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칠정(四端七情)
차마 모질게 하지 못하는 마음
일찍이 맹자는 “사람들은 누구나 차마 남에게 모질게 하지 못하는 마음(不忍人之心)을 가지고 있다”했다.
그리고 그 사례를 다음과 같이 제시하였다.
사람들이 갑자기 어린아이가 우물로 들어가려는 것을 보고는
모두 깜짝 놀라고 측은해하는 마음을 가지니,
이것은 그 어린아이의 부모와 친해지기를 위해서도 아니며,
마을사람들이나 친구들에게 명예를 얻기 위해서도 아니며,
(어린아이를 구하지 않았다는 나쁜) 평판을 듣기 싫어서 그러했던 것도 아니다.(《맹자》공손추)
우물로 들어가려는 어린아이를 보고 슬퍼하며 가슴 아파 하는 것은,
명예나 사귐을 위해서도, 모진 놈이라는 비난을 싫어해서도 아니며,
단지 사람의 마음 자체가 본시 그렇게 생겨먹었기 때문이라는 뜻이다.
차마 남에게 모질게 하지 못하는 마음, 혹은 측은히 여기는 마음이 사람의 마음이라는 맹자의 주장은
천지(天地)와 만물(萬物), 인간(人間)을 하나로 꿰는 논리에 바탕 한다.
퇴계 이황의 성학십도(聖學十圖) 중 제6, 심통성정도(心統性情圖)
천지(天地)는 만물(物)을 내는 것으로 그 마음(心)을 삼으니,
만들어진 만물이 이로 인해 각기 천지가 만물을 낸 그 마음(生物之心)을 얻어서
(만물 스스로의) 마음을 삼았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누구나 차마 남에게 모질게 하지 못하는 마음을 지니게 된 것이다.
(《맹자》공손추)
사람이 ‘차마 남에게 모질게 하지 못하는 마음’ ‘서글피 여겨 가슴 아파하는 마음(惻隱之心)’을 지닌 것은,
사람을 포함한 만물의 마음이 바로 만물을 만든 천지의 마음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맹자는 사람의 본래 마음이 이러하기 때문에 정치할 때도 그 본래 마음에 바탕하여
“차마 남에게 모질게 하지 못하는 정치를 하면 천하 다스리기를 손바닥 안에서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간단할 수 있는 정치가 당시 현실(전국시대)의 혼란 속에서 좀처럼 피어나지 못한 것은
‘차마 남에게 모질게 하지 못하는 마음’이 물욕에 가려 손상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람의 본성을 알려주는 네 가지 단서, 사단(四端)
그렇기에 맹자는 천지자연의 마음을 따라 지니게 된
측은지심(惻隱之心, 서글피 여기며 가슴 아파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또 같은 맥락에서
수오지심(羞惡之心, 나의 옳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고 남의 옳지 못함을 미워하는 마음)이나
사양지심(辭讓之心, 자신에게서 떼어내어 남에게 주는 마음),
시비지심(是非之心, 옳은 것을 옳게 여기고 그른 것을 그르게 여기는 마음) 중
하나가 없어도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사람이 이 네 가지를 가진 것은 마치 사지(四肢)를 가진 것과 같다고까지 말했다.
그렇다면 천지가 만물을 낸 그 마음이자,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을 우러나오게 한 바탕은 무엇일까?
맹자는 이를 인의예지(仁義禮智)라고 생각하였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맹자의 말에서 확실히 드러난다.
측은지심은 인(仁)의 단서요, 수오지심은 의(義)의 단서요, 사양지심은 예(禮)의 단서요,
시비지심은 지(智)의 단서이니, 사람에게 이 네 단서(四端)가 있는 것은 사지가 있는 것과 같다.
(惻隱之心 仁之端也 羞惡之心 義之端也 辭讓之心 禮之端也 是非之心 智之端也
人之有是四端也 猶其有四體也《맹자》공손추)
맹자는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이란 것이
그 바탕에 ‘인의예지(仁義禮智)’라는 인간 본성이 있음을 알려주는 단서라고 보았다.
바꾸어 말하면 인의예지가 밖으로 그 단서를 드러낸 것이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 이라는 것이다. 사단(四端)이란 바로 이 네 가지 단서인 것이다.
사단(四端)과 칠정(七情)에 대한 퇴계 이황의 생각
조선 성리학에서 사서(四書) 해석의 절대 권위로 통하는 주자(朱子, 朱熹, 1130-1200)에 따르면,
인의예지는 성(性, 본성)이고, 그것이 밖으로 표현된 사단은 정(情, 감정)이며,
性과 情을 통합하는 것은 심(心, 마음)이라고 한다.<心統性情>
<심통성정도>중에서 심(心), 성(性), 정(情)의 관계에 대한 도해
그런데 주자가 말하는 情에는 사단(四端) 외에
칠정(七情, 喜怒哀樂愛惡慾(欲)의 일곱 가지 감정 - 칠정에 대해서는 이견들이 있으나,
여기서는 《예기》예운편을 준용)도 포함된다.
인간 심성에 관심이 많았던 주자는 사단과 칠정이라는 감정에 대해
이기론(理氣論 : 理와 氣를 간단히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여기서는 일단 理를 우주만물의 존재와 그 움직임에 대한 불변의 이치 내지는 원리로,
氣는 그 만물의 존재와 움직임을 이루는 기운 내지 質料 정도의 의미로 씀)을 통해 고찰하였고,
그 결과 사단은 理가 발동한 것[理之發], 칠정은 氣가 발동한 것[氣之發]이라 하여 양자를 준별하였다.
이는 결국 도덕적인 감정으로서의 사단을 理의 발동으로 규정함으로써,
氣의 발동으로 본 칠정보다 중요하게 생각하였음을 뜻한다.
사단과 칠정에 대한 주자의 생각은 퇴계 이황(1501-1570)에 의해 이론적으로 확고해졌다.
이황에 따르면, 사단(四端)은 理가 발동하고 氣가 뒤따른 것[理發而氣隨之]이며,
칠정(七情)은 氣가 발동하고 而가 올라탄 것[氣發而理乘之]이었다.
심통성정도 중에서 사단(四端)에 대한 도해
심통성정도 중에서 칠정(七情)에 대한 도해
그런데 이황에게 있어 理와 氣의 관계는 주종(主從), 상하(上下), 우열(優劣)의 관계에 있었다.
따라서 이황은 사단(四端), 즉 선한 감정이
칠정(七情), 즉 일반적인 감정보다 우월하고 중요함을 말하고자 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이황의 생각은 물론 순수한 학문적 관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다만 훈척과 사림, 내지 사림과 사림의 갈등이 이어지던 당시 상황을 고려할 때
이황이 도덕적인 삶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그러한 도덕적 삶의 가능성을
사람의 심성 안에서 찾으려 한 것이 아닐까 라는 해석을 해 볼 수는 있을 것이다.
물론 이황의 이런 생각은 젊은 기대승(奇大升, 1527-1572)과의 많은 토론을 통해
자극을 받으며 다듬어진 것이었다.
조선성리학의 이른바 사단칠정(四端七情) 논쟁은 이황과 기대승 간의 논변이나,
성혼(成渾)과 이이 율곡(李珥) 사이의 논의 들이 대표한다.
사단(四端)과 칠정(七情)에 대한 율곡 이이의 생각
조선성리학의 학파 성립, 내지는 동서 붕당의 형성과 관련하여 이황과 상대적 위치에 있는 인물이
이이(李珥, 1536-1584)이다. 그러한 만큼 사단과 칠정에 대해서도 이이는 이황과 크게 다른 생각이었다.
벗인 성혼(成渾, 1535-1598)과의 편지 토론에서
이이는 사단과 칠정 모두 氣가 발동하고 理가 올라탄[氣發理乘一途]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칠정만 그런 게 아니라 사단(四端) 역시 氣가 작용하고 理가 올라타는 것이네.
왜냐하면,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진 것을 본 뒤에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생겨나는 것이니,
이것(빠지려는 모습)을 보고 불쌍히 여기게 되는 것은 (눈으로 보는 감각행위이므로) 氣이니,
이것이 이른바 氣가 발동한다는 것이요,
불쌍히 여기는 마음의 근본은 仁이니, 이것이 이른바 理가 올라탄다는 것이네.
-《율곡전서(栗谷全書)》권10. 답성호원(答成浩原)
이이는 우주만물의 이치이자 원리인 理의 운동성을 부정하는 입장이었다.
理란 氣처럼 운동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 점에서 이이가 감각[氣]으로 발생한 측은지심을
理가 아닌 氣의 발동으로 이해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이가 理와 氣를 전혀 동일한 것으로 보았다는 뜻은 아니다.
理와 氣가 서로 섞일 것이 아니라는[不相雜] 생각은 이이나 다른 유학자들이 다르지 않았다.
다만 이이는 理와 氣의 관계를
상하(上下), 존비(尊卑), 주종(主從) 등의 대립적, 준별적 관계로 보지 않았던 것이다.
理와 氣는 서로 섞일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로 준별되는 별개의 존재도 아니라는 것이었다[不相離].
이 점이 바로 이황과 다른 점이었고,
따라서 칠정(七情)과 구별하기 위해 사단(四端)을 굳이 理의 발동이라고 볼 하등의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사단칠정(四端七情)과 현실의 문제
사단과 칠정에 대한 이황과 이이의 생각 차이는,
이기론(理氣論), 즉 우주와 만물을 바라보는 존재론적 관점의 차이에서 비롯된
순수하고 학문적인 것이었다. 다만 학문과 사상이란 것도 결국은 그 주체가 처한 시대 속에서 나온 것이고,
역으로 그 시대 상황에 대한 대응으로서의 의미가 있다고 한다면,
이이의 관점은 특히 경세론적 측면에서 주목되는 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즉 이이에게 있어 理, 즉 진리(眞理)라는 것은
따지고 보면 氣로 구현된 현실과 전혀 별개일 수 없는 것이었고,
따라서 理, 즉 진리 혹은 도덕성이 당연히 중요하긴 하나
그에 못지않게 氣, 즉 제도 개혁 등의 구체적 조치 자체가
또한 진리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이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정치와 경제, 군사와 교육 등에 걸친 다양한 개혁책을 건의하였다.
대동법의 선구로 평가되는 대공수미법(代貢收米法)이나,
외침에 대비한 십만양병설의 주장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이는 자신이 살던 16세기 후반의 시대를 ‘경장(更張)’ 즉 개혁이 필요한 시대로 파악하였다.
때에 맞추어 변통하여 법을 만들어 백성을 구하는 것이야말로
‘시의(時宜)’임을 강조한 것도(《만언봉사(萬言封事)》) 그 때문이었다.
성현의 말씀, 즉 理를 묵수하면서 도덕을 강조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며,
오히려 제도, 즉 유한하고 가변적인 氣를 통해 시의적절한 개혁을 하는 것 자체가 理,
즉 성현의 말씀 내지 유교적 진리를 실제적으로 보전하는 길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사단(四端)과 칠정(七情), 나아가 理와 氣에 대한 이이의 주장은
이처럼 현실 속 자신의 실천과 잘 부합하는 것이었고,
이 점에서 사단과 칠정에 대한 사변의 가치를 새삼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우리는 사단칠정 논쟁을 비롯한 성리학의 여러 학문적 논변을
너무 기계적으로 경세론이나 현실 대응의 태도와 연결시키는 데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사상이나 학문이 시대라는 분위기와 배경에서 나오고 역으로 영향을 주기도 하지만,
그 나름의 자율성을 본래의 특성으로 지닌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 국립중앙박물관 역사관 전통사상실, 서성호
- 국립중앙박물관 <큐레이터와의 대화, 제 31회, 제111회>, 2008년 10월22일
조선성리학과 사단칠정
- 주자성리학 -
●이기론(理氣論) : 우주론
만물은 불변의 원리인 理와 가변적 요소인 氣에 의해 생성, 존재, 소멸한다.
●성즉리설(性卽理說) : 심성론
사람에게 내재한 理는 바로 인의예지(仁義禮智)라는 도덕적 본성(性)
따라서 사람은 자신의 본성인 인의예지를 실현할 수 있고, 또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거경궁리(居敬窮理) 해야
: 거경(居敬) - 잡념 없이 도덕적 긴장상태 유지, 외형적 엄숙함
: 궁리(窮理) - 지적탐구
거경궁리의 바탕 위에서 삼강오륜(三綱五倫) 실천하면 인의예지 실현
이러한 입장을 사회적으로 확장시킨 것이 주자《대학장구(大學章句)》의 8조목(條目)
= 격물(格物), 치지(致知), 성의(誠意), 정심(正心),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
●이일분수론(理一分殊論)
: 신분제, 지주전호제 뒷받침, 禮 중시
- 사단칠정(四端七情) -
●사단(四端) :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
측은지심 인지단야(惻隱之心 仁之端也)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인의 발로이고
수오지심 의지단야(羞惡之心 義之端也) 부끄러이 여기고 미워하는 마음은 의의 발로이고
사양지심 예지단야(辭讓之心 禮之端也) 사양하는 마음은 예의 발로이고
시비지심 지지단야(是非之心 智之端也) 옳고 그름을 가리는 마음은 지의 발로이다.
인지유시사단야(人之有是四端也) 사람에게 이 네 가지 싹이 있는 것은
유기유사체야(猶其有四體也) 마치 사람에게 사지가 있는 것과 같다.
- 《맹자》 공손추
●칠정(七情) : 희喜ㆍ노怒ㆍ애哀ㆍ락樂ㆍ애愛ㆍ구懼(오惡)ㆍ욕欲(慾)
●이황(李滉, 1501-1570) 이기호발설(理氣互發說)
“사단은 理가 작용하고 氣가 뒤따른 것(理發氣隨之),
칠정은 氣가 작용하고 理가 올라탄 것(氣發理乘之)”
- 《퇴계집(退溪集)》권16, 답기명언논사단칠정(答奇明彦論四端七情)
⇒도덕적 감정인 사단을 일반적 감정인 칠정과 구별하여 강조
(이황은 理와 氣를 준별, 심지어 왕과 신하의 관계로까지 파악)
⇒현실개선은 제도(=氣)보다 도덕(理, 性)을 통해 가능
※사화(士禍)의 시대 … 공의(公義)와 사리(私利)의 구별을 강조하기 위함.
●이이(李珥, 1536-1584) 기발이승일도설(氣發理乘一途說)
“칠정만 그런 것이 아니라 사단 역시 氣가 작용하고 理가 타는 것이다.
왜냐하면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진 것을 본 뒤에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생겨나는 것이니,
이것(빠지려는 모습)을 보고 불쌍히 여기게 되는 것은(눈으로 보는 감각 행위이므로) 氣이니,
이것이 이른바 氣가 작용한다는 것이요, 불쌍히 여기는 마음의 근본은 仁이니,
이것이 이른바 理가 탄다는 것입니다.”
(非特七情爲然 四端亦是氣發 而理乘之也 何則 見孺子入井然後 乃發惻隱之心
見之而惻隱者氣也 此所謂氣發也 惻隱之本則仁也 此所謂理乘之也)
-《율곡전서(栗谷全書)》권10, 답성호원(答成浩原)
⇒사단과 칠정 모두 氣의 작용으로 본 것은 氣의 중요성을 인정한 것
(이이는 이황과 달리 理와 氣는 서로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봄)
⇒진리(理)는 현실(氣)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현실 개선(氣, 제도개혁) 그 자체가 진리(理)라는 인식.
대공수미법(代貢收米法 건의, 십만양병 제안 등 현실문제 적극 대응) → 일부 학자 “실학의 선구자”
※사림(士林)이 대거 복귀하면서 민생이 개선 등 각종 사회문제 개선이 필요성 절감.
●송시열(宋時烈, 1607-1689)
퇴계 선생이 중시한 것은 “사단은 理가 작용한 것이고, 칠정은 氣가 작용한 것”이라는 주자의 말씀인데 … 주자의 말씀들이 혹 기록한 사람의 잘못에서 비롯되었을지 어찌 아는가?
(退溪所主 只是朱子所謂 四端理之發 七情氣之發 … 安知朱子之說 或出於記者之誤也)
- 《우암집(尤庵集)》권86, 잡저(雜著) 주자언론동이고(朱子言論同異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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