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 60년 특별연재/책으로 본 한국 현대인물사 ⑪] 백낙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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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주아 출신으로 가시밭길 택한 ‘민족문학론’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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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경제위기 국면에 남북관계마저 긴장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대한민국의 나라 다스리기는 과연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국민은 지금 심란해하고 있다. 현 정부는 남은 3년9개월을 어떻게 보내야 할 것인가? 이와 관련해 민주화와 통일, 평화운동에 앞장선 백낙청은 2009년을 맞으면서 ‘거버먼트(government · 주로 공권력을 갖고 다스리는 ‘정부’라는 뜻으로 쓰임)’보다 넓은 의미의 ‘거버넌스(governance)’ 체계를 형성하자고 제의한 바 있다.
여기서 거버넌스는 정부가 일방적으로 나라를 이끌지 않고 사회 각 부분 세력과 협동·합의하에 국정을 협치(協治)하는 정치형태를 의미한다. 백낙청은 현 정권이 남은 기간 정교한 사회적 장치, 곧 거버넌스의 틀을 새로 짜는 데 공을 들여야 한다고 했다.
“지금은 나라 다스리기의 새로운 체계를 만들지 못하면 국가 전체가 혼란에 빠지고 민주화 20년의 성취, 아니 대한민국 60년의 성취마저 물거품이 될 위험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창비’ 주간논평 ‘거버넌스에 대하여’, 2008년 12월30일)
백낙청은 대중의 토론과 합의를 통해, 그리고 언론 및 여러 전문 집단, 이익단체를 포함한 시민사회가 정당들과 함께 건설적으로 국정 참여의 길을 열 때, 경제위기며 국정 난맥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백낙청은 이론의 여지가 없는 이 나라의 대표 지성이다. 그는 ‘분단체제’라는 한국의 자생적 개념을 도입, 이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는 ‘분단이라는 리바이어던’(성경 ‘욥기’에 나오는 지상 최강의 수생 동물) 을 마주하고 살았고, 그것이 어느새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차고 앉아있음을 강조했다.
‘2009년 분단현실의 한 성찰’(제11회 한겨레통일문화상 수상 강연)을 통해 그는 통일에 대한 우리 사회의 내면적 분열상을 예리하게 분석, 진단했다. 그에 따르면 우리 사회엔 분단을 분명하게 의식하고 이를 자신들의 단기적 이익을 위해 활용하는 데 유능한 세력이 있는가 하면, 분단 극복을 역설하며 그 목표를 위해 헌신해온 통일세력이 있다. 이 강연에서 백낙청은 진보의 이름을 내걸었으나 분단현실에 대한 성찰이 불철저한 사례가 수두룩하다는 점도 지적했다.
백낙청은 민생과 민주주의, 남북관계에 있어 우리는 현재 ‘3중 위기’ 속에 ‘역주행’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보수와 진보의 ‘만남’을 강조했다. 그가 좌우 혹은 남북의 문제점을 모두 포용하자는 의견을 내놓자, 종래의 그의 시점이 이동한(?) 게 아닌지 의심하는 눈총도 있었다.
28세에 계간지 ‘창비’ 창간
“무엇보다 ‘보수’와 ‘진보’를 가르는 기존의 잣대에 얽매임 없이, 줏대 있는 중도세력을 형성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예컨대 민주주의 문제에 있어서는 분단체제가 남한의 독자적 민주화에 부과하는 한계를 인정하고 남북화해의 진전과 결부된 현실적인 개혁노선에 합의하며, 민생문제에서도 자본주의 세계체제 및 그 하위범주로서의 분단체제가 떠안은 조건을 일단 수용함으로써 세계시장으로 열린 한반도 경제권의 건설과 남한경제의 발전을 도모할 새로운 종합적 설계를 짜야 합니다.”
2007년 고희를 맞은 백낙청이 어떤 사람인지 딱히 규정하기란 간단치 않다. 학문 전공으로 보자면 서울대 교수를 역임한 영문학자이고, 문학 활동으로 보자면 평론가로서 계간지 ‘창작과 비평’(이하 ‘창비’)을 창간해 이끌고 있고, 6·15공동선언 실천 남측 대표직을 맡았던 통일운동가다. 어느 것 하나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경중을 따지기 어렵다.
그중에서 ‘창비’는 그의 공부와 실천의 중심에서 한시도 벗어난 적이 없다. ‘창비’가 창간된 것은 1966년 1월. 창간호에서 백낙청은 권두논문으로 ‘새로운 창작과 비평의 자세’를 발표했다. ‘창비’는 청년 지식인 백낙청이 쏘아 올린 신호탄이었고, 권두논문은 그의 문학적 선언이었다. 당시 그의 나이 겨우 28세. 132쪽에 정가 70원짜리 창간호는 문학에 대해 고민하던 이들에게 눈앞에 드리운 안개를 걷어낸 경이로운 지적 마당이었다.
‘창비’는 그때 무엇을 지향했는가? 이런 질문에 대해 백낙청은 순수문학이니 관변문학이니 하는 기성문단에 정면으로 도전할 뜻을 분명히 밝혔다. “문학은 현실의 감추어진 진실을 드러내야 하며, 현실 구성원이 처한 위기를 반영해야 하며, 나아가 그 구성원 대다수의 복지를 위한 전망을 제시해야 한다.”
- 윤무한 / 언론인, 현대사연구가 ymh6874@naver.com - 신동아, 2009.06.01 통권 597호(p528~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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