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주짱의 하늘꿈 역사방

하루하루~(일상)

임의진 / 시골편지's (5)

Gijuzzang Dream 2009. 2. 25. 19:51

 

 

 

 

 

 모과차 한 병

 

 

 

잡으려고 하면 날아가는 나비처럼,

작년 한해가 허망하게 달아나더니 훌쩍 이번 첫달도 중순으로 치닫고 있다.

나는 잔정 많은 오라버니나 되는 것처럼 골목마다 문안인사를 여쭙고,

얼음땅에서 한껏 단물이 오른 배추 한포기 얻어설랑 점심밥에 쌈 싸서 먹었다.

 

대청마루에 내다 놓은 고장난 선풍기가 찬바람에 고개를 빙글뱅글,

머릿단을 매만지고 나오신 아짐은 고개를 절레절레.

“아랫입서리가 보짝보짝 타요야. 독감에 갤래가꼬 딱 죽겄당게라.

저승가매(상여)를 탈 때가 벌써 되얐나 시프요이.”

우리 동네에선 나만 빼고 다 감기에 걸린 거 같다.

집집마다 어르신들 기침소리가 개들 짓는 소리보다 더 크게 들린다.

“하도 기침을 해부렀드니 목 지슥에 몽오리(멍울)가 다 서불었당게라.

이라고 주인네가 신찬헌디(시원찮은데) 저것은 갱아지까지 나아부러가꼬 내가 아조 뻗쳐 죽거쏘야.”

죽는다는 소리를 입에 달고 사시네.

흰둥이가 낳은 강아지가 무려 여섯 마리나.

겨울에 낳은 강아지라 안쓰러워 단도리를 자주 해주시는 모양같다.

 

“봄똥(겨울을 난 배추)이라긴 아즉 이르지만서두 겁나 달디 당께로 쌈 싸서 잡숴 보쇼잉.

꼬꿉쟁이(구두쇠)도 봄똥은 나눠묵은닥 안헙디여. 암껏도 아닌 흔한 거잉게로 사양허지는 마시고.”

괜찮다며 마다했는데 기어이 안겨주시니 감사하게 받았다.

점심 메뉴로 간만에 미역국 끓여 먹을까 했거든. 그런데 배추쌈으로 냉큼 바꿨지 뭐.


내가 머리를 좀 만져줬더니 예뻐하는 줄 알고 겁대가리를 완전 상실한 강아지들이

우리집까정 가끔 나들이를 온다. “느그 주인 아짐은 잘 계신다냐?” 안부를 물었더니

따라오라며 집으로 쏜살같이 달려 가는 것이었다. 그걸 따라 나선 길이었다.

감기에 좋다는 모과차 한 병, 이 글 다 써서 신문사 보내놓고 아짐한테 갖다 드려야겠다.

보너스로 귀여운 강아지들 한번 더 만져보고.

- 2009-01-07

 

 

 

 

 

 여기저기 흰 구름

 

 

 

구름은 하늘에만 떠다니는 게 아니다.

저수지 뽀짝 윗동네 오래된 함석집엔 ‘구름’이란 이름의 아이가 살고 있다.

엄마 아빠가 어떤 사정 때문인지는 몰라도 부부의 연을 끊은 뒤

외할머니에게 맡겨져 자란 구름은 이제 어엿한 고등학생이 되었다.

구름이가 기숙사에서 밀린 빨래를 가져오는 날은 소위 놀토나 가지가지 공휴일.

여름한철 촌닭 백숙을 파는 가게로 근근이 생계를 잇는 할머니댁.

여름 아닌 겨울인데도 닭죽 끓이는 군불이 모락모락 오르다가 먼 하늘 흰 구름떼에 보태지기도 한다.


설날 명절을 앞두고 할머니는 손녀딸 구름이 주려고 옥수수 튀밥을 장만하셨다.

튀밥은 마치 하늘을 떠다니는 꼬맹이 작은 구름처럼 생겼겠다.

“고 가시내는 밋 없는 차두(밑없는 자루) 맹키로 튀밥을 좋아한단 말이오.

꼬신내(고소한 냄새)도 나고 지 입맛에 달그작작헝게 그랑가 테레비 봄시롱 한도 읎이 묵어재낀 당깨라우.

소락대기(소리)를 질러야 그때서야 그만두재 냅둬불믄 아마 한 차두는 족히 묵어불 것이오.

어디 비름박지(거지)라도 그라코롬 옥시시 튀밥을 좋아헐 것이요이.”

구름이 흉을 보다가 할머니 입꼬리는 오무라드는 게 아니라 외려 귀에 걸리신다.

할머니는 구름이 말만 나오면 자동적으로 웃는 표정으로 변하고 만다.

“제 눈엔 얍실얍실 이쁘게만 생겼습디다” 했더니 더 신이 나서 구름이 이야길 끝도 없이 하신다.

 

도로보다 아래 위치한 구름이 집은 낮때껏 응달이 져서 한번 내린 눈은 잘 녹지를 않는다.

할머니 몸뻬나 널리던 빨랫줄에 구름이 빨래가 널리는 날은 흰 구름도 길을 틀어 햇님을 덮치지 않는다.

땅에 사는 ‘땅구름’을 위해 한줌 햇볕이라도 보태주려는 하늘구름의 예쁜 마음씨가 그러하다.

늦잠을 저녁나절에야 저수지 둑길로 운동을 나갔는데 구름이가 와 있더라.

멀리 널어둔 빨래만 봐도 그 집 속을 훤히 알겠다.
- 2009-01-21

 

 

 

 

 

 수저통

 

 

그날은 평소보다 일찍 남편이 집에 들어왔다. 손에는 장미꽃 한 다발. 아내의 생일이었기 때문이다.

사내는 기름때 찌든 웃옷을 벗고 아내를 와락 껴안았다.

“미안해. 꽃다발 말고는 생일 선물을 준비 못했어. 다만 열심히 일할게. 머잖아 부자가 꼭 될 거야.”

그러자 아내는 넉넉한 미소로 손깍지를 꼈다.

“우린 이미 부잔걸 뭐. 당신이 내 곁에 있는 한 우린 부자야. 물론 언젠가 돈도 가지게 되겠지.

그러나 당신이 안 계시면 돈이 무슨 필요가 있겠어.”

이런 대화가 오가는 가정이라면 벌써 천국이 아닐까.

 

평생을 죽도록 일하고도 부자가 되지 못한 농민 부부, 앞서거니 뒤서거니 대목 설장에 나가신다.

나는 골목 끝집 마당에서 장에 가시는 그 광경을 지켜봤다.

대형마트에서 ‘스케일’있게 장을 보는 풍요로운 신세대 부부와는 다른,

저들의 가난하면서도 정 깊은 사랑이 백년토록 이어지기를 나는 기도하였다.

 

몸살에 걸려 며칠 아파 드러누웠더니 부엌이 아주 난장판이다.

감지 않은 내 머리칼도 하늘로 쭈뼛쭈뼛. 정신을 차리자꾸나.

먼저 물을 데워 목욕을 하고, 깨끗이 설거지도 마쳤다.

해가 질 즈음 다시 가지고 들어와 가지런히 수저 젓가락 한 벌씩 수저통에 담으면서 생각했다.

한 벌씩 짝꿍인 우리들, 이 지구별 수저통에 담겨 살아가는 수저 젓가락인 우리들.

오늘 저녁밥상 누구하나 굶지 않고 배불리 먹은 다음, 편안하고 복된 단잠을 잘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달동네 철거민들도 더 이상 벼랑 끝으로 내몰리지 않고

정든 옛집에서 온 식구가 화목한 저녁밥상을 마주했으면….

질기게도 거론되는 운하 때문에 평온하던 강변마을마다 들쑤셔져 무너지지 않기만을….

강변마을에 영원토록 군불 때는 저녁연기가 올망졸망 피어오르기를.

수저통에 수저 젓가락 더는 줄지 않고,

귀농한 젊은 댁엔 어린아이용 수저 젓가락도 한 벌쯤 더 늘었으면 참말 좋겠다, 올해는.

2009-01-28

 

 

 

 

 

 담배연기

 

 

 

용채 아재가 세상을 떠난 지도 어언 달포쯤 되어가는군.

전에 여기 편지에도 쓴 일이 있었는데, 돈 좀 꾸어달라며 울상을 지으시더란 분 말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폐암 말기였다고. 병은 늦게 발견되었고,

두어 달 투병하시다 서커스 공중그네처럼 후딱 건너편 세상으로 날아가 버리셨다.

죽어 석잔 술이 살아 한잔 술만 못하실 텐데, 저승 구경이 무어 그리 급해 바삐 떠나셨을꼬.

다정하고도 유정했을 치마폭을 잃고 골골 외롭게 지내온 십수년,

담배가 유일한 애인이라며 불 뿜는 용가리가 따로 없이 왼종일 뻐금거리셨던 아재.

 

체 게바라가 당나귀를 타고 시가를 물었다면

아재는 경운기를 타고 담배 라일락을 꼬나물며 FTA 농민집회도 어김없는 출석을 했다.

이종구 화백의 그림에 나오는 농민 얼굴,

그 대표적인 판박이로 일그러졌던 아재의 얼굴은 기억에 오래 남을 것이다.

 

그러잖아도 동네에 빈집이 절반인데 한 채 더 늘었구나.

택시를 모는 동생네가 가끔씩 집을 돌보기로 했다지만

한번 사람이 안 살기 시작하면 대들보가 어슷하게 기울어져 폐가 흉가 꼴이 어느새 나버린다.

오늘은 도둑고양이 엄마가 서너 마리 아기들을 데리고 아재 집 담장을 넘나드는 걸 봤다.

사람 살지 않는 집에 도둑고양이 가족이 이사를 온 거 같다.

고양이들은 알까? 용채 아재가 얼마나 좋은 분이셨다는 걸.

월세도 안받고 집을 거저 내준 아재에게 고양이 가족들은 정말 감사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당장 나는, 새봄에 누가 경운기로 밭을 갈아줄까 그게 걱정거리다.

그뿐인가. 땅 꺼지는 한숨에 섞어 내 면상을 향해 내뿜던 그놈의 독한 담배 연기도 왈칵 그리울 게다.

- 2009-02-04

 

 

 

 

 

 

 달빛 창문

 

 

보름달이 어찌나 좋던지 혼자 보기 아까웠다.

친구들 얼굴도 보름달 얼굴이려니 그리워서 바깥세상에 나갔는데 단체로 전화를 안 받더라.

인기가 식은 줄은 진작 알아 모셨지만, 영양가 없는 촌놈의 전화라고 싸그리 외면이라니.

 

소달구지 덜컹대던 <워낭 소리> 영화 한편 감상, 뒤풀이는 단골집 ‘백수 간재미’에서.

구세주 메시아까진 못되어도 암울한 청춘의 작은 주님 쐬주를 각별히 모시다가

늦은 밤 택시 잡아타고 휘청허청 산골로 돌아왔다.

“이 시간까지 문 여는 데는 이 집밖에 없어서 왔네.”

간뎅이가 밖으로 튀어나온 사내들이 현관문 앞에서 내뱉는다는 궁색한 농담.

나야 여기 골짝에선 옆집 사나운 진돗개 말고는 짖어댈 사이렌도 없고,

앞길을 막을 만리장성도 없다보니 대문 앞에서 승강이도 없이 밋밋하고 심심하기조차.

으그 추워! 난로에 불 지핀 뒤 차렵이불이라도 한 채 더 꺼내 꽃샘추위와 대섰다.

반달곰 겨울잠 자듯 옹동그려 누웠는데 창호문 밖으로 달빛자락이 곰지락거리더군.

동그란 밤하늘 눈망울, 정월대보름달!

해마다 내 곁에서,

나를 은은히 지켜보며 염려해온 저 밝은 눈길이 있었음을 새삼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었다.

 

“내 가슴에 달이 하나 있다. 푸른 저 달이 부풀어 오르면, 구름 걷히고 밤하늘 맑아지면,

내 가슴에 달빛 있다. 품고 다녔던 맑고 고운 빛, 날 어두워 캄캄하여도,

가끔 돌부리에 휘청거려도, 검은 숲에서 길을 잃어도,

내 가슴에 달이 하나 있다. 내 가슴에 달빛 있다….”

언젠가 지었던 졸시, 어떤 가수가 노래를 만들어 부르더라만, 내 입술로 불러본 건 처음이었다.

달빛 창문을 향해 베개를 베고 누웠는데 내 가슴속까지 보름달 둥싯 뜨더라.

- 2009-02-11

 

 

 

 

 

 보푸라기

 


 

새벽안개가 좋아 이슬바심 하면서 얼쩡거렸는데 봄싹들이 살그래 일어나고 있더라.

지구별의 보푸라기인가, 봄싹들은….

별이 생긴 날부터 싹들이 올라오지는 않았을 테고,

억겁 세월을 겪다가 보푸라기 머리칼을 지닌 시인들이 생겨난 날부터 봄싹들도 올라오는 걸 게야.

누구는 지구가 젊은 별이라고 하더라만,

나는 늙은 별, 늙은 어머니라 생각해.

오그라진 젖무덤 같은 주름진 산골에 깃들어 살면서 늙은 어머니가 입은

대지의 털실 스웨터에 일어난 봄싹 보푸라기들을 쳐다본다.

낮엔 추운 바람도 잦아들었어. 생쥐가 풀방구리 드나들 듯 뻔질나게 문지방을 넘나드는 햇살을 보아.

술래놀이인 양 개구진 차일 구름이 장난을 치기는 하지만 완연한 햇살의 세상이 되었구나.

그래 하루 날을 잡아 지난 겨울 입었던 두꺼운 솜털 옷들을 정리하고 빨래도 했지.

달포해포 세월이 쌓이면서 자주 껴입는 털실 옷엔 보푸라기가 톨톨 일어났더라.

처음엔 거슬리는 보푸라기를 잡아 뜯기도 했으나, 언제부턴가 그냥 내버려 둔다.

내 돈으로 새 옷을 장만한 때가 언제였던가? 겉만 번지르르한 속거지 살림이라 까마득하구나.

지난달에 생일 선물로 친구들이 바지, 모자, 목도리를 안겨 주었는데,

내가 너무 단벌옷만 입고 다녀서 그랬나 싶기도 했다.

한 빠숑(?)하고 싶어도 얼굴과 키가 안 따라주고, 장롱엔 옷들이 오히려 줄어들고 있는 형편.

그래도 보푸라기 일어난 오래된 옷들이 나는 익숙하고 좋아.

동무도 새동무보다는 그런 익숙한 옛동무가 좋더라.

늙어지면 머리카락 하얀 보푸라기가 돋은 오래된 인연들과 봄싹 돋은 옛길을 산보하고 싶다.  

- 2009-02-25

 

 

 

 

 

 

 단 둘이 마시는 매화차

 

 

 

춘삼월 봄눈도 눈 축에 끼는 거라는 듯 눈발만은 성성했다.

하나 다시 봄날, 매화꽃이 사붓사붓 피어오른다.

밭에다 청매 홍매 두루 구하여 심고, 뙈기밭둑엔 알뿌리 꽃식물들을 조르라니 심었더니

봄마다 꽃잔치로 행복하고 다복하구나.

제법 머리가 굵어지면 국물도 없이 싸늘한 배은망덕의 사람세상과는 딴판으로 다르게,

반드시 꽃과 열매로 보답을 주는 매화나무들.

어제 봄눈에 장군죽비로 얻어맞은 듯 정신을 바짝 차린 매화나무는

아주 야무지게 꽃잔을 받들고 섰더라.

건넛마을 엄지머리총각이랑 잘잘거리다가 냇가에 나가 물수제비도 뜨고 놀았더니 출출한 새참.

묵은지 꺼내어 국수를 삶아 비벼먹고, 신선놀음삼아설랑 단둘이 매화차 한 잔.

서울 살 적엔 사글셋방 꽁보리밥에도 감사기도를 바쳤더랬는데

지금 이런 근사한 봄날의 행각은, 내게 너무도 과분한 축복이 아닐 수 없도다!

평소보다 연하게 우린 녹차에 매화꽃 한 송이 조심스럽게 띄우면

새뜻한 꽃향기가 코와 입을 거쳐 머릿속까지… 아- 산란했던 마음들이 정히 차분해진다.

매화꽃 지기 전까지 몇 차례나 더 매화차를 마실 수 있을까.

그대랑 단둘이 오붓한 매화차 다회(茶會), 미리 예약을 해 둔다.

어려운 시절일수록 우리는 자주 만나야 한다.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사랑하면서 잠들면

경제가 위기고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진들 무슨 여한이 남으리.
-  2009-03-04

- 임의진, 목사, 시인

- 경향, [시골편지] 

 

 

 

 

 

 

- 임 의진 詩 / 수니(soonie) - "내 가슴에 달이 하나 있다"

내 가슴에 달이 하나 있다.

푸른 저 달이 부풀어 오르면

구름 걷히고 밤하늘 맑아지면

내 가슴에 달이 있다.

품고 다녔던 맑고 고운빛

날 어두워 캄캄하여도

가끔 돌부리에 휘청거려도

검은 숲에서 길을 잃어도

 

내 가슴에 달이 하나 있다 

푸른 저 달이 부풀어 오르면  

달빛 달빛 달빛이 있어 

내 가슴에 나의 님 하나 있다 

품고 다녔던 맑고 고운빛

날 어두워 캄캄하여도 

가끔 돌부리에 휘청거려도

검은 숲에서 길을 잃어도

 

내 가슴에 달이 하나 있다  

푸른 저 달이 부풀어 오르면

달빛 달빛 달빛이 있어 

내 가슴에 나의 님 하나 있다 

내 가슴에 달빛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