 당시에는 35세 이전에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을 찾아볼 수 없었다.

 


학생과 시민 간의 유혈사태도

흥미 있는 사실은 볼로냐, 파리, 옥스퍼드, 하이델베르크와 같은 대학 도시에서

학생과 주민들 사이에 유혈 사태가 끊이질 않았다는 것이다.

전쟁에서 흘린 피보다 유혈 소동을 통해 흘린 피가 더 많을 정도였다.

유혈사태의 원인은 이념 때문이었다. 자본주의는 시민사회가, 사회주의는 대학사회가 주도했다.

결과적으로 대학 사회와 시민 사회의 충돌이 불가피했고, 그 전통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김 교수는 1960년대 유럽을 휩쓸었던 학생운동 역시

볼로냐의 대학 전통에서 비롯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캠퍼스를 별로 중시하지 않은 점도 주목할 사항이다.

최초 대학인 볼로냐에도 대학 캠퍼스나 대학 전용 건물이 없었다.

대학은 시험을 보고 학위를 수여하는 역할만 했다.

대부분의 대학은 외형보다 내용을 중시하는 분위기가 팽배했는데,

이 같은 전통은 사실 대학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고 김 교수는 말했다.

유혈사태까지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학문 세계를 만들어낸 것이 대학도시였다고 김 교수는 말했다.

그리고 한국에도 이 같은 대학도시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36년 전 볼로냐를 걷고 있던 자신의 모습을 회고했다.

김 교수는 한국에서 서울대 마스터플랜을 짤 때

자신은 관악산 부지가 아닌 현 과천청사에 대학도시를 세우자고 강력히 주장한 바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을 이끌어간 인재들의 도량을 위해 헬기를 타고, 수차례 돌아보고,

밤에도 다시 와 보고 (관악산 부지를) 결정한 것"이라는 박정희 대통령의 편지를 보고,

더 이상 과천 캠퍼스를 주장할 수 없었다며,

지금까지도 과천에 대학 도시 건설을 포기한 것이 잘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대학 캠퍼스를 대학 공동체가 되게 하는 일이

도시를 만드는 일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서로 영향을 받으면서, 학문 세계를 이루어나가는 것이 곧 대학도시라며,

'인문학 중심의 서원'으로 남아야만 했던 과거 한국 대학의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과거를 진심으로 반성하고, 기회가 주어지면 대학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작업을 하기를 원한다며,

지금도 21세기 대학다운 대학을 만들고 싶은 간절한 생각에 시간이 날 때마다

볼로냐 등 대학도시와 관련된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다고 김 교수는 말했다.

- 2009년 7월20일

 

 

 

 

 

 

 (3) 서울… 세계적 도시 가능하다

 김석철 교수, 자연을 도시 중심으로 끌어와야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린 '석학과 함께하는 인문강좌'에서 김석철 명지대 석좌교수(건축가)는

"서울이 자랑스러운 도시이면서, 또한 부끄러운 도시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서울이 자랑스러운 것은 약 600년간 한반도 수도였던 도시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북으로 북한산, 남으로 관악산, 서쪽 바다와 동쪽 백두대간 사이를 흐르는 한강의 모습은

위대한 도시로서 손색이 없는 웅대한 자연환경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서울은 부끄러운 도시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오랜 역사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연가유적이 도시 흐름과 괴리돼,

과거와 현재의 연속성이 차단된 반역사적 도시라는 것.

서울의 가장 큰 공간인 한강은 도시와 차단된 도시 변방이 됐으며,

북한산과 관악산을 잇는 역사의 흐름은 도시 인프라로 인해 차단돼 있다고 말했다.

서해 바다는 군사 분계선으로 인해 막히고, 동쪽의 백두대간은 수자원보호구역으로 묶여 있어,

남쪽으로만 도시가 확대된 기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광장과 거리를 확산시켜 나가야

김 교수는 이런 서울을 새로운 모습으로 바꾸려면,

먼저 역사와 지리와 문화 공간을 한데 모은 문화 인프라,

즉 광장과 거리를 확산시켜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청계천 복원으로 이 같은 염원이 어느 정도 이루어졌으며,

지금 진행되고 있는 광화문 광장 역시 시의적절한 사업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사업 내용에 관해서는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며

광화문광장의 영역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설명했다.  

광화문광장 조감도 

 

 

천안문을 중심으로 자금성의 정문인 오문과 천안문 앞의 인민광장을 천안문 광장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광화문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도록 하고, 광화문 안 홍예문까지를 개방할 때

비로소 광화문 광장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을 대표하는 문화 인프라로 서울광장거리를 만들려고 한다면,

광화문에서 세종로의 이순신 동상까지를 광화문 광장으로 만들기보다는

광화문과 대한문 사이를 서울 광장거리로 해서,

서울광장거리가 숭례문을 거쳐 서울역에 이르고, 서소문으로 바다에 연결되고,

소공로를 통해 남산에 이르게 하는 '광화문-대한문 간 서울광장거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과 비교할 만한 도시는 뉴욕도 아니고, 도쿄도 아니라고 말했다.

서울이 타산지석으로 삼을 도시는 런던, 파리, 워싱톤DC 정도라는 것.

서울의 도시 광장과 거리는 워싱톤DC의 내셔날 몰과 스미소니언, 런던의 더 몰과 트라팔가스 광장,

파리의 개선문과 샹제리제, 콩코드 광장과 경쟁할 만한 곳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광화문광장이 파리 콩코드광장 같이 되려면 샹제리제 같은 서울광장거리와 경복궁이 하나가 돼

하나의 도시경관을 이룰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금 진행 중인 세종로의 해태상 복원사업,

그리고 육조거리, 세종대왕 동상으로 이루어진 2차원 광장은

서울의 역사와 지리를 거스르는 방안이라고 주장했다.

 


서울 1번가, 주변환경 워싱톤, 런던 못지않아

김 교수는 경복궁, 덕수궁, 숭례문, 서울역으로 이어지는 서울 1번가로는

워싱톤DC 내셔날 몰 못지않은 스케일과 콘텐츠를 갖고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청와대, 구 국회의사당, 구 대법원, 세종문화회관, 구 현대미술관 등이 있던 곳이

내셔날 몰보다 못할 것이 없다는 것.

런던 버킹엄 궁과 트라팔가 광장 사이의 더 몰과 화이트홀 역시

경복궁과 청와대, 옛 국회의사당, 정부종합청사가 함께 있는 서울광장거리와 비슷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워싱톤DC의 내셔날 몰과 파리 샹제리제와 더 몰은

도시가 네트워크이고 링크인 것을 보여주고 있다며 광화문광장 역시 이를 참조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서울에 대해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한가운데를 한강이라는 거대한 자연이 흐르고 있으나,

정작 도시 도처는 콘크리트의 사막과 같이 되어버린 도시"라고 말했다.

그런 서울을 살아 있는 도시로 만들기 위한 사업이 서울광장거리인데,

이 사업이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북한산을 타고 경복궁까지 내려온 녹지 축을 어떻게든 도시 중심으로 끌고 와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 녹지축을 덕수궁, 남산으로 잇게 하는 일이 광화문광장의 요체인데,

지금 세종로 중앙의 100년 된 은행나무를 뽑고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광화문광장 안의 골자가 세종로의 100년 된 은행나무를 뽑아내고,

34m 폭, 500m 길이의 보행광장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서울이 세계 도시들 앞에 서려면 뉴욕, 도쿄, 베이징, 런던이 가지지 못한

웅대한 자연을 도시 속에 깊이 연계시키는 일만한 것이 없다"고 말했다.

삼각산, 북한산이 광화문, 대한문 광장으로 이어지고,

남산을 지나 한강에 닿아야 서울이 자연과 인문이 조화를 이루는 세계적인 도시가 될 수 있다며,

서울시에서 자신의 생각을 참조해주기를 바랐다.

- 2009년 7월27일

 

 

 

 

 

 

 

 (4) '미래의 집' 컴퓨터가 짓는다

 21세기는 건축·과학·예술 동반협력시대 

 

 

미래의 집은 어떤 집일까.

많은 사람들이 고층 건축의 세계, 지하의 도시, 바다 위의 집 같은 공상과학에서 나옴직한 집들을

상상하고 있으나, 실상은 조금 다르다.

1일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린 '석학과 함께하는 인문강좌'에서 김석철 명지대 석좌교수는

21세기의 집짓기가 산업혁명 이후보다 더 큰 변화를 맞고 있다고 말했다.

컴퓨터의 도움을 받아 상상의 날개를 현실화한 집들이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는 것인데,

대표적인 사례로 스페인 빌바오(Bilbao)의 구겐하임 미술관(Guggenheim Museum)을 예로 들었다.

구겐하임 미술관은 국제 현상공모를 통해 당선된

프랭크 게리(Frank Owen Gehry)의 환상적인 건물 스케치를 현실화한 것이다.

스페인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

매년 1백만명 이상의 관람객이 몰리고 있다. 

 


스케치를, 더구나 비현실적인 모습의 스케치를 현실화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호주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의 경우 스케치에 실린 내용을 대부분 폐기하고,

이미지만 살린 대안으로 마무리했으나, 건물을 짓는 데 무려 14년이란 시간이 걸렸고,

예산을 5배로 증액해야 했다.

그러나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에게는 그런 일이 있을 수 없었다.

CAD · CAM이라는 전산설계와 전산가공의 덕이었다.

설계팀은 스케치를 보고 수많은 축소 모형을 만든 다음,

모형의 좌표를 측정해 3차원 모델을 디지털 데이터로 옮겼다.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충격 그 자체

그리고 이 데이터를 토대를 컴퓨터 모형을 만든 후

'보잉777'을 설계할 때 사용했던 CATIA란 소프트웨어를 사용해 디지털 설계를 시작했다.

컴퓨터 모형을 갖고 화면을 조작하면서 최종 설계도를 만들어낸 것이다.

컴퓨터로 만들어진 집은 집을 짓는 과정도 컴퓨터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오차가 있을 수 없었다.

1997년 10월 세계를 놀라게 하면서 마침내 구겐하임 미술관이 개관했다.

미술관의 모습은 충격 그 자체였다. 세계는 이런 건물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에 경탄을 금치 않았다.

더 놀라운 것은 스케치에 들어 있는 내용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설계해, 계획된 기간 내에 완성했으며,

경비(미화 1억 달러)도 10%나 남겼다는 사실이다.

인간과 컴퓨터가 협력해 이루어낸 건축역사상 유례가 없는 개가였다.

김석철 교수는 미래의 집은 이처럼 컴퓨터와 함께 지어지고 있으며,

과거에 상상할 수 없던 형태로 발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이러한 변화의 바람은 21세기의 건축가에게

새로운 건축물, 새로운 도시에 대한 상상력을 부여하고 있으며,

또한 미래 공간을 새롭게 제시할 임무를 부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미래 건축의 한 형태로 '생태건축'을 소개했다.

건축에서 지속가능한 발전이란

"미래 세대가 그들의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손상시키지 않는 범위에서

당대 세대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개발"을 의미하며, 생태건축이 바로 그런 건축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생태건축을 친환경 재료로 만든 건물 정도로 생각하는 풍조가 있지만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생태건축이란 물, 바람, 태양 에너지와 같은 자연 에너지로부터

자원과 폐기물에 이르는 에너지 순환체제를 갖춘 자연 친화적인 건축을 말하는 것으로,

이를 통해 도시에 생명을 불어넣고, 또한 지구친화적인 인간 회복을 도모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래 지속가능한 집은 생태주택

이미 유럽에서부터 확산되고 있는 생태주택은 적은 양의 전기 에너지만으로

더운 여름과 추운 겨울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고 말했다.

또한 태양 에너지, 풍력 에너지 등 자연 에너지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설계돼 있으며,

신소재 개발로 바깥 공기의 출입을 조절할 수 있어 생태주택으로서 손색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생태주택의 초기 건축비가 너무 많이 들어

건축을 확산시키지 못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에너지 절감효과로 얻는 이득으로 건축 비용을 회수하려면 적게는 30년, 많게는 50년까지 걸려

현재로서는 생태주택을 짓는 일이 건축가들에게는 선택사항일 뿐이라고 말했다.

반면 도시 건축에 있어서는 생태건축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했다.

중국이 국가적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취푸 신도시의 경우

고대 중국문명의 발원지로서 역사도시의 의미를 충분히 살릴 수 있도록 하려는 목적과 함께

주역과 풍수지리 원리에 의한 도시를 만들려고 시도하고 있는데,

이 도시가 건설될 경우 대표적인 자연친화적 도시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취푸 신도시는 주역의 원리에 따라 인간과 자연 간의 상생의 질서를 모색하는 도시로서,

"자연과 함께 하며, 자연에 가장 작은 것을 버리는 도시"가 될 것이며,

또한 생태건축의 진면목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또 미래의 가장 위대한 건축가가 되기 위해서는

"집을 사랑하는, 그리고 창조적인 능력을 가진 사람이 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 산업혁명 이후 20세기까지

세계는 미술적 능력과 함께 공학적인 능력을 겸비한 건축가를 필요로 했다.

그러나 컴퓨터가 등장하면서 많은 건축가들이 한 네트워크로 연결돼

하나의 도면을 여러 명이 동시에 그리기도 하고,

특별히 제작한 프로그램을 이용해 한 사람이 동시에 여러 장의 도면을 그릴 수 있게 됐다.

그 결과 건축가들은 건축과 관련된 모든 정보를 종합하고 선별하며,

더 나아가서 건축물을 상상하는 일까지 도맡게 됐다고 말했다.

그 결과 이 같은 상황을 창조적으로 종합할 수 있으며,

또한 상상력이 뛰어나지 않으면 위대한 건축가가 되기 힘든 시대가 됐다며,

미래 건축계를 "집을 사랑하는, 창조적인 능력을 가진" 사람이 이끌어나가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 2009년 8월3일

 

 

 

 

 

 

 

  (5) 역사도시구역 '북촌' 건설하자

 김석철 교수, 경복궁 뒤 공간 있어 복원 가능

 

 

"위대한 건축은 자연이 갖고 있는 매크로 스케일을 보여주는 일이다.

땅으로부터 나오는 암묵적인 소리를 들어야 한다."

8일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린 석학과 함께하는 인문강좌에서 김석철 명지대 석좌교수는

"자연과 동화된 건축을 통해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치유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며

자신의 건축철학에 있어 자연과의 교감을 거듭 강조했다.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린 석학과 함께 하는 인문강좌 

 


김 교수는 특히 서울과 관련해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져 있다"며 자신의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했다.

600년 한반도의 도성이라고는 하나, 도성 일부만 산 위에 남아 있을 뿐"이라며,

"경북궁과 창덕궁, 종묘 사이를 예전부터의 지명이었던 북촌이라 명하고, 역사도시구역으로 복원하자"

고 제안했다.

경복궁과 창덕궁은 뒤가 산이고, 그 사이에 공간이 있기 때문에 복원이 가능하다는 것.

또 자신이 청계천을 복원하자고 제안했던 것은 한양이 풍수지리의 원리로 지어졌기 때문이라며,

서울 안의 모든 기운들을 융합케 하기 위해서는

좌청룡 우백호보다 더 중요한 내청룡, 즉 청계천을 복원하는 일이 더 시급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도시· 농촌의 교감과 균형 이뤄야

한반도 전체의 지역발전과 관련해서도 자신의 의견을 숨기지 않았다.

한반도의 도시화는 공단으로부터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며,

문제는 농촌을 도외시한 도시 건설이라고 지적했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농업을 기반으로 살고 있다.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요소들이 공급되지 않으면, 아무리 부유한 도시라 하더라도 문제가 발생한다"며,

한반도가 보다 균형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본격적인 자연과의 대면, 접촉, 교감이 필요하며, 도시와 농촌이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종합토론 형식으로 진행된 이날 강좌는

김순덕 동아일보 논설위원의 사회로, 이용우 광주비엔날레 상임부이사장, 박경립 강원대 교수,

김억중 한남대 교수 등이 참석했다. 다음은 문답형식으로 진행된 종합토론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 과거 세운상가 설계에 참여했는가.
"맞다. 나는 세운상가를 설계하던 당시의 일을 했던 사람들 중 한 사람이다.

세운상가는 김수근 건축연구소 건축팀이 설계를 맡았고,

 나는 당시 도시계획팀에서 종묘-남산 간의 전체 마스터플랜을 기획하였다.

그러면서 세운상가는 앞으로 철거돼야 할 건물이며,

지어진다 하더라도 종묘와 북한산 일대의 흐름이 남산을 지나 한강으로 나아가게 해야 한다고 말해

김수근 선생에 반하고, 서울시에 큰 분란을 일으킨 바 있다.

그때부터 40여 년간 계속해 종묘-남산 간 마스터플랜을 해오면서 일관된 주장을 해왔다.

지금 세운상가를 헐자고 말하고 있는 사람들은 당시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사람들이다.

내가 광화문 광장과 청계천 복원, 북촌과 새만금 등의 이야기를 할 때

아무 관심이 없었던 사람들이 지금 그것을 주장하고 있다.

나는 내가 시대를 앞서간다고 생각하지, 시대정신을 적절히 읽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 예술의 전당, 시네시티 등의 건축에도 참여했는데...
"지난 10년간 내가 참여한 건축은

시네시티, 한샘 시화공장, 영화박물관, 한샘 비원스튜디오의 네 작품이다.

1988년 올림픽 때 예술의 전당이 완성된 이후 20년 동안 나는 도시설계만 해왔다.

때문에 예술의 전당을 내가 해왔던 건축의 총합이라고 보지 않는다.

아주 초기 단계의 실험적 작품이었고, 실험적인 작품은 전통과는 상관없는 것이다.

초기의 브릭하우스, 콘크리트하우스, 스카이빌리지, 거리의 집 등은

한국의 전통보다는 내가 해왔던 인문학이 공간을 형상화한 단계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김수근 선생과 종묘-남산 마스터플랜 정리


▲ 도시설계 일에 전념하게 된 동기는.
"내가 도시설계를 시작한 것은 김중업 선생의 사무실에서 김수근 선생의 사무실로 옮겨가면서부터다.

마침 종묘-남산 간 재개발계획이 있었고, 내가 인문학적인 지식이 있어,

지금 서울시가 진행하는 일을 그때 제안했다.

1967년 남산에 올라가, 종일 서울을 내려다보았다.

북한산 자락인 응봉에서 내려오는 자연의 흐름이 종묘를 지나 시내로 타고 들어오다가,

인현로에서 막히기 시작하는 것을 그때 처음 몸으로 느꼈다.

인간에 의해 자연이 차단된 것이니, 이를 당연히 이어야 한다고 김수근 선생께 말씀드리자

"바로 그거다"라고 하면서 그 종묘-남산 간의 마스터플랜을 정리하셨다.

서울시의 강력한 반발로 실현을 보지 못했지만, 아직 그 안은 남아 있다.

김수근 선생은 그 후 여의도 마스터플랜을 나에게 맡기셨다.

관악산 서울대학교 플랜과 보문단지 등 도시계획과 관련된 일들을 모두 나에게 맡기셨다.

1993년 조창걸 한샘 회장이 김석철 같은 분은 하나의 건축에 몰두하기보다는

도시 전체를 설계하는 일을 해야 한다며, 자금을 모았고,

서울 정도 600년을 기해 '사대문안 구조개혁안'을 만들었다.

그것이 현재 서울시에서 하고 있는 다섯 개의 도시사업이다."

 


▲ 선생의 역사의식과 철학적 성찰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도시설계에 반영되고 있는가.
"사대문 안 서울인 한양은 유학의 원리와 풍수지리 이론으로 만들어진 도시다.

기본적인 궁궐의 배치, 공공기관의 배치 등이 유학을 기본으로 한 도시원리,

주례고궁기(周禮考工記)를 엄격하게 따르고 있고, 중국의 장안이나 베이징을 많이 따라갔다.

그러나 풍수지리 원리에 입각하다 보니 상당히 유기적인 형상을 가진,

동양도시 특유의 중성격자형 도시가 아닌 자연의 흐름에 맞는 도시가 됐다.

이 도시가 500년을 지속해오다 지난 100년 사이에

격자형 가로망으로 바뀌고, 개천은 다 묻히고, 그 위에 집들이 오버래핑 돼버렸다.

이전에 종로가 주 간선도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낮은 집들 때문인데, 지금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내가 제안하는 것은 시내 어디서나 보이는 북악산을 끌고, 광화문 일대까지 내려와

시청 앞 광장에서 남대문으로 빠지는 대형가로군이었다. 서

울이 원래 계획되었을 때의 도시원리를 보통 사람들이 알게 하자는 것이었다."

 


기하학적인 도시가 더 효율적


▲ 도시설계에 적용한 기하학의 의미와 효과를 알고 싶다.
"인천공항 옆에 서는 밀라노디자인시티의 도시패턴을 가지고 그것을 설명하고자 한다.

중세도시의 도시원리는 전부 골목길이었다.

그러나 자동차가 다니게 되면서 그 길이 직선화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보행 중심이면서 기하학적인 도시가 더 효율적일 수 있다.

그래서 밀라노디자인시티에서는 직경 1.5km 원 내부의 상부를 방사형으로 만들었다.

또 원 내부의 하부를 그리드(grid)로 만들어, 중심축을 주차장화함으로써 사람들이 걸어갈 수 있도록 했다.

또 외곽 링에는 자동차 전용도로와 수로를 만들어

외곽 링과 중심의 거대한 주차공간 사이에서 보행 및 대중교통이 원활히 이루어지도록 했다."

 


▲ 우리나라의 지역 발전에 대한 견해는.
"한반도의 도시화는 공단으로부터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제는 농촌을 도외시한 도시 건설이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농업을 기반으로 살고 있다.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요소들이 공급되지 않으면, 아무리 부유한 도시라 하더라도 문제가 발생한다.

본격적인 자연과의 대면, 접촉, 교감이 필요하다. 도시와 농촌이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 글로벌 건축이 바로 우리 눈앞에 전개되고 있다.

현재 국내에 백남준만한 세계적인 건축가가 없는 상황에서

김석철 같은 2세대 건축가들이 돌아보아야 할 향후 과제는 무엇인가.
"루이스 칸은 55세 이후 첫 작품을 만들었고,

르 코르뷔제(건축가, Charles-Edouard Jeanneret, 1997~1965)의 롱샹과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건축가, Frank Lloyd Wright, 1867~1959)의 폴링워터는 66세의 작품이다.

아직 시간이 많다고 생각한다. 위대한 작품이 나와야 한다.

백남준 선생의 제안으로 미마라 뮤지엄에서 함께 2인전을 했던 적이 있다.

당시 자그라브 공립대학의 건축대학장이 나의 스카이 빌리지를 20세기 실험적 제안이라고 하면서,

자신의 책에 내겠다고 했다. 백남준 선생은 마케팅에서도 성공한 분이셨다.

 


▲ 건축가에게 있어 명상가로서 예감이 더 중요한 것인지,

아니면 연구자로서 분석이 더 중요한 것인지 궁금하다.
"건축가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명상가로서의 예감보다 연구자로서의 분석 작업이 더 중요하다.

명상은 천재의 몫이다. 명상가로서의 예감은 특수한 경우에 더해질 수 있는 요소이기는 하나,

그곳 역시 연구 분석이 가능한 범주 안에서다.

나는 수학자 출신이고, 수리철학을 전공했다. 명상적인 건축에 대해서는 큰 비중을 두지 않는다." 

  

- 이강봉 편집위원

- 2009.08.10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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