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술진흥재단 제2기 ‘석학과 함께하는 인문학 강좌’
조한혜정 연세대교수(문화인류학)
- 근대를 넘어서는 상상력을 위해 -
(1) 인문학은 시대를 관찰하는 힘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린 ‘석학과 함께 하는 인문강좌’에서
조한혜정 연세대 교수는 인문학을 문화인류학의 관점에서 조명해 큰 주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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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혜정 연세대 교수(문화인류학) |
조한혜정 교수는 ‘근대를 넘어서는 상상력: 지속 가능한 인류의 삶과 주변적 행위자들’이란 제하의 강연을 통해
인문학을 ‘말의 힘’을 믿는 학문으로 정의했다.
그리고 인문학자들이란 ‘납득할 수 없는 현실을 설명하고,
납득할 수 있는 말을 만드는 내는 사람들’이라는 것.
나이, 성, 그리고 그들이 속한 국가나 시대에 관계없이 인간이라면
누구나 납득하기 힘든 현실에 처했을 때 스스로를 납득시키기 위한 말을
만들어내는데, 그렇다면 사실 모든 인간은 나름의 인문학자라고 말했다.
그리고 좀 더 그럴듯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 사람들 중에 철학자, 역사학자, 인류학자, 사회학자 등이 있다고 말했다.
그 이야기를 좀 더 흥미롭고, 체험적으로 풀어낼 수 있는 이야기꾼들이
소설가, 시인, 연극인, 그리고 영화인들이라고 말했다.
현실을 가장 잘 읽어내고, 지혜롭게 대처해가는 ‘상식’을 만들어가는 사람을 지식인이라고 칭하고,
존경하게 되지만 사실 그 ‘상식’은 개인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이야말로 인문학이 필요한 시대
조한혜정 교수는 그동안 인류는 고정된 이념이나 가치에 얽매이지 않고,
시대 변화를 열린 태도로 관찰하면서, 진리를 추구하는 ‘연찬(硏鑽)’을 벌여왔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 인문학이 위기를 맞고 있다는 것.
조한혜정 교수는 현재 인문학 위기에 대해 대학에서 인문학 강좌가 폐강되고,
책이 안 팔리는 등의 현상을 이야기하지만, 이를 다른 말로 말한다면 진리를 ‘연찬’하는
활발한 기운이 보이지 않고 있는 현상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말했다.
건강한 사회란 곧 자신의 삶과 사회에 대한 토론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곳인데,
우리 사회는 그런 토론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자기계발서는 잘 팔리지만, 시대가 어떻게 흘러가는지에 대한 이야기책은 잘 팔리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인문학의 위기를 말하는 요즘 사실상 지식인이라는 단어조차 듣기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인문학 연구를 하는 이들은 요즘 ‘지식인’이라는 이름이 어색한,
그래서 ‘전문 연구원’이란 이름이 더 잘 어울리는 삶을 살고 있다며,
숨 가쁘게 지식노동을 하고 있는 지식노동자가 되어가고 있음을 한탄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한혜정 교수는 그러나 지금이야말로 인문학이 필요한 시대라고 말했다.
그리고 급속히 변화해가고 있는 이 시대에 살면서
이 시대를 정확히 설명할 수 있는 새 지식과 새 교재가 절실하게 필요한 시대라는 것.
앞으로 미래가 어떻게 될지 혼미한 상황에서 “또 다시 계몽주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며,
겉도는 말이 아닌 삶의 현장에서의 인문학 지식과 교재가 요구되고 있다고 말했다.
조한혜정 교수는 문화인류학자의 관점에서 근대화를 세 단계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첫 번째 단계는 경제발전의 단계로,
이 단계에서는 사회구성원들 모두가 생산적 주체로서 일에 매진하게 된다고 말했다.
두 번째 단계는 일정한 경제수준에 도달한 소비자본주의의 단계인데,
이 단계에 접어들면 사회구성원들은 모두 욕망의 존재로 개인화되는 성향을 보이게 된다고 말했다.
스스로를 표현하고 싶어 하고, 자기주도로 무엇인가를 창조해내고 싶어 하며,
기존의 관계에서 벗어나 자기중심의 새로운 관계를 맺고자 한다는 것.
한국의 사례는 특수진화 아닌 보편진화
세 번째 단계는 욕망의 주체로 살았던 이들이 자기의 모습을 성찰하게 된다고 말했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 세 번째 단계에 들어가기 전에 대부분 엄청난 대가를 치렀는데,
유럽의 경우 1, 2차 세계대전이라는 끔찍한 상황이 있었으며,
미국은 베트남전과 이라크전과 같은 전쟁과 테러, 그리고 엄청난 환경문제에 직면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다른 어는 사회보다 빠른 속도로 자본주의화 · 근대화가 진행된 한국 사회는
지금 막 두 번째 단계인 ‘욕망의 시대’를 지나 세 번째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말했다.
현재 ‘우리네’ 삶의 틀을 구성하고 있는 ‘근대’는 유럽 중세에서 형성돼
현재는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거대한 사회변혁 프로젝트인데,
한국은 이 거대한 프로젝트에 비자발적으로 편입된, 그러나 나름대로 성공적으로 결합한 나라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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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당 외부에 설치된 영상 강의장 |
그러나 한국은 여러 면에서 근대화의 특이한 사례를 만들어냈다고 말했다. 1960~1970년까지를 ‘경제성장의 시대’, 1980~1990년까지를 ‘소비와 욕망의 시대’라고 말한다면, 2000년대 이후를 ‘시장 질주의 시대’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조한혜정 교수는 ‘시장 질주의 시대’를 구체적으로 돈을 향해 경쟁하는 기업가적 자아의 시대로 설명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시장 질주 사회가 안겨주는 불행을 응시하기 시작한
지금, 우리는 이 새를 설명할 새로운 언어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조한혜정 교수는 한국의 사례를 서구 사례와 비교하면 매우 예외적인 사례가 되겠지만,
“홍콩 · 일본 · 베트남 · 중국 등을 여행하다 보면 (한국의 사례가) 특수 진화가 아닌
보편 진화라는 생각을 새삼스럽게 하게 된다”고 말했다.
우리 시대를 보는 통찰력은 비난 우리만이 아닌 세계 주민들에게도 도움을 주는 언어를 만들어냈을 때
가능한 것이라며, 지금이야말로 거대한 시장자유주의에 대한 학습을 시작할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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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여성의 시대, 정말 오는가
10월 10일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린 ‘석학과 함께 하는 인문강좌’에서
연세대 조한혜정 교수(문화인류학)는 ‘여성의 시대는 오는가’란 제하의 강연을 통해
여성 관점에서 본 한반도 여성의 역사를 조목조목 짚어나갔다.
그리고 여성이 억압받던 중세 질서에 최초의 반란을 일으킨 여성으로
허난설헌(許蘭雪軒, 1563~1589)을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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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연구재단 주최 '석학과 함께 하는 인문강좌 |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許筠)의 누나이기도 한 허난설헌은
문한가(文翰家)로 유명한 명문 집안에서 태어나, 어깨너머로 글을 배우고,
8세에 '광한전백옥루상량문(廣寒殿白玉樓上梁文)'을 지어 신동으로까지 불렸다.
그러나 결혼 생활이 순탄치 못한 가운데 삶의 의욕을 잃고 시를 지으며 나날을 보내다 27세에 요절했는데,
그녀가 남긴 시 213 수중에는 당시 (남성 우선의) 봉건적 현실을 초월한 도가사상의 신선시(神仙詩)와 함께
여성으로서 어려운 삶을 살아야 하는 자신의 고민을 그대로 드러낸 작품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
한국의 여성운동, 교육에 집중
허난설헌이 세상을 떠난 지 약 300년 후에는 나혜석(羅蕙錫, 1896~1946)이라는 영민한 학생이 출현한다.
그녀는 오빠의 추천과 사랑을 받으며, 일본 유학생이 됐고,
유학시절 최승구, 이광수 등과 사귀면서 여권신장을 옹호하는 선각자로 살아간다.
그녀 역시 결혼생활이 순탄치 못했다.
화가로서 명성을 날렸으나 유럽 여행 중에 있었던 최린(崔麟)과의 만남이 문제가 돼,
1931년 변호사였던 남편 김우영과 이혼을 한다.
그리고 ‘우애결혼, 실험결혼’, ‘이혼고백서’ 등 인습적인 사회 도덕관에 저항하는 글을 발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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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화가 나혜석 |
나혜석은 당시 여성들에게 ‘자아’를 가질 것과 시집살이에서 벗어나,
부부중심의 민주적이고 행복한 가정을 이룰 것을 당부했다.
그러나 그녀의 요구는 당시의 ‘아들들’이 받아들이기에 너무나 벅찬
것이었고, 당시 한국 상황에서도 너무나 급진적이었다고
조한혜정 교수는 말했다.
해방 후 인물로는 김활란(金活蘭, 1899~1970) 여사를 꼽았다.
당시 한국의 딸들은 실제로 (저절로 주어진) 참정권보다는
교육권을 두고 꾸준한 여성운동을 벌여왔는데,
그 중심에 김활란 여사가 있었다는 것.
여성교육을 강조한 김활란 여사의 노력은 한국의 여성들을
근대적 국민으로 변화시키는데 크게 공헌했다고 평했다.
조한혜정 교수는 여성들이 목소리를 높인 적이 여러 번 있었지만,
여성들이 본격적으로 ‘국민으로서’ 자신의 원하는 국가를 상상하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이후의 일이라고 말했다.
여성운동단체들이 만들어져 다양한 이슈들을 제기하는데,
대표적인 사례로 여성폭력을 방지하려는 ‘여성의 전화’,
여성운동을 민중운동 차원으로 바꿔가려는 ‘민우회’,
일상에 있어 남녀평등 구조를 이루기 위한 ‘또 하나의 문화’ 운동 등을 예로 들었다.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 … 취업이 필수
1980년대 여성 반란의 성과는 1990년대 각 대학에서 앞 다퉈 여성학 과목을 개설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1984년 이화여대에 여성학 대학원이 설립됐으며,
여성학은 1990년대 당시 교양과목으로 가장 인기 있는 과목으로 부상했다고 말했다.
신문과 방송 역시 이런 변화를 대대적으로 다루면서 양성평등 사회를 소개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약 20년이 지난 2009년 현재. 대부분의 여성들은 자신의 생애를
‘가정주부’가 아닌 ‘커리어(career)’라는 단어로 구성해가고 있다.
‘취업은 필수, 결혼은 선택’이라는 표어가 지금 구호가 아닌 현실로 나타나고 있으며,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결심한 딸들은, 자신처럼 살지 않기 바라는 어머니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으며,
당당한 직장인으로 성장하고 있다고 조한혜정 교수는 말했다.
가장 두드러진 사례로 행정 · 외무 고시의 여성 합격률이 급증하고 있는 점을 지목했다.
행정고시의 경우 2004년 38.4%, 2005년 44.0%, 2006년 44.6%, 2007년 49.0%, 2008년 51.2%를 기록했다.
외무고시의 경우 2005년 52.5%에서 2006년 36.0%, 2007년 67.7%, 2008년 65.7%로 늘어났다.
전체적인 여성 취업활동 역시 두드러지고 있다고 보았다.
특히 마케팅 3대 사업 부문 책임자들 대부분이 여성으로 채워져 있는데,
이는 여성들이 소비자 트렌드를 잘 읽고, 고객 친화적인 감성 능력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나혜석이 ‘부부 당사자 간의 애정’에 기반을 둔 ‘사랑 가득한 가정’을 말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지
3세대가 채 지나지 않아 아버지로부터 해방된 아들과 시집체계로부터 해방된 딸들이
부부중심 핵가족을 이루고 맞벌이를 하며 사는 것이 삶의 주류적 양태로 자리 잡고 있다고 말했다.
삶에 대해 고민하는 커리어우먼들
그러나 취업 주부인 30대 커리어 우먼들을 인터뷰하면서 조한헤정 교수는
직장에서 중요한 직책을 맡고 있는 그들이 별로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직장과의 ‘허니문’을 끝낸 여성들은 지금 자신들이 몸담고 있는 ‘직장’을 낯설게 바라보면서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것.
“도대체 나는 누구를 위해, 또 무엇을 위해, 이렇게 열심히 일을 해왔단 말인가?”,
“직장이란 내게 무엇이며, 성공이란 무엇인가? 그것이 아이를 키우는 일보다 중요한 일일까?”,
“가정을 희생하면서 계속 일할 가치가 있는가?”란 질문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조한혜정 교수는 성공적인 커리어우먼의 삶을 살아온 이 장년의 여성들은
그동안의 삶에 대해 회의를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그들은 점점 더 노동 강도가 심해지는 직장 일에 불만을 드러내고 있으며,
자신의 일이 의미 있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자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커리어우먼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육아 문제라고 말했다.
한 여성은 아이가 유치원 가기 전까지 잘 키우면, 그 이후에는 여유가 생길 줄 알았는데,
아이가 유치원과 초등학교에 입학하니, 오히려 일이 더 많아졌다고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는 것.
엄마가 풀타임 매니저처럼 아이를 따라다니지 않으면 ‘실패’처럼 몰고 가는 사회 분위기와
아이를 맹목적인 입시체제에 집어넣는 것 외에 다른 특별한 대안이 없는 현실 사이에서
많은 여성들이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라고 조한혜정 교수는 말했다.
조한혜정 교수는 지금 우리가 성(性)을 불문하고,
‘성공’을 향해 치닫는 존재, 가정 영역과 무관한 타산적 개체, 고립된 개인들을 키워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지금은 남성과 여성이 한데 모여, 돌봄과 학습이 있는 사회를 회복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3) “한국의 청소년, 누구인가”
"당돌한 신세대 소비자"…한국의 청소년들
제임스 딘이 출연한 영화 '이유없는 반항'의 한 장면 일부 대중매체에서는 ‘1318’이라는 줄임말로 13세에서 18세 사이의 인구를 청소년 범주에 넣고 있다. ‘유스’를 구성하는 인구의 나이는 보통 18~24세를 말하는데, 지난 1990년대 말 유럽연합은 청소년 실업이 사회적 문제로 부상하자 ‘유스’의 범주를 30세까지 확대하고, 대안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20세기 중반 이후 이 '청소년(youth)’들이 세계 역사를 바꿔놓는 주역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상 평등과 자유라는 근대적 이상을 실현하려는 ‘청소년(youth)'들의 움직임이었으며, 서구사회 주류 문화를 적극적으로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됐다는 것. 폭력과 고실업, 그외의 복합적인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존재로서 주목받고 있는데, 이들 청소년(youth)들이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나름대로 자구적인 '재활력화 운동(revitalization movement)'을 활발하게 계속할 것인지, 아니면 포기할 것인지에 대해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윌러스는 자신의 저서를 통해 ‘재활력화 운동’을 “기존 질서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사회구성원들이 자신들에게 보다 바람직한 새 문화를 만들기 위해 벌이는 의도적이고 조직화된 노력”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조한혜정 교수는 한국의 청소년들은 근대화 초기부터 ‘학생’이라는 독자적인 정체성이 부여됐고, 이 범주에 들지 않는 청소년들은 주변적 범주를 여겨지는 상황을 맞게 됐다고 말했다. 했다. 이들 청소년들은 학교에 갈 여건이 되지 못한 불우 청소년으로 같은 또래 교복입은 학생들을 선망의 눈으로 바라봐야 했다. 국가에서는 ‘근로 청소년회관’을 건립하고, 검정고시반이나 취미 교실 등을 운영하면서 이들을 위로했으며, 이 같은 분위기는 1980년대 후반까지 이어진다. 이전까지 선망의 대상이던 교복이 ‘벗고 싶은 옷’으로 변화한다. 치열한 입시경쟁을 통해 인력을 길러온 교육제도, 그리고 학교 평준화 정책에 따른 획일성 등이 일부 학생들을 통해 학교에 대한 거부감으로 나타난 결과였다. 입시위주 교육과 암기성 교육, 권위주의적 학교가 청소년들의 창의성과 자발성을 죽인다는 주장이 거세게 몰아쳤다. ‘전인교육’, ‘열린교육’ 등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전개되고 있는 가운데, 정부 역시 교육 개혁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대중매체 등을 통해 ‘신세대’로 시작된 별명은 ‘1318’, 베이비붐을 지칭하는 ‘X세대’, 자기주장이 강한 ‘I세대’, 영상세대를 가피키는 ‘V세대’, 독립지향성을 드러내는 ‘E세대’, 디지털 네트워크를 강조하는 ‘N세대’ 등의 이름이 붙여졌다. 인터넷을 통해 특수한 정보를 검색하는 학생, 학교에 가서 잠만 자는 학생 등 여러 가지 학생들이 있었지만, 이들은 사실상 학생이기 이전에 “문화적 스타일을 통해 자기를 표현하고 싶어 하는 소비자였다”고 말했다.
기성세대에 대해 일방적으로 불만이 가득 차 있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일부는 스스로 카메라를 들고 영상물을 만들었으며, 일부는 힙합이나 록 밴드를 결성하는 등 다양한 모습을 보였지만, 기성세대에 불만을 터뜨리기보다는 독자적으로 자기 세상을 만들어가려는 청소년들이 적지 않았다. 한 부류는 학교에서는 모범생이지만, 따로 사이버 공간이나 댄스 연습, 또는 밴드활동 등 자신들이 몰두하는 영역을 학교 밖에서 확보해놓고 있었다. 이들은 학교 밖에서 학원에도 다니고, 여러 종류의 비공식적인 모임에 참여하거나, 독학을 하면서 미래 자신의 삶을 기획, 실현해나가고 있었다. 인기 대중가수의 열성적인 팬클럽 회원이기도 하고, 때로는 나이트나 콜라텍 등에서 열심히 춤도 추고, 노래방에 가서 대화가 통하는 또래들과 함께 적극적으로 노는 가운데, 당돌한 신세대의 모습을 연출하고 있었다. 어머니를 실망시킬 수 없으니까 학교에 가라면 가고, TV를 조금 보라면 조금 보고, 친구를 따라 콜라텍이나 노래방에도 가지만 질문을 하면 아주 자연스럽게 “별 생각 없어요”라고 말하고 있었다. 급속히 변화하고 있으며, 또한 청소년들에게 매우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싸이월드’에 자신의 ‘홈’을 갖거나, 개인 블로그를 가지면서 학생들이 자기 홈페이지를 꾸미는데 분주해지고, 반대로 수업 게시판은 한산해지고 있다는 것. ‘자기만의 방’을 마련해 주었다. 근대 페미니즘의 대표적 저술가인 버지니아 울프(Adeline Virginia Woolf)가 그렇게 갈망하던 ‘자기만의 방’이 청소년 모두에게 허용되면서 청소년들 사이에는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고 조한혜정 교수는 말했다. 이에 대해 조한혜정 교수는 “그것은 운동이 아닌 문화적 성격이 짙다”고 말했다. 청소년들의 움직임이 실로 다양하고, 분산돼 있으며, 중구난방이지만, 이들은 “옳다, 그르다” 차원의 도덕적이고, 규범적인 정당성보다는 “좋다, 싫다”의 언어로 소통을 시작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기존 도덕이 변화해야 한다는 발언을 하고 있다는 것. 자기 몸을 ‘자기답게’ 꾸미는 일에 열중하면서, 주류 문화 속에 편입되기보다는 ‘인디’와 ‘언더’ 문화를 만들어내려고 한다며, 급속히 변화하고 있는 청소년 문화에 대해 큰 관심을 가져줄 것을 당부했다.
‘청소년 기본법’에 따르면 ‘청소년’은 9~24세의 인구를 말하는데, 실제로 9세 어린이를 청소년으로 보는 사람은 별로 없으며, 19세인 대학생 중에서도 자신이 청소년이 아니라는 주장을 경우를 자주 발견한다.
청소년을 사춘기 시절로 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면 ‘청소년’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 ‘유스(youth)’의 범위는 한국보다 훨씬 넓다.
연세대 조한혜정교수(문화인류학)는 17일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린 ‘석학과 함께 하는 인문강좌’에서
1970년대 들어 거세게 일어났던 히피운동이나 반문화운동은
최근의 청소년 문화 눈여겨 봐야...
이 ‘청소년(youth)’들은 21세기 들어서도 사회적 불안정 세력으로서
‘재활력화 운동’이란 용어는 문화인류학자인 안토니 윌러스(Anthony Wallace)가 처음 사용한 말이다.
그러면 한국의 청소년(youth)은 근대화 과정을 통해 어떤 역사를 써온 것일까?
이같은 이분법은 ‘학생’에 속하지 않는 청소년을 ‘근로(불우)청소년’이란 주변적 범주에 속하도록
1970년대 들어 이들 청소년들에게 ‘산업역군’이라는 이름이 주어진다.
1990년대 들어 한국의 청소년들에게는 새로운 환경이 펼쳐진다.
학교가 억압적으로 느껴져서 학교를 이탈하는 청소년들이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학생인 동시의 신세대 소비자로 부상
사회 역시 획일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서 청소년들은 학생인 동시에 새로운 유형의 소비자로 지칭됐다.
조한혜정 교수는 소니 워크맨을 사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린 '석학과 함께 하는 인문강좌'
이들 청소년들은 제임스 딘의 영화 ‘이유 없는 반항’에서처럼
일부는 가출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모여 살았고,
조한혜정 교수는 인터뷰를 실시한 학생들을 대략 네 부류로 나눌 수 있었다고 말했다.
두 번째 부류는 학교를 떠난 청소년들이었다.
질서 거부한 당돌한 신세대 연출
세 번째 부류는 열심히 노는 청소년들이었다.
네 번째 부류는 수동적인 청소년들이었다.
조한혜정 교수는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기술을 통해 한국의 환경은 예상을 불허하는 방향으로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사이버 지원 강의를 하면 대학생들의 참여도가 매우 높았는데,
특히 ‘싸이월드’는 개별 공간을 열렬하게 원하고 있던 청소년들의 가슴을 파고 들면서,
한국 사회에서 청소년들이 일으킨 ‘재활력화 운동’의 특징은 무엇일까?
청소년들이 도덕적이기를 포기했다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청소년들은 자기가 원하는 방식의 이상적 형태의 가족관계를 꾸미기도 하고,
(4) “매니저맘은 모성애의 연장선상”
2000년대 후반 학생 동향 분석
연세대 조한혜정 교수(문화인류학)는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린 ‘석학과 함께 하는 인문강좌’에서
그동안 대학 강단에서 본 학생들의 모습을 회고했다.
1990년대 대학생들은 입학하자마자 끼리끼리 모여 밤새 토론을 하기도 하고, 배낭여행을 떠난다거나,
밴드활동을 하기도 하고, 또는 농촌봉사활동을 하면서 부모 그늘에서 벗어나려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2000년대 후반 학생들의 삶은 ‘엄친아’로 대변된다.
‘엄친아’는 ‘엄마 친구의 아들’의 줄임말로 어머니들이 다른 어머니의 잘 나가는 자녀를 내세워,
자신의 자녀들을 독려하는, 자녀에 대한 어머니들의 성취욕을 빗댄 말이다.
어머니들의 이런 심정을 간파한 일부 광고주들은 어머니들의 심정을 절묘하게 이용하기도 한다.
“(자녀들을) 전 세계를 무대로 재능을 마음껏 펼칠 0.1%의 글로벌 리더”로 키우라는
대학 광고나 학원 광고는 성취욕이 높은 어머니들을 자극한다.
상황 변화보다는 현실 적응에 더 관심
이런 분위기 속에서 어릴 때부터 어머니와 과외교사, 학원교사 등의 선도아래 학업 경쟁을 해왔던
대학생들은 대학교에 와서도 어머니의 친밀한 동반자가 되고 있다.
반면 친구와 동료들과는 동반자적인 관계를 맺기 어렵다.
과거의 학생들은 이런 상황을 바꾸려는 노력을 기울여왔다.
그러나 지금의 학생들은 이런 상황을 바꿀 생각을 하기보다는
자신이 가진 것을 극대화해 살아남겠다는 것이 요즘 학생들의 일반적인 태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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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혜정 연세대 교수(문화인류학) |
조한혜정 교수는 최근 자신의 강의실을 찾은 수강생 80명에게
‘자기 나름의 공부 비법’에 대해 글짓기 과제를 준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 결과 2000년대 후반 학번의 학생들은 1990년대 학번 학생들과 비교해
상당히 ‘즐겁게’ 공부를 해왔음을 기억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1990년대 학번 학생들이 “(대학입시를 앞두고) 그 지옥 같은 시간을 견디기 위해 헤르만 헤세의 책을 수십 번 읽었다거나, 수험생활을 말하기조차 싫어했다면, 2000년대 후반 학번의 학생들은 오히려 적극적으로 (공부에 대한) 동기부여를 하고 있었으며, 또한 자기최면을 통해 기분전환 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는 것.
예를 들어 어떤 학생은 일부러 라이벌을 만들어 분노, 또는 복수의 에너지를 만들었으며, 그를 생각하면서 책상 앞에 더 많이 앉아 있을 수 있었다고 적었다. 또
어떤 학생은 몰래 사랑하는 사람을 만든 후 그를 보기위해 빠지지 않고 독서실에 갈 수 있었다고 적었다.
수험생으로서 오전 7시에 시작해 오후 11시에 끝나는 3년간의 기숙사 생활을 한 경험이 있는 한 학생은
새벽까지 단어를 외우거나 숙제를 하면서 편하게 잠든 날이 거의 없을 정도로 바쁜 일과를 보냈지만,
3년간 익숙해진 생활의 틀에서 벗어났을 때 다시 그 반복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적었다.
어머니는 일생의 절친한 동반자
스스로 ‘공책 정리의 달인’이라고 부르는 한 학생은 공책 정리의 키포인트는
공책의 질과 깔끔한 글씨체, 절제된 펜 색상의 사용이라며
“다양한 고품질 펜을 보유하고, 또한 신제품이 출시되면 제일 먼저 사용하는 사치를 누리는,
학용품의 ‘얼리 어답터’로서의 자부심이 입시 시절을 즐겁게 해주었다”고 수험생 시절을 회상했다.
또 다른 학생은 공부하고 있을 때 스톱워치로 시간을 재면서,
최대한 편한 복장으로 최대한 편한 곳에서, 편한 자세로 공부의 효율을 높였다고 쓰고 있었다.
야간자율학습 시간에는 가부좌 자세를 하고 복도에 앉아서 “김정일처럼 체육복만 입고” 공부했는데,
대학에 와서 가부좌 자세를 할 수 없고, 화장을 한 탓에 엎드려 공부할 수도 없어
매우 안 좋은 성적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1990년대 학번 학생들이 대학에 와서 그동안의 보상을 받으려고 했던 것과는 달리,
2000년대 후반 학번 학생들은 대부분 주어진 환경에 최대한 적응하고,
불만을 갖지 않도록 최선을 다 하고 있어 참으로 영리하고 현명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조한혜정 교수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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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학과 함께 하는 인문강좌' |
또 다른 글짓기 과제 ‘사교육 시장과 매니저 맘 담론’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시험 때마다 늘 100점을 받아온 한 학생이 어느 날 95점을 받았다.
그러나 이 점수가 수백 명이 다니는 학원에서 2등정도 해당하는 성적이라 만족하고,
어머니에게 점수를 이야기한 후 빵을 먹으며 TV를 보고 있었다.
그 때 어머니가 먹던 빵을 빼앗으며 “그 성적 받고 입에 빵이 들어 가냐?”고 해서 서럽게 운 적이 있다며,
그 사건 이후 자신의 성적이 좋지 않을 때는 자신의 걱정보다 어머니가 어떻게 반응할 지 더 걱정이 됐다고 적었다.
이 학생은 어머니를 일생의 절친한 동반자로 여기고 있었다.
어머니가 고등학교 때도 해외봉사 등 좋은 정보를 알려준 덕분에
글로벌 전형으로 좋은 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다고 쓰고 있었다.
또한 “자력으로 공부한 사람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부차적인 입시정보 같은 것을 혼자 알아낼 의지도,
방법도 없는 상황에서 엄마가 그런 것을 대신 챙겨주는 매니저 맘이 되어준 것에 대해 고맙고,
또한 입시전쟁이라는 터 안에서 지원사격을 해줄 사람이 있다는 것은 마음 편한 일”이라며
어머니의 도움을 매우 고마워하고 있었다.
부모가 학점관리까지 하는 것은 문제
‘엄마의 지긋지긋한 매니지먼트’가 너무 싫어서 핸드폰에 “엄마를 계모라고 저장해두었다”는 학생도
있었다. 그러나 대다수의 학생들은 논술 관련 숙제를 수정, 혹은 퇴고해주는 엄마,
등하교 길을 데려다주는 엄마, 자기소개서를 대신 써 주는 엄마 등에게 매우 고마워하고,
그렇게 챙겨주는 엄마로부터 태어난 것을 감사하게 여기고 있었다고 적고 있었다.
“사교육은 자전거의 보조바퀴다”, “매니저 맘은 모성애의 연장선상이다”,
“내가 엄마가 된다면 난 사교육의 중점을 두고 아이들을 가르칠 것이다”,
“매니저 맘은 21세기 한국판 맹모삼천지교다”,
“부모님이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니까 우리도 부모님에게 잘 하자” 등등.
조한혜정 교수는 “그러나 비록 적은 수지만 방임형 어머니 밑에서 성장한 학생들은
자신의 자긍심이 아주 높고, 자신의 어머니를 묘사할 때 프라이드가 넘쳐 났다”고 말했다.
매니저 맘의 자녀들이 “엄마, 고마워요, 잘할 게요”라는 말이 어딘가 좀 부족한 듯 느껴진다면,
방임형 어머니의 자녀들은 “엄마, 멋져! 근데 내가 더 멋져!”라는 투로 말하고 있었다는 것.
여전히 독립, 자립이라는 가치가 대학생 나이 또래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사례라며, 사교육이든 매니저 맘 담론이든 많은 아이들이 주체성을 잃어가고,
그 경향이 갈수록 커져가는 것이 좋은 현상은 결코 아니라고 말했다.
조한혜정 교수는 한 학생의 글 전문을 소개했다.
이 학생은 매우 강하게 “매니저 맘의 도움을 받았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적었다.
죽고 죽이는 게임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각자 노력을 했을 뿐인데,
자립적으로 했다고 뻐기고 말고 할 게 아니라는 주장을 폈다.
“스스로 공부를 한 학생이나 방송을 통해 공부한 학생이나 하는 일은 구조적으로 같고,
고로 그 목적 역시 같다. 실제로 중등교육 과정에서 이와 같은 학습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학생은 “이런 풍조가 대학에까지 번진 데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우리 사회가 뭔가 이상해지고 있다는 이야기 아니겠냐”며
“취업 한 자리가 중요해서 부모님이 수강과목까지 관리하게 만든 현실이 비판 대상이 될 수 있다”며
최근 교육풍토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5) “전통 가정, 마을, 축제 문화 회복해야...”
돌봄과 상부상조 사회 강조
“한국의 근대화 과정에서 가장 소외된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사회구성원이자 주인이어야 하는 ‘사람’이라고 대답한다.”
연세대 조한혜정 교수는 10월 31일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린 ‘석학과 함께 하는 인문강좌’ 종합토론에서
이를 반영하는 것이 가정 해체 현상이라고 말했다.
또 (전통적 개념의) 마을, 단골, 축제도 사라졌다며 사람이 다시 주인이 되기 위해
‘돈이 없어도 환대를 받는 공간’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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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토론으로 진행된 '석학과 함께 하는 인문강좌' |
조한혜정 교수는 물론 돈은 필요한 것이지만, 사회생활의 일부로서 조절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금 돈이 있어야 대우를 받을 수 있는 풍조가 우리 삶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며,
이런 세상은 경쟁과 적대, 허영과 과시의 세상이 돼 버릴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조한혜정 교수는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돈이 이렇게 빨리 축적된 것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거대한 돌봄과 상부상조의 세상이 존재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그것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잃어버렸다며,
이제 돌봄과 상부상조로 표현되는 이 ‘관계성’을 회복해야할 시기라고 말했다.
‘아내는 가정, 남자는 사회’ 이분법에 문제
이날 토론자와 청중들은 여성운동에 대한 깊은 관심을 보였다.
조한혜정 교수는 건강한 사회는 가정과 사회, 그 중간 영역에 있어 상호침투로 인한 균형이 이루어져야
한다며, 앞으로 여성운동은 이 중간영역을 만들어내는데 모든 노력을 기울여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연세대 김찬호 교수 사회로 진행된 이날 종합토론에는
연세대 우석훈 교수, 계명대 조주현 교수, 저술가 김영옥 씨가 참여했다.
다음은 토론자, 청중들과의 대화를 요약한 것이다.
▲ 향후 여성운동의 바람직한 방향은.
“그동안 압축적 고도성장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는 봉건적인 안채 · 사랑채 문화를 해체하지 못한 채 오히려 현대판으로 새로 만들어내고,
그 결과 아내는 가정을, 남자는 밖으로 나돌게 되는 구도를 낳았던 것 같다.
이렇게 되면 사회적으로 취약한 여성들은 가정에서 자신의 권력을 확실하게 행사하기를 원하고,
특히 그 권력행사를 자녀 교육과 관련짓게 된다.
자녀가 출세하면 어머니도 덩달아 정승 어머니가 되기 때문이다.
건강한 사회는 가정과 사회 그 중간 영역이 있어서 상호 침투로 인한 균형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
앞으로의 여성운동은 남성이 만들어낸 문명에 대해 연구 초점을 맞추면서,
명실공히 남녀가 공존할 수 있는 세상, 즉 가정과 공공부문의 중간 영역을 만드는 일에
더욱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모성의 영역을 건전한 방향으로 회복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가.
“한국의 여성운동가들에게 복병으로 나타난 것이 ‘매니저 맘’이다.
모성을 극도로 도구화시키고 있는 이 현실을 어떻게 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그동안 이 ‘모성’ 영역의 회복을 위해 많은 고민을 해왔다.
지금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여성들이 제대로 모성을 실현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내는 일이다.
학교는 이제 ‘찌질이’들이 자존심을 회복하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공간이 돼야 한다.
어머니들도 이 ‘찌질이’들의 개별성을 제대로 존중하면서, 돌보기 시작해야 한다.”
▲ 우리나라 여성이 본받아야 할 모델을 찾을 수 있겠는가.
“나는 여성이 본받아야 할 모델이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들 모두가 본받아야 할 모델을 이야기하려 한다.
내가 주장하는 것은 지금 우리나라는 사람에게 투자해야할 시점이라는 것이다.
그 위기는 저 출산 통계에 의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사람에게 투자해서 ‘사람의 질’을 높이자는 것이 이른바 지금 선진국들이 하고 있는 일이다.
지금과 같은 글로벌 시대에서는 초국가적 영재는 초국가적 부모들이 어떻게든 스스로 길러내는 것이고,
이 때 국가에서는 보통 사람들의 아이들을 다 잘 키워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챙겨지지 않은’ 아이들을 나라에서, 그리고 지역과 학교에서 잘 챙겨야 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프랑스식 보육정책과 핀란드식 교육을 본받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 결혼기피로 인한 가정 해체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갖고 있는가.
“청년들이 결혼을 할 수 없고, 아이를 낳을 수 없는 것은 안정된 직장이 없고,
설령 있더라도 턱없이 수입이 낮기 때문이다. 이제 국가는 청년들을 위해 집을 마련할 계획을 세워야 하고,
상부상조하면서 아이들을 길러나갈 이웃과 공동 육아시설을 마련해나가야 한다.”
▲ 10대의 반란이 우리 사회에 있어 바람직한 면이 있다.
그러나 10대들이 기성세대를 너무 편협한 시선으로 보는 것은 아닌지.
“10대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설교일 것이다.
지금은 어른이나 청소년이나, 여자나 남자나 누가 무엇인가를 말로 촉구해서 될 일은 없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10대들에게 ‘좋은 어른과의 대화’를 꼭 갖도록 노력하라고 말한다.
10대들과 소통할 수 있는 어른들이 많아지기를 바란다.”
▲ 사회적 갈등구조가 좀처럼 가시지 않는 상황에서 현대적 가정교육이란 어떤 것인가.
“가정에서 부모가 서로 협동하고, 소통하고, 사랑하면서 문제를 풀어가고,
자기들을 키워나가는 것을 보면서 자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이의 입장에서도 작은 일이지만 가정에 공헌하고 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 일 역시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가정교육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그 가정이 사회와 맺고 있는 연결고리다.
부부중심의 핵가족은 자녀를 기르기에 가장 좋지 않은 환경으로 보인다.
아주 이기적인 아이를 키워낼 가능성이 있다. 비록 핵가족이 존재하더라도 아이는 보다 큰 커뮤니티,
사회와 연결돼 있어야 하고, 그 아이는 ‘그 사회’ 안에서 살아야 한다.”
▲ 부모의 성을 다 쓰면, 다음 세대 즉 아들, 딸들의 성을 어떻게 써야 하나.
“제 아들은 ‘전한해원’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데,
그 아들이 아이를 낳았을 때 내가 쓰고 있는 ‘한’씨 성은 누구에게도 물려지지 않는다.
대신 그 아내의 모계 성을 그들이 낳은 아이가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내 딸이 낳은 아이는 ‘한’씨를 성의 일부로 갖게 된다.
개인적으로 성을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다.
조선시대 초기만 해도 성이 없는 사람이 많았고, 그냥 ‘바우’ 등의 이름으로 서로를 불렀다.
내가 성을 ‘조한’으로 쓴 것은 여아를 낙태하지 말라는 상징적 운동으로 한 것이고,
이제 그런 일은 별로 일어나지 않으니까, 내 이름을 공식적으로는 주로 ‘조혜정’이라고 쓰고,
필명으로는 ‘조한혜정’이라는 이름이 더 적합한 듯해서 그렇게 나눠 쓰고 있다.”
▲ 인류학과 사회학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자주 인용하는 이야기가 있다.
두 사람이 밤에 길거리에서 잃어버린 동전을 찾고 있는데,
등잔을 들고 동전이 없는 것에서 찾는 사람은 사회학자이고,
동전이 있는 곳에서 찾기는 하는데, 등잔을 가지지 않는 사람은 인류학자라는 것이다.
이론을 중시하는 사회학자, 이론보다 현장을 중시하는 인류학자를 빗대서 한 농담이다.
둘 다 사회적 삶을 연구하는 학문이라는 점에서는 아주 비슷하다.
다만 차이점은 서구인들이 비서구 사회와 만나면서 다른 사회를 연구하기 위해 인류학을 만들어냈고,
서구 사회 근대화를 연구하면서 사회학을 만들어냈다고 보면 된다.
사회학자들이 근대성에 집중적인 관심을 가졌다면,
인류학자들은 원시부족사회로부터 근대 이후의 삶을 연결하는 보다 광범위한 연구를 해왔다.”
- 이강봉 편집위원
- 2009년 09월 28일/ 10월 12일/ 10월 19일/ 10월 26일/ 11월 02일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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